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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교회성장 - 교회성장세미나]성령의 임재하심과 방언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39    등록일시 : 2007-01-31    인쇄
<제 2 강>
성령의 임재하심과 방언


교회성장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회성장연구소의 홍영기 목사입니다.
이번 2007년 2월호 교회성장특강은 <성령의 임재하심과 방언>입니다.


홍영기 목사┃교회성장연구소장, yhong@pastor21.net


2007년 들어 한국교회는 한 목소리로 ‘부흥’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1907년에 평양에서 일어났던 대부흥 운동을 재현하자는 모토 아래 한국교회가 하나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양대부흥이나 기타 다른 부흥운동의 핵심은 다름 아닌 성령의 임재하심입니다. 성령이 임재하실 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변화의 경험이 뒤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임재하심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미국 갈보리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님은 성령의 임재하심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1) 그는 거듭날 때 주어지는 성령의 내주와, 신자가 경험하는 성령의 능력은 구별된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중생의 경험과 성령 충만의 경험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바울은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을 구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말고 성령의 임재하심을 간절히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신자들에게 임하시는 형태는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과 신자와의 관계를 세 가지 희랍어 전치사로 보여줍니다. 첫째는 ‘파라’(para: 함께), 둘째는 ‘엔’(en: 안에), 셋째는 ‘에피’(epi: 위에)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17절의 말씀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파라)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파라)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엔)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그런데 성령께서 신자와 함께 하시고(파라), 신자 가운데 내주하시는(엔) 것 외에 또 다른 관계가 또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에피, 위에)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여기서 ‘너희에게’에서 사용된 헬라어 전치사는 ‘에피’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위’에 임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성도들 위에 임하셔서 우리 삶에서 넘쳐흐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요약하면, 성령은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우리 ‘위’에 임재하십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의 형태가 다양하듯 성령이 임하실 때 드러나는 표적과 증거도 다양합니다. 성령이 임재하셨다는 증거는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내적인 증거로는 구원의 확신, 기쁨과 평안, 열심과 헌신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외적인 증거로는 지체간 사랑과 순종, 다양한 은사, 증인의 삶이 있습니다.
저는 성령이 임재하셨을 때 나타나는 여러 증거들 중에 방언의 표적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시자 처음으로 드러났던 현상이 방언이었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혀가 우리의 모든 지체를 다스린다고 말하는데, 우리의 혀를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증거가 바로 방언입니다. 방언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방언을 구하는 목적이 내 탐욕적 동기가 아니라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를 위한 것일 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방언이 성령세례의 유일한 표적은 아니지만 중요한 표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방언의 은사를 받고 방언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체험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손을 얹고 눈물로 기도해 주셨습니다. 갑자기 제가 지었던 죄들이 하나하나 기억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회개하기 시작했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언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속에는 기쁨이 가득 찼습니다. 내 몸은 뜨거웠고 무엇인가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날 성령의 세례를 받은 이후 저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 이후 방언 기도를 통해 저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적으로 방언은 다른 성령의 은사가 열리는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의 유익을 알고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성령이 임재하셨을 때 나타나는 방언의 능력과 유익을 5가지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방언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된다
첫째, 방언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것은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오순절날 세계 각국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던 120문도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으로 충만해지자 다른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방언을 듣고 유대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흩어져 살고 있는 나라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던 유대인들이 제자들의 전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밭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방언은 전도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어떤 오순절 교회에 부부가 함께 참석했습니다. 남편은 군인으로서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 일본인 여자와 만나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기독교 신자이지만 일본인 아내는 아직 불교 신앙을 고집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예배가 끝난 후에 남편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고, 아내는 불교식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옆에 중년 여인이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큰 소리로 방언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인 아내가 깜짝 놀라 남편의 팔을 붙들었습니다.
