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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장세미나
200907 <월간교회성장 - 교회성장세미나> 근대성과 한국의 개신교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81    등록일시 : 2009-06-29    인쇄
<제 7 강>

근대성과 한국의 개신교





교회성장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회성장연구소 소장 홍영기 목사입니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7월입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승리하는 한 달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번 7월호 특강은 <근대성과 한국의 개신교>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홍영기 목사 교회성장연구소장, yhong0122@naver.com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기독교가 근대성의 영향으로 인해 어떤 변화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근대성의 영향으로 인해 출현한 다양한 기독교 복음의 유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근대성이 한국 교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이번 특강을 통해 한국 개신교에 영향을 주는 근대화의 특징,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와 해결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돌진적 근대화와 한국 개신교



한국의 개신교는 1960년대에 급속도로 성장하였습니다. 통계청이 밝힌 한국의 종교통계에 의하면 개신교인의 숫자는 1900년에 21,136명, 1960년대에는 623,072명, 그리고 1995년 8,760,000명으로 급증했습니다. 19세기 초 개신교가 처음 한국에 전파된 이 후 한국 교회는 세계 기독교가 주목할 만한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조사들과 연구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장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전적으로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급속 성장 이면에는 이른바 한국의 돌진적 근대화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돌진적 근대화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사회의 빠른 구조적 변동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도시의 인구는 1960년의 28퍼센트에서 1970년에는 41.1퍼센트로, 1980년에는 57.3퍼센트로, 1985년에는 65.4퍼센트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도시화가 균등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주로 서울이나 부산, 인천과 같은 소수의 도시에 집중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 ‘상대적 박탈감의 정서’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소속되어야 할 집단을 찾기 어려운 박탈감의 정서는 사람들에게 종교에 더 많은 것을 구하도록 했으며 이것은 더욱 하나님께 매달리도록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대형교회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6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쳐 오면서 매 10년마다 교인의 수가 배가 되는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1999년에는 장년 예배 출석 숫자가 10,000명 이상인 초대형 교회가 15개 있으며, 400개의 대형 교회가 1,000명 이상의 장년 예배 출석 숫자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의 수는 10년이 지난 오늘날 훨씬 늘었습니다. 대형 교회들은 두드러지게도 강력한 목회자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성도들에게 헌신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배 시에 TV회로를 사용한다든지, 근대기술을 이용해 효과적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한다든지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술은 대형 교회의 성장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 그랜트 와커(Grant Wacker) 박사는 한국의 대형 교회들은 인공위성을 갖춘 에덴 동산을 구하고 있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형 교회의 출현 현상은, 근대화가 필연적으로 사회 속에서나 개인의 마음에서 종교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는‘근대 세속화 이론’을 흔들었습니다. 비록 세속화 이론이 서부 유럽에서는 힘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것이 잘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근대화의 과정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 역사를 보면 기독교 신앙은 새로운 제도적 형태를 구축하면서 사람들의 불안과 걱정의 심리를 희망으로 만족시켜주었습니다. 또한 종교적 열정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주었습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교회는 돌진적 근대화에 대해 대응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관점에서는 돌진적 근대화는 지역교회 안에서 교회성장에 대한 강한 열망과 ‘우리라는 감정’같은 일종의 집단소속감을 강하게 불러 일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진적 근대화로 인한 교회 문제들



돌진적 근대화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한국 교회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들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긍정적 변화와 더불어, 돌진적 근대화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의도치 않은 부작용들을 가져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물질주의적 가치의 등장과 전통도덕의 쇠퇴, (2)삶의 가치 저하, (3)개인적, 조직적 이기주의로 인한 문제 발생, (4)공무원들의 융통성과 책임감의 부족, (5)환경오염, (6)질적으로 떨어지는 건축입니다. 이러한 부작용들은 돌진적 근대화와 함께 한 한국 교회의 성장에 많은 부정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 내적 성숙보다 외적인 성장을 중요시함

첫째, 돌진적 근대화로 인해 한국 교회는 내적인 성숙보다는 외적인 성장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한국 교회는 외적으로 빨리 자랐지만 질적으로 성숙하지는 못했습니다. 수적 증가에 대한 관심은 한국 교회 목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부지불식간에 인간적 수단이 교회성장을 가져온다는 왜곡 현상을 낳기도 했습니다.

