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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앵그리 소사이어티와 목회자의 분노_오태균 교수(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45    등록일시 : 2015-04-08    인쇄

스페셜리포트


앵그리 소사이어티와 목회자의 분노


글 오태균 교수(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들어가는 말
당신이 최근에 분노를 폭발시킨 적이 언제였는가? 그것이 바로 오늘 아침일 수도 있고, 일주일 전일 수도 있으며 한 달 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문제로 인해 당신 자녀가 가출했다거나, 당신이 교회를 사임했다거나 아니면 상대방에게 고소를 당하지 않았다면, 당신 자신에 대해서 절망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시키기 때문이다. 당신이 분노를 폭발시킨 기억이 없는가? 그리고 타인에게나 혹은 당신 자신의 내면에 어떤 상처도 남긴 적이 없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복되도다. 그러나 사실 당신은 그 분노를 자신을 향해,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교묘한 위장술을 사용해서 표출했을 수도 있다. 이런 분노표출은 비단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들어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이 분노 표현 방식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살인을 부르는 층간소음”, “어린이집 교사, 네 살배기 어린아이 내동댕이 쳐…”, “화성 공기총 난사 사건, 파출소장 포함 4명 사망” 등등. 최근 발생한 위의 신문 기사 제목들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분노의 사회(Angry Society)로 변질되어 가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제 겨우 네 살 난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선생님에게 사정없이 얻어맞고 내팽겨쳐지는 장면은 우리 사회의 공분을 샀고, 그로 인해 괜히 죄 없는 다수의 모범적인 어린이집 교사들까지도 죄인 아닌 죄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분노의 질주를 일삼는 난폭 운전자를 만날 수도 있고, 길을 걷다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괴한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위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라고 하는 교회는 안전지대인가?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일상에서 화풀이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분노로 가득 차 강단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목회자를 만나는 순간일 것이다. 말과 행동에 있어서 성도들의 존경과 귀감이 되어야 하는 목회자 자신조차도 순간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원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분노상담사례
최근 필자는 분노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 내담자를 만났는데, 두 케이스 모두 자신의 분노 폭발로 인해 직장과 사역지를 떠난 경우이다.

사례 1 : A집사는 3대째 예수님과 교회를 잘 섬기는 믿음의 집안에서 자라고 성장했다. 몇 번의 상담을 통해 필자가 느낀 것은 내담자는 분노와 전혀 상관없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보였지만 정작 본인은 절제되지 않는 분노의 문제로 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현재 그녀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최근 교회를 떠나기 전까지 반주자로, 때로는 교사로 열심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담자의 문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본인이 조금이라도 무시당하거나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이 들면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면서 바로 분노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동료 교수, 직원, 학생들이고, 교회에서는 자신이 속해 있는 부서의 담당 교역자, 부장장로, 동료 집사들, 일상에서는 백화점 점원, 주차 안내원, 구청 직원 등 누구라도 자신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터뜨린다는 것이다. 결국 반복되는 자신의 분노 폭발로 인해 10년 이상을 봉사했던 정든 교회를 떠나야 했고, 학교에서도 분노 문제와 맞물려 승진 및 재임용에서 탈락되어 다른 학교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이 내담자는 현재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몹시 걱정하고 있는 상태이다.

사례 2 : B목사는 최근 자신의 잘못된 분노 표출 문제로 교회를 사임했다. 그 교회를 떠난 표면적 이유는 부목사와의 갈등 문제이다. B목사는 사역현장에서 담임 목사와 부교역자의 긴장관계는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갈등이 증폭된 이유는 부사역자의 업무 능력이나 사역에 대한 태도가 자신의 기대에 미치기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B목사는 부교역자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참아오다가 어느 날 잘못된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말았다. 과거 군대에서 경험했던 대로 자신의 구두 발로 부목사의 정강이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이 사건은 장로들을 비롯한 교회의 성도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결국 B목사는 오랫동안 열정과 헌신을 쏟아 부었던 사역지를 떠나게 된 것이다.


