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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운동21세기]교회내 은사사역의 왜곡과 그 해결방안 21가지 (3)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510
등록일시 : 200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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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성령사역 모델을 찾아서
교회 내 은사사역의 왜곡과 그 해결방안 21가지 (3) 편집자주 ‘성령운동 21세기’ 코너에서는 지난 8월호를 시작으로 한국교회 내에서 부정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은사사역의 문제점들을 21가지 유형으로 나열해보고 그 해결방안들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마련하였다. 이번 10월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서 7. 은사체험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주관주의, 8. 다양한 체험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 9. 영감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와 위험. 이 세 가지의 컨텐츠를 소개한다. CONTENTS 경계1. 신비적 은사의 경험자와 비경험자 사이의 거리감 경계2. 미성숙한 가운데 은사를 소유한 사람들 경계3. 신비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 경계4. 목회자의 권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평신도 은사자 경계5. 신비적 은사만을 은혜의 수단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 경계6. 말씀의 권위에 대한 부적절한 태도 경계7. 은사체험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주관주의 경계8. 다양한 체험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 경계9. 영감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와 위험 경계10. 교회 공동체가 손상될 수 있는 위험 경계11.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은사를 비성경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경계12. 성경적 원칙이 약화됨에 따른 방향성 상실 경계13.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과 받은자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단성 경계14. 감정적 측면의 과도한 강화로 인한, 이성과 의지의 약화 경계15. 하나님의 능력을 샤머니즘화 하는 오류 경계16. 능력을 과장하는, 잘못된 우월의식 경계17.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함 경계18.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경계19. ‘도덕적 문제 정도는 초월해도 된다’는 왜곡된 특권의식 경계20. 사역 시 발생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 부재 경계21. 모든 영감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경향 7. 은사체험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주관주의 주관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성령의 은사를 거론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구로 하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전달하시는 과정에는 반드시 그 당사자가 되는 은사자의 주관적인 깨달음이 반영되게 되어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사역의 특성상 배재할 수 없는 요소이나 문제는 그 주관성이 과도해질 경우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과도한 주관성은 세속적인 방향이나 기복적인 방향성으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은사의 활용이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은사의 활용이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거나 교회 내에 권위있는 지도자의 검증을 받는 통로가 개설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런 주관성을 많이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활용되어왔던 대부분의 은사들은 그 결과를 보는 것 말고는 검증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개인의 생각이 곧 정답이 되어버리고 결론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주관성은 조정될 기회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도 과도한 주관성으로 치닫는다 해도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주관성은 상담자나 치유대상자로 하여금 사실과 다른 것조차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생기며 잘못된 방향성으로 그들을 몰고 갈 우려를 가지고 있다. 결국 평신도 은사자이건 목회자 은사자이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주장해버리면 아무도 그것을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이다. 대안 이런 경우는 은사가 단독의 사역으로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어려움들이다. 물론 주관성이라고 하는 부분을 배재할 수는 없지만 그 사역에 있어서 과도한 주관성은 반드시 통제되어야 하며, 그것을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 결단코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사자 자신이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에 의지하여 사역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영감이라고 하는 것은 표현에 따라 느낌이고 직관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단코 전부는 아닌 것이다. 반드시 객관적인 정보와 의지적인 결단, 그리고 믿음과 같은 신앙의 요소들과 함께 균형 있게 작용하는 감각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제외되고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만을 의지하여 사역을 한다면 그것은 과도한 주관성의 잘못을 극복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관성은 은사자 자신의 의식 속에 주관성을 극복하려고 하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둘째 방법은 개인적 차원의 사역을 공동체적 사역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이다. 공동체적 사역이라 함은 대상이 공동체를 향하도록 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적 사역은 팀 사역이라고 불리는 사역 자체에 있어서 공동체를 이루어서 하는 것을 말한다. 사역하는 순간에 함께 사역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방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은사를 활용할 수 있는 평신도들을 그룹을 만들어서 서로에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평신도 은사자들이 목회자인 지도자의 지도를 받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검증해 볼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이러할 경우에 목회자는 은사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와 능력을 가지고 가르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8. 다양한 체험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 은사에 있어서의 다양성은 특별히 치유사역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사역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것은 질병을 고치는 방법이 각자 자신이 하나님께 은혜 받은 대로 다양할 수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런 경우에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어느 경우에는 말씀으로만 치유하셨고, 어느 경우에는 손을 대시며, 어느 경우에는 침을 뱉어 진흙에 개어 눈에 바르고 멀리 있는 못에 가서 씻고 오라고 하는 알 수 없는 방법을 선택하시기도 하였다. 