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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교회성장 - 교회성장세미나]21세기 교회성장형 설교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29    등록일시 : 2003-10-28    인쇄
21세기 교회성장형 설교

교회성장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교회성장연구소의 홍영기 목사입니다. 오늘도 회원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번 11월호 특강은 21세기 교회성장형 설교입니다.

16세기 영국의 한 교회에서 어떤 설교자가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는 장장 2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청중이 더 이상 인내심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설교를 끝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청중은 그 설교자가 설교를 끝내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목사님 제발 설교를 계속해 주세요. 계속 말씀을 전해주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설교자는 회중의 요구에 부응하여 더 오랫동안 설교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청교도 부흥 시대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는 언제나 설교의 부흥, 즉 하나님 말씀의 부흥이 동반되었습니다.

한국컴퓨터선교회가 2003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설교 때문이라고 합니다. 평신도 595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는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해서′가 26.4%, ′이사′가 21.2%, ′교역자와의 갈등′이 19.2%, ′비전이 달라서′가 9.7%, ′성도와의 갈등′이 8.1% 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교회 이탈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설교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가 한국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교회마다 설교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설교는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할까요? 저는 여러분께 다섯 가지로 정리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절대희망을 제시하여 사람들을 위로하라

21세기 교회성장형 설교는 첫째, 절대희망을 제시하여 사람들을 위로하는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21세기는 점점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사람들은 고용불안과 안전사고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 계층간, 관계간 갈등으로 소외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교자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와 절대소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하나님 안에서의 희망을 선포할 때 그것은 사람들의 삶에 위대한 변화를 초래합니다.

여러분은 강영우 박사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중학교 때 실명을 하였지만 맹인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하고, 미국 부시 대통령의 종교-사회봉사 자문위원이 되었습니다. 그가 맹인이었기 때문에 겪은 고난과 역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고, 자신의 환경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의 희망과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습니다. 그가 늘 강조했던 것은 인생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갖고 노력했기에 맹인으로서 위대한 하나님의 지도자로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소설가였던 찰스 디킨즈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심한 낭비벽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가 열 두 살 되던 해에 그의 가정은 완전히 재정 파탄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던 그는 용기를 내어 구두닦이를 시작했습니다. 디킨즈는 밤늦게까지 구두를 닦으면서도 늘 입가에 노랫가락을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대신 답답한 마음을 노래로 달래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한마디씩 묻곤 했습니다. ″구두 닦는 일이 좋으냐?″ 그러면 그는 반짝이는 두 눈을 더욱 빛내며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저는 희망을 닦고 있는 걸요.″ 설교자가 사람들이 희망을 갖도록 설교하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우리는 희망의 메신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예레미야였습니다. 당시 50대 중반의 나이였던 예레미야는 조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하였기 때문에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체포되어 시위대 뜰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찾아와서 고향 아나돗에 있는 자기 밭을 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때는 전쟁의 상황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기근과 염병이 돌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강대국 바벨론을 대항하여 이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때였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그런 때에, 감옥에 갇혀서 언제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밭을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레미야는 자신이 그 곳에 정착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밭을 샀습니다. 외관상으로는 밭을 샀지만 실제로는 희망을 산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밭을 사면서 매매 증서 2장을 작성했습니다. 하나는 영구 보존용으로 잘 인봉하여 토기 속에 넣어 두었고 또 하나의 문서는 공개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계약을 시위대 뜰 앞에서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행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전파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지금은 쓸모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이 땅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 때에는 이 밭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상징적 메시지를 통하여 희망을 창조하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꿈을 전달하는 메신저, 하나님의 희망에 대하여 선포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은 1926년 함부르크의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7살에 함부르크가 파괴되는 것을 목도하였고, 18살에 전쟁에 참여하여 이듬해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3년 간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적 삶 속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발견했고, 이 경험으로 그는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왜 기독교 신학은 자신의 본래적 주제인 희망을 내팽개쳤는가, 오늘날 기독교에서 희망의 영은 어디에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몰트만이 말한 대로 희망은 기독교 신앙이 잃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희망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에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희망을 선포하는 설교가 필요합니다.

2. 설교자의 인격이 뒷받침된 설교를 하라

21세기 교회성장형 설교는 둘째로, 설교자의 인격이 뒷받침된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급성장했던 교회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쇠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목회자의 인격적 결함이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의 신뢰를 얻고 장기 목회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인격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은사로 사람을 모으고 성품으로 사람을 내쫓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시적으로는 감동적인 설교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지만 목회자가 인격적으로 결함이 크면 그들을 내쫓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감화를 미치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인격이 뒷받침된 설교를 해야 합니다.