신학적 진실은 점점 더 종교시장에서 나타나는 양적인 결과에 의해 판단 받았으며 숫자가 진리에 우선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대교회를 만들려는 노력의 뒤에는 ‘더 큰 것이 더 좋다’는 근대 자본주의의 명제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형 교회는 성장의 표시로 인식되며 ‘종교시장의 성공’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동시에 근대적 합리성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욕구 중심적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영적 욕구를 더 잘 채워주는 다른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교회로 옮길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등록교인과 출석교인의 수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 한국의 문화적 상황에서 대형 교회의 출현은 교회들로 하여금 교인들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인 행정 관리기술을 더 많이 갖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이는 결국 목회사역의 전문성을 강조하게 하여 목회자의 권위주의와 관료적 형식주의를 가져 왔습니다. 전도에 있어서도 다양한 멀티미디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전도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기술과 개인에 대한 맹신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비네 사무엘(Vinay Samuel) 박사는 “소비지향적인 대중매체 전도 방식은 교회가 제자도의 대가를 치루면서 성장시키는 일에 장애가 된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쉽게 말해 외적인 성장에만 관심을 두어서 그것이 내적인 성숙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2. 개교회주의 출현

둘째, 한국의 돌진적 근대성은 또한 개신교의 ‘개교회주의’를 낳았습니다. 개교회주의는 교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함에 있어 개교회의 유지와 확장에 최우선권을 두는 정책이나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개교회주의는 ①부정적인 의미에서 전통 가족주의나 네비우스의 선교 전략, ②종교적 다원주의, 타종교와의 대립, 사회적 불안, 물질주의와 같은 근대 사회적 요소, 그리고 ③교단 간의 경쟁적 심리, 무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당을 짓는 특성, 개신교회의 조직적 체계 등과 같은 조직적 요소가 결합하여 생기게 된 것입니다. 1998년에 한국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양적 성장에 대한 과도한 강조와 교단 간, 개교회 간의 미약한 협조로 파악된 바 있습니다.

근대화가 종교의 초월성을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삶의 모습으로 격하시키면서 한국의 목회자들은 주로 개교회만 돌보게 되었습니다. 교회 성장이 반드시 그 안에 부정적인 것을 내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개교회성장이 자기집착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가 한국 개신교의 성장의 과정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집단 이기주의, 물질주의,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 교회간의 미약한 협력, 영육 분리, 성과 속의 분리와 같은 이중적 세계관 등의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나아가서 한국의 교회와 목회자들의 사회적 신뢰도가 추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통계청 자료를 찾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양상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종교적 권위는 오직 개교회의 성도들에게만 한정되었으며 한국사회에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3. 목회자 리더십의 약화

셋째, 한국의 돌진적 근대성은 또한 목회자 리더십의 약화현상을 불러왔습니다. 돌진적 근대화의 부정적인 문제들의 결과는 한국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의 약화와 한국 교회의 종교적, 목회자의 권위 하락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경적 관점과 한국 전통문화의 관점에 비추어 리더십의 중요성을 고려해볼 때 아마도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근대 문화의 희생자이면서도 대중에 의해 감지되는 부정적 이미지의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들은 교회성장의 방향을 찾기 위해 한국 교회의 목회자의 리더십에 근대성이 미친 영향을 논의하고 근대적 상황에 맞는 리더십의 모델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도입과 함께 교회 지도자의 역할은 여전히 공동체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사람들을 기독교 신앙과 교육으로 개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각 시골 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목회자를 존경의 표시로 ‘목사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한국 목회자들이 사람들 사이에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삶을 통해 비기독교인들 사이에도 존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초기 한국 사회에서는 목회자들이 상징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전통사회와 도덕적, 사회적 질서, 이데올로기가 붕괴되고 있는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국가적 정체성을 세우는 상징적 지도력을 제공해 왔습니다.

