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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다시 일어나는 젊은이> 하나님의 제자로 양육되는 젊은이_이규호 목사(큰은혜교회)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21    등록일시 : 2014-08-22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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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다시 일어나는 젊은이_ [젊은이 사역]



하나님의 제자로 양육되는 젊은이



글_이규호 목사(큰은혜교회)



젊은 세대의 오늘
2014년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고민이 많다. 물론 누구도 고민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이들이 앓고 있는 고민은 아주 원초적인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삶의 순간순간을 결정짓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매일을 고민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필자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들을 ‘미래를 고민하는 세대’로 여기게 된다. 미래를 고민하는 세대. 그러나 실상 이들은 그보다 ‘미래만을 고민하는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오직 미래에 대한 고민만으로 그들의 삶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수능을 마치고 방금 대학 입학식을 마친 신입생에게는 대학생활이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대학생활은 취업에 유리한 학점을 받거나 영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 등 몇 년 뒤에나 있을 취업에 유리한 것들을 찾는 고민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고민은 취업이 된 이후 ‘어떻게 더 성공할까’ 혹은 ‘어떻게 더 높은 자리로 진급할까’, ‘더 안정적인 자리는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과 ‘평생을 함께할 짝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들로 다시 채워지게 된다. 그들의 고민이 20세가 되기 전부터 시작해서 젊음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진행되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들의 삶의 족쇄와 같은 것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러한 젊은이 세대를 ‘미래만’이라고 단정 짓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우리나라의 미래’ 혹은 ‘한국 교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전혀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미래’만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우리 교회는 청년들이 한국 교회에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미래에 대한 오늘날 젊은이들의 기준은 무엇일까?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은 ‘과연 내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이다. 그들의 미래는 어떤 전공을 꿈꾸느냐에 따라 이미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전공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다른 프로세스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의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미래의 안정감을 위한 고민일 뿐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어떤 일을 꿈꾸는가에 따라 프로세스가 이미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대에 진학하거나 다른 전공을 가지고 있다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해야 한다. 또한 보통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3학년 때 잠시 휴학하고 신림동이나 노량진에서 고시 준비를 시작한다. 이처럼 그들만의 프로세스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의 가치에 따라 자신의 미래만을 준비하는 과정들로 인해 이들의 삶에서는 오래전부터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나 예수님을 위해 살기 위한 치열한 고민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많은 교회들이 청년이 교회의 희망이라고 말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투자하고 있지만 개 교회의 청년 부흥은 아직까지 부정적이기만 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에서 발표한 교세통계표 자료를 보면, 2012년 발표된 기독교인수는 2011년에 비해 4만 여명이 감소했고, 그중 1/8에 이르는 5,000여 명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났다. 이 정도의 규모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 교회 중 5개 교회에 해당하는 청년부가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왜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는 것일까?



젊은이 사역이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


① 젊은이들이 가정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
수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젊은이 사역을 포기할 수 없다. 청년이 가정과 교회,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뉴스에서 ‘자식들에게 퍼주고 버림받는 상속 빈곤층’이라는 제목으로 난 기사를 본적이 있다. 이 제목은 우리나라 청년들이 당면한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부모를 공경하기보다 자신의 안정된 삶을 위해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만약 신앙을 가진 청년들이 많았더라면 우리는 이런 기사를 대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오른쪽의 표를 보면, 노인학대가 날로 증가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노인학대를 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들의 자녀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신앙이 없는 청년들이 이 사회를 점점 더 각박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만약 그들에게 신앙이 있었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 말씀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② 젊은이들이 교회를 통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필자는 여전히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바른 신앙을 가진 젊은이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교회를 통해 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드물지만 가끔 매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기사들을 접하면 뿌듯하기도 하다.


