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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운동21세기]건강한 성령사역을 위한 교회 내의 은사사역의 왜곡과 그 해결방안 21가지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97    등록일시 : 2005-07-30    인쇄
건강한 성령사역을 위한
교회 내의 은사사역의 왜곡과 그 해결방안 21가지 (1)

편집자주 ‘성령운동 21세기’코너에서는 8월호를 시작으로 한국교회 내에서 부정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은사사역의 문제점들을 21가지 유형으로 나열해보고 그 해결방안들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마련하였다. 이를 통하여 한국교회 내에서 은사사역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고 건강한 은사사역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그 첫 시작으로 1. 분리주의적 성격, 2. 미성숙한 자들의 소유, 3. 신비주의에로의 위험 이 세가지의 컨텐츠를 소개한다.

CONTENTS
1. 분리주의적 성격
2. 미성숙한 자들의 소유
3. 신비주의에로의 위험
4. 상위 권위에 대한 인식 결여
5. 단일 통로적 은혜의 폐쇄성
6. 말씀의 권위에 대한 위협
7. 과도한 주관성
8. 체험의 개별성과 다양성
9. 영감의 위험성
10. 공동체 손상의 위험성
11. 개인 기복적 도구화
12. 성경적 원칙의 약화로 오는 문제
13. 하나님과의 동일시로 오는 비인격성
14. 감정주의적 성격
15. 샤마니즘적 영향
16. 과장된 능력
17. 영광의 갈취
18. 전지적 강박성향
19. 윤리성의 초월과 비합리성의 타당화
20. 책임회피적 성격
21. 아전인수식 적용



은사가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유익함은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오하고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교회 내의 은사사역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실제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원인을 파악하여 문제요인을 제거해 나가는 것만큼 합리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수많은 문제점들 때문에 은사를 위험시하고 두려워하고 목회에 적용하기를 꺼려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러한 문제점들은 극복 될 수 있는 것이며, 그 문제점들이 효과적으로 제거된다면 목회 현장에서 은사가 목회자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다른 훈련과정처럼 활성화될 수 있는 사역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정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여 현장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오류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정착시키기를 바란다.

1. 분리주의적 성격

은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분리주의적인 성격이다. 분리주의적인 성향은 경험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즉 경험을 한 사람과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과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고,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또한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경험한 사람에 대하여 자신과는 무언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완연히 다른 것인데,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외부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종류는 다르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은혜는 분리적인 성향을 덜 갖게 된다. 그러나 은사는 은사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지어주며, 그것은 마치 장님과 눈을 뜬 사람과의 차이처럼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부분이기에, 같은 평신도라 할지라도 서로에 대한 분리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주의적 성향은 공동체를 훼파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분리주의적 성향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서로간에 보이지 않는 차등을 두게 되어, 관심이 있는 자들에게는 상하관계가 형성되거나 관심이 없는 자들에게는 전혀 별개의 그룹이 형성되어 서로를 배척하는 성향을 갖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분리주의적 성향을 제거하지 않으면 은사사역이 평신도에게 활성화되어 교회에 정착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제까지 이러한 분리주의적인 은사의 성향은 지도자에게는 오히려 목회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목회자의 영적인 권위가 신령하게 되며 하나님으로부터 뭔가 특별한 것을 받아 소유하고 있는 특별한 계층이라는 인식이 목회자를 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그 권위를 상승시키는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한 은사의 인식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안
이러한 분리주의적인 성향은 경험을 중심으로 하여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신비적인 경계가 강조되는 것에 기인한다. 확실히 은사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하여서 영적인 세계에 눈이 뜨여 있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부분을 보게 되고 자신과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에서 특별한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부분을 특별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거나 더 활성화 시켜 소수를 다수로 만들어 주는 대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은사를 접하고 성령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극소수에 국한되었던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교회 안에서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측면으로는 은사가 기도원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리고 평신도들이 마치 점쟁이 집을 찾아가는 심정으로 기도원을 찾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교회 내에서 성령을 체험할 수 있는 찬양과 기도의 시간들을 조성해 주어야 평신도들이 성령체험을 위해서 기도원이나 다른 곳으로 찾아 나서지 않고 교회 안에서 자신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장이 열리게 되면 단지 은혜를 먼저 받았다 혹 나중에 받았다는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항상 언제라도 자신이 열린 마음과 열심을 가지고 일하기만 하면 자신이 접할 수 있는 곳에서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하는 의식이나 나와는 거리가 먼일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경험한 것에 대한 극단적인 신비적 강조를 줄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은사라고 하는 것은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성향이 분리주의를 강화시키는데 있다. 본 연구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은사는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사람이나 성숙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즉 조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신학생 정도는 되어야 아니면 목사님 정도는 되어야 받는 게 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제 결신한 초신자라 할지라도 성령의 주도권 하에 오늘 은사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은사를 소유한 것이 특권층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즉 모두에게 자격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은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평신도들은 ‘은사를 소유한 사람은 뭔가 자신들이 넘을 수 없는 특별한 신앙적 내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은사가 그런 조건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러한 환상은 없애주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한 은사관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고, 나아가 분리주의적인 성향을 스스로가 피해자가 되면서 스스로가 조장하는 일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셋째로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신령한 은사들과 성도를 섬기기 위한 일반적인 은사들이 그 가치면에서 차이가 없음을 강조해야 한다. 즉 은사의 목적을 강조하여 그 책임을 강화시키고, 은사 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의무이며 책임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지시켜 특권의식을 상쇄시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2. 미성숙한 자들의 소유

