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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 프랑스 개신교 역사를 간직한 교회 -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42    등록일시 : 2013-04-25    인쇄


[Global Church Growth]



프랑스 개신교 역사를
간직한 교회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
(Eglise protestante de Passy Annonciation, 프랑스 루터ㆍ개혁 통합교단)



글 : 이소영(교회성장연구소 프랑스 통신원)




프랑스 개신교단의 ‘화합’을 위한 움직임


프랑스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12년에 5월에 채택된 개혁 교회와 루터 교회의 통합은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고유사역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교회는 “항상 주님에게 귀속되며 그 중심에 의해 정의된다. 교회는 한 시대와 분열된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 그분의 부르심을 받았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름 받은 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며 우리 주위의 모든 이들의 문제를 나누어야할 것이다.


교회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실패에서도 굴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요점이다. 서로 다른 두 문화, 즉 게르만의 전통과 가톨릭에 반대하는 종교개혁과 박해를 기억하고 있는 프랑스 남서부 지역문화가 교회의 근원이 되었지만 두 교회의 정신은 같은 것이었다. 자유에 대한 요구와 당연한 귀결인 책임, 내면의 깊은 곳에서 찾으려는 신앙심과 사회적 문제를 대하는 두 교회의 태도는 동일했다. 프랑스에서 루터 교회는 독일과 국경지역인 알사스(Alsace) 지방에 집중되어있다. 1900년대까지도 이 지역 루터 교회 목사들은 한 달에 한 번은 독일어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파리 개신교 분포지도는 루터 교회가 주로 파리 외각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 선교단이 이민자들을 위해 세운 교회로 스칸디나비아 교회들과 국내선교단의 지원을 받았다. 여러 세대를 지나면서 정착한 이민자들의 후손인 루터 교인 가정에서 개혁 교회의 목회자와 협회위원들이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이 지역 루터 교회의 특성은 부분적으로 유럽의 유대관계에서 비롯되었다. 파리지역 루터 교회는 독일뿐만 아니라 스칸디나비아와 북유럽 국가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서로 가까운 두 교회가 ‘다양성을 인정한 화합’을 통해 소통과 협력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개혁 교회와 루터 교회의 연합



진정한 유대관계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통합 개신 교회’는 편협한 의식을 깨뜨리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복음을 보다 잘 전하려고 하는 열정과 의지에 맞는 정신적인 도약을 위해서 ‘조합교회주의’(Congregationalism)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2008년 지역 교회의 특성에 따라 협력체계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목회자들, 예배, 성도교육에 관한 지역 교회간의 협력교류는 특히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2012년 말에 새로 구성된 장로회는 2월 9일에 열린 첫 총회에서 200명의 장로회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논의했다.


개혁 교회는 본 교인과 루터 교인을 대상으로 이미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루터 교회에서도 개혁 교인들을 초대해 예배, 찬양, ‘영적 세계와 세속적 영향력 사이의 그리스도인’이란 주제를 가지고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교류활동은 전통 개신교 신학의 다양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경계심을 버리고 항상 문을 활짝 열 수 있도록 한다.


각각 다른 구조를 가진 두 교단이 지역 교회의 공동사역을 위해 함께 모이는 일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지난 3월 제1회 파리지역 ‘통합 개신교 총회’가 파시 아농시아시옹 교회에서 열렸다. 주된 안건은 지역 교회의 현황과 전망 그리고 지역 교회의 협력체계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기도, 복음에 관한 공통된 여러 간증이 참석한 목회자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주어진 사역에 대한 상호간의 협력과 순종, 신뢰와 기도가 있는 나눔의 시간이었다. 교회사역의 활성화 계획은 아직 두 교회가 서로 다가가는 초기 단계에 있다. ‘통합 개신 교회’는 교육과 양육, 교회사역과 사역자의 지원, 커뮤니케이션, 집회와 행사의 공동개최 등 점차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그들의 믿음을 명확히 표현하고 나눔으로써 복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하는 일에 주력할 것이다.



