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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장세미나
200908 <월간교회성장 - 교회성장세미나> 21세기 한국 교회의 선교 전략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43    등록일시 : 2009-07-28    인쇄
교회성장/ 특강



<제 8 강>

21세기 한국 교회의 선교 전략







교회성장클럽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회성장연구소 홍영기 목사입니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서 선교학을 가르치시는 김상근 교수님을 만나서,

“21세기 한국 교회의 선교 전략”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담 홍영기 목사(교회성장연구소 소장), 김상근 교수(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부원장)





교수님 최근의 근황이 어떠하신지요?

최근에 생각하고 있는 저의 신학적 화두의 주제는 ‘세상과의 소통’입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생각인데요, 아프가니스탄 선교단의 피랍 사건으로 인해 파국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국 교회에서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세상과의 소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저의 신학적 학문의 대상을 교회에서 세상으로 바꾸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하고 있는 작업들은 세상 사람과의 대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실천할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우선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통분모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바로 “이미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최근에는 미술공부에 집중하고 있는데 바로 이미지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그림이라는 이미지가 일반 세상과 기독교의 공통분모이고, 특별히 16세기 르네상스 미술이 세상과 교회의 공통분모라고 생각을 합니다.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엘그레꼬 같은 분들의 작품을 분석하여 그 내용을 기독교나 교회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삼성, 엘지 등과 같은 대기업에 있는 경영진과 임원진들과 함께 인문학적 성찰, 곧 신학적 성찰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상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미술공부, 인문학 공부에 심취해있다는 말씀이었는데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을 선교라고 할 수 있는데 선교학자로서 교수님은 선교를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교회의 사명은 선교가 아니라 선교가 교회의 사명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목회의 한 방편이나 교회의 한 방편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해를 가지고 선교가 무엇인가 정의를 내리면,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임하시는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인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증언자로서의 위치를 지켜야한다는 것이 제가 선교를 정의하면서 항상 생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선교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만큼 선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이신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셨는데 이 땅에 오셔서 추구하고자 하는 세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 평등, 정의 같은 기본적인 가치를 담아내셨죠. 특별히 최근 한국 사회에 필요로 하는 하나님 나라의 덕목은 용서와 화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을 보면 갈등이 자주 증폭되고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것을 증언하는 우리의 사명을 돌이켜 볼 때,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부분에 선교적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에 있어서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 만큼 중요한 것이 ‘무엇을 전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한국 교회가 전해야할 선교 콘텐츠는 무엇일까요?

사실 선교적 상황에서 무엇을 전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결국 기독교의 본질과 연결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런데 선교적 상황에서 우리가 고려해야할 것은 우리가 무엇을 전하지 말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전할 것인가는 이미 자명하기 때문에 무엇을 전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것을 간단하게 ‘미국적 복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미국 교회로부터 배울 것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미국 교회가 20세기에 추구했던 번영신학적 요소, 혹은 교파주의, 분열주의, 독선 등 이런 것들은 전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 교회가 세계 기독교에 많은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요소들은 세계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 선교는 기독교의 본질을 전해야하지, 우리가 받아들였던 미국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전하지는 말아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십자가와 부활만 전하자는 것이지요.



20세기에 들어와서 기 서구 기독교가 많이 쇠퇴를 하고 비서구지역의 기독교가 많은 번영을 이뤘는데요, 이에 대한 교수님이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하십니까?

이것은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대를 사는 지금, 21세기에 들어와서 기독교가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절감 하고 있습니다. 방금 질문하셨던 기독교사회의 세계적인 상황을 다시 요약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서구 기독교가 더 이상 기독교인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인구 때문에 직시하고 있는 부분인데, 조만간에 약 20년 안에 결국 기독교는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로 대거 이동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 속도가 과속화 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유럽 기독교는 현재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는 것을 쉽게 목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에서 확산되고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새로운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순절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신앙이 새로운 기독교의 강력한 모습으로 부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노선과 상관없이 현재 세계 기독교 흐름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와 동시에 기존의 기독교에 대한 신학적 이해, 교회에 대한 이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이제는 완전히 바뀌어져야한다고 봅니다.

특별히 저는 신학자이기 때문에 신학적 상황에서 오순절신앙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함의를 고민하게 되는데, 더 이상 우리가 이성중심의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하나님의 이해에서 벗어나 오순절 신학에서 추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해로 새롭게 정의되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시대적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은 명증한 사고를 통해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기도를 통해서, 체험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방언과 은사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는 현상이 세계 기독교의 모습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육적 차원에서도 살펴보면 현재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신학적 체계는 18,19세기 서구에서 개발된 신학적 체계인데 이것이 이제는 바뀌어져야한다고 봅니다. 이제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시대에 맞는 신학교육이 시작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교회에 대한 이해가 새롭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1980년 이후에 한국 교회가 선교가 굉장히 발전해 왔는데 이에 대한 선교학 교수님으로서의 관점과 평가는 무엇입니까?

