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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영성]대학연합교회 김형민 목사와 4차원의 영성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19    등록일시 : 2007-07-31    인쇄
새연재
대학연합교회 김형민 목사와 4차원의 영성


김형민 목사는 월드비전교회 오영택 목사의 사모이며, 대학연합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많은 청년·대학생들이 주축으로 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고 자립하여 지금은 중형교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형민 목사는 인격적인 성령사역으로, 특별히 4차원 영성의 원리를 목회에 적용하여 교회성장을 일구어냈다. 본 4차원의 영성 실황중계는 4차원의 영성 골드회원 모임에서 김형민 목사가 목회 사례의 경험을 중심으로 4차원 영성의 원리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어떻게 목회에 접목하였는지에 대한 사례 발표를 보도한다. - 편집자 주


여러분은 지역 교회에서 목회하실 것입니다. 저는 대학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캠퍼스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역 교회 사역이든 캠퍼스 사역이든 성령 사역에는 크게 차이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로맨스와 추억이 다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목사가 되셨습니까? 저는 지금도 자격이 부족하지만 시아버지인 오관석 목사님이 반강제로 저를 목사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실제로 목사의 자격이 부족하지만, 목사가 되든지, 집사가 되든지 사역은 결국 하나님이 좋아서 시작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교회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추억을 그분이 다 기억하시고, 그 분과의 로맨스 끝에 전문성 있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캠퍼스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선교단체에 있지도 않았고 대학사역에 대해 지식도 전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퍼스 사역에 뛰어든 이유는 젊은이들 가운데 주님의 한(恨)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달 전엔가 김종우 목사님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일본에서 사역하고 오시는 길에 전화했다고 하는데, C.C.C 자체적으로 대학 안에 학생들이 얼마나 교회에 다니고 있는가를 조사를 해봤더니 실제적으로 주일성수하는 대학생은 4%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통 우리가 말하는 선교지의 상황과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4%밖에는 실제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학생이 없다는 현실 앞에 김종우 목사님은 너무나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이러한 아픔은 제게도 동일하게 일어났습니다. 대학가를 선교지라고 선포하고 들어가서 사역할 때 저는 Next Generation 에 대한 하나님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저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회관을 정립하고 청년의 야성을 회복하라
젊은이들을 사역하면서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제가 사우디에서 6년간 사역하면서 선교에 대해 조금 눈을 떴는데,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결국 선교는 젊은이들이 간다는 사실입니다. 중년들이 가는 게 아닙니다. 대다수는 20대의 젊은이들이 선교에 대한 마인드를 가지고 선교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가 한국의 웬만한 신학대에 가서 집회에 가봤는데요. 가서 보면 신학생들이 너무 멜랑콜리(melancholy)하고 너무 보드라워서 과연 저들이 선교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교회론과 교회관이 제대로 정립되어야 선교도 성공할 수 있는데, 선교단체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중에 상당수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관과 선교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열방선교도 내 주변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복음을 전하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환상적인 열방교회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선교도 지하 교회든 지상 교회든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잘 모르고 있으며 교회론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젊은이들은 선교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탄약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의 손에 권총이 있다면 ‘빵’ 하고 쏠 때, 저 아프리카로 떨어지고 탄약이 무슬림 지역으로 떨어지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 손에 총은 있는데 그 속에 탄알이 떨어지고 있는 겁니다. 찬양을 불러도 얼마나 멜랑콜리(melancholy) 합니까? 야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성만 외치지 말고 야성부터 회복하라고 합니다.