분노의 정체
A집사와 B목사를 학교와 교회를 떠나도록 만든 이 분노의 정체는 무엇일까? 분노가 죄일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심리학에서는 분노를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본다. 분노는 무엇인가 자신이 불편하거나 잘못되었거나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신호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분노 자체는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감정이며, 자신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정서적 반응이다.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 이 분노는 그 사람의 생존 본능을 자극한다.
분노에 대해 과학적인 분석을 처음 시도한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파괴적인 본능으로 간주한다. 이런 분노는 외부로부터의 환경자극으로 발생하며,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에 저장된다. 이렇게 저장된 분노는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당사자와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고, 그래서 분노는 폭발시키기 보다는 적절하게 조절되어 표현되도록 한다.1) 또한 학습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분노는 본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배워 온 행위이거나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 성장과정에서 가족 내의 분노로 인해 어떤 이익을 본 경험이 많을수록 분노는 강화 (Reinforcement)된다. 그래서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에게 닥친 문제해결 방편으로 분노를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 심리학에서는 분노를 개인의 의사 전달 도구들 중 하나로 간주하는 반면, 기독교인은 전통적으로2) 분노를 위험한 나쁜 감정으로, 심지어 죄악으로 보는 왜곡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분노를 적대시 하는 이유는 폭력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모든 분노가 다 폭력이나 물리적 행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분노 조절분야의 전문가인 하워드 카시노프(Howard Kassinove) 박사3)에 의하면 분노가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90%의 분노는 내부에서 자동 조절되어 폭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의미이다. 정리하자면, 분노 자체는 인간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이를 건설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이 될 수 있다. 즉 분노를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사람은 자신의 잃어버린 자존심과 위신, 그리고 삶에 대한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으며, 감정 회복을 누리고 행복을 되찾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분노를 다루는 방식
이미 언급했듯이 분노 감정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당신이 적어도 지난 한 달 동안 아래 목록에 하나라도 해당된 경우가 있다면 당신은 분노를 다루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 분노가 생기면 자책, 폭식 등으로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 분노 가득한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입히도록 방치한다.
- 분노를 상대방에게 표현하기가 두렵다.
- 분노를 절대로 표면화시키지 않는다.
- 분노 상황이 종료되어도 그 대상을 용서하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기 보다는 상대방에 대해 나름 은밀하게 복수할 방법을 찾는다.
- 분노 상태의 시간이 제법 오래간다.
- 분노가 끓어오르면 행동이나 언어의 통제가 잘 안 된다.
-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인해 사역에 위기가 오거나 피해를 본적이 있다.
- 왜 갑자기 그렇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위의 목록에 하나라도 해당되는가? 그러나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문제가 있는 죄인(롬 3:23)이라는 점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당신이 위의 목록들 중 3개 이상에 해당된다면, 당신은 정서적 시한폭탄(Emotional time bomb)을 안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당장 근처의 정신건강의학자나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분노 경험의 원인
목회자는 자신의 분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선 그 배후의 이유를 알아야 한다. 분노 경험의 원인에 대한 최근 연구4)에 의하면 목회자가 분노를 경험 하는데는 크게 성장배경과 관련된 내적인 요인과 목회 환경적 요인인 외적인 요인으로 구분된다.

첫째, 성장 배경에서 오는 내적인 요인으로는 정신 건강 분야에서 오랫동안 핵심 요소로 간주하고 있는 자아 존중감을 들 수 있다. 당신이 어린 시절부터 가족, 학교, 이웃 등으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은 경험이 자주 있었다면, 당신은 무의식 가운데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낮은 자아 존중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낮은 자아 존중감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의 장점을 잘 수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과대평가하는 성향을 보인다. 결국 이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를 낮게 보고 자신의 약점과 장점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혼란으로 귀결된다. 이런 혼란스러운 내면의 세계는 외부의 스트레스에도 취약하여 쉽게 분노로 이어진다. 또한 낮은 자존감과 수치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항상 같이 따라다닌다. 수치심은 분노와 같은 정서에 속하는 감정이면서 어린 시절부터 전 생애에 걸쳐 형성되기 때문에 개인의 내면화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면화된 수치심’이 높은 목회자일수록 방어 전략으로 대인관계에서 분노를 경험할 확률이 높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특징적인 스타일로 고착되기도 한다.

둘째, 목회자가 분노를 경험하는 외적요인으로는 자신이 처한 독특한 한국적 목회환경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목회자의 설교에 대한 부담은 세계 다른 교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과중하다. 주일설교, 수요설교, 금요철야, 새벽기도회 설교, 심방 설교 등으로 목사의 설교 준비에 대한 부담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설령 부교역자가 있다하더라도 담임목사는 일주일 평균 주일 낮 설교를 포함하여 2-3편의 설교는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본문에 대한 깊은 묵상과 성찰, 본문 주해를 위한 연구 시간을 따로 구별하기란 한국에서 목회를 해본 사람이라면 결단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마치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설교 준비가 반복적으로 산 정상을 향해 굴리고 올라가야 하는 큰 바위 덩어리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탁월한 설교에 대한 강박과 부담으로 인해 목회자는 설교 준비를 위한 일에 방해를 받게 되면 상대방이 가족이든 혹은 교인이든 간에 분노 표출을 이어질 가능성이 항상 있다.