그러나 돌진적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목회자들에 의한 지역 공동체 건설은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역할은 공공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에서 조직건설적, 개별적인 역할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에 따라서 한국 목회자들은 서구 합리주의 사고에 지배되는 근대 기술, 정보, 지식들을 사용해야 하는 효율적인 교회 경영자가 되기를 요구받았습니다. 개교회가 성장하느냐에 따라 목회자들과 교회구성원들의 지위집단의 명성이 결정되었고 결과적으로 목회자의 본래적인 근본적인 리더십의 약화 혹은 부재라는 문제점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과제



그렇다면 돌진적 근대화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 신학”(Kingdom Theology)이 목회적 지도력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목회자들의 최우선적 역할은 하나님의 나라가 성도들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에 있어 확실하게 확립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 목회자들은 합리성을 중시하는 근대성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있어 하나님의 임재를 실현하는 일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강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저는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도록 도우라

첫째, 목회자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교회와 성도들을 더욱 역동적이고 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존 워너메이커가 사업가로서 60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장님,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답변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는 듯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지요. 그때 나는 2달러 75센트를 주고 예쁜 가죽 성경 한 권을 구입했어요.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만 구입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실천해야지요. 하나님을 신뢰하며 즐겁고 기쁘게 일하다 보면 성공은 어느새 자신의 옆에 다가와 있게 됩니다.”그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실존을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 체험이 없으면 근대 문화 속에 있는 개신교회의 영성에 불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다른 종교로 가서 영적인 체험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체험은 근대적인 맥락에서 특별히 중요합니다. 한국적 종교경험은 신바람(Shinbaram)과 같은 한국문화에서 유래했습니다. 사회-문화적 표현인 신바람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도록 자극하는 감정적인 에너지의 분출을 의미합니다.

일단 신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훨씬 효과적으로 일하며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됨을 경험하게 합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신바람을 일으키는 적절한 동기는 역동적인 성령체험에서 나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소명을 알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렇기에 목회자들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크리스천이 신바람을 경험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개교회와 교단의 성장과 퇴보는 구성원들의 종교적 체험 곧 하나님의 경험이 잘 이루어지느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사회학자인 플로마(Poloma)와 펜들톤(Pendleton)은 하나님의성회 교단 1,275명의 교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 종교적 체험은 전도로 이어진다는 것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1998년 1,260명 개신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종교적 체험이 전도의 빈도수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평신도들이 이러한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심인물은 바로 목회자들입니다. 이런 사실은 만약에 교회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이끌어주지 못하면 한국교회는 근대사회 맥락에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쉽게 말해 다양한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다양한 노력을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도우라

둘째로 한국 목회자들의 다른 중요한 역할은 성도들로 하여금 의미 있는 하나님 체험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으로 연결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설교자 무디가 처음 영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무디는 한 여인을 주목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항상 강당의 앞자리에 앉아 주의 깊게 그의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무디는 그녀가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운영위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알고 싶으세요? 우리는 그 여자를 ‘늪지’라고 부릅니다. 그녀는 참석 가능한 종교적인 행사에는 모두 참석합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다른 영혼을 위해서 허드레 일을 했다든지 간증을 했다든지 하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늪지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목사님도 아시다시피 늪지는 썩은 물을 흘려버리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러한 늪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교회의 수적 증가가 사회적 영향과 영적 파워를 의미하지 않는 상황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때에 한국 교회는 본회퍼가 새롭게 말한 <책임 있는, 대가를 지불하는 제자도>에 의해 도전받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다수의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랐다고 해서 예수님의 사역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대다수의 군중들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목표는 개종자나(converts), 계속 교회에 붙어 있는 사람(adherents), 단순 예배 참석자들(attenders)이 아닌 제자들로 가득 찬 교회를 배가 생산하는 데에 그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참된 의미에서 제자들이란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 동료들을 사랑하며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써 예수님께 헌신을 다하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1990년 이래로 한국의 대부분의 대형교회에서는 교인수와 출석수의 심각한 정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크게 명목주의와 사회적 공신력(social credibility)의 저하에 있다고 봅니다. 명목주의와 사회적 공신력의 하락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한국 교회의 힘이 약화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일수록 한국 교회는 기독교 신앙과 복음이 삶의 모든 면에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회적 변화는 기독교인의 삶을 통해 사회전반에서 가능합니다. 결국 복음은 메시지로 뿐만 아니라 그 것을 실천하는 참된 주님의 제자들의 생활을 통하여 전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교단과 교파를 넘어서 상호 협력하라

