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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운동 21세기]“21세기 성령 운동을 예측하라”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51    등록일시 : 2004-12-30    인쇄
2005년 1월에 신설된 본 코너는 오늘날 성령께서 세계 곳곳에서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 지에 대한 첨단 보고서이다. 이번 첫 번째 기사에서는 구체적인 내용들에 들어가기 위한 전이해를 위해 우선 전반적인 개념들을 총체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1. 20세기 성령운동의 역사(토페카 부흥에서 신사도적 개혁운동까지; 지역적 운동에서 범세계적 운동으로)

1900년 12월 찰스 파햄(Charles Parham)을 중심으로 토페카 부흥이 일어났다. 캔자스 주 토페카의 성경대학 교수였던 찰스 파햄이 학생들에게 사도행전의 성령세례에 관한 내용을 연구하게 하면서 성령세례 시의 외적 표현으로서 방언이 나타났다고 믿게 되었다. 새해가 되기 전날 밤, 그의 제자 오즈먼 양에게 안수하자 그녀가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학생들도 수일 동안 성령을 체험했고 방언의 은사를 받게 되었다.
토페카 부흥을 시발점으로 1906년 아주사 거리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 찰스 파햄의 흑인 제자였던 윌리엄 시모어는 아주사 거리에서 혼자 집회를 시작했고 성령께서 그 집회에 강하게 임하심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사 거리는 20세기 오순절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에는 예수 운동(the Jesus movement)과 은사쇄신 운동(charismatic renewal)이 일어났는데 이 운동을 통하여 방언의 은사를 비롯한 성령의 은사들이 교단을 초월하여 비(非)오순절 교단에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특히 성령세례의 외적 증거로서의 방언의 은사가 아닌 보편적인 은사로서의 방언이 널리 수용되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피터 와그너 박사가 ‘제 3의 물결’이라고 칭하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제 3의 물결’의 특징은 더 이상 방언만이 중심적인 은사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축사와 신유의 은사가 다양하게 인정되었고 이러한 은사 체험이 오순절 교단을 초월하여 복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 3의 물결은 어떤 특정 단체나 교단을 지칭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이 호칭은 교단의 범위를 초월하며 은사의 종류에 있어서도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광범위한 성령운동이기에 ‘물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제 3의 물결을 통해서 이제는 성령의 은사와 역사는 오순절 교단의 전유물이 아닌 사모하는 모든 자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놀라운 은혜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어떠한 흐름들이 가장 주목받고 있을까? 피터 와그너 박사는 유일하게 수평적 성장이 아닌 수직적 성장을 하고 있는 전 세계 교회들의 특징들을 연구한 결과 ‘신사도 개혁운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찾아내게 되었다. 이 신사도 개혁운동의 특징은 예언, 축사, 신유의 은사가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신사도 개혁운동은 이미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결코 새로운 낯선 개념이 아니며, 특히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의 부흥의 배경에는 신사도적 개혁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신사도 개혁운동의 저변에는 방언과 신유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은밀히 행해지거나 많이 사장되어 왔던 예언과 축사의 은사가 대중적으로 일어나면서 초대교회적인 은사의 회복이 상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신사도 개혁운동은 아직 미국과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며 어쩌면 교리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 특히 신사도적 개혁운동의 기본 개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에베소서 4장 11절을 근거로 한 ‘5대 직분’(사도, 예언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은 오늘날에도 ‘과연 사도와 예언자라는 직분이 존재하는가’ 라는 문제에서 철저한 신학적인 뒷받침이 요구된다.
특히 예언 은사에 있어서는 앞으로 차차 소개하겠지만 그것이 지니는 독특성으로 인해서 많은 실패와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관리와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피터 와그너 박사가 그의 저서 『목사와 예언자』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신약 시대에 속한 지금의 교회가 목사와 교사의 직분은 새 언약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세워주고 있으면서도 예언자의 직분에 있어서는 옛 언약의 관점에서, 즉 구약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루어지는 예언자에 대한 제재와 억압은 오히려 구약 시대만큼이나 엄격하다.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이 땅에 예언자적인 은사와 예언을 부어주시지만 교회는 이것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이는 또한 성령의 일하심을 제한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아닐런지.