과중한 설교부담에 이어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비현실적인 기대는 목회자의 분노 표출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보편적으로 교인들은 자신의 목회자에 대해 위대한 설교자, 교사, 행정가, 치유자, 지도자이며 경제적으로는 청렴한 선비 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만능 은사를 가진 목회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목회자 역시 경제 문제로 인해 자녀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이런 정신적 압박감은 분노를 촉발시킬 수 있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위와 같은 교인들의 비현실적 기대 등으로 인해 목회자는 대인관계에서 늘 긴장감을 가질 수 있으며, 건강치 못한 자존감을 가진 목회자에게는 이것이 분노를 통제하기 힘든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교인들은 목회자의 가정은 ‘위대한 성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목회자는 자녀들이 사춘기에 탈선하거나, 사모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못한다는 판단이 들 때, 이는 또 다른 분노 촉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압박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일부 목회자들은 분노 표출 대신 일중독이라는 또 다른 역기능적 대체물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건강하지 못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일중독은 과중한 업무로 인해 신체적, 정서적 기반을 위협하고, 정서에 인화 물질과도 같은 일중독 상태는 한 순간 작은 스트레스라는 뇌관에 의해 분노폭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분노 표현 양식
그렇다면 목회자는 어떻게 분노를 표출시키는가? 목회자들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크게 3가지 양식, 즉 감정폭발형, 감정억압형, 그리고 감정통제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5).
첫째 유형은 소위 다혈질에 속하는 감정폭발형(Anger Out)이다. 이런 유형의 목회자는 주기적으로 냉정을 잃는 사람이다. 필자는 목회자들로 구성된 정기 조기 축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축구는 다소 격한 운동에 속하기 때문에 경기 중 몸싸움 하는 일이 잦으며, 또한 판정 불만에 대한 시비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만일 당신이 그런 현장에서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신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몸싸움과 판정 불만의 순간 당신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을 방출하는 신경이 분주해지기 시작하고, 몸의 근육은 힘이 들어간 채 잔뜩 긴장하게 된다. 심장 박동 수는 점차 빨라지고, 당신의 목은 굳어져가며, 이마는 뜨거워져 간다. 잠시나마 당신의 분노를 분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판정의 상황이 부당하다고 계속 느끼면, 그야말로 당신은 ‘펑!’ 하고 터져버릴 수 있다. 분노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또한 교회에서 교역자 회의를 하면서 부교역자의 실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회의석상에서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모습도 바로 이 감정폭발형에 속한다. 이런 유형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감정을 마구 쏟아 내거나 분노의 노예가 되어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닌다. 이를 참거나 자제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후회와 합리화에 사로잡힌다. 반면에 통제하는 폭발형이 있는데, 이는 고의적으로 분노를 터뜨려 상대방을 조정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에 해당하는 목회자는 분노 표현이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의 분노 표현은 계획적일 때가 많고 철저하게 계산적이며 통제되는 분노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감정억압형(Anger In)이다.
심리학에서는 억압(Repression)과 억제(Suppression)를 구분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현할 경우 자신에게 어려움이 생길 것을 직감적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흔히 사용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억압 혹은 억제이다. 억압은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보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무의식 세계에서의 정신적 역동이고, 억제는 억압보다는 훨씬 건강한 방어기제로 분노의 내용과 자신의 감정 모두를 동시에 의식하면서 시기를 찾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억제는 억압이 건설적으로 발전된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감정폭발형과 마찬가지로 억압형에도 두 가지의 양식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의 분노를 억압 내지 부정하는 자기징벌형(Self-punisher)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분노가 없는 척 하는 위장분노형(Underhanders)형이다. 자기징벌형은 외부로 자신의 분노를 잘 내지 않는, 적어도 외부인들이 볼 때는 대단히 성실한 목회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역에서 하찮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강박증에 시달릴 수 있으며, 보통 일 중독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는 사역 현장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기 때문에, 보통 표정이 어두우며 만성적이고 미세한 우울감으로 고통 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런 유형은 분노라는 정서가 신체에 영향을 미치도록 방치하기 때문에 신체표현형(Somatizer)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장분노형은 직접적인 분노 표출 대신 뒤에서 자신에게 스트레스나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험담 혹은 모함 등으로 분노 감정을 방출시킨다. 그 사람 앞에서 그의 생각이나 견해를 은근히 비꼰다든지, 공개적인 망신을 주어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를 만드는 행위도 위장분노형에 속한다.