* “광림교회 청년들, 미자립교회 아이들 1,500명과 사랑 나눠” _ 크리스천투데이
* “대구삼덕교회 대구·경북 농촌지역교회 초청 어린이 연합성경학교” _ 국민일보
* “서남교회 청년들 아름다운 봉사” _ 한국기독공보
* “큰은혜교회 청년사역부, 탄자니아에 우물 기증” _ 한국기독공보/크리스천투데이


이 기사제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청년들이 주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앙을 가진 청년들이 깨어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교회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청년이다. 때문에 교회는 젊은이 사역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명의 젊은이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로부터 시작한 영향력은 가정을 넘어 교회 그리고 사회에까지 이르게 된다. 교회가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고 배출해낸다면, 우리나라의 가정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젊은이 양육 사역의 필요성과 의의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셨을 때, 제자들은 청년이었다. 예수님은 12명의 젊은 제자들과 함께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그들을 양육시키셨다. 물론 그 3년 동안, 이 12명의 젊은이들은 눈에 띌 만큼 그리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한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새롭게 되었을 때, 그들은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복음 사역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통해 하루에 수천 명의 회심자를 얻었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거나 많은 교회가 세워지는 등 그들의 영향력을 교회와 사회에 행사했다. 그들이 이렇게 놀라운 역사의 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성령 하나님이 근본적인 힘이 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예수님의 양육을 받았다는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예수님은 양육을 통해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게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배가된 것이다. 다시 말해, 젊은이 사역에서 양육은 ‘기본 근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의 젊은이들은 너무 목말라 있다. 어느 교회나 단체에 가든지 “나는 목마릅니다”, “나는 갈급합니다”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한다.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양육’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이 양육을 위한 조언


① 예배와 선교 사역
젊은이의 양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선교 사역과 예배 사역’을 언급하니 다소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양육을 이야기하자면 ‘선교 사역과 예배 사역’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소그룹 양육이나 청년들을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은 현대 젊은이 양육을 위해 필요하다. 필자 역시 그 필요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양육할 때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윽고 그들을 둘씩 짝지어 파송을 보내셨다. 아직 제자다운 모습을 갖추지도 못한 그들에게 사역을 맡기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젊은이들에게는 양육과 사역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가 큰은혜교회에 처음으로 부임했을 때, 청년부 예배를 지키고 있던 젊은이들은 70여 명 남짓이었다. 이들과 함께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현재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러한 고민 끝에 필자가 던진 한 마디는 “내년에 우리는 단기선교로 70명을 파송할 것이다”였다. 이 말에 청년들과 성도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현재 출석인원이 70명인데 과연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처음에 그들은 의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윽고 매 주일 말씀을 들으면서 청년들의 가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2008년 여름, 우리 교회는 러시아, 베트남, 인도 이 세 나라로 70여 명의 청년들을 단기선교사로 파송했다. 참석한 청년들도 놀랐고, 지켜보던 성도들 역시 무척 놀랐다. 한편 그 전에는 교회의 한 부서로서 드려지던 젊은이 예배를 대예배로 편성하여 4부 예배라 이름 짓고, 본당으로 예배 장소를 옮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청년 예배인원은 150명으로 1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년들은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동적인 성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정체된 것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그들의 가슴을 자극했다. 먼저, 청년부의 명칭을 바꿨다. 더 이상 ‘청년부’가 아니라 ‘청년사역부’로 부르기로 한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오늘날의 젊은이가 교회와 복음을 위해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전했다. 청년은 단순히 교회가 주는 혜택을 누리기만 하는 세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교회를 숨 쉬게 할 사역자들이며,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뛰는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뛸 때 교회가 살아난다. 그래서 명칭을 ‘청년사역부’로 지은 것이다. 그들이 교회의 허리가 되길 원하는 마음에서였다.
이와 더불어 우선적으로 시도한 것은 예배 형식의 변화이다. 기존의 딱딱한 예배 형식보다는 젊은이들의 정서에 맞는 열린예배 형식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청년 찬양대를 대신하여 찬양팀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인원을 과감하게 늘렸다. 이에 탄력 받은 청년사역부는 점차 부흥하기 시작했다.
아래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청년의 부흥에는 두 개의 큰 요인이 작용했다. 하나는 예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선교이다. 예배의 부흥이 바로 예배자의 부흥이다. 우리는 올해도 예배의 부흥을 위해 매일 꿈꾸고 노력하고 있다. 예배가 살아나지 못하면 더 이상 예배자는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찬양팀의 부흥이 곧 예배자의 부흥이 된 것이다. 이것은 어느 교회에서나 통용되는 진리이다. 헌신하는 지체가 늘어나지 않고서는 예배참석자가 늘어날 수 없다. 일종의 군중심리로 앞장서서 뛰는 젊은이들이 많아야 뒤따르는 청년들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청년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군중심이 높은 때이기 때문이다.
한편 복음은 청년을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동안 제 자리에 머문 채 대접받기만 원하던 청년들에게 선교에 대한 헌신을 요구했을 때, 그들의 가슴은 뛰었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선교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결단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으며, 1년 동안 쓸 수 있는 모든 휴가를 합쳐 선교를 위해 투자하기도 했다. 그렇게 헌신하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자 또 이들에게 도전받은 청년들이 더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 역시 선교에 헌신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큰은혜교회 청년사역부에서 선교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2014년 여름에도 우리 교회는 3개 지역(국내 2곳과 해외 마다가스카르)으로 하계 아웃리치를 떠났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은 모집을 시작함과 동시에 선착순 모집이 마감됐고, 마감 이후에도 선교참석 여부를 묻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사역이 젊음이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복음과 선교가 청년의 가슴을 움직인다.
교회에게 구심력 못지않게 원심력의 중요성도 매우 크다. 밖으로 힘을 쏟아내면 쏟아낼수록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있다. 선교와 같이 외부로 힘을 쏟아내는 사역은 교회가 건강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살아있는 청년사역부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② 소그룹 사역
우리 교회 청년들은 매주 주일 예배 후에 소그룹으로 나누어 모임을 갖는다. 교회는 언제나 대그룹과 소그룹이 같이 존재해야 한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6)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에 모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집’에 모여 교제를 나누며 신앙을 쌓아갔다. 즉, 대그룹인 ‘성전’에서의 모임과 소그룹인 ‘집’에서의 모임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다. 소그룹이 없이 교회는 유지될 수 없다. 특히 예배자가 늘어날수록 소그룹 역시 강화되어야 한다. 성도들은 교회의 대그룹과 소그룹을 함께 모임으로 서로 한 몸임과 지체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경우, 이 소그룹 안에서 가장 활발하게 양육이 이뤄진다. 청년들은 일주일 동안 주일에 받은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대부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지체들이 함께 모여 소그룹을 통해 나누면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셀모임은 그들이 동병상련을 경험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격려하고, 기도로 서로를 세우는 모임이다. 꼭 어떤 특별한 교재나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도 않다. 오직 말씀을 함께 나눌 수 있고, 서로 기도해줄 수 있다면 소그룹은 유지된다. 반면에 셀리더는 셀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가고, 셀원은 셀리더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알아간다. 그래서 소그룹은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하고 따라가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양육의 기초는 바로 이 소그룹 안에 있다.