2. 한국교회에서 신사도적 개혁운동의 가능성

특히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신사도 개혁운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스스로 강력한 성령운동과 교회성장의 중심지라고 생각했던 한국이 더 이상 교회성장은 커녕 양적 성장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해 정체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한국사회 속에서 정치, 경제와 함께 집중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라틴 아메리카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면서,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교회는 이러한 아픔 가운데 놓아두고 계신 것일까?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그 해답을 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확실한 해답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땅에는 새로운 하나님의 긍휼과 부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짧은 역사 속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해왔다. 그러나 강력한 성령의 역사 뒤에는 ‘신비주의’라고 하는 부작용이 늘 뒤따랐다. 그것은 결국 잘못된 은사주의와 은사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은사사역을 배척하게 되었고 심지어 ‘은사중지론’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한국 국민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중되었다. 그러나 한편 20세기 후반에 조용기 목사를 통해서 일어났던 ‘5중 복음과 3중 축복’의 강조는 한국의 시대와 상황에 가장 적합한 접근으로서 폭발적인 부흥을 가져왔고 조용기 목사의 방언과 신유에 대한 강조를 통해 한국교회 안에서 방언의 은사와 신유의 은사는 매우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성령께서는 이렇듯 조용기 목사라고 하는 영적 거장을 통해서 하마터면 잃을 뻔했던 초대교회적 은사의 회복을 부분적으로 이루어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예언 사역과 축사 사역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잘못된 종말론의 출현으로 인해서 특히 예언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예언 사역의 문은 더욱 축소되고 말았다. 많은 예언자들은 교회 안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도원과 특정 소수의 교회에서만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은사에 대하여 깨어있는 대부분의 목회자들도 유독 예언 사역만큼은 그것의 위험성을 이유로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예언 사역에 대한 배척은 결국 예언 사역으로 하여금 숨어들게 함으로서 한국에서의 예언 사역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없게 하는 주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경우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미국에서는 빌 해몬, 폴 케인, 신디 제이콥스 등의 예언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대표적인 예언자인 빌 해몬은 그의 오랜 예언 사역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경적이고 올바른 예언에 대하여 교육하면서 권위 있는 예언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예언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많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예언 사역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기도와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축사 사역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중적인 사역으로 전개되어 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축사 시에 나타나는 현상들 가운데 비인격적이고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부작용 또한 클 수 있다. 잘 준비된 시스템과 축사 사역에 대한 교육 없이 축사 사역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한국에서의 신사도적 개혁운동의 적용 및 대중화에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과 한계가 놓여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의 적지 않은 교회들과 선교 단체, 기도원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사도적 사역들은 결코 막을 수 없는 성령의 일하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많은 신사도적인 사역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이유로는 은사 사역에 대한 교육의 부재와 많은 부작용, 그리고 신학적 준비의 미흡함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필요한 것은 은사 사역의 수준, 즉 올바른 교육과 신학적 작업을 통한 ‘은사 사역의 고급화’이다.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초대교회적인 하나님의 역사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신사도적 개혁 운동은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21세기는 연합과 부흥의 시대이다

신사도 개혁운동의 여파 가운데서 새로운 시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성령운동이 이전의 20세기 성령운동들과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분열이 아닌 연합으로의 지향성’이다. 잽 브래드포드 롱(Zeb Bradford Long)과 더글러스 맥머리(Douglas McMury)의 저서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라』에서는 새로운 성령운동의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이들은 새로운 성령운동의 특징으로 두 가지의 연합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오순절적 교단과 장로교적 교단의 연합이다. 특히 이들은 남아프리카의 사역자 피터슨 소지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오순절교인들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로교인들은 운전교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자동차와 운전교본을 분리시키려고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대로 피터슨 소지는 운전교본에 따라 자동차를 몰기 위해 노력했고 그의 사역은 더욱 많은 열매를 맺었다. 피터슨 소지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현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을 우리에게 시사해 준다.
이제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연구에 몰두한다고 교회가 부흥하는 시대도 아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룬 사람들을 세워 사용하시기 시작했다. 21세기는 이렇게 성령충만하면서도 체험하고 들은 바를 성경을 통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즉 오순절 교인과 장로교인들을 다 끌어안을 수 있는 리더들의 출현을 갈망한다. 이러한 연합은 결국 강력한 성령의 역사의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타오르게 해줄 것이다.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내는 현상들에 있어서도 더욱 많은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 연구와 분석이 당장의 뜨거움을 소멸시키는 정체현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러한 생각은 시대의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학적, 교육적인 작업들을 통하여 21세기 중반까지 교회는 지적 수준과 영적 체험의 수준을 동등하게 가져가야 한다. 그러한 탄탄한 기초 없이 성령사역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확실한 기반 위에서 성령사역은 더욱 강하게 일어나야 한다.
둘째, 교단과 교단간의, 민족과 민족간의, 나라와 나라간의 화해와 연합이다. 즉 죄의 고백과 용서를 통한 그리스도인들 전체의 연합을 말하고 있다. 1994년 10월 로스앤젤레스의 외곽도시인 몬로비아에서 있었던 교단간의 연합 기도 성회는 아주 좋은 예가 된다.
그 집회에서 장로교회 목사들은 흑인과 히스패닉계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을 회개했으며 중국인 교회의 한 목사는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회개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귀신으로부터 자신의 문제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처럼 자신의 공동체의 죄악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연합과 화해의 모임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커다란 부흥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연합을 통한 부흥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또한 이것은 2000년도에 유행했던 ‘부흥’이라는 주제와도 연관된다. 예수전도단에서 ‘부흥’이라는 찬양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에 한국 예수전도단의 창시자인 오대원 목사는 모든 교단이 하나로 연합하고 정계와 재계의 수많은 인사들이 교회를 지원하여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날 것을 예언했다. 또한 그는 환상 가운데 한국에서 자라난 커다란 나무에 열매가 많이 맺혀 있는데 누군가 그 나무를 흔들자 그 나무의 열매가 온 아시아에 떨어지는 환상을 보기도 했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이 선교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예언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우리는 이러한 긍정적인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반응할 필요가 있다. 필자도 또한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던 중 커다란 불덩어리가 지구를 향해 돌진하다가 남한에 떨어지는 모습을 환상으로 본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국에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시다.
한국을 통하여 세계 선교와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감당하기 원하신다. 우리에게는 일제 치하와 전쟁, 분단의 아픔이라는 광야가 있었지만 이제는 일어나서 온 세계 가운데 복음을 선포하고 병든 나라와 민족을 치료할 수 있는 선교를 위한 나라로 거듭나고 있다.
20세기 성령운동 속에서 늘 나타났던 아픔은 분열과 대립이라고 하는 갈등구조였다. 강한 성령의 역사 뒤에는 혹독한 비판이 따랐고 어쩌면 그 비판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만큼 시대와 상황이 하나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21세기에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은 연합을 통한 강력한 성령의 역사이다. 20세기가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시기였다면 21세기는 20세기의 아픔을 치료하고 연합하고 일어서야 할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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