사실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저의 분석을 요약을 해드리면, 한국 선교는 1989년 1월1일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해외여행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의 해외여행이 자율화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가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학생중심, 선교단체 중심에서 서서히 교단중심, 교회중심으로 이동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평가하기로는 현재는 초기 혼란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아프가니스탄 사태 때 있었던 본질적인 선교에 대한 분석과 반성입니다. 저는 이것들이 한국 교회 선교에 있어서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두 명의 순교자가 난 것은 굉장히 가슴 아프지만 그것을 통해 한국 교회가 선교에 대해서 초기의 15년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선교를 향해서 나아가는 발전의 단계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제 3국에 대한 선교전략과 방향에 대해서 교수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 교회의 해외선교를 일방적 선교라고 평가하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모습은 초기 선교국가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영국도 초기에는 그랬습니다. 선교초기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차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면서 점차 성숙한 모습으로 선교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하면, 한국 선교가 미국식 복음을 전하는 대리인(agent)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국식 복음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일제의 압제, 6·25전쟁과 같은 상황을 경험하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이 기독교의 매우 본질적인 요소로 인식된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해외선교에서 표현됨으로써 자칫 미국식 복음을 소개하는 일종의 세일즈맨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조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적인 요소, 곧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탠리 존스가 그의 책 좥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좦에서 말했듯이 기독교의 외형적인 모습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본질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름이 되면 교회에서 단기선교 사역을 많이 나가는데요, 이런 모습에서 어떤 마인드와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여름마다 멕시코 오지에서 단기선교단을 이끌고 몇 번씩 선교를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회 교인들을 인도해 가면서 제가 가졌던 단기선교의 방향은 선교현장에서 배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곳이 경제상황과 주거환경은 어렵지만 이미 복음이 그곳에 들어가 있고, 그들의 신앙의 열정이 오히려 우리보다 더 뜨거운 경우를 자주 보았습니다. 또한 성령체험을 강조하고 십자가의 영성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새로운 것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교인들에게 단기선교를 갈 때마다 “우리가 가서 배우자”, “우리가 그들의 기본적인 신앙을 배우자”라고 했습니다. 단기선교를 가면 보통은 단기선교팀에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저희 교회는 그곳의 지역교회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고 그것을 한국말로 통역하여 우리가 은혜를 받고 같이 예배를 드리는 선교를 진행했습니다. 단기선교를 떠날 때, 아무쪼록 배우겠다는 자세, 섬기겠다는 자세를 견지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전하겠다. 도와주겠다’ 라는 접근방식은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처음엔 이러한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처음에 선교를 갔더니 머리를 깎아달라고 해서 머리를 깎아드렸어요. 두 번째 가니까 파마를 해달라고 해서 파마기계를 가져갔더니 세 번째는 염색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들은 주겠다고 하면 계속 받겠다는 것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겠지만 도움이 물질적인 부분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십자가와 부활을 나누는 부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도 세속주의적 영향으로 명목적인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고 있는데, 명목주의 현상에 대한 진단을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명목적인 신자가 많다는 것은 목회자 혹은 저와 같은 신학자들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즉 교회의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명목적인 신자가 된 것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먼저 우리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반성한다고 봅니다. 특별히 많은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성공신화를 쫓아서 기독교의 본질적인 요소를 외면해 나간다면, 많은 교인들이 더 이상 우매한 집단처럼 그 지도자를 따르리라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평신도들은 신학적 수양도 있고 이성적 판단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들이 명목적인 신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교회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을 진단하고 처방하고 미리 막지 못한 신학자의 잘못도 굉장히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명목주의 신자가 늘어난 이때에 저는 무엇보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했을 때 중세 수도원 운동이 시작 되었고, 신대륙이 발견되어서 세상이 혼돈스러울 때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새로운 하나님의 이해가 교회에 대한 사명이 시작되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명목주의 신자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명목적인 신자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목회현장에서 목회자가 교회를 선교적인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책임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분석한 다음에 영성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더 이상 기술적인 프로그램으로 무엇을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서두에도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세상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이를 위해서는 목회자가 어떤 역할과 노력을 해야 할까요?