은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성화를 이룬 성숙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성숙이 은사를 받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충분히 은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은사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미성숙한 만큼 은사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한 평신도들은 기본적으로 교회에 대한 이해와 신앙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그 적용에 있어서도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미성숙한 평신도들은 은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거나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자기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하고 활용할 우려가 있기에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물론 은혜를 경험한 자들은 통상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다. 내면적으로 인도해주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은사를 받기 이전보다 훨씬 강하고 분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지도를 받을 수도 있으나 문제는 지속적으로 될 경우에 모든 사람들이 늘 충만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며, 은사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가진 약점들을 미리 방비하는 심정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 성령의 일을 육체의 일로 만들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안
전술한 바와 같이 미성숙한 평신도들에게 임하는 은사를 방치해 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발전한다. 은사를 확장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성향과 그렇지 않고 숨기려는 성향의 두 가지의 사이에서 확장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조절할 줄 모르는 열정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거나 실수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 또한 숨기려하는 성향의 사람은 자신이 무슨 죄나 지은 것처럼 숨어서 자신의 은사를 간직하고 있거나 그대로 방치하여서 소멸시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은사를 받은 이후에 그대로 방치하였기 때문에 오는 일이다. 결국 평신도가 은사를 잘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그것을 음지에서 끌어내어 양지로 드러내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휘두르라는 것이 아니라 음성적인 것을 양성화시킴으로서 건전하게 전환시키는 것이다.
미성숙한 평신도들의 은사의 소유를 교육을 시키고 유익한 점과 위험한 점들을 인식시킨 후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들에게는 상식인 것들이 평신도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일 수 있음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신도들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도울 수 없게 된다. 은사에 대하여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평신도들은 문외한이라고 생각하고 양육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먼저 은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활용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필수적인 요건이다.

3. 신비주의에로의 위험

성령의 은사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경험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제까지 보이는 것들만 보아오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체험하게 되면 그 광대함과 놀라움에 강한 충격을 받게되고 그로 모든 관심과 마음이 쏠리게 되는 경향을 갖게 된다. 이것은 아주 일반적인 반응이며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지구상에 발을 디디고 사는 작은 인생이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자신이 그 능력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체험인 것이다. 그래서 은사가 흠모할 만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영적 세계로의 경험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도록 만들어 끊임없이 신비한 것만을 추구하는 경향성을 나타내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이러한 방법으로만 해석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결국 신앙생활의 균형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 은사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되는 좋은 도구이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알게 하고 인도하는 데 있어 비단 은사의 방법만을 사용하시지는 않는다. 즉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길을 보이시고 성도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성향은 말씀의 중요성을 극도로 낮추어 은사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뜻만이 진리하고 생각하고 그것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신비적인 요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해도 기독교가 신비주의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가장 명확하고 변하지 않는 계시인 성경말씀을 통해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도하셨고, 그 말씀이 갖는 객관성이 있었기에 우리는 주님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의 신앙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성령사역을 이해함에 있어서 주된 것과 보조된 것을 깨닫지 못하면 놀랍고 신기하다는 것만으로 신비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그것에 너무 많은 가치의 비중을 두는 일은 올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안
이러한 신비주의적 성향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신비적인 요소와 말씀의 객관성을 공존할 수 있도록 잘 지도해야 한다. 즉 은사의 활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는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은 오로지 성경말씀과 원칙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말씀이 성도의 신앙생활의 지표가 된다고 하는 것은 인생사의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그것이 기준이 되고 원칙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상황이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이 지도하는 삶의 원칙들이 성도들의 다양한 삶을 인도하는 방향이 되고,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서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인도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은사도 마찬가지이다. 은사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은사자들은 수많은 상황들을 직면하게 되고 첨예한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된다. 이때 은사만을 사용해서 사역을 하게 된다면 너무 많은 실수의 요인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은사의 활용에 있어서 지침이 되는 원칙들은 성경에 제시되어 있으며 그 원칙대로 사역을 하고 결정을 하여야 만이 온전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은사는 그 신비주의적인 성향을 벗어나 말씀의 중요성을 알게되고 결국 원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김민정 박사
한세대학교 실천신학 Th.M.
한세대학교 선교신학 Ph.D.
한세대학교 강사
분당우리교회 행정담당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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