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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 <월간교회성장 - 교회성장세미나> 제4강 선교는 사랑이다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75
등록일시 : 200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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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 특강 시리즈 <제 4 강> 선교는 사랑이다 대담 홍영기 목사(교회성장연구소 소장), 임은미 선교사(아프리카 케냐선교사) 이번 달 세계선교 특강은 임은미 선교사와의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임은미 선교사는 1994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파송 받아 아프리카 케냐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현지인 사역자들을 위한 교수사역, 교회개척 사역, 방송사역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케냐의 영혼들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편집부> 교회성장 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달 교회성장 특강은 현재 케냐에서 선교사로 활동 중이신 임은미 선교사님을 모시고 아프리카 선교현장의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교사님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선교사님께서는 케냐로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재미교포로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에 전도사 사역을 했었습니다. 교회 가족수양회 때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계신 정운교 선교사님이 강사로 오셨는데, 제게 “Dr. Cho’s Africa Mission Centre”가 아프리카에 세워지는데 강사로 올 수 있겠느냐는 제의를 했습니다. 이후 1994년 3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케냐로 떠났습니다. 케냐에 처음에 갔을 때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1994년 처음 케냐에 도착했을 때는 지역이 전체적으로 낙후되었습니다. ‘없는 것이 정말 많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케냐가 많이 발전했습니다. 차도 많고 여기저기에 큰 빌딩도 많이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많은 것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선교사님께서 케냐에서 어떤 사역들을 진행하셨습니까? 케냐에 도착에서 처음으로 간 곳이 나이로비라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주로 강의 사역을 했습니다. 현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신학 수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나이로비의 교회 목회자중 약 2%만이 신학교육을 받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이로비에서 약 1시간 가량 떨어진 리무르라는 지역에 가서 교회개척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케냐에서 15년간 사역하는 동안 많은 선교의 열매들이 있었을 텐데요, 그 중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신 경우는 언제 입니까? 선교 현장에서 가장 큰 보람은 무엇보다 사람을 키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약 2년 전에 크리스마스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현지 사역자들이 저에게 봉투를 주었어요. 그런데 보통 선교사가 현지인에게 봉투를 주는 경우는 있어도 반대로 현지인이 선교사에게 주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들이 제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였는데, 나로 하여금 꿈을 갖게 하였고 삶의 목표를 갖게 해주었고 교회에서 목회를 할 수 있게 해준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감사의 표시로 헌금을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저를 만났을 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교육의 비전도 꿈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죠. 그러한 상황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고 사명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개척 교회에 담임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사역의 보람을 느낍니다. 저에게 있어 선교에서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사람을 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5년 가까이 선교를 하시는 동안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는지요. 사실 많은 집회에 참석하면 항상 받은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어려운 경험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선교현장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선교의 어려움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선교를 기쁨으로 하셨군요? 그렇게 말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려움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선교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보통 선교사님들이 현지에서 사람에 대한 배반감을 느끼고 속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선교사의 입장에서는 현지인들을 도와주러 왔는데 그들로부터 신뢰를 깨는 행동들을 경험하게 되면 참으로 힘이 듭니다. 저 역시 그러한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그 정도는 제게 큰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지에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케냐 기독교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인구 70%가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케냐의 70%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부정부패가 그렇게 많을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통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70%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 다니는 마을버스에도 시편 구절이나,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는 등의 교회용어들이 붙어 있습니다. 