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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교회성장 - 교회성장세미나]성령의 언어적 은사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86    등록일시 : 2005-02-24    인쇄
성령의 언어적 은사

홍영기 목사 | 교회성장연구소장, yhong@pastor21.com


교회성장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회성장연구소의 홍영기 목사입니다. 매서운 겨울 추위가 지나가고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화사한 봄기운이 여러분의 교회와 가정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2005년 교회성장특강에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시리즈로 강의해드리고 있는데 이번 달부터는 성령의 개별적 은사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슈바이처는 철학박사, 의학박사, 음악박사, 신학박사 등 많은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 오지로 달려갔습니다.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버리고 가난한 곳으로 간 것입니다. 언젠가 기자들이 그에게 “혹시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는 후회할 일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슈바이처는 자신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좇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슈바이처처럼 우리도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과 은사를 알고 활용하는 것은 성령께 순종하는 삶이 됩니다. 교회에서 모든 성도는 한 가지 이상의 영적 은사를 받았으므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려면 각각의 은사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여러 본문에서 나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 베드로전서 4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억하기 쉽게 12-12-4-4로 부릅니다. 이 4가지 본문에서 제시된 은사는 서로를 보완합니다. 즉 고린도전서에는 로마서에 포함되지 않은 은사들을 언급하고, 에베소서는 고린도전서의 은사를 보완하며, 베드로전서는 또 다른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사가 매우 다양함을 의미합니다.
먼저 로마서 12장 6-8절에 나온 은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는 예언, 섬김, 가르침, 권면, 구제, 다스림, 긍휼이라는 은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8-11절도 은사에 대한 중요한 본문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이처럼 고린도전서 12장에는 9가지의 은사가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에도 은사의 종류가 나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에는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의 은사가 나열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은사는 직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4장 11-12절에는 은사의 목적과 활용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여기에서는 모든 성도에게 은사가 주어졌으며 그것을 가지고 청지기처럼 봉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은사에는 많은 종류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들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그 4가지란 언어적 은사, 인격적 은사, 사역적 은사, 표적의 은사입니다. 언어적 은사란 언어활동에 관련된 은사이고 인격적 은사란 내적인 성품과 자질에 관련된 은사입니다. 사역적 은사란 외적인 사역 활동에 관련된 은사이고 마지막으로 표적의 은사란 성령의 특별한 임재를 나타내는 초자연적인 은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네 가지 범주 중 첫 번째 범주인 “언어적 은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언어적 은사는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그리고 가르침의 은사와 같이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이 4가지 은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방언의 은사

성령의 언어적 은사로 첫 번째는 방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배우지 않은 언어로 기도하고 찬양하는 은사입니다. 방언은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통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방언은 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위해 주시는 그분의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방언은 사적인 방언과 공적인 방언으로 구분됩니다. 사적인 방언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도의 언어로서 통역이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공적인 방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달하는 것으로서 통역이 필요합니다.
방언은 성령충만을 체험할 때 나타나는 외적 현상입니다(행 2:4; 10:46). 방언은 다양하며 개인과 교회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인 방언을 금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방언은 남용이나 오용될 수 있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지혜로운 관리가 필요합니다. 또한 불신자나 초신자는 이해하기가 어려우므로 그들을 배려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은밀한 기도입니다. 이런 방언은 개인의 신앙성장에 매우 큰 유익을 줍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고 덧붙였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방언을 말한 것보다 훨씬 많이 사용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지녔던 영적인 권능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방언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에 기도를 돕는 은사입니다. 존 군스톤은 방언기도의 유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어도 말할 것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이 때 나는 단지 ‘주여, 곤경에 처해있는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라고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기도를 계속하려고 애써도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기보다는 그에 관한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방언을 할 경우 나는 성령의 뜻에 합당하게 그를 위해 중보기도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방언은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간구하도록 돕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또한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됩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고전 14:2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영국에 열렬한 유대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종교적 관습에 불만을 가진 나머지 오순절 교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유대인은 교회의 뒷좌석에 가서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영어로 통역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그 순간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방언을 한 사람에게 그 방언이 생소한 외국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완벽한 히브리어였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이 유대인은 담임 목사에게 다가가서 전율하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여기가 대관절 어떤 곳입니까? 어떻게 그 사람이 예배시간에 나의 히브리 이름까지 불러가며 내가 지은 죄들을 그토록 폭로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그 내용을 영어로 반복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사는 충격을 받은 듯 “우리 중에 히브리어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그 사람은 더 히브리어를 못합니다.”
그 유대인은 목사의 말을 도저히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했던 사람을 불러서 계속 히브리어로 말을 걸면서 사실을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방언을 했던 사람은 유대인의 히브리어를 알아듣지도 못했습니다. 유대인은 혼란에 빠졌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는 그 유대인에게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권면해주었습니다. 이처럼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이 되어 전도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신령한 교통을 이루는 중요한 은사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으려면 우리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거룩함 가운데 그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미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다른 언어를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진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방언을 향상시키지 않고 몇 년이고 똑같은 어휘를 사용합니다. 우리의 방언이 10년이 지나도록 같은 수준에 있다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스무 살이 되도록 서너 문장만 되풀이한다면 부모가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활 속에서 날마다 방언을 연습하며 새 방언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방언통역의 은사

