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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교회성장 - 교회성장세미나(1)]네비어스 선교정책과 한국교회의 성장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540
등록일시 : 200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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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한국교회가 다른 나라의 기독교 보다 빨리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미국에서 전 세계로 나간 선교사들은 거의가 같은 신학적 배경과 선교적 동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성장을 했고, 다른 나라의 교회는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초기 한국선교사들은 네비어스 선교정책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특별히 장로교선교부는 네비어스선교정책을 따라서 교회를 개척하고, 교역자를 양성하여 오늘의 한국장로교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장로교로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네비어스 선교정객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선교정책을 바로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일 선교정책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사실 초기 한국선교사들의 필요에 의해서 수용된 것이다. 한국의 초기 선교사들은 거의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에 한국에 왔다. 따라서 이들은 지나치게 의욕이 앞선 나머지 시행착오도 하게 되었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운 나머지 상호간의 의견조정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선교사들은 경험이 많은 선배선교사들의 자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1890년 6월 중국 지푸에서 활동하던 네비어스(J. L. Nevius)선교사를 한국에 초청하게 되었다. II. 네비어스는 북장로교선교사로서 1854년 중국에 도착하여 30년이 넘게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는 중국어에 능통했으며, 수많은 지방순회 여행을 통하여 토착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매해 여름에는 수십명의 토착인들이 그의 집에와서 조직적으로 성경공부를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네비어스는 전통적인 선교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전통적인 선교방법은 현지 교인들 가운데 가장 지성적이고, 진보적인 사역자를 발굴하여 그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여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게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면 그 다음 단계에 가서는 재정적인 지출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 결국은 독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엘리트를 선발해서 충분한 급여를 들여서 선교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네비어스는 이 방법이 많은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신자들 사이에 위화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즉 어제까지 동료신자였는데, 이제부터는 그들은 유급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교회일은 유급사역자가 돈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직업이 되고 만다.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신자들은 교회 일에 방관자가 되고 만다. 그래서 네비어스가 생각한 새로운 방법은 유급사역자를 사용하는 대신 처음부터 월급을 받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토착사역자를 발굴하는 것이다. 네비어스에 의하면 선교사는 유급사역자를 파송하는 대신에 신자들이 스스로 모여서 교회를 세우고, 그들 가운데 예배를 인도할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 다음 단계에 가서 자신들의 능력으로 유급 전담교역자를 모실 수 있을 때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네비어스의 이런 방법의 근본은 복음의 중요성을 분명히 알리는 것이다. 많은 경우 서구 선교사들은 돈으로 토착사역자들을 고용하기 때문에 그들은 월급장이 일뿐 사역자가 되지 못한다. 네비어스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은 경제적인 자립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사역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볼 때 진정으로 복음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네비어스는 1885년에 상해에서 발행되는 [차이니스 레코더]에 위와 같은 내용의 선교정책을 발표하였고, 이것은 1889년 [선교지교회의 개척과 발전]이라는 작은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III. 네비어스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이미 60이 넘은 노인이었다. 네비어스는 서울에서 두 주간 머물면서 선교사들과 모임을 가졌다. 네비어스 부인은 한국의 선교사들은 마치 네비어스를 아버지처럼 생각하면서 그 주위에 둘러앉아 사랑과 존경으로 자신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네비어스의 자문을 기다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일 저녁 이들은 자신들의 상황과 부족한 점을 내어 놓고 토론하였으며, 이것을 통하여 한국사역에 맞는 원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곽안련박사는 네비어스의 정책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곽안련, [한국교회와 네비우스선교정책], 44-45). (1)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널리 순회하며 전도함. (2) 사역의 모든 분야에서 성경이 중심이 됨. (3) 자전(自傳): 모든 신자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자가 되며, 동시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된다. 이런 것을 통하여 딸기가 번식하는 것처럼 계속 번식하여 나간다. (4) 자치: 지역교회는 선임된 무보수 영수의 관할을 받는다. 순회교구는 유급조사들의 관할을 받는다. 유급조사들은 나중에 목사가 될 사람들이다. (5) 자립: 신자들은 스스로 마련한 예배당을 소유한다. 각 그룹들은 창립되자마자 순회조사의 봉급을 지불하기 시작한다. 개 교회 목사에게 외국의 자금으로 사례를 지불하지 않는다. (6) 모든 신자는 영수와 조사의 지도아래 성경공부를 하며, 영수와 조사는 성경연구반을 통해서 조직적으로 성경을 공부한다. (7) 성서적인 기준을 따라서 엄격한 훈련을 시킨다. (8) 다른 선교단체와 협력한다. (9) 법정 소송사건이나 그와 유사한 문제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는다. (10) 민중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가능한대로 도움을 준다. 