거리에 붙어있는 문구도 교회용어가 많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사말도 ‘하나님을 찬양하라’라고 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케냐에 기독교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케냐가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기독교 문화가 케냐에 널리 분포되어 정착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프리카의 기독교인구가 지난 반세기동안 급속하게 성장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많은 부흥강사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아프리카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파할 때 구제사업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교회에 가면 먹을 것이 있다거나 구호품이 나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없는 사람들은 구호품 준다고 하면 교회에 가게 되죠. 예를 들어서, 부흥성회 같은 경우에 연필이나, 볼펜을 주게 되면 한 가지라도 얻으려고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게 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을 합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이제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많은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경험했고 그들의 입술로는 예수를 믿고 있다고 고백하지만, 여전히 케냐에서는 많은 부정과 부패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복음이 삶 속에서 잘 실천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케냐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로 할 수 있습니다.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후보생들에게 선교사님께서 15년 동안의 선교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준비를 했으면 좋을지에 대한 조언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선교지에 오게 되면 가장 힘든 것은 주변 환경의 어려움이 아니라 그 누구도 자신을 지켜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할 때는 예배를 안 나온다거나 새벽예배를 안 나온다고 하면 담임목사님이나 다른 어떤 사람이 조언이나 충고를 해줄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는 대부분의 것을 혼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교사가 새벽기도를 안 한다고 해서 QT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개인 스스로에 대한 책임성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로 헌신하고자 한다면, 선교지에 오기 전에 개인 훈련이 잘되어 있어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묵상생활, 기도생활 등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는 훈련이 잘되어 있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훈련이 잘 되어있는 사람이라면 선교지에 와서도 신앙의 퇴보함이 없이 견고하게 교회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책임성과 성실함이 선교사에게 있어 중요한 자질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면 문화적인 충돌로 인한 어려움도 많이 겪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선교사님은 미국에서 생활을 하셨고 아프리카에 또 생활을 하셨는데 문화적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문화의 차이를 극복함에 있어서 다른 분들보다 조금 유리한 점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는 거의 흑인들입니다. 한국의 경우 보통 사람들은 흑인들에 대한 거부반응이나 어색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에 있을 때 흑인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학교 친구들 중에도 흑인들이 많이 있었기에 인종에 대한 문화적인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케냐에서 쓰고 있는 언어가 영어였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측면에서도 생소하지 않았고요. 그렇기에 문화와 언어가 생소한 곳에 가셨던 선교사님들보다는 제가 조금 수월하지 않았는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할 때 선교지에서 문화장벽을 뛰어넘어 문화적응을 하려면,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고 이야기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내가 선교사이니까, 내말 잘 들어라. 내가 잘 가르치겠다’라는 식의 생각보다는 현지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집에 가서 밥도 먹어보고, 그들의 삶과 문화에 참여하는 것이 문화적인 차이를 빠르게 뛰어넘을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들과 우리의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지인이 제게 잘못을 했는데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제가 적지 않게 속이 상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들이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종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설령 잘못했다하더라도 미안하다며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해버리면 영국 사람들이 이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곧 죽음과 연결되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 배경을 듣고 나니까 현지인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현지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입장해서 볼 때 한국선교의 강점과 한국 선교가 개선되어야 할 부분에 대한 견해가 있을 텐데요. 이곳 아프리카 케냐에 선교하러 오신 분들 중에는 한국의 단기선교사들이 많이 옵니다. 그들이 모든 한국선교사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나름의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먼저, 한국선교사들의 장점은 선교에 대한 열정이 크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선교사님들은 영어를 잘 모르거나 현지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해도 열심히 전도합니다. 말이 안 되면 몸으로라도 전도를 합니다. 한국 선교사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부르셨다고 하는 소명의식이 매우 강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결심이 느껴지거든요. 정리를 하면, 한국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충성심과 열정,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명의 확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열정에 비해 선교지에서 오는 문화충격에 대해서는 다소 약점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최근엔 한국도 다문화사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문화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선교지에서 오신 대부분의 선교사들의 여전히 한국의 단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분들입니다. 