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교회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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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장세미나
[월간교회성장 - 교회성장세미나]은사에 대한 이해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97    등록일시 : 2004-12-30    인쇄
이번 2005년부터 특강은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이라는 주제를 시리즈로 다루려고 한다. 성령의 은사는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주제이지만 교회를 만드시고 이끌어나가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교회성장에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선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더욱 확장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 하겠다. 이에 교회성장연구소에서는 성령의 은사라는 주제를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생명보험협회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는 해야 할 일이 분명하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보험설계사 응시 시험에 감독관으로 나가고, 자격 서류를 심사하여 합격시키며, 또 맡은 여러 보험회사들을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일 등이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자신의 고유 업무가 주어졌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는 훌륭한 기업은 좋은 직원을 뽑아 인사관리를 잘 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업의 기본적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직원을 그냥 놀리지 않습니다. 만약 회사에서 많은 직원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망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의 기업도 돈을 벌기 위해서 직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데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영혼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에서 교인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습니까? 저는 수많은 교회들을 관찰하면서 매우 많은 교인들이 그저 예배만 드리고 교회와 주님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슬픈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은사 공동체라는 본질을 깊이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에 따라 주님을 섬기는 사명감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연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은사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고전 12:1)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신령한 것은 영적인 은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성령의 은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특히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기 원하는 사람이나 또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은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무기력한 이유는 성령의 은사를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은사란 무엇일까요? 미국의 교회성장 전문가인 피터 와그너 박사는 성령의 은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은사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성령께서 교회의 지체에게 허락하신 특별한 영적 능력이다.” 저는 이 정의에 나타난 5가지의 의미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은사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합니다.

1.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 주어진다

첫째,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없으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교회성장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은사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성장이 일어났다는 것은 성령의 은사가 표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 거부반응을 가진 교회가 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무지 중에 성령의 은사가 활용되었기 때문에 성장한 것입니다.
교회성장을 위한 은사 사역에는 “우리 교회에 필요한 사역은 무엇인가?”, “그 사역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가 그 사역을 맡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미국 씨애틀의 트리니티 교회에는 사역자마다 분명한 사역명세서(job description)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가대 지휘자의 역할은 ‘예배 순서와 찬양을 지도한다’, ‘음악 전도를 하며 성가대의 영적 필요를 채운다’ 하는 식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각 역할에 따라 은사 검색을 거쳐서 적합한 사람으로 봉사하게 합니다. 또 윌로우크릭교회는 교회에 필요한 사역 500개 정도를 정하고 은사검색을 통하여 성도들을 배치합니다. 이러한 은사 사역은 역동적인 교회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지도자가 영성뿐 아니라 리더십도 개발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설교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활용하는 리더십도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교인들의 숫자는 설교의 메시지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헌신도는 지도자의 능력에 영향을 받습니다. 지도자의 능력과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에베소서 4장 12절에 나온 것처럼 성도들을 구비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봉사하지 않는 교회는 성장할 수 없고 변화될 수 없습니다. 1차 종교개혁이 평신도들의 손에 성경을 쥐어준 것이라면 새로운 2차 종교개혁은 평신도들을 발로 뛰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는 평신도들을 은사에 따라 일하도록 동기부여하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목회 스타일에는 노동자 스타일과 지도자 스타일이 있습니다. 노동자 스타일의 목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일을 혼자 하려 한다. 둘째,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셋째,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 상황까지 일한다. 넷째, 미래 전망보다는 현재 관계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지도자 스타일의 목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냅니다. 첫째, 고도의 목회 자질에 관심을 가진다. 둘째, 성도의 필요를 직접 채워주지 않는다. 셋째, 일을 과감히 맡겨서 다른 사람들을 참여시킨다. 넷째, 관리기술을 개발한다.
그렇습니다. 은사 목회는 지도자 스타일의 목회입니다. 그것은 목회자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로 하여금 은사를 통해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친 목사가 있는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너무 바쁘고 사역에 지치면 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사회생태학자이며 경영 컨설턴트인 피터 드러커 박사는 “‘효과적인 행동’(effective behavior)과 ‘바쁜 활동’(busy activities)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조직의 리더는 초점없이 바쁜 활동보다는 목적 지향적이고 열매맺는 효과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의 은사를 통해 일하게 된다면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고 사역의 초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2.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주어진다