이상의 네비어스방법을 기존의 선교방법과 비교해 보면 1) 기존의 선교사들은 선교본부에 머물며, 현지에 나가지 않고, 2) 일반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만들려는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으며, 3) 선교사들이 자금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자치란 불가능하며, 4) 교회의 건물과 유지를 외국의 자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립에 대한 정책이 없으며, 5) 성경의 권능을 믿지 않고, 따라서 조직적인 성경공부가 없고, 6) 교인들을 붙잡아 두려는 마음에서 징계를 느슨하게 하며, 7) 연합이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경쟁을 일삼으며, 8) 천주교의 경우 신부가 관리와 같이 법적인 임무를 맡지만 개신교는 세속법정의 권위에 순종하며, 9)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인다는 이유로 신자들의 일상적인 육신의 일은 무시한다. 2주 동안의 진지한 토론과 기도 끝에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한국에서 네비어스 선교정책이 기존의 선교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이때부터 네비어스선교정책은 북장로교의 선교정책이 되었고, 이어서 남장로교, 호주 장로교, 카나다 장로교 선교부가 이 정책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한 모든 장로교선교사는 네비어스선교정책에 관한 책을 받아서 이것을 완전하게 숙독하고, 시험을 보아야 했다. 곽안련박사는 한국장로교회가 급속하게 성장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네비어스선교정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장로교 뿐만이 아니라 감리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네비어스방법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네비어스의 방법은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교정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IV. 이런 네비어스선교정책을 오늘의 한국교회와 비교해 본다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첫째,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무엇보다도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장하면서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어지고 있다. 그러나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다.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단지 선교방법이 아니라 선교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자라는 분명한 복음의 확신이 없이는 전도는 불가능한 것이다. 둘째,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성경공부를 강조하고 있다. 네비어스는 중국에 살면서 동양인의 경전에 대한 존경심을 알았다. 서양의 역사비평학자들에게 성경은 여러 문서의 편집이지만 동양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런 점에서 성서의 권위는 동양의 문화권에서 더 잘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유교문화권에서 교육이란 바로 경전공부였다. 이런 유교문화권에서 성경공부의 강조는 매우 적합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평신도사역자 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는 평신도 지도자 양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처음부터 평신도를 사역자로 삼아서 교회를 개척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여 나가려고 계획하였다. 사실 오늘날 교회는 교회개척을 교역자가 주도한다. 하지만 초기 한국교회는 먼저 신자들이 모여서 그들이 예배를 드리고 그 다음에 힘이 생길 때에 유급교역자를 초빙하였다. 그때까지는 평신도 지도자인 영수가 교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초기 한국교회는 지금에 비해서 평신도의 역할이 매우 컸다. 넷째,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자립을 강조하고 있다. 네비어스는 선교지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는 돈과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기존의 선교방법은 토착사역자를 고용해서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복음전도는 사명이 아니라 직업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수많은 문제를 가져온다. 따라서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처음부터 복음전도를 통해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함으로서 복음에 대한 헌신을 하도록 했다. 이런 정책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런 강한 헌신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튼튼한 기초위에 서게 된 것이다. 다섯째,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엄격한 훈련을 강조했다. 한국교회는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따라서 엄격한 신자관리를 했다. 술과 담배를 금하고, 축첩을 용납하지 않으며, 주일 성수를 의무화했다. 물론 이런 것이 율법주의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것을 통하여 사람들은 신자가 된다는 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이런 초기 한국교회의 엄격한 전통들은 완화되어갔다. 더 이상 금주와 금연을 외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처음에는 교인의 증가를 가져오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교회의 세속화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교회로 하여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여섯째.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연합정신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는 여러 교파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이런 교파들은 상호 배타적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교파들은 자신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기본적인 틀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네비어스는 다양한 교파들이 상호 협력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교육사업, 의료사업등에 있어서 연합은 더욱 필수적이다. 또한 네비어스는 선교지의 분할을 통해서 여러 교파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교파들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일곱번째,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신자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복음을 들을 대상인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있다. 아이러니하게 직접전도를 강조하는 네비어스선교정책은 지역신자의 경제적인 진보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네비어스 자신이 중국에 많은 신품종 과수나무를 소개하여 농가소득의 증가를 위해서도 노려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현대사회에서도 교회는 신자들의 영적인 생활 뿐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분명히 한국 초기의 선교정책이다. 초기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은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복음전파의 근본원리는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장의 침체를 겪고 있다. 우리는 초기의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통해서 우리가 나가야할 바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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