때문에 다른 문화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보다는 자신의 문화를 다른 문화에 주입시키려는 활동이 은연중에 깊게 들어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또한 한국인이 우리나라, 우리민족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소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대개 한국인은 중국인을 부를 때 소위 ‘때놈’, 일본인을 ‘왜놈’, 미국은 ‘양놈’이라고 하는데, 그런 마음들이 은연중에 선교지에 가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겸손한 마음보다는 “내가 너를 가르쳐야 겠다”는 우월의식으로 나타나는 위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상사이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현지인들은 그 마음을 바로 알아차립니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에 한국선교사들이 조금 더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우월성이 겸손으로 바뀐다면, 선교하기에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합니다. 선교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선교사가 현지인들에게 상사나 선생이 되기보다는 친구가 되어 주는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한국선교사님들은 문화적 적응력에 대해서 약간 약한 편이다고 말씀하셨는데 언어적 적응력은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언어 능력은 한국선교사들 중에서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분들에게는 ‘하면 된다’ 또는 ‘열심히 하겠다’ 라는 단호한 마음이 있어서, 언어에 은사가 전혀 없지 않은 한, 언어 공부를 위해 열심을 품으신 분들은 대부분 잘하시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님들 중에는 영어를 잘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선교사님에게 선교사로서 영향력을 미친 영적 멘토나 선배 선교사님은 있으시면 어떤 분들이 계십니까? 선배 사역자보다는 동역자 이면서 동시에 저의 영적 멘토로 저의 남편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남편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는데, 15년을 선교지에 있으면서 선교지의 삶이 그렇게 곤고하거나 힘들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남편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남편의 삶을 옆에서 꾸준하게 보았는데, 남편은 항상 긍정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항상 밝고 유머스럽고, 무슨 일을 만나도 성경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집에 있는 남편이 늘 그러하니까 제가 밖에서 원주민들하고 어떤 문제가 있거나 하더라도 집에 들어오면 항상 안식이 되고 웃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선교지에서 저의 선교사역을 건강하게 도와주었던 동역자가 남편이고 동시에 영적인 멘토 또한 저의 남편입니다. 남편과 좋은 관계는 모든 선교사님들에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본 어느 책에 의하면, 선교지에서 선교사가 선교지를 떠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남편 혹은 아내와의 갈등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이 동역자와의 갈등이고 그리고 그 다음이 원주민과의 갈등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들 생각에는 대개 원주민 때문에 선교사가 선교지를 떠나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실제로는 세 번째 이유였고, 선교사가 선교지를 떠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부부관계라는 겁니다. 선교지에서 설령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부간의 사이가 좋으면 서로 토닥이면서 서로 용기주고 위로하면서 잘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의 현재 어느 곳에 선교의 베이스를 두고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까? 현재 리무르에서 다양한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청소년 선교센터를 통한 미혼모와 관련된 사역입니다. 리무르에는 미혼모가 많이 있습니다. 미혼모들은 아이를 낳고 양육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쓰레기통에 아이를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가 청소년 선교센터에서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보모를 데려와서 양육을 하는 것이죠. 이 아이들이 마음속에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축복의 말을 계속 해줍니다. 또한 베이비 클리닉, 곧 ‘in his image’ 라고 하는 입양 프로그램을 통해 이 아이들이 입양될 수 있도록 하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역은 교회개척과 관련된 사역입니다. 교회개척과 함께 현지인 사역자들을 교육해서 그들이 개척한 교회를 맡아서 현지목회를 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보건소사역도 하고 있고, 아프리카에는 기도원 같은 것이 거의 없어서 기도원을 만들어서 기도원사역도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사회변혁적인(transformation) 사역들을 많이 진행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국내에 방송에도 출연하셨고, 코스타(KOSTA)에서도 강사로 일하셨는데 강의하실 주로 어떤 주제에 대해 말씀하십니까? 아프리카 케냐에 있으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던 기도제목 있었습니다. “조국의 청년을 제에게 주시면 세계를 주님께 드리겠나이다”라는 기도였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고 난후 이태리 코스타에서 강사로 와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코스타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태리 코스타 이후 약 18번 정도 코스타를 다닌 것 같습니다. 제가 코스타에서 증거 하는 말씀은 제가 했던 기도 그대로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기도의 서원제목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세계로 나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파해야한다”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메시지를 주로 전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준비 중인 계획이나 새로운 비전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방송사역에 주력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약 2년 전에, 세계 영적 거장 10인을 인터뷰형식의 토크쇼로 진행하는 ‘A things are possible’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습니다. 첫 번째 게스트로 조용기 목사님을 모셨었습니다. 