둘째로,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라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리스마’(charisma)입니다. 이 ‘카리스마’는 ‘카리스’(charis)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카리스‘의 의미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카리스마는 그 말 안에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카리스마, 즉 성령의 은사는 카리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 은혜는 아가페, 즉 하나님의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표현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 분량에 따라 성령의 은사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카리스마 + 카리스 + 아가페, 즉 은사와 은혜와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 양식인 삼위일체처럼 교회 안에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구원과 삶을 위한 것이라면 성령의 은사는 우리의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은사가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은사의 주도권이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시사해줍니다. 내가 아무리 어떤 은사를 갖고 싶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시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 7절-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은사는 대가 없이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것이 선물이기 때문에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받은 은사에 대해 겸손해야 합니다.
20세기 인도의 성자라고 추앙받는 썬다 싱은 사도 바울만큼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전도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의 은사와 신유의 은사가 뛰어났습니다. 어느 날, 썬다 싱은 중병으로 입원해 있는 윌리엄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썬다 싱은 윌리엄을 찾아가 말씀을 전하고 밤새도록 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의사들과 교인들은 윌리엄이 완쾌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 소식은 온 마을로 퍼지고 여기저기서 썬다 싱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썬다 싱은 자기 자신을 향한 찬사와 명성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은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할까봐 그 은사를 절제하며 숨어 다녔다고 합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사가 은혜에 기초한다고 생각한다면 교만함이나 자기 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교회의 리더십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바른 리더십은 은혜 플러스 은사를 필요로 합니다. 리더십의 역할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것, 그리고 교회 안에 은사를 활용하여 은사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 은혜가 메말라 있는 교회, 즉 은사를 소멸하는 교회입니다. 은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깊이 깨닫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3. 은사는 성령에 의해 주어진다

셋째로, 은사는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1절을 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느니라.”고 말합니다. ‘그 뜻대로’라는 표현은 영적 은사를 분배하는 주권자의 뜻을 말합니다. 그 주권자는 바로 성령이십니다. 은사는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사 자체보다도 은사를 주신 성령 하나님께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결혼할 때 배우자의 예물 때문에 결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보다 성령 하나님 그분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3대 확신을 주십니다. 그것은 구원의 확신과 은사의 확신과 소명의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체험과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은사에 따라 쓰임받지 못할 것입니다. 은사를 따라 일해야 지치지 않고 기쁨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늘 성령을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과 늘 교제하고 대화하며 동역해야 합니다. 1953년 제5차 세계 오순절대회에서 도날드 지(Donald Gee)는 “성령은 신학적 교리의 주제가 아니라 불타오르는 체험의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에 대해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실천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은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30세에 목사가 된 카메론 페리 박사는 60세가 되기까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아내가 병들자 신유의 은사를 받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병을 치유하신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기도하면 주님께서 고쳐주시리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성령과 한 시간씩 교제했습니다. 페리 박사는 4년 동안 그 시간만큼은 철저히 하나님과 대화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던 그는 갑자기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성령을 체험하자 그의 사역은 능력있게 변했습니다. 그가 성령체험을 하고 2달 동안 전도한 성과가 과거 30년 동안 전도한 것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쓰임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성령의 충만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부흥사인 빌리 그래함도 1947년 웨일즈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변했습니다. 성령을 경험한 후에 빌리 그래함은 “내 가슴은 성령으로 충만하다. 이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능력을 통해 자신의 소명과 은사에 대해 확신을 품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입니다. 은사는 성령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은 늘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분과 깊이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4. 은사는 교회의 지체들에게 주어진다

