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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운동 21세기]교회 내 은사사역의 왜곡과 그 해결방안 21가지 (2)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96
등록일시 : 200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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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성령사역 모델을 찾아서
교회 내 은사사역의 왜곡과 그 해결방안 21가지 (2) 편집자주 ‘성령운동 21세기’ 코너에서는 지난 8월호를 시작으로 한국교회 내에서 부정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은사사역의 문제점들을 21가지 유형으로 나열해보고 그 해결방안들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마련하였다. 이번 9월호에서는 지난 8월호에 이어서 4. 상위 권위에 대한 인식결여, 5. 단일 통로적 은혜의 폐쇄성, 6. 말씀의 권위에 대한 위협 이 세 가지의 컨텐츠를 소개한다. 김민정 박사 한세대, minjung3535@hanmail.net 4. 목회자의 권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평신도 은사자 교회 안에서의 은사활용에 있어 교회 내에서 구조적으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권위의 문제일 것이다. 평신도에게서 은사가 나타날 경우에 갑자기 권위혼란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스스로가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은사를 부여받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로가 됐다는 것이 급작스런 권위의 상승의식을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은사가 목회자에게 나타날 경우에는 오히려 목회에 방법적인 면으로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목회자의 영적인 권위가 상승됨으로 일면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거나 성도들로 하여금 목회자를 따르도록 만드는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즉 은사의 분리주의적 성격, 신비적인 성격이 은사를 드러내는 목회자에게 남다른 영적인 권위를 부여해 주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그러한 은사를 인정하는 자들에게는 절대적인 순종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사가 목회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권위를 비정상적으로 상승시키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많은 은사들이 평신도에게 나타날 때에 평신도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부여받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통함으로 인해 목회자의 권위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어가게 된다. 즉 공동체 안에서의 권위의 질서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직접적으로 체험한 영적인 깨달음을 우선적인 권위에 둠으로 그것이 목회자의 결정과 상충될 때 자신의 깨달음과 체험을 더 우선시하는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할 때 평신도 은사자들이 갈등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 이유는 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관철하려는 것이 스스로의 생각에는 하나님의 뜻을 관철하려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인 목회자의 뜻을 불순종하는데 있어서는 갈등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은사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의미로 모든 것을 해석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스스로의 체험을 가장 절대적으로 우선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될 경우에 초반에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형태로 당위성을 부여받고 진행되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목회자의 권위는 약화되어져가게 되고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뜻뿐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판단과 결정까지 권위가 부여되어 공동체의 질서에 통제 받지 않으려는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 때문에 평신도 은사자들은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독자노선을 걸으며 자신의 은사를 개인적으로 혹은 음성적으로 사용하거나, 목회자를 비하시키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의 질서를 훼방하는 일이 생기면 목회자는 은사자를 평가절하 시키게 되고, 은사자 또한 목회자를 영성이 없는 목회자로 매도하게 되는 대립적 역기능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먼저 평신도 은사자들이 공동체의 중요성과 영적 권위의 질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오는 일이며, 스스로가 은사를 활용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동체를 훼방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오류이다. 대안 권위에 대한 부재는 결국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로부터 온다. 은사는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목적을 위해 방법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은사자들이 놓치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라고 하는 것 때문에 목적이 혼동되고, 맹목적으로 모든 영적인 권위를 은사에 부여함으로 목적이 되는 교회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평신도 은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은사의 목적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목적을 상실한 방법론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은사 또한 그 목적을 상실하면 오히려 마귀의 도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 평신도 은사자들이 문제를 일으켜 교회를 분쟁에 휘말리게 하거나 목회자의 권위를 저하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온 것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평신도 은사자들은 자신의 은사를 고수하는 것만이 순종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무엇을 위해 은사가 존재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며, 결국 목회자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은사는 교회 내에서 의미가 없음을 알게 해줘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은 동일하게 목회자에게도 있다. 목회자가 성령의 은사를 교회 내에서 잘 활용하기 원한다면 목회자는 스스로가 은사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하며 그 목적과 사역의 장을 열어줌에 있어서 적극적인 개입을 해주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할 때 목회자에게는 진정한 권위가 부여되며 은사자들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목회자에게 순종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5. 신비적 은사만을 은혜의 수단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은혜의 수단은 다양하고 폭넓다. 