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건너편 구치소의 담벼락이 눈부시다
갇힌 자들은
울타리 밖이 자유라고 여기겠지만
이미 울타리로는
죄와 무죄를 가를 수 없는
시절은 나른한 봄
거대한 성당에서
꽃같은 신도들이 몰려나오고
메마른 운동장
아이들의 공놀이 속으로
잠시 넋을 잃고 빨려 든다
저 애들의 기쁨은
공을 냅다 질러 차는 데 있고
때론 공이 이웃집 창을 두들겨 깨뜨리기도 하지만
공이 제 자유를 찾아 날아간 것이므로
공의 주권은 아이들에게 있지 않고
공 자신에게 있어서
이웃집 아저씨의 무차별 보복 끝에
걸레처럼 찢어져 돌아온다
아이들의 슬픔은
공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공을 사야 한다는 데 있다
죄는 공에게만 있는 것이다
죄는 이것을 지켜보고 앉아 있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더더욱 없는 것일까?
이 봄에 누가 죄인인가?
구치소 담벼락을 쳐다보며
눈부신 상념에
나는 더 이상 젖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산 속에 묻힌 맑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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