지역 사회 내 교회 연합에 힘쓰는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


파리 서쪽 16구 중심지역에 있는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는 이러한 교류·협력관계를 활성화시키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교회집회나 행사로 모일 수 있는 장소가 턱없이 부족한 파리에서 교회의 성전으로 사용하는 건물 외에 복음을 전하고 교육하고, 서로 교류하고 나눌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은 이 모든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만큼 그 교회의 역할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회의 교육관에서 지난 2월 특별한 집회가 열렸다.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 교인들뿐만 아니라 콩고인, 마다가스카르인, 한인 교회 교인들이 이 교육관에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예배였다. 지금까지 이 교육관은 콩고인, 마다가스카르인, 한인 교회의 예배장소였고, 집회와 강연회, 콘서트나 공연 등의 다양한 문화행사로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곳, 성도들의 교제 및 이웃들과의 만남을 위한 만찬이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이날 예배에서는 여러 교회 찬양 팀들이 같이 준비한 찬양과 경배의 시간, 전문 무용가의 공연에 이어 벽에 걸린 십자가를 내리는 식이 이어졌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손을 잡고 큰 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교회창립 100주년 기념 영상과 교회의 초기모습을 상기하는 사진은 교인들을 지나간 과거의 기억 속에 잠기게 했다. 마침내 교인들은 물감뭉치를 꺼내 터트리기 시작했다.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감사와 기도의 글, 신앙고백, 이름 등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한 낙서와 그림이 예배실의 벽과 바닥, 계단을 가득 메웠다.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에게 이 장소가 지금 그 순간에 생각한 진지함과 즐거움이 새겨진 곳이라면, 가장 나이든 어른에게는 여러 시대를 거쳐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추억과 관련된 곳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십자가가 다시 걸리는 날은 ‘마크 브그네 개신교 공간’(Espace protestant Marc Boegner)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지역 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해 더욱 활짝 열려있는 공간으로 거듭나 있을 것이다. 장애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공간, 지역사회와 교회간의 연대·결속을 위한 사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독교인의 새로운 공간을 건축하는 것은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의 새로운 비전이 되었다. 사용목적에 따라 좌석과 무대를 변화·조정할 수 있는 현대적 공간으로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예배와 문화,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프랑스 개신교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교회의 자리는 원래 파시 노트르담 성당의 무덤이 있던 곳이었다. 1803년 개혁 교회의 교인이었던 마그리트 들레세(Marguerite Delessert)가 가족묘지로 사용하기위해 부지를 사들였고, 1872년 들레세 바톨디(Delessert Bartholdi) 재단이 창설되면서 이 자리에 예배당과 교회 집사들이 맡아서 운영하는 무료보건진료소가 설립되었다. 1918년에 마크 브그네(Marc Boegner, 1881-1970) 목사가 부임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곳은 아농시아시옹 거리의 예배당이었다. 브그네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이는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1923년부터 코르탕베(Cortambert)의 성전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 성전은 1961년에 확장공사를 거쳐 400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지금의 성전이 되었다.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를 이끈 목회자


프랑스 기독교연합회(1921-1961)와 프랑스 개혁 교회협의회(1938-1950)의 회장이었던 브그네 목사는 현대 프랑스 기독교를 이끌었던 중요한 인물로서 프랑스 개신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다양한 기독교기관의 회장직을 역임한 것은 개신 교회가 다시 모이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2차 대전 중 독일의 점령 아래에서도 그는 모든 도덕적인 권한으로 정치적 망명자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을 보호하고 구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기독교통합운동’(oecumenism)의 선구자로 개신교 부흥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의 기독교 사상과 행동으로 옮긴 그의 실천신학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1962년에 그는 프랑스 아카데미회원(l'Academie Francaise)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설교는 「기독교와 현대사회」(Le Christianisme et le monde moderne, 1928), 「우리 인간 때문에 고통당하신 여호와 하나님」(Dieu, l'eternel tourment des hommes, 1929)이란 두 권의 책으로 출판되어 있다.



6년 전부터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드니 엘레(Denis Heller) 목사는 시골의 작은 개혁 교회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신앙심이 깊은 할머니가 읽어주는 성경말씀을 듣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는 작은 교회에서 매년 복음주의 교단에서 개최했던 여름 성경캠프는 그의 신앙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산악지역에서 자라서 산과 물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이 분야와 관련된 학업을 마쳤다. 당시 병역의무로 군대에 지원해 황폐해진 땅에 다시 나무를 심어 재조림화(再造林化)하는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그는 아프리카 차드(Tchad) 지역에 파견되었다. 지역주민인 흑인들 사이에 유일한 백인청년으로 그는 빈곤과 가난이란 어려운 환경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척박한 오지에서 심각한 병까지 앓게 되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그는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모든 것, 복음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드니 엘레 목사는 자신에게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진정한 삶의 의미와 하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가 떠나왔던 프랑스에서는 모든 것이 풍요로웠지만 사람들은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을 뿐 결코 즐거워할 줄 몰랐다. 오히려 모든 것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그는 기뻐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배웠다. 성경을 읽으면서 삶의 풍요로움은 물질적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더불어 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임을 드니 엘레 목사는 깨달았다. 참된 삶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은 결국 그를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는 길로 이끌었다.