셋째로 한국 목회자들의 하나님 나라 신학에 기초해서 선교를 위해 협력하고 서로 의지하여야합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것 가운데 ‘히카리’라는 신간선 기차가 있습니다. 그 기차의 속도가 너무도 빨라서 기차의 이름을 이렇게 부릅니다. 그 말은 ‘광’ 또는 ‘빛’이라는 뜻입니다. 그 기차가 그렇게 빠른 이유는 맨 앞에 있는 기관차 혼자서 전체 객차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고 연결된 객차마다 각각의 엔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차가 출발하면 여러 엔진이 일제히 움직이므로 추진력이 생겨서 빨리 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중에 하나라도 고장 난다고 가정하면 모두가 지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는 다양한 교단과 교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신학에 기초하여 상호 협력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호의존성의 원칙은 개교회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몸된 교회에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상호의존의 모델을 초대 교회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예루살렘을 건너서 후에 유대와 갈릴리를 지나 급속도록 번져갔습니다. 이를 통해 가정교회를 포함한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가 복수가 아닌 단수로 쓰여 졌다는 점입니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개교회들의 자치와 독립적 운영은 상호의존성과 상호연관성에 의해 균형 잡혀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혼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상호의존성에 대한 또 다른 용어는 공생입니다. 공생이란 다른 두 개체가 상호유익을 위해 가까이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 신학의 결핍은 그와는 반대로 부정적 성장 모델을 초래합니다. 경쟁과 단일 문화와 같은 문제들을 일으킵니다. 경쟁은 다른 개체를 가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체들은 서로를 돕기보다는 해를 끼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의 이기주의와 경쟁은 선교를 위해 동역해야 하는 목회자의 역할을 생각할 때 반드시 회피되어야 합니다. 교단과 교파를 떠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상호 협력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근대성의 영향을 살펴보았습니다. 서구 교회와는 다르게 한국 개신교에는 돌진적 근대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몇 가지 문제점들이 등장했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내적 성숙보다 외적인 성장을 중요시함

둘째, 개교회주의 출현

셋째. 목회자 리더십의 약화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도록 도우라

둘째,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도우라

셋째. 교단과 교파를 넘어서 상호 협력하라



미국 콜로라도 주 롱 파크의 경사진 곳에 쓰러진 거목의 잔해가 있습니다. 식물학자는 이 나무의 나이가 400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거목은 오랜 생애 동안 네 번이나 벼락을 맞았습니다. 4세기라는 긴 세월 동안 수도 없는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거목은 살아남았습니다. 근처의 모든 나무들이 쓰러져도 이 거목만은 살아 견디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쓰러질 것 같지 않던 이 거목이 어느 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과연 이 거목을 쓰러트린 것은 얼마나 강한 힘이었을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거목을 쓰러트린 것은 조그만 딱정벌레들이었습니다. 그토록 튼튼했던 거목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딱정벌레들에 의해 쓰러졌던 것 입니다.

서구 기독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 역시 아주 작은 원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들이 기독교가 역사의 발원지였던 서구의 많은 교회들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세계의 교회성장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일수록 우리는 아주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서구의 교회를 반면교사 삼아서, 그리고 앞서 제안한 것들을 실천해서 한국 개신교가 더욱 성장했으면 합니다. 이것은 특정인의 노력이 아니라, 설교단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 거룩한 사역에 회원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이로 인해 여러분의 교회와 한국의 모든 교회가 성장하는 은혜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 본 특강은 부록 CD를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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