제가 사역하는 교회는 성수지역에 건대와 시립대에도 있습니다. 캠퍼스 교회가 9개가 되다 보니 어떤 곳은 강당에서 예배드리고, 어떤 곳은 강의실에서 예배드리는 등 교회의 특성도 다르고 성장하는 것도 다 다릅니다. 지금은 경희대를 중점적으로 붙잡고 있고, 성수지역, 특히 건대, 시립대 대학생들을 아직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수지역에는 창녀들이 참 많이 다닙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신들에게 놀라오라며 명함을 만들어 찾아다니면서 짝을 지어 전도 아닌 전도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는 젊은이들에게 야성을 먼저 되찾으라고 말합니다. 전도하라고 하면 젊은이들이 부담스러워 하니까 부담 갖지 말고 예수님 자랑하고 예수님 홍보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복음을 전하라
젊은이들을 보면 제 속에 애통함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뜻도 몰랐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습니다. 진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십자가를 바라보면 고통이 느껴집니다. 어떤 고통이냐면 이런 겁니다. 만약 제가 진심을 이야기 할 때, 그 진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애간장이 타는 겁니다.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진심을 말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 저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와 같은 그런 고통이 느껴집니다. 한 손은 성부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한 손은 우리들의 손을 잡고, 그 가운데서 예수님이 사랑의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생명을 던져가면서까지 화목케 하시려는 그 애통이 느껴집니다. 그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사역할 때 딱 그런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이 진심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겐 예수님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6시간 만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통 받은 사실을 인간은 모르는데, 다른 피조물들은 알았습니다. 하늘의 왕이 왔다 가셨다는 것을 사물들은 알았습니다. 세상의 기초가 흔들리고 바위가 터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고, 이 메시지를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분노와 애통함과 의에 대한 목마름이 일어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데 앞에 있는 젊은이가 거부할 때 그렇습니다. 그럴 때 어느 한 순간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진심이 전달되지 않고 예수가 전달되지 않으니까 그렇지요. 어떤 때에는 제가 생명을 겁니다. ‘하나님 차라리 제 생명을 거두어 가서라도 이 젊은이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주님 차라리 제게 있는 은사를 다 거두어 가서라도 이 젊은이에게 표적을 나타내어 복음을 깨닫고 무릎을 꿇게 해주세요’라고 부르짖습니다.
저는 가끔 ‘두 얼굴의 사나이’ 영화가 생각납니다. 진심이 안 받아들여지면 두 얼굴의 사나이의 옷이 찢어지고 얼굴에 의로운 분노가 차면서 근육이 붙는 그 모습이 어떤 때에는 제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데 그것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 지지 않으면 의로운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 때에는 ‘모든 이론을 폐하시고 하나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 29-31절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 곁에 있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후 말씀을 전파하다 봉변을 당합니다. 고문을 당하고 실컷 어려움 당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저 같으면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텐데,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배운 대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주여 저들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거룩한 종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손을 내밀 때 병이 낫고 표적이 나타나고 기사가 나타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에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을 때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개처럼 끌려가서 화형당하고 모든 법적인 신분이 다 박탈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나 제자들이 적극적으로 표적이 나타나길 구하는, 다시 말해 오늘의 4차원의 영성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사정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캠퍼스 안의 개척교회 현장에서도 놀라운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절박한 사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들을 보게 된 후 젊은이들을 철저하게 평신도 사역자로 성장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차원의 영성으로 보여주는 목회
요즘 세대는 옳고 그름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예전 7-80년대 대학생을 보면 옳고 그름의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주제에 함께 동참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So What?” “그래서 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재미있으면 끝납니다.
최근에 신문에 칼럼을 하나 썼습니다. ‘호모 로덴스’라는 주제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재미있기 위해서 태어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게임 시장이 일조 원을 넘는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재미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재미없으면 교회도 안가고, 천국도 안가겠다는 겁니다. 그런 젊은이들을 어떤 방법으로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믿도록 만들어 주느냐는 것이지요. 그것은 말만 가지고는 안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2년 전에 고려대에서 기독교수협의회 포럼이 열렸습니다. 저희 대학연합교회에 관한 것도 포럼 주제로 올라왔는데, 왜 요즘 대학연합교회를 통해 대학가에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사도행전 29장의 역사가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이 하신 얘기들이, 전도를 하면 젊은이들이 50m 밖으로 도망을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토착 잡신들도 많은데 왜 서양신을 믿어야 하냐고 반발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관심에 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앞서 그렇게 진지하게 묻는 젊은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선교단체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젊은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있어서 말로만 전도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혔다고 봅니다. 하나님 나라가 캠퍼스에 임하고 이 땅에 임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보여줌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4차원이 무엇입니까? “네가 보는 것을 내가 너에게 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을 보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캠퍼스에 임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날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까를 꿈꿉니다.
저는 남편의 교회에서 사모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장로님이 200분 조금 넘는 작지 않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모 자리를 과감히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바라며 캠퍼스 사역에 뛰어들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자녀가 방황을 하면 부모님이 돈을 벌어도 무슨 재미로 돈을 벌겠습니까? 교단을 초월해서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젊은이들은 미래의 소망입니다. 그런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무섭게 나가고 있는데, 교회 이기주의, 교단 이기주의가 말이 됩니까? 한 가정의 아이가 잘못되면 삼촌, 이모, 할머니 할 것 없이 식구들이 다 붙어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제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젊은이를 일으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소원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모 자리를 놓고 나와서 젊은이들을 붙들고 13명으로 건대에서부터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건대 안에서 처음 캠퍼스 사역을 시작할 때, 저는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총장을 전도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수위 아저씨도 전도해야겠지만 그 영향력으로 볼 때 스케일 있게 전도하려면 총장님부터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식하게 총장님실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나중에 총장님이 귀찮아서 예수 믿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든 간에 예수 믿으면 천국 가잖아요. 그렇게 총장님을 전도했습니다.