″설교는 설교자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설교는 그저 이론적인 강의가 아니라 설교자의 삶이 반영된 인격적 산물입니다. 그래서 저명한 설교학자인 필립 브룩스는 ″설교란 인격을 통해 전달되는 진리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설교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 속에서 설교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중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라일 샬러에 의하면 성장하는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의 차이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체험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설교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설교를 실천한다는 것은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시인이 ″시가 너무 쉽게 쓰여진다.″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시인에게 있어 시가 쉽게 쓰여진다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아무런 고민도 없이 손끝으로 쓰여지는 기교적인 시를 슬퍼한 것입니다. 목회자도 자신의 실천과 인격적 고뇌가 뒷받침되지 않은 설교는 환영할만한 것이 못됩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엠바운즈는 ″메신저는 메시지보다 나아야 한다. 진정한 설교는 인격의 문제이다. 하나의 인격이 형성되는데 20년이 걸린다면, 설교를 작성하는 데에도 20년이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영등포교회의 원로목사인 방지일 목사는 설교원고를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읽어 내려갑니다. 그런데도 그분이 워낙 성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교인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목사님의 설교 기술이 뛰어나지 못하더라도 인격이 뒷받침되면 설교전달에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에 교회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설교자의 인격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3. 이미지가 풍성한 설교를 하라

21세기 교회성장형 설교는 셋째로, 이미지가 풍성한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현대 문화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각적인 문화에 의해 지배되고 있습니다. 특히 TV이나 PC, 영화와 같은 매스미디어는 이런 경향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인쇄된 지면을 통해 정보를 얻기보다는 스크린을 보면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현대를 Post-literature age, 문자 이후의 시대, 즉 이미지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읽는 문화′가 아닌 ′보는 문화′가 주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시각적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서 현대 설교도 깊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림 언어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에 깊숙이 파고드는가는 다음의 예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가출을 하였습니다. 딸은 아버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 딸은 집나간 아빠에게 ″아빠, 돌아오세요, 우리는 아빠가 필요해요″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딸은 아빠가 자신들의 삶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아빠, 우리 가족이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갈 때는 안전했었어요. 그런데 지난달에는 엄마가 운전대를 잡으셨어요. 그런데 운전을 하다가 갑자가 어떤 차에 의해 들이받치게 되었어요. 엄마는 심하게 다치고,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졌지요.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에 구멍이 뚫리고 하마터면 심장을 꿰뚫을 뻔했어요. 고통이 아주 심해요. 우리는 아빠가 계시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해요. 우리는 아빠가 필요해요. 아빠는 우리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아빠 사랑해요.″ 아버지는 딸의 이러한 간청에 의하여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감각에 호소할 때 그들의 마음은 움직이게 됩니다. 폴 스캇 윌슨(Paul Scott Wilson)은 ″오늘날의 설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큼 충분히 상상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라고 주장합니다.

설교에서 감각적인 이야기를 활용할 때 이미지가 풍성한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구체적으로 결단하도록 유도하는데 좋습니다. 옛날 믿음생활을 잘 하던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절대 권력을 가진 후에 간음과 살인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었기에 검찰도 그 죄를 기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지자가 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 설교자는 생명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기에 깊은 기도 가운데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왕궁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간 길이었지만 막상 왕궁에 들어서니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망설이던 그 설교자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렇게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한 동네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양도 많고 소도 많이 가진 부자였지만, 한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인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은 자식이 없었던 터라 그 양을 마치 자식처럼 키웠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설교가 계속되면서 왕은 깊이 빨려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설교가 진행될수록 설교자보다 청중인 왕이 더욱 흥분했습니다. 왕은 결국 분노로 가득하여 소리쳤습니다. ″그런 일을 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죽어도 마땅하다.″ 설교자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면서 왕의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지자 나단이 죄를 범한 다윗 왕에게 나아가서 전했던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했을 뿐 아니라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적절한 이야기 활용은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4. 적용에 충실한 설교를 하라

21세기 교회성장형 설교는 넷째로, 적용에 충실한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설교는 대개 무엇을 말하려고 하지만 그것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행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제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단에서 많은 지식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한 연구자가 일본경제가 한창 어려울 때 성공하는 기업의 특징을 조사했는데 공통점 중의 하나가 슬림(slim)화 현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필요한 것을 없애는 구조조정을 잘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설교에서도 군살을 제거해야 합니다. 많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을 어떻게 실천하도록 만드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설교를 늘리기보다는 핵심이 될 수 있는 적용 내용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프랜시스 드 살레(Francis de Sales)는 ″나의 설교 가치에 대한 테스트는 교인들이 ′매우 아름다운 설교였습니다.′ 라고 말할 때가 아니라 ′제가 이제 뭔가를 해야겠습니다.′ 라고 말할 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1779년 6월 13일의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바로 그날 나는 놀랍고 탁월한 진리들이 교회에서 전해지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전혀 적용이 없었으므로 그것은 그저 종달새가 노래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설교에는 권고와 적용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청교도들의 설교를 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적용에 할애됨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50% 이상이 적용입니다. 예를 들어, 조나단 에드워즈의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죄인″이라는 설교를 보면 모두 38개의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19개가 적용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지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지는 신앙입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가 박윤선 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박윤선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옥 목사처럼 다시 젊어질 수만 있다면 설교를 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어. 설교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봤으면 좋겠어.″ 그렇습니다. 추상적으로 구름 위에서 세상을 향해 선포하듯 하는 내용으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이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감을 못잡기 때문입니다.