성령의 언어적 은사로 두 번째는 방언통역의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통역의 은사는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이해할 수 있는 일상 언어로 알려주는 능력입니다. 공적인 방언, 즉 회중 전체를 위하여 방언을 말할 경우에는 통역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방언 통역은 자신이 말하고 자신이 그 내용을 통역하거나(고전 14:13), 다른 사람이 통역을 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고전 14:27).
방언통역은 매우 중요한 은사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이 해석되지 않으면 교회공동체에 별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리라 ...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고전 14:14-17)고 했습니다. 통역의 은사는 방언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것입니다.
통역은 해석과 다릅니다. 통역은 방언의 단어를 해석하기 위해 정확한 용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역은 방언이 주는 메시지의 전체적인 의미와 통찰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방언통역의 은사는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또한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통역의 은사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통역의 은사는 방언의 은사보다 더 오용될 소지가 크기에 정확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스웨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회자들이 모인 집회에서 방언으로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그러자 강단에 있던 한 사람이 통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회중석의 한 여목회자가 그가 통역하는 내용을 슬라이드처럼 영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통역하는 사람이 인위적인 내용을 삽입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통역하는 동안 영적으로 도취된 상태였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어 통역했습니다. 이처럼 방언 통역이 오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방언통역이 영분별의 은사와 함께 사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방언통역은 발언자의 어휘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어휘가 단순한 사람에게는 단순한 통역이나 예언이 주어지는 반면, 어휘수가 풍부한 사람에게는 학구적인 통역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쌍방이 다 주님께로부터 정확한 방언통역을 받은 것입니다. 농부는 과학자나 대학 교수와는 다른 어휘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지만, 양쪽 다 오류는 없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의 배경이 그의 발언에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통역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늘 성경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3. 예언의 은사

성령의 언어적 은사로 세 번째는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 개인과 교회에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예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즉각적인 예언과 미래적인 예언입니다. 즉각적인 예언은 보통 개인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중보나 권면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적인 예언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경고나 암시가 주된 내용입니다. 이처럼 예언은 깊은 영적 세계를 보여주는 통로이며 매우 고차원적인 은사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예언이야말로 성도들이 특별히 구해야 할 귀중한 은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언의 은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14장 3절은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여 안위하는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언의 은사의 목적 세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하는 것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상대방을 세워주고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입니다. 권면은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안위라 함은 “고통을 덜어주어 상처를 싸매주는 것”입니다.1) 예언의 은사는 이 세 가지 영역에서 놀라운 기능을 발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이라고 하면 흔히 신령한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미래의 사건을 미리 말해주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언의 주된 기능은 성도 개인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교회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예언은 목회자의 설교사역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감당합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 있고, 문제도 모두 다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모든 회중을 만족시키는 것이 역부족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개인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예언의 말씀은 신앙의 어려움을 통과할 때 힘과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이 주어질 때 그것을 기억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한 목사에게 어떤 여인이 예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여인은 인도 선교사였습니다. 그녀는 “런던에 시각 장애인 친구가 하나 있는데 런던에 갈 일이 있으면 그 친구를 찾아가 보세요.”라고 예언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친히 시각 장애인의 연락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목사는 이 여인의 권면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마음속에 잘 간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런던으로 갔을 때 시각 장애인을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시각 장애인과 목사님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시각 장애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목사님이 골로새서를 낭독하자 시각 장애인은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언의 은사가 그녀를 통해 경이롭게 터졌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통해 목사가 어디서 왔으며 그가 당했던 영적 환난, 그리고 그 목사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총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은 그 목회자의 마음속에 몇 해 동안이나 메아리쳤고, 아주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예언은 위로와 용기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죄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면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4절에서 25절은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언은 또 각 사람의 소명을 확인해주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제가 영국에서 유학 중일 때 한국에 들어와서 어느 기도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예언의 은사를 가진 여인이 저에게 “주의 종들을 향하여 사역하게 될 것이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과 권면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이미 그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앞으로 사역하게 될 방향에 대하여 예언의 말씀을 주셨는데 여러 번의 기회를 통하여 확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저는 현재 주의 종들과 교회를 섬기며 사역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빛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없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언의 은사는 성도들을 위로하기도 하고, 죄를 지적하기도 하고, 인생의 사명을 확인시켜 주기도 합니다. 예언의 은사는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주의할 점도 많습니다. 특히 실수의 가능성이 항상 있으므로 정확하고 올바른 분별력이 필수적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성경지식을 쌓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당수의 예언은 성경을 인용함으로써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온전히 서 있지 못한 예언자들은 많은 사람을 실족하게 할 수 도 있습니다.
루드비히 알브레히트(Ludwig Albrecht)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언을 할 때는 성령께서 인간의 영과 함께 역사하신다. 인간은 성령의 도구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성령과 협력하는 동반자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도 예언에 대한 마땅한 책임이 있다.” 알 브레히트의 말처럼 예언에는 인간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생각을 예언이라고 말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예언의 은사가 잘 사용된다면 교회공동체에 크나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4. 가르치는 은사

