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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장세미나
201001 <특강> 예배가 왜 중요한가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99    등록일시 : 2009-12-29    인쇄
<제 1 강>
예배가 왜 중요한가


교회성장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회성장연구소 소장 홍영기 목사입니다.
201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도 여러분의 삶과 사역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번 1월호 특강은 <예배가 왜 중요한가> 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홍영기 목사 교회성장연구소장, yhong0122@naver.com


길거리를 걷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불조심!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라는 문구입니다. 중요한 말은 반복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예배도 불조심 이상으로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입니다. 마리아 해리스는 교회의 5대 사명을‘예배, 교육, 교제, 봉사, 선교’라고 말합니다. 이 5대 사명 중 가장 중요한 핵심 사명은 예배이며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 보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예배가 성도의 삶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인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예배의 영어단어는 ‘worship’입니다. ‘worth’, 즉 ‘가치’라는 단어와 ‘ship’, ‘신분’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즉 예배란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올려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중요성을 잊고 삽니다. 예배를 형식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예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배는 사도 바울의 고백(빌 3:7-8)처럼 이 땅의 모든 것들은 배설물처럼 여기고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분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먼 길을 떠날 때 짚신을 고쳐 신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한 장거리 여행을 할 때도 자동차의 엔진점검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제 2010년이란 새로운 여행을 앞두고 성도의 신앙과 교회 사역 가운데 예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이번 특강에서는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네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으신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는 첫째,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영광과 기쁨을 누리십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선택사항이 결코 아닙니다. 가장 우선되고 가장 중요한(first and foremost)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출 20:3-6). 하나님은 일하는 사역자(worker)보다 예배하는 자(worshipper)를 먼저 찾으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의 처음 세 가지 계명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최상의 자리를 내어드릴 것을 명령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성경은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속의 역사는 인간이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음으로 하나님을 거역한 사실과, 이 잘못된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께로 되돌려드리기 위한 예정과 성취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잭 헤이포드는 그의 책 「경배」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예배자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가 애정을 쏟는 대상을 엄격한 의미에서 신이라고 생각하든 안 하든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예배하고 있다.”
인간은 예배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무언가를 예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치에 따라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예배합니다. 어떤 사람은 ‘우상’을 예배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돈’을 예배하고, ‘명예’를 예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 전체에 분명하게 흐르는 핵심적 주제는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간창조의 목적이요 인간만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특별히 교회는 예배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영적 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마치 광야를 지나고 있는 이스라엘과 모세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 33:15)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과는 다른 선택받은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 임재 때문이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라면, 하나님 없이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찬양하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며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곧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니라” 어느 기독교 가정이 있었습니다. 매주일 아침이 되면,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둘 중에 오늘은 당신이 대표로 예배당에 가구려.” 그런데 어느 날 밤 남편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와 함께 죽어 하늘나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지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들은 부부지요?”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문지기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잘되었소. 당신들 중에 대표로 부인만 이리로 들어오십시오.” 그렇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거스리는 행위입니다.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간 다음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는 40일 동안 주야로 내렸습니다. 그리고 150일 동안 물이 불어났습니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던 방주는 아라랏산에 머물렀고 노아의 가족과 짐승들은 노아가 601세가 되던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1년 하고도 10일 만에 방주에서 나온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에 들어갔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들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였습니까? 20절을 보면 그들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창 8:20)
방주에서 나와 아라랏산 중턱에서 바라본 세상은 환상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수해의 현장은 언제나 참담합니다. 몇 해 전 교회 성도들과 함께 강원도 수해현장을 다녀왔는데 산등성이의 나무들은 뽑혀 있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길마저 다 사라지고 곳곳에는 악취가 가득하고 먹을 수 있는 식수마저 고갈되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가장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를 잡아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란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노아는 예배가 모든 삶의 시작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홍수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론 사람들이 비난하고 조롱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가는 곳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스룹바벨과 느헤미야도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벽을 재건할 때 가장 먼저 양의 문을 쌓았습니다. 제사드릴 제물인 양들이 다니는 양의 문을 가장 먼저 재건하였습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다른 모든 성벽의 재건이 회복될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2.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이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는 둘째, 예배의 자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최고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이며, 반드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교도 설교가 리처드 스틸은 흐트러짐이 없는 예배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무릎을 꿇거나 갈망하는 눈을 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느끼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두 배나 더 큰 죄악이자 명백한 위선입니다. 만일 우리의 예배당에서 마음으로 예배에 집중하는 영혼만을 헤아려 본다면, 우리의 회중은 얼마나 텅 비어 있는 것 같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딱한 예배를 받으시는 셈이 되겠는지요!” 예배당 안에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하나님과 만난 사람들만을 예배자로 헤아리실 때, 하나님의 눈에는 텅 비어 있는 것과 같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예배의 시간은 하나님과 만나는 순간이며, 예배의 장소는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셨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교차하는 곳,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분을 마음, 영혼, 생각,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바로 참된 예배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거룩한 만남은 그렇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만남의 감격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현장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임하는 성도들은 관습적인 예배로부터 벗어나 예배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만남의 예배는 사랑 안에서의 신뢰가 기초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 마음속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상담가인 칼 로저스는 “진정한 만남은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은 각자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찬양과 경배로 그 음성에 화답해야 할 것입니다.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예배다운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임을 강조하며. 예배에 대한 12가지 신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믿는 자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
(2)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반드시 건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3) 올바른 예배 형식이란 없다.