설교 적용을 잘 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삶에 다가가서 그들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살펴보면 주인공 가운데 케이지라는 설교자가 등장합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서부로 계속 이주하여 거리가 한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비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어떤 한 사람이 설교자 케이지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 케이지는 ″별수 있겠어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저도 가야 되지요?″ 적용이란 한 마디로 이렇게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야 그들을 다시 하나님의 보좌로 데려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설교가 잘 적용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진리를 반복적으로 말해주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시계 수리공들은 제자를 훈련시킬 때, 시계는 이렇게 분해하고, 다시 맞출 때는 이런 순서로 맞추는 것이라고 이론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가 하는 것을 잘 보라고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다, 다시 해봐라 하면서 연습용으로 헌 시계를 준다고 합니다. 배울 때는 다 되는 것 같은데 실제로 해보니까 잘 안되는데요 하면, 어디에서 안되는가를 물어서 다시 가르쳐 주고, 또 해보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시계 수리에 자신감을 갖도록 만듭니다. 시계 수리공 하나를 훈련시키는데도 이렇게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려면 더 반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21세기에 교회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설교 내용이 교인의 삶에 연관되고 실천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5. 성령충만한 설교를 하라

마지막으로 21세기 교회성장형 설교는 성령충만한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내면에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됩니다. 기록된 말씀을 로고스라고 부른다면 계시로 임하는 말씀은 레마입니다. 성령께서는 로고스의 저자일 뿐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레마로 바꿔주셔서 사람들을 중생하게 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십니다. 영어로 말하자면 성령께서는 The Said Word를 The Saying Word로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보면 어거스틴은 아버지가 술 마시는 것을 어릴 적부터 보고 배워서 형편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며 헌신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어거스틴도 늘 성경을 늘 읽었지만 아무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숙집에 앉아 있는데 이웃집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책을 펴서 읽으라. 책을 펴서 읽으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책을 펼쳤는데 그 때 바로 로마서 13장 11절 이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 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옛날에도 많이 읽었지만 그전에는 그냥 머리로만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이후 어그스틴은 하나님의 위대한 쓰임을 받는 신학자요 교회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설교자는 항상 성령이 주시는 열정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미국 갈보리교회에 척 스미스(Chuck Smith)라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스물 다섯 명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수만 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분은 설교할 때면 강대상 뒤에 앉아 있다가 설교하는 자리까지 나올 때에는 꼭 뛰어올라갑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그렇게 뛰어다닌다고 합니다. 스미스 목사는 ″나는 성가대의 찬양 시간 때부터 벌써 마음이 흥분됩니다. 빨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불붙는 마음 때문에 기뻐 뛰어올라가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간절함이 설교의 기본이고 이것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는 ″머리로 준비한 설교는 머리로 돌아가고, 무릎으로 준비한 설교는 무릎을 꿇게 하고, 가슴으로 준비한 설교는 가슴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했습니다.

목회자가 성령충만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양의 젖을 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독을 잘하고 젖을 완전히 다 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3년을 하면 젖이 세 배가 나오고 점점 젖의 양이 많아집니다. 완전히 다 짜고 하나도 안 남겨야 그 다음에 젖이 잘 만들어집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빈 그릇으로 만들어야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또 열심히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한 엘리트 목사님이 500여 명이 되는 어느 교회의 후임자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는 연구하고 배운 모든 학문을 동원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자꾸 교인수는 줄었습니다. 500명이 450명이 되고, 450명이 400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20년이 넘게 사찰로 계시는 권사님께 물었습니다. ″권사님, 전에 계시던 목사님과 제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솔직하게 본대로 말씀해 주세요.″ 그러자 그 권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다 비슷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지난 목사님은 새벽 제단에 엎드리면 일어날 줄 모르셨고, 목사님은 엎드렸다 싶으면 금방 일어나는 것 그것 하나만 좀 달라유.″ 그렇습니다. 아무리 설교학 박사라도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으면 설교에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노음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적한 곳에 칩거하며 혼자서만 연주하고 작곡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 젊은이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제자를 삼아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래서 노음악가는 그 젊은이의 연주를 들어보았습니다. 연주를 들은 후 노음악가는 안된다고 한마디로 퇴짜를 놓았습니다. 젊은이는 왜 안되느냐고 물었고 노음악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연주를 잘한다고 다 음악가는 아니네. 자네는 자세도 좋고 감정도 좋고 기교도 있네. 그러나 음악을 느낄 수 없어. 음악가는 심장이 뛰어야 하네.″ 그렇습니다. 설교자는 단순히 기교와 재능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설교자의 입술뿐 아니라 심장이 뛰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21세기에 교회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한 설교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21세기 교회성장형 설교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해볼까요,

첫째, 절대희망을 제시하여 사람들을 위로하라
둘째, 설교자의 인격이 뒷받침된 설교를 하라
셋째, 이미지가 풍성한 설교를 하라
넷째, 적용에 충실한 설교를 하라
다섯째, 성령충만한 설교를 하라 였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쇠퇴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쇠퇴하는 한국 교회를 새롭게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능력있게 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지혜나 능력이 아닌 성령의 영감과 도우심으로 설교하고 목회해야 합니다. 회원 여러분도 항상 성령충만한 설교를 통해 교회가 부흥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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