성령의 언어적 은사로 마지막 네 번째는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는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해석하여 전달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말씀의 선포를 담당했던 사도의 직분과는 구분됩니다. 가르치는 은사는 성도와 교회의 영적 성장을 위해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이 은사는 로마서, 고린도전서, 에베소서에 모두 나오는 중요한 은사로 단순히 말을 잘하는 능력과는 구별됩니다.
가르치는 은사는 선천적인 가르치는 재주와 네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첫째, 선천적인 재주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재주이지만, 영적인 은사는 거듭난 다음에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둘째, 선천적인 재주는 사회에서 사용되지만 영적인 은사는 교회에서 사용됩니다. 셋째, 선천적으로 가르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어느 과목이나 가르칠 수 있지만, 가르치는 영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은 성경의 진리를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넷째, 선천적인 가르치는 재주를 지닌 사람은 어떤 내용을 잘 이해하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만, 가르치는 영적인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성경의 내용을 잘 설명해줄 뿐 아니라 그 진리를 순종하게 만들어 줍니다. 영적인 은혜가 있고 영적인 축복이 있어서 듣는 사람의 삶이 변화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은 가르치는 영으로 제시됩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6). 성령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마음으로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독교적 가르침의 배후에는 성령이 역사하셔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벨(Bell)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독교 교육에는 일반 학교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성령을 의지하는 것은 기독교 교육을 일반 교육과 구별시켜 주는 요소입니다.
가르치는 것에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무미건조하고 소 귀에 경읽기 식이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역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널드 월래스(Ronald Wallace)는 “성령이 듣는 이의 마음 속에 말씀을 심어주고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2)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사람은 바로 교사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며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더라”(행 18:2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분이었습니다.3) 예수님이 ‘설교하셨다’는 말은 많이 안 나오고 대부분 ‘가르쳤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가르치는 은사는 끊임없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가르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혹독하게’ 심판받게 되어 있습니다(약 3:1). 그러므로 이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배우는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생겨나고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성경교사가 학생들에게 사도행전을 가르치고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20문제 중 8개 이상 맞춘 학생이 아무도 없고 대부분의 학생이 5개 미만을 맞췄습니다. 선생님은 동료 선생님을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정말 열심히 가르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아이들이 성적이 좋지 않죠? 저는 우둔한 아이들을 가르치나 봐요. 아이들이 도무지 공부를 하지 않네요.” 그러자 다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혹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셨습니까? 아이들을 사랑하면 그들이 열심히 공부합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수업에 기대감을 갖고 참여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제부터 수업 분위기를 성령이 주도하시도록 기도하십시오.”
그 후에 그 선생님은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로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의 영혼이 사랑스러워지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에 몰두했고, 그 해 최우수반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가르침에는 사랑이 필수입니다. 기독교 교육학자인 헨드릭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학습자의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교사들의 공감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사랑하는 것을 학생이 느끼면 교사의 뜻대로 순종한다.”4) 그렇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사랑해야 정말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령의 은사로 충만한 교사는 다름아닌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교사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성령의 은사 중에서 언어적 은사 네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네 가지는 첫째, 방언의 은사, 둘째, 방언통역의 은사, 셋째, 예언의 은사, 그리고 넷째로, 가르침의 은사입니다.
언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언어는 인간의 삶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의 언어를 사로잡고 그분의 뜻대로 인도해 가시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교회에도 성령께서 주시는 언어적 은사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미주
1. 브라이언 베일리. 위로하시는 성령님. 임은묵 역. (서울: 은혜출판사, 2004) p. 167.
2. 로이 주크. 성령충만한 가르침. 서정인 역. (서울: 디모데, 2000), p. 23.
3. 김상복. 당신은 확실히 봉사하고 있습니까. (서울: 나침반, 1993), p. 54.
4. 캐네스 갱글, 하워드 헨드릭스 외. 교수법 베이직. (서울: 디모데, 1999), p. 57.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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