그러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종종 보여주는 실수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단일화하려는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은 말씀이나 기타 교회 내에서 진행되는 교육과정이나 다양한 은혜의 수단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신비적 은사만을 가장 고차원적이고 효과적인 은혜의 수단으로 고집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양상은 자신이 체험하고 활용하는 은사만이 우월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폐쇄성이다. 이것은 은사가 가진 특이성과 관련이 있는데 은사는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다양한 양상과 방법을 보여준다. 은사의 나타나는 현상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것은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수용하지 못하는 배타성과 폐쇄성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폐쇄성은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경쟁하거나 비하시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문제점은 스스로가 더 많이 배우고 성숙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은혜의 통로를 은사 중심적으로 단일화시키는 데에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평신도 은사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 은혜의 영향력을 받고 있는 사람들까지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오류를 범하고 은사를 아예 등져버리는 양상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 대안 이런 경우는 은혜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즉 평신도 은사자 자신의 위치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지를 알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즉 절대적인 것을 보다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며, 수많은 다양한 은사 가운데 작은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인류역사상 하나님의 백성이 은사라는 도구만으로 신앙을 유지해오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다양한 것인가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목회자는 은사자를 질책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한국 교회 내에 이에 대한 교육이 부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긍정적 차원에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은사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과 은사의 현상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은사 이외의 수많은 은혜의 도구가 있으며 반드시 은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궁극적으로 개인적인 차원, 경험적인 차원만의 안목에서 벗어나서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신의 위치를 점검해보도록 돕는 것이 평신도 은사자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절제함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6. 말씀의 권위에 대한 부적절한 태도 종교개혁이후 말씀에 대한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성경이라고 하는 계시는 다시 오실 주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그 날까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신앙의 지표요 최고의 권위를 갖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말씀의 권위가 교회 안에서 상실되었다면 범람하는 주관성에 의한 인간적 주장들에 밀려 기독교 신앙은 표류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말씀의 권위에 상당한 도전을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체험을 중심으로 한 은사가 가지는 성향 중의 하나이다. 은사의 이러한 경향성은 처음부터 강력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은사의 유효성이 검증되면서 스스로가 은사의 권위를 부여하게 되고 은사를 통해 발견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성경을 통한 구원과 관련된 완벽한 계시가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또 다른 계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신학적 논쟁은 뒤로 미루더라도 성령님께서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조명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편의상 통칭 영감이라고 말할 때 이러한 구체화된 영감을 통해 반복적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적용력 있는 손쉬운 영감에 의존적인 성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은 말씀을 등한시하고 원칙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잠시라도 놓치게 되면 바로 실패를 경험하게 되곤 한다. 결국 이러한 책임성은 은사자 자신이 가져야 하는 문제이다. 스스로가 강력하게 말씀에 대한 권위를 매 순간 의식하면서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스스로가 실패를 경험하고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목적지를 온전히 보지 못하면 가다가 중간에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똑같은 원리이다. 대안 전술한 바와 같이 은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이고 적용력 있는 은혜의 수단이 되는 영감이라고 하는 부분은 구체적인 선택과 고통의 위기에 있는 성도들에겐 절박한 필요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당시 상황을 건지는 유익한 은혜의 수단이 됨에도 불구하고 자칫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즉, 이러한 상황은 말씀을 등한히 여기는 현상을 낳게 되고, 개인적인 영감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는 작은 안목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평신도 은사자에게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다. 그것은 은사라고 하는 것이 성경말씀이라고 하는 기준 안에서 존재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물고기가 물 안에 있어야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로 물 안에 있어야 자유롭고, 안전하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 것이다. 주관적 성향이라는 것은 그만큼 개인에게 의존하게 된다. 은사자는 첨예한 선택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 선택의 순간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과 기준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놓치게 되면 결국 성령의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이 이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거나 왜곡되어, 출발점은 온전했을지 몰라도 조금씩 나아가는 방향성의 오류로 인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김민정 박사 한세대학교 실천신학 M.Div., Th.M. 한세대학교 선교신학 Ph.D. 한세대학교 강사 분당우리교회 행정담당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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