앞으로는 케냐지역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과의 인터를 통해 ‘A things are possible’의 토크쇼를 진행하는 진행자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이며 동시에 사역의 방향입니다. 최근엔 라디오 방송 주파수를 아프리카에서 승인 받게 되었습니다. 800만 명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를 획득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24시간 800만 명을 대상으로 방송을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다양한 방송사역이 앞으로의 저의 사역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바로 자녀의 교육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선교사의 자녀들의 경험하는 어려움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선교사들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위의 케냐 선교사 자녀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저의 확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타 문화 속에서 고생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자녀들도 많이 있습니다. 선교지로 가려 할 때 자녀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로 많은데,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자녀들의 교육도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떠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교에 대한 많은 정의들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선교에 대한 정의 내린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랜 시간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있지만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선교는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자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선교를 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내게 준 사랑이 너무 고마워서, 복음의 빚을 졌기 때문에 그것을 갚으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선교 현장으로 가서 원주민을 사랑해야합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것, 그들의 마음을 사랑하는 것, 나아가 그들의 장래와 꿈과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로 ‘사랑의 릴레이’인 것입니다. 저희 가족은 대가족입니다. 아이가 아홉입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친딸은 하나입니다. 거기에 양딸이 한명 있고, 양아들 일곱이 있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을 키우게 된 것은 친딸아이가 자신이 혼자여서인지 저에게 언니를 달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키우는 아이는 아니지만 양육비를 지원해주는 한국이름이 수정이라는 아프리카 아이가 있었는데, 친딸아이가 친언니처럼 함께 살게 해달라고 해서 그 아이를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왔을 때가 막 사춘기에 들어갈 때였습니다. 처음부터 그 아이를 키웠으면 조금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큰 아이를 입양에서 키우다 보니 엄마로서 적응이 안 되었습니다.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이 아이를 키우는 초반에는 얘를 보고 있으면 사랑하라는 설교가 안 나왔습니다. 거기에 아들들로만 7명을 더해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인지 저희 가족은 갈수록 더 좋아졌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었고, 얼굴 색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진정한 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가정 밖에서는 선교와 사랑을 계속 이루어오고 있었지만, 가정 안에서 선교와 사랑을 이루어지는 기쁨이 얼마나 감사하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전자녀의 제자화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아침이 되면 다 새벽기도 나오고 자녀들 모두가 큐티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록합니다. 하루에 해야 하는 제자교육인 것이죠, 거기에는 조건이 있는데 엄마인 제가 하는 것을 아이들이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새벽기도 나가니까 아이들도 새벽기도 나가는 식인거죠. ‘선교는 사랑이다.’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정의를 몸소 실천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선교에 관심을 가직 있는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베네딕토 수도승의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수도승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파 하는가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수도승이 어떻게 신발 끈을 매는가 보러 온다.” 참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책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설교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습니다. “말씀의 풍요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 특별히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 원하는 것은 삶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삶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교회의 좋은 프로그램이나 성경공부보다, 선교현장의 탁월한 진행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수님 앞에서 흠도 없고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 없는 사람들이 되기에 힘쓰라 하신 것처럼, 저를 포함한 많은 선교사들이, 그리고 한국 교회 모든 목회자들이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 본 특강은 부록 Tape를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임은미 선교사 아프리카 케냐에서 14년 동안 7개 교회를 개척하고 정착시킨 아프리카의 영적 지도자인 임은미 선교사는 Valley Forge Christial College에서 목회학 학사, Covington Seminary 기독상담학 목회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여의도순복음 교회에서 1994년 케냐선교사로 파송되어 현 나이로비 국제신학대학원 기독상담학 전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KOSTA 강사로 세계의 한국대학생에게 복음의 열정을 전파하고, 토크쇼를 진행할 정도로 달변가이자 만능엔터테이너로서 아프리카에 방송사역을 통한 복음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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