“여보, 들어보세요. 이 사람이 일본말로 내게 말하고 있어요. ‘너는 부처에게 빌지만 그는 네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않느냐?’ 게다가 미국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제 일본식 이름을 불러가며 말하고 있어요.” 일본인 아내는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방언기도를 사용하신 것입니다.2)
존 슈라일은 「다른 방언을 말하다」(They Speak with Other Tongues)라는 책에서 1922년 한 선교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선교사는 식인종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던 중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재판에 회부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선교사는 신기하게도 20분 동안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주민은 그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결국에는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주님을 영접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선교사는 부족언어를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성령께서 방언의 은사를 주셔서 곤경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족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기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방언은 불신자들에게 표적이 되며, 그들을 전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2. 방언은 성령께서 성도의 연약함을 위해 드리는 중보기도이다
둘째, 방언은 성령께서 성도의 연약함을 위해 드리는 중보기도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라고 말합니다. P.C. 넬슨은 이 본문의 희랍어를 보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3) 넬슨은 원어적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입술을 통해 신음이 나오는 것뿐 아니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지적합니다. 여러분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영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을 인도하시는 것은 성령이시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으로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방언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울까요? 먼저 성령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뤄지도록 기도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은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고 계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삶에서 이뤄지도록 하십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이 말씀하신 계획을 듣고 그것을 우리의 영에 부어 주십니다. 우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초자연적인 언어가 하나님의 계획을 표현하는 방언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의 입으로부터 나온 말을 실제 삶에서 구현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우리가 위기를 당했을 때 방언기도를 하게 하셔서 우리를 구해주십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한 영국 선교사가 휴가 중에 선교사 대회(Missionary Conference)에 참석했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선교사에게 일기를 쓰고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선교사는 희귀한 질문에 약간 당황했습니다. 그녀는 계속 말했습니다. “2년 전 저는 한밤중에 기도해야 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습니다. 저는 침대에서 나와서 무릎을 꿇은 후에 방언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한 시간 가량 방언으로 기도했는데, 마치 내가 씨름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기도를 끝냈을 때, 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신이 오두막 집 안에서 원주민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병이 들었고, 곧 죽었습니다. 나는 또 원주민들이 당신의 얼굴 위에 천을 덮고 슬픈 얼굴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이 오두막에서 나오더니 그들 가운데 섰고, 모든 원주민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교사는 확인해 보기 위해 자신의 일기장을 가져왔습니다. 일기장을 보니,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영국과 아프리카의 시간차를 계산해 보고 여인이 기도했던 시간과 그 선교사가 열병으로 심히 아팠던 때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선교사의 동역자들은 멀리 나가 있었고, 선교사는 홀로 원주민들과 있었습니다. 그녀가 환상에서 본대로 그 선교사는 죽었고, 원주민들은 그가 죽은 것을 보고 천을 머리 위에 덮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갑자기 건강하게 나았고,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녀의 방언기도의 권능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방언기도를 통해서 성도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3.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방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는 통로가 됩니다.