프랑스로 돌아와서 그는 산림과 관련된 예전의 일터로 돌아가는 대신 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로 가서 복음주의교단 신학교에 진학했다. 몽플리에(Montpellier) 개혁교단 신학교를 마친 후 프랑스 동부지역, 보쥬(Vosges)와 랭스(Reims)에서 목회사역을 이어갔다. 그 후 개혁 교회 지역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7년 동안 지역 교회 발전을 위해 일했다.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로 부임하기 전 그는 목회사역심의위원회(Comission des Ministeres)의 책임자였다. 이 기관은 신학생들이 목사로 임명되기 전 소명을 가지고 목회사역을 할 수 있도록 상담하고 이끌어 주는 일을 맡고 있다. 모든 신학과정을 이수했다 할지라도 목회자로서 소명감이 없다고 판단되면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드니 헬레 목사는 올바른 목회사역을 위해 신학생은 성경적 지식뿐만 아니라 내적·영적 자질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음에 대한 확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그 믿음을 실천하는 방식,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이해심과 포용력은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 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신학생이 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심의위원회는 그에게 다양한 사회단체의 봉사활동에 우선 참여하길 권한다. 결국 이 영적훈련과정에서 신학생들 대부분은 믿음이 성숙해지고 목사로서 소명감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액상프로방스와 몽플리에 신학교를 마치고 교회사역을 함께 하고 있는 동료, 질 도데(Gill Daude) 목사와 그는 교회사역에서 유대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복음주의 교회를 위한 ‘성도의 교제’


현재 교회가 당면한 과제는 예수 안에서 진정한 형제애를 실천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다른 문화와 다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예수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되는 곳이다. 파시 아농시아시옹 교회는 성도간의 교제를 위해 성경공부뿐만 아니라 매달 두 번째 일요일에 성도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식사 외에도 다과 같은 다양한 방식의 ‘나눔 프로그램’은 성도간의 ‘신뢰감’이 바탕이 된다. 특히 식사는 이러한 친밀한 분위기를 쉽게 만들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 한다. 누군가가 마음속을 털어 놓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신앙체험을 간증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이다.


드니 엘레 목사는 복음의 시작은 서로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개인적으로 부르셨고 또한 예수 안에서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것이 ‘복음’임을 강조했다.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는 이 지역사회에 진정한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다. 하나님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필요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개혁 교회는 문화·사회적 측면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고찰하는데 참여해왔다.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는 이러한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하고 이 강연회에서 기독교의 가치를 증거하고 있다. 때로는 강연회에서 기독교를 알게 된 이들이 예배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 최초의 청소년 보이스카우트 활동은 파시 아농시아시옹교회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지난 2012년에 100주년을 맞았다. 오랜 역사에 맞는 성장세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여름 캠프 활동을 통해 자연 속에서 모험과 탐험을 즐기는 청소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나누는 법을 배운다.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문화 활동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기회가 된다. 작품전시회, 클래식 연주회에서 찬양과 경배의 밤까지 서로 나누고 교제할 수 있어서 즐거울 뿐만 아니라 서로 나누는 즐거움은 복음을 듣게 만든다. 교회는 ‘골동품시장’, ‘중고품시장’, ‘의류수거’, ‘양식은행’, ‘직업알선센터’등을 통해 서로 나누고 어려움에 처한 교인과 지역주민들을 돕고 있다. 그리고 지역 교회와 협력관계는 목회자가 없는 교회(전체 개혁 교회의 10-15%)에 설교와 행사, 교리교육을 담당하는 목회사역부터 공동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통합 개신교회는 나눔과 협력을 통해서 교회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 교회들은 기도와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교회생활에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그 결과로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이 점점 늘어나고 이 교인들이 교회활동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 6월에 열릴 예정인 ‘걷기대회’와 9월의 ‘그리스도인의 축제’는 교회가 활기를 가지고 모든 이들의 눈에서 개신교의 희망을 확인할 수 계기가 될 것이다.



교회 주소
27 rue de l'annonciation 75016 Paris (교육관, 사무실)
19 rue Cortambert 75016 Paris (성전)
교회 홈페이지 www.annonci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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