(4) 불신자들은 믿는 자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5)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고 선포되는 말씀이 이해가 된다면 예배는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강력한 전도가 되는 것이다.
(6)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예배에 불신자들이 참석했을 때 그들의 두려움과 필요와 그들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민감할 것을 기대한다.
(7)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 깊이가 없을 필요는 없다.
(8) 믿는 자들과 불신자들의 필요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9) 예배는 그 목적에 맞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
(10) 구도자 중심의 예배는 개인 전도와 함께 병용하기 위한 것이지 그것을 대신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11) 구도자 예배의 형식을 고안하는 데는 정해진 방법이 없다.
(12)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이기적이지 않고 성숙한 신자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예배는 비단 예배당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전체가 예배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A.W.토저는 현대 교회의 예배를 엔터테인먼트로 비유하며 예배의 회복을 강력하게 외친 바 있습니다. 특별히 토저는 삶 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예배는 이론이 아닌 체험인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수천 번 반복한다 할지라도, 당신이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예배는 장엄함이나 일시적인 감동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터의 온전함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공예배의 횟수가 예배의 전부가 아니며 삶 속에서의 체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일예배를 드릴 때 뿐 아니라 평일에 하는 모든 일 가운데 진정한 예배가 흘러넘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예배의 영광을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됩니다. 인간은 예배의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엡 1:11-12). 모든 성도들은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윌리암 니콜스(William Nicholl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는 기독교회의 가장 숭고하고 필수적인 활동이다. 교회의 다른 모든 활동은 사라지게 되더라도 오직 예배만은 하나님 나라에까지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장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통치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3. 예배는 삶의 변화를 가능케 한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는 셋째, 예배를 통해 삶의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존재목적인 예배는 우리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절친한 친구 둘이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지냈습니다. 교회에 나가도 술을 좀 마시는 이들이 어느 날 목이 컬컬하여 친구에게 “우리 한 잔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러 가는 길에 한 교회 앞을 지나다 보니 때마침 부흥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술은 나중에 마시고 먼저 예배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는 “아니야. 먼저 한 잔하자”고 해서 결국 각자 다른 길로 갔습니다. 교회로 간 친구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인생이 새로워졌고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22, 24대 대통령을 지낸 ‘클리 브랜드’입니다.
한편 그의 친구는 교회보다 술집을 찾고 싸움질을 하다 보니 사람을 죽이고 나중에는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배가 한 사람의 인생을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에너지와 힘을 공급받은 한 사람이 미국이라는 거대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삶의 변화를 가능케 하려면 온 맘을 다해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단순히 예배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생겨난 ‘몰링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대형 복합쇼핑몰에서 쇼핑, 놀이, 공연, 교육 등을 원스톱(one-stop)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하는 ‘몰링(Malling)’을 즐기는 새로운 소비계층을 일컫는 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쇼핑시설과 함께 영화관, 공연장, 레스토랑 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는 복합 쇼핑몰이 증가하고 있고, 소비자들이 쇼핑 자체를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서 하나의 즐거운 경험으로 여기면서 몰링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쇼핑을 하듯이 일주일에 잠시 교회를 찾아 모든 것을 채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편리하고 화려하고 재미있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머지 삶 속에서의 여유와 내면의 가치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있습니다. 대형 복합쇼핑몰에서 짧은 시간에 편리하게 다양한 재미와 욕구를 한 번에 채우듯이, 예배도 편리하고 재미있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쇼핑하듯, 오락을 즐기듯 참여하는 공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구주이심이 증거되는 자리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미국 선교사로서 실패해서 참담한 심정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종교적 위기에 결정적인 회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은 1738년 5월 24일 영국 런던의 한 작은 거리 올더스게잇에 있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작은 집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웨슬리는 그의 일기에서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날 저녁에 나는 마지못해 작은 집회에 참석했다. 어떤 이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한다고 느꼈으며 그가 나의 죄를 온전히 없이 하시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확실한 증거를 받았다.” 웨슬리는 집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와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사상과 철학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그의 의지적인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토저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예배드리기 위한 모든 것들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도 한 가지 불길한 결핍 요소를 들라면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 것만큼만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결코 평범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휴대폰은 필수품입니다. 만약 아침에 출근하는데 휴대폰을 놓고 나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사실을 발견한 순간 다시 집으로 달려가 휴대폰을 챙길 것입니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휴대폰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예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삶의 진실은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삶 가운데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누릴 수 있는 예배의 자리입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영적으로 성공하고 인생에 성공합니다. 현대 선교의 대부인 허드슨 테일러는 말년에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꾸준히 선교지를 돌아다녔습니다. 어떤 때에는 덜컹거리는 마차를 타고 여러 시간 동안 들길을 지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밤늦게 중국의 한 여인숙에 도착하면 먼저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를 위해 작고 구석진 방이 있는지 알아보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여인숙에서는 큰 방 하나에서 모두 같이 잠을 자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특별히 작고 구석진 방을 요청한 것은 허드슨 테일러가 나이가 든 탓도 있겠지만, 그가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성냥을 그어 촛불을 켜고 예배를 드리곤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예배가 허드슨 테일러의 삶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허드슨 테일러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하나님께 늘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삶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키웠습니다. 허드슨을 평생 지켜준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은밀한 시간(예배)이었습니다.