둘째는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것입니다. 캠퍼스 전도 형태를 보면, 대학 안에서 무작위로 씨 뿌리고 주일날 근처 교회에 가라고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램과는 반대로 무섭게 교회에서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교 안에 교회를 세워서 젊은이들이 전도되면 바로 학교 안에서 침례가 이루어지고 세례가 이루어지고 해야 합니다. 지금은 신사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시기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건대 안에 교회를 세운 겁니다.
이전에 건대에 이사장님의 조카가 많은 돈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려고 했지만 데모에 부딪혀 결국 교회를 세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 돈을 김준곤 목사님이 계시는 C.C.C 본부에 수십억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어떻게 해서든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에 컨테이너를 세웠습니다. 무작정 컨테이너를 갖다가 들이댄 것이지요.
저의 목회철학 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성령의 역사는 행동할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키의 ‘Just Do It’ 문구를 참 좋아합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성공하지 못하더라고요. 어떤 것은 회의해야 할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헷갈리면 목회가 잘 안됩니다. 제가 짧은 목회 연륜이지만 회의 할 일과 하나님과 단독으로 상의해야 할 일을 분별하지 못하면 교회에 반드시 어려움이 오더라고요.
어떤 군목이 있었는데 군대 안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제일 좋은 자리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어느날 장교 레스토랑에 십자가를 걸어 놓고 그냥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어느 누구도 십자가를 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쐐기를 박고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일은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단은 학교의 그 누구에게도 상의함 없이 컨테이너 박스를 갖다 놓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불법이었습니다. 학교라는 곳은 총장부터 위에서 누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행정적으로 올라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도 일단 기도하고 나서 학교에서 노른자위 같이 제일 좋은 장소에 컨테이너 박스를 세웠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는데, 총무처에서 직원이 달려왔습니다. 불교신자였던 직원이 당장 철거하지 않으면 형사고발하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철거 직전 교문을 닫으려고 하는 순간에 저는 몸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컨테이너 박스는 반으로 쪼개져있고 강대상은 돌아다니고 십자가는 걸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분이 교문을 닫고 가려는데, 그분을 붙들고, “가실 때 가시더라도 기도한번 받고 가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사역하다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는 반드시 기도라는 힘을 불어넣습니다. 그것이 4차원 아니겠습니까? 4차원이 복잡한 것이겠습니까? 기도하는 것이 4차원 아니겠습니까? 내 힘 가지고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의 힘을 빌리는 것이 4차원 아니겠습니까?
간신히 교문에 끼어 들어와서 축복해드리겠다고 했더니 불교신자인데도 눈을 감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안에 있고 저는 밖에 있고, 비를 맞아가면서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축복이라는 축복은 다 짜내어서 쏟아내는데, 한참을 기도하다가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남편이 있고 교회가 있고 목사 사모인데, 지금 외간남자를 붙들고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초라해짐을 느꼈습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물에 빠진 생쥐 같이 되어서 아멘 하고 눈을 떴는데, 그 분이 무슨 생각인지 밖으로 나가서 절도 있게 인사를 하고 가는데, 필이 꽂히더라고요. 2시간 뒤에 이 분이 교회 집사님인 총무처장님에게 가서 잘 이야기를 했고, 총장님께 결제가 올라갔는데, 총장님이야 저 때문에 예수를 믿었는데 결제 안 해주시겠습니까? 김형민 목사가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저를 높여줬어요. 그래서 총장님이 은근슬쩍 도장을 찍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렇게 50년 만에 건대 안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주위에서 돈 가지고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다고 많이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일 년 정도는 버텼지만 우리가 있었던 수의과 건물이 완성되면서 철거를 해야 하는 위기가 있었습니다. 실제 그 사이에 불교신자들의 반대가 있어서 여기 저기 옮겨 다녔는데, 옮길 때마다 한 칸씩 늘려서 나중에 옮겼을 때는 꽤 큼직한 깡통 교회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13명 가지고 교회를 개척했는데, 일 년 정도가 지난 후 출석 성도가 한 80명 되는 교회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학교에서 철거하라고 불교신자들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전기도 끊고, 예배를 드리는데 포클레인으로 위에 흙을 뿌릴 정도로 심해져서 더 이상 못 버티게 되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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