방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에 사탄은 이것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성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초자연적인 언어를 만들어 내고, 이곳은 사탄의 관할 구역 밖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시에 일본군과 미국군 사이의 전쟁에서 미군이 승리했습니다. 그 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나바호(Navajo) 부족 인디언 병사들입니다. 그들은 윈드토커(Windtalker)라고 일컬어졌는데, 그들의 의사소통의 방법은 “바람 속에서 말하는”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나바호 부족의 암호병들은 일본군이 해독할 수 없는 통신 체계를 만들라는 임무를 띠고 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었습니다. 일본군은 미군의 통신을 도청했지만, 소음과 잡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나바호 암호병들의 통신 내용을 도저히 해독할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미군은 전투 계획, 포격 지원 요청, 주요 전략, 각종 기밀 자료들을 안전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바호 암호병들은 태평양 주요 전투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데 중대한 기여를 했습니다.4)
일본군 정보장교들이 나바호 암호병의 통신을 해독할 수 없었듯이 마귀도 성령의 언어를 훼방하지 못합니다. 방언은 하늘의 의사소통의 수단이요,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에 연결하는 언어입니다. 방언은 우리의 마음과 뜻을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추게 합니다. 방언은 마귀를 어리둥절케 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전시 언어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은사사역으로 유명한 데이브 로버슨(Dave Roberson) 목사의 체험입니다. 로버슨 목사님이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목숨이 매우 위태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병원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차를 운전하면서 그는 “내 누이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그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라고 반복해서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백할 때마다 무엇인가 그의 감정을 크게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가 병원을 향하여 달리는 동안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그는 정신이 산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주자 그는 두 귀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귀신은 그의 왼쪽 어깨에, 다른 귀신은 오른쪽 어깨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그녀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라고 고백할 때마다 한 귀신이 그의 귀에 대고 다른 쪽에 있는 귀신에게 “그녀는 죽을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그의 영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고백을 계속하거라.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해라.” 그래서 그는 계속 입으로 시인하면서 방언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한참 후에 두 귀신 중 한 귀신이 다른 편의 귀신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무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다른 귀신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르겠는데, 그런데 너도 나처럼 불을 지피는 것 같이 들리니?” “그럼.” 다른 귀신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그를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니?” 결국 귀신들은 그를 떠났습니다. 마귀는 방언기도를 알아듣지 못한 채, 자꾸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물러난 것입니다. 이처럼 방언은 마귀가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4. 방언은 은사와 계시의 채널을 여는 통로가 된다
넷째, 방언은 은사와 계시의 채널을 여는 통로가 됩니다. 방언 후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면 계시와 환상과 예언이 전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다른 은사들도 받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규칙적으로 방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은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 다른 은사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아 방언을 하는 것이 다른 은사들로 향하는 출입문이 됩니다.
신디 제이콥스는 자신의 저서 「초자연적인 삶을 살라」(The Supernatural Life)라는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대학을 다닐 때 등록금이 늘 걱정이 되곤 했습니다. 고민과 걱정이 연속되고 있던 시기에 친구가 성령에 관한 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성령이 삼위일체의 한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다른 것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방언을 하고, 병자에게 안수기도를 하고,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면서 성령님을 더 알아야겠다는 갈급함이 강렬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오, 주님! 제게 성령의 능력과 방언의 은사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뒤로 그녀가 샤워할 때 갑자기 입에서 새로운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은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 불어와 같이 들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지난 15년 동안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으로 지내던 시기가 끝났음을 알았습니다. 방언이 터진 후에 신디 제이콥스는 초자연적인 세계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언, 중보기도, 계시와 같은 새로운 은사의 채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방언을 하게 되면서 신디 제이콥스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자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5)
이렇게 방언은 하나님의 다른 은사들의 출발점이 됩니다. 어떤 목회자가 목회자들과의 조찬 모임을 끝내고 근처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100명 이상의 목회자가 한꺼번에 모여서 식사를 하니 장내를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는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바다 같은 평화가 그를 덮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님들의 주문을 받는 일에 매우 바쁜 여종업원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무시로 기도하는 가운데,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투석기를 달고 있는 영상이 보였습니다. 좀 더 기도하자 꼬마의 영상이 여종업원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그 목회자는 여종업원을 불렀습니다. 그녀는 서비스에 대해 불평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조금 불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목회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기도할 때 주님이 당신이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다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사는 편모이며, 당신 아들의 질환이 심각하다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울먹이며 물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누구신지요?” “저는 그냥 평범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녀는 더 큰 소리로 울며 말했습니다. “지금 제 아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당신 아들의 병을 치료해 주시기 위해 오늘 내게 이런 깨우침을 주신 것입니다.” 그녀는 매우 큰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이처럼 방언은 계시와 다른 은사들의 채널이 열리는 통로가 됩니다.