이처럼 한사람의 개인조차도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이 어떤 때에는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특이한 경우도 있는 것이다. 대체적으로는 한 개인이 나름대로 주도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기도한다. 그러나 한 개인이라 할지라도 전술한 것처럼 치유를 받는 사람의 질병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 그 체험의 개별적인 성격은 다른 사람들의 방법론과 상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똑같은 질병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방법으로 치유하여 기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은사자가 이러한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배타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만을 옳은 것으로 주장하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방법론적인 면에서 어떤 것이 올바르다고 그 우위성을 규정지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원칙 또한 성경적인 근거에 의해서 바람직한 방향성을 정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즉 비인격적인 방법보다는 인격적인 방법을, 그리고 폐쇄적인 방법보다는 보다 개방적이고 거부감이 없는 방법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안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신의 체험과 다르다고 해서 모두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은사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어떤 것만이 옳다고 정답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은사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이것은 각자 개인의 체험의 개별성 때문인데 이러한 다양한 체험의 개별성을 인정해 주면서 그것이 일반화 될 수 있는 기준을 제기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화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적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황금률이 필요한 것이다. 즉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치유 사역자와 치유받는 자의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목양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폭넓은 자세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고 하겠다. 9. 영감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와 위험 영감의 위험성은 일반적으로 신비적인 은사가 가지고 있는 주관성 때문에 오지만 특별히 영감은 해석에 있어서 많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즉 영감은 받는 것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 영감의 해석의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은사자는 자신의 잘못된 해석 때문에 중요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영감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과정은 그 적용에 있어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영감으로 어떤 실마리를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반드시 직접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특별히 예언적인 부분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는 그 예언의 적용대상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는 사역을 받는 사람의 견해에 따라 잘못 적용되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시간의 문제도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시간의 순서와 위치를 제대로 나열하지 못하면 올바른 영감도 잘못된 것으로 뒤바뀔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쉽게 표현해서 여러 개의 산을 보았을 경우 어느 것이 앞산이고 어느 것이 뒷산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잘못 해석할 소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과도하게 구체적으로 해석할 경우 인간적인 관점의 개입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져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은사에 있어서 영감을 받는 과정에 오류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감 자체에 문제가 많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더 많은 오류를 범하는 과정은 영감의 해석의 과정이다. 그 이유는 해석의 과정에서 인간은 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의 뜻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기대와 혼합되기 쉽다. 직감이나 영감은 순간적이고 성령의 주권으로 주어질 확률이 훨씬 많으나 해석은 보다 자신의 섭인관이나 고정관념, 기대하는 바 등의 인간 의지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더 많기 때문이다. 대안 영감은 주관성이 갖는 문제점처럼 결국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생각, 또한 마귀적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구별하기 모호하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은 항상 성령 충만하며 하나님 앞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늘 실수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버린다면 그것 또한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은사자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하며, 동시에 항상 실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영감의 위험성은 특별히 해석에 있어서의 적용의 지나친 구체화, 시간의 나열, 대상의 구분, 기대치에 대한 의식과 같은 것들을 얼마나 잘 분별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 가정 먼저 해야하는 일은 혼의 정화이다. 이것은 영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자신의 생각이 정화되지 않으면 온전한 영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결국 잘못된 것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러한 혼의 정화의 과정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는 과정인데, 정보와 상식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관, 자신의 원하는 바, 상대방이 원하는 바와 같은 자신의 지향하는 바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없다면 샘의 물이 아무리 맑을 지라도 그 물을 떠먹는 바가지가 더러우면 결국 더러운 물을 먹게 되는 원리와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혼의 정화는 훈련을 통해 습관적으로 의식되어야 하며 교육과 훈련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해석의 기본적인 원칙을 세우고 항상 면밀히 조심하는 습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김민정 박사 한세대학교 실천신학 M.Div., Th.M. 한세대학교 선교신학 Ph.D. 한세대학교 강사 분당우리교회 행정담당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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