넷째로, 은사는 교회의 지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는,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같은 장 11절에는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외없이 한 가지 이상의 은사가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교회의 구성원, 즉 지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알고 활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5-16).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성령의 은사로 무장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 즉 성령의 은사로 무장된 일군이 많을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사가 각 지체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그 은사가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은사를 교회 안에서 지위나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다른 지체와 교회를 위해 봉사하기 위한 은혜로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가 유기체(organism)라는 것은 몸의 각 지체가 하나의 생명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몸의 모든 지체가 다 필요하며 각자 고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합니다(고전 12:14-27).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머리가 밥을 먹으라고 몸에 명령합니다. 그러면 손이 그 명령을 받아 밥을 푸고 입이 문을 열고 이빨과 혀는 합동 작업으로 밥을 씹습니다. 목구멍이 문을 열어주고 위는 넘어온 음식을 한참 주물럭거려 창자로 보냅니다. 창자는 모든 양분을 섭취하여 온 몸으로 보내고 쓸데없는 찌끼는 뒤로 보내게 합니다. 무엇인가를 먹기 위해서는 이렇게 많은 부분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만약 어느 한 부분이 “내가 알게 뭐람”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큰일이 납니다. 손과 발이 맨날 먹기만 하는 입을 보고 부러워하여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몸이 살 수 있겠습니까? 서로를 무시하고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지체간 조화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인 집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지체는 예수님을 머리로 모셔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절은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유익하게”라는 말은 헬라어로 ‘심페론’(sumpheron)인데, 이 단어는 심포니(조화, 교향곡)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여러 악기들이 서로 화음을 이루어 아름다운 연주를 하게 하는 작곡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사가 교회의 각 지체에게 조화롭고 유익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5. 은사는 특별한 영적 능력이다

마지막 다섯째로, 은사는 특별한 영적 능력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음의 세 가지와 구분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은사는 성령의 열매와 구분됩니다. 열매는 은사처럼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 복종함으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은사는 행동과 관련이 있지만 열매는 인격에 영향을 줍니다. 열매가 없는 은사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은사는 풍성했지만 영적으로는 무질서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은사가 적었던 것이 아니라 열매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은사는 그리스도인의 임무와 구분됩니다. 임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은사는 특별한 지체들에게 서로 다르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임무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탁월하게 감당하는 특별한 영적 능력, 즉 은사가 있습니다.
셋째로, 은사는 선천적 재능과 구분됩니다. 재능이란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것이며, 때로는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 개발되기도 합니다. 재능은 불신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영적 은사는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집니다. 은사가 재능과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재능을 전제로 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즉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게 된다고 그 재능이 성령의 은사로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4절-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였노라.”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성령의 능력은 개인의 재능과 동일하지 않으며, 아무리 재능이 많다 하더라도 예수를 믿게 된 후 은사를 또 다시 받아야 함을 시사해줍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할 때 열정적으로 일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20세기에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사용하신 주의 종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 10대에 폐병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절망 가운데 있던 그에게 하나님의 치유와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너를 치료할 것이니 너는 나의 신유의 능력을 너의 세대에게 전하라. 너는 나를 위해 대학을 세울지니 나의 권위와 성령 위에 세우라.”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신유의 은사를 주셔서 세계적인 신유 사역자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돈도 없었고, 지위도 없었고, 교육도 별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소명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에 수많은 핍박과 대적, 그리고 역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수십 년 후에 오랄 로버츠 대학을 세웠고 하나님의 신유의 능력을 전 세계에 나타내었습니다. 오랄 로버츠 목사님의 자서전은 <기적을 기대하라>(서울말씀사 간)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 오랄 로버츠 목사님처럼, 우리는 자신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영적 능력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은사의 본질에 대해 5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정리해 볼까요?

1.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 주어진다.
2.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주어진다.
3. 은사는 성령에 의해 주어진다.
4. 은사는 교회의 지체들에게 주어진다.
5. 은사는 특별한 영적 능력이다.

기독교회사에서 20세기는 성령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된 세기입니다. 현대 교회가 성령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그분의 은사와 능력을 의지하여 사역할 때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할 것입니다. 2005년의 희망찬 새해에 회원 여러분의 교회도 성도들의 은사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은사 공동체가 되어 건강하게 부흥하기를 희망합니다. 올해 여러분이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 안에서 아름답게 열매맺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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