5. 방언은 개인의 덕을 세운다
마지막 다섯째, 방언은 개인의 덕을 세웁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14:4). 유다서 20절과 21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실하게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가 집회를 하던 중에 어떤 청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의 어깨 부분이 엑스레이같이 투명하게 보였고, 매우 큰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청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받을지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즉시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줄 때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아래에서 뒤로 넘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 일을 보고 목사님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능력 있게 쓰임 받고자 하는 갈망은 있었지만, 실제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니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목사님의 내면에 이런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아들아, 이런 기름부으심이 갑자기 네게 임한 것이 아니란다. 이 기름부음이 임한 것은 네가 너 자신의 충전을 위한 방언기도의 원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네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언제든지 네가 원하면 의도적으로 자신을 강건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기도함으로써 너는 육체적 감각을 따라 걷는 것을 극복할 것이다.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케 하여 성령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할 것이다.”6)
이처럼 방언은 성도를 능력 있는 사역자로 세워나갑니다. 초대교회의 위대한 사도 바울은 방언기도에 관해 많이 언급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방언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된 것과 방언을 많이 말한 것이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방언으로 기도함으로써 바울은 자신을 전도자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방언은 우리의 인격을 세우는 일도 합니다. 미국의 신유사역자로 유명한 오랄 로버츠 목사가 목회자 집회를 할 때 일이었습니다. 오클라호마에서 4,5천 명의 목회자를 모아 집회를 하는데, 갑자기 설교 중에 어떤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오랄 로버츠 목사님에게 항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잘못되었습니다. 물러나시오!” 예배 시간에 이런 돌발 사태가 일어나자 분위기는 삽시간에 술렁거렸습니다. 그 때 오랄 로버츠 목사는 침착하게 기다리다가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영으로 기도합시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방언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동안 회중과 함께 기도한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당황할 수 있는 상황에서 흔들림없이 예배를 끝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방언을 통해 자신의 인격과 성품을 세워나갔던 오랄 로버츠 목사의 훈련의 결과였습니다.7)
이처럼 방언은 우리의 인격과 믿음을 견고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키신다는 믿음을 줍니다. 특히 방언으로 오랜 시간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신앙인격을 세우는데 도움을 줍니다. 대개 방언기도를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나면 생수의 샘이 흘러나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방언기도를 오래할수록 더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조용기 목사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의 유익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기 전에는 오래 기도할 수 없었으나, 방언으로 기도한 후에는 오랜 시간 기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더 깊은 친교를 나누고, 더욱 큰 권능으로 무장할 수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성령의 임재하심과 방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해보면,
첫째, 방언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된다
둘째, 방언은 성령께서 성도의 연약함을 위해 드리는 중보기도이다
셋째,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넷째, 방언은 은사와 계시의 채널을 여는 통로가 된다
마지막 다섯째, 방언은 개인의 덕을 세운다

였습니다.
방언은 영광의 언어입니다. 방언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에 접속시키는 특별한 기도입니다. 또한 성령이 와서 신자들의 삶 속에 함께 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성령이 교회를 탄생시켰고, 그 과정에 방언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으로 기도하게 하는 언어입니다. 이처럼 귀한 방언의 은사가 회원 여러분의 교회에 넘쳐 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본 특강은 부록 Tape를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미주

1) 척 스미스. 갈보리 채플의 특징은 무엇인가? 김동백 역. (서울: 포도원, 2003), p. 33.
2) 데니스&리타 베넷. 성령님과 당신. (서울: 서로사랑, 2005). p. 131
3) 캐네스 해긴. 방언기도의 능력을 풀어 놓으라. 김진호 역. (경기 : 믿음의말씀사, 2006). p. 25.
4) 마헤쉬 차브다. 방언체험.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04), p.20.
5) Cindy Jacobs. The Supernatural Life : Experience the Power of God in Your Everyday Life. (Ventura, CA: Regal, 2006).
6) 데이브 로버슨. 성령의 삶, 능력의 삶. (경기: 믿음의말씀사, 2004).
7) 김영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성령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서울: 미래사, 2004).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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