4. 예배는 부흥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는 넷째, 예배는 부흥의 중요한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각 나라마다 교회당, 성당, 사당 등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곳은 지금도 제사를 위해서 존재하지만 어떤 곳은 하나의 유적이나 관광지로 전락해 버린 경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종교개혁의 발원지였던 유럽의 경우 예배를 드리는 수가 급격히 줄었거나 아예 다른 용도로 예배당이 사용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지금도 칼빈과 루터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그 곳이 왜 참담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을까요? 바로 예배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독일에는 교회가 약 3만 개 가량 있습니다. 그 중에 국가교회가 2만 개 정도 됩니다. 약 2만 여개의 국가교회와 더불어 자유교회들이 예배당이 텅텅 비어가 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건물만 가지고 있지 그 곳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 가고 있습니다. 재적 교인수가 2천 명에서 4천명이라고 할지라도 정작 주일예배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많으면 50명 정도, 적으면 20-30명 정도 출석하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1년에 세 번 교회에 가는 교인을 ‘ETC Christian’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부활절의 Eastern, 추수 감사절의 Thanksgiving Day, 성탄절의 Christmas의 약자를 따서 그 날에만 교회에 가는 교인을 일컫습니다. 평생 세 번 교회에 가는 형식적인 교인들은 ‘BMF Christia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 번은 부모의 품에 안겨 유아 세례를 받기 위해(Baptist Service Christian), 한번은 배필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Marriage service, Wedding service Christian),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죽은 후 장례식에서 목사의 집례를 받기 위해(Funeral service Christian) 교회에 가는 교인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곳에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고, 생명을 걸고 예배하고자 했던 그 때가 역사에 기록된 부흥의 전성기 였다는 사실입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사람이 일어날 때 그곳에 새로운 부흥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1904년 영국 웨일스 지방의 큰 부흥을 주도했던 이반 로버츠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25살인 그는 매일 웨일스의 변화와 부흥을 위해 기도했고 그의 끊임없는 기도는 수십만 명이 회개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많은 사람이 변화되었고 사회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스무 명도 안 되는 중보자들의 기도 모임으로 시작된 부흥으로 인해 웨일스의 모든 교회에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십만 명의 불신자가 회심하여 교회에 등록했으며, 대부분이 다시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술 취하는 것이 즉시 절반으로 줄었고 수많은 술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범죄가 너무나 줄어 판사들은 살인, 폭행, 강간, 강도 등의 사건이 없음을 상징하는 흰 장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경찰들이 할 일이 없어져 해고되기도 하였습니다. 신문에는 “놀라운 부흥이 웨일스를 휩쓸고 있다. 나라 전체가 도시에서 땅 속의 석탄 광산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영광으로 불붙었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시대에 TV, 인터넷, 신문에 이러한 보도가 나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도무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런 일은 모두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 나라 이 땅에도 100여 년 전 평양에서 시작된 기도와 부흥이 이 나라를 흔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죄를 자백하고 교회를 찾았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인가요? 하나님은 그러한 역사를 다시 이루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부흥의 때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들이 되도록 준비하고 소망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에 생명을 걸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이 땅에서 일어냐 합니다. 이러한 뜨거운 열정이 이 땅에 있는 한국의 교회의 성도들에게 가득 넘치길 원합니다.
지금까지 예배가 왜 중요한지 살펴보았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으신다.
둘째,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이다.
셋째, 예배는 삶의 변화를 가능케 한다.
넷째, 예배는 부흥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1934년 가을, 16살의 소년이 부흥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소년은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시골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예배에서 소년은 하나님을 만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죄인이요, 스스로 이 죄를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죄 짐을 내려놓고 전 생애를 드렸습니다. 그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도전적이며, 기쁨과 의미가 넘쳤습니다. 날로 성숙해지는 성품에서 예수의 형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난 그 예수를 많은 친구들에게,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전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빌리 그래함입니다.

참된 예배는 한 사람의 인생을, 더 나아가 한 민족과 세계의 운명을 바꿔놓을 만틈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예배합니다」의 저자 저드슨 콘월은 “부흥은 예배이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향력 없는 구호처럼 사용되어지는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걸고, 온 맘을 다해 고백해야 하는 우리의 신앙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예배 모습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 내가 예배를 드려야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랬으며, 미래에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통해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2010년 새로운 한해 우리 모두가 진정한 예배자로 거듭나는 승리의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배가 일주일에 단 1시간 동안의 위로가 아닌 삶 속을 가득 채우는 능력이 되기 원합니다.
※ 본 특강은 부록 CD를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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