세상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교회의 언어가 세상의 언어와 다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쓰는 언어가 암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쓰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대개 보통사람들이 듣고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기독교인은 매우 잘 알고 있고, 100% 동의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때 일어나는 현상은 semantics, 즉 의미론의 문제입니다. 이 의미론적 가치를 세상과 공유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세상의 언어를 획득하는 작업을 더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중립적인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립적인 언어가 무엇일까 하다가 찾은 것이 이미지, 즉 미술입니다. 이미지라는 것은 텍스트이지 않습니까? 기독교인이나 세상 사람이나 이미지를 보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켈란젤로의 이미지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 이미지는 500년 동안 해석되어왔습니다. 이미 공개되어 있는 이미지 안에서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를 끄집어내서 세상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다보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바울이 로마에서 한 설교를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의 매개체로 삼으면 그들은 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울이 누군가? 로마가 어느 로마를 말하는 것인가? 로마제국인가? 수도 로마인가? 바울이 누군지도 사울과 바울이 누군지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 같은 공개된 이미지를 가지고 공통분모를 찾고 의미적인 해석을 공유해 가면 그들은 이야기 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미켈란제로의 작품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세상 사람과 소통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들께 인문학적 수양을 키우자고 말합니다. 놀라운 것은 한국의 많은 기업인들 경영인들이 인문학 성찰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들을 공부하느냐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결국 경영이란 인간에 대한 성찰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알아야 물건을 팔고 종업원들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 아닙니까? 결국 목사님들은 사람을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기에 목사님들도 성경 읽고 주석 보시고 기독교서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수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개설하는 강의가 ‘종교와 예술’ 같은 것들입니다. 다음 학기에 개설하려는 강의는 ‘영화와 초월적 상상력’이라는 수업입니다. 학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신학적 사고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밀양” 같은 영화는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영화를 보면서 함께 토론하고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SBS에서 “신의 길 인간의 길”이 방영되어서 많은 논란이 있는데 언론과의 관계 혹은 언론을 통한 홍보 등은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문제는 보다 정교한 논의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그 방송 이후 이슬람이 한국에 몰려온다는 경고와 위기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한 선교적 논의와 학술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에 일정부분 개입을 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언론적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본다면 정교한 언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은 파급효과가 컸습니다. 하지만 저의 솔직한 생각은 일전에 국민일보에도 기고를 했지만 그 프로그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부분에서 기독교의 분석은 엉뚱한 방향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다큐멘터리에서 과연 SBS가 무엇을 의도했는가에 대한 분석에서 우리는 그 안에 숨겨진 코드는 읽지 못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것은 이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세계화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근본을 종교적으로 풀어보려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 SBS의 분석은 정말 잘못되었습니다. 근본적인 출발점도 틀렸고 분석도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가 SBS의 프로그램에 대한 표면적인 해석에 집중하면서 근본적인 해석에 접근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언론인들과 기독교의 매체가 기독교의 호교론적 입장에 천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기독교를 보호한다는 입장만 고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언론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해야한다는 입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수님께서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선교’, ‘대화와 봉사의 선교’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전지구적 관점에서의 선교라는 것은 글로벌 시대의 선교라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것은 세계 기독교의 모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세계 기독교의 모습은 남미아프리카 아시아에서 기독교의 주축이 생기고 있습니다. 최근 제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칼빈 탄생 500주년이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가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칼빈의 정신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단지 종교개혁의 본산인 제네바에 칼빈의 동상과 의자만 남아있을 뿐이지요. 저는 이 시대에 칼빈의 정신을 기념하고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글로벌 시대에 세계 교회에 소개할 수 있는 한국인의 영성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손양원, 주기철, 조용기 목사님 같은 분들의 영성이 소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에 저의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야말로 성자 중에 성자가 아니겠느냐?”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자신의 양자로 삼는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탁월한 용서의 영성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관점은 서구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서구의 신학자들 바르트, 몰트만, 본회퍼, 웨슬리에 매여 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들의 영성을 소개하고 그분들의 영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선교학자로서 권면과 조언의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세상이 혼돈스러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에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맡겨진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자칫하면 우리가 희망의 마지막 끈마저 놓쳐버리지 않을까라는 위기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는데, 이제는 정말 세상의 프로그램, 세상의 어떤 방법을 가지고 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전략을 잘 세우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십자가 신앙을 돌아볼 때에만 우리에게 회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자’ 그것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전략보다는 영성을 회복하고 십자가의 영성으로 선교하자는 말씀이셨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 특강은 부록 CD를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김상근 교수

김상근 교수는 조부·부친에 이어 3대째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했으며,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종교학 석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에모리대학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졸업한 다음,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 세계적인 선교학자 앤드류 월스Andrew Walls 박사로부터 학문적 수련을 받았으며, 1998년부터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3년간 강사로 재임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합신학대학원 부원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기독교역사」, 「선교학의 구성요건과 인접학문」,「신과 인간의 경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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