마지막 세 번째 유형은 목회자들에게 적용이 가능한 분노 통제형(Anger Control)이다. 일반 심리학에서는 분노 통제에 대한 건강한 방어기제로 유머, 이타주의, 예상, 억제, 승화 등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목회자의 유머 감각은 자신의 분노를 건강하게 통제하면서, 동시에 건강하게 표출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유머는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드는 말이나 행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보고도 속으로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이다. 목회자가 설교 후 그날 자신이 그 설교에 대해 만족이 안 되고 부족함을 느꼈다면 수치심과 죄책감의 포로가 되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 혹은 ‘내가 항상 설교를 잘할 수는 없는 법이지’하고 자신의 허물에 대해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분노를 건강하게 통제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성경은 분노 통제에 대해 다양한 모양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전 7:9)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 37:8)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잠 27:4)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 2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 1:19)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6-27)

위의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일반적으로 분노는 중립적인 감정이라 할지라도 선보다는 악의 문제를 일으키고, 의보다는 다툼이나 잔인함과 같은 죄로 연결될 가능성이 많은 복잡한 감정이다. 그러나 서두에서도 고찰했듯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분노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의 감정이기에, 분노 표출의 상황에서 목회자는 성경적 분노 통제 원리 (Biblical Anger Control Principle)를 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의 첫 번째 원리는 분노 표현을 더디 하는 것으로, 분노를 억제하되 자신의 정서 내면으로 몰아넣지 말아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습관은 적절한 표출법을 익힐 수 있는 견고한 토대(Foundation)를 마련해 준다.
두 번째 원리는 해가 지도록, 즉 오랫동안 분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노를 촉발시킨 상대방을 용서해야 한다. 영어의 Forgive란 단어를 유심히 보면 For(~을 위해서)와 Give(주다)가 합쳐진 단어이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의 승리자가 되려면, ‘Forgive & Forget’(용서하고 잊어버려라)이란 선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원리로는, 분노로 인해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억압되고 건강하지 못한 분노로 많은 목회자들이 탈진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일부 목회자들은 목회자의 품위를 벗어난 일탈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 결과 목회자는 자신의 영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목회자가 인간의 최악의 본성이 드러날 수 있는 분노에 지면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답이 없다.

나가면서
현대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은 자신의 분노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분노로 인해 자신의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에 큰 무리와 혼란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본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대해서는 성경적 분노 통제원리를 가동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앙 공동체와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탄의 궤계에 대해서 목회자는 자신의 분노를 보다 더 강력한 감정 에너지와 촉매로 전환시켜 우상숭배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했던 모세(출 32:15-24)와 장사꾼의 소굴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청결케 하신 예수님(마 2:14-16)처럼 신앙 공동체의 건강한 영성회복과 선을 이루고 세상의 부패한 구조와 환경을 새롭게 바꿀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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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마크 코스그로브. 1988. 『분노와 적대감』(김만풍 역). 서울 : 두란노.
비벌리 엔젤. 2003. 『화의 심리학 : 성공하는 사람은 화내는 법이 다르다』(김재홍 역). 서울 : 용오름.
이관직. 2007. 『성경과 분노심리』 서울 : 대서.
조숙. 2014. 『분노와 정서조절』 서울 : 학지사.
칩 잉그램 & 베카 존슨. 2009. 『분노 컨트롤 : 파괴적인 감정을 삶의 에너지로 바꾸는 실제적인 방법』(윤종석 역). 서울 : 디모데.



오태균 교수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IL)에서 교육학 석사와 철학 박사(Ph.D)를 취득한 오태균 교수는 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상담학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개혁주의 목회상담학회와 한국기독교 가족상담협회를 설립한 후 학회 회장(2008-2012)을 역임했고, 현재는 협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최근 역서로는 『불안치료』가 있고, 논문으로 “목회자의 탈진극복을 위한 목회상담학적 과제”, “동반의존 극복을 위한 목회 상담적 과제”, “중년 남성 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 교육적 과제”, “귀신들림에 대한 신학생들의 견해와 치유에 관한 연구”, “헨리나우엔에게서 얻는 목회상담자의 지혜”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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