③ LT(Leadership Training) / PLT(Pre-Leadership Training) 사역
소그룹 사역에서 양육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LT / PLT 사역은 이에 필요한 리더훈련 사역이다. 우리 교회는 매주 토요일 ‘치유가 있는 큐티예배’와 함께 LT 사역과 PLT 사역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LT 모임에서는 현재 리더로 섬기고 있는 지체들이 모여 말씀을 함께 나누고, 또 좋은 교재를 선별하여 함께 살펴봄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다. PLT 모임에서는 앞으로 리더가 될 가능성을 가진 지체들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훈련 받고 있다. 이러한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할 경우 쉽게 범할 수 있는 오류는 너무 <내용물>이나 <프로그램>에 집중한 결과 사람을 놓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재를 보더라도 그것에 얽매이기보다는 사람의 ‘마음’과 ‘자세’를 훈련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헌신은 은사나 재능, 시스템에서 나오지 않고 마음과 태도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충실하게 훈련을 거친 리더들은 효과적으로 셀이나 공동체를 섬겨나가지만, 훈련을 소홀히 한 지체들의 경우 사역에서도 뒤쳐지게 마련이다.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근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과 자세를 훈련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④ 참모단 사역
훈련받는 리더들 중에는 우리 교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수한 그룹이 하나 있다. 그것은 ‘참모단’이라는 그룹이다. 이 그룹의 명칭은 철저히 군대 용어이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2:3)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주 병사 또는 군사로 비유된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충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청년사역부 안에 ‘참모단’이라는 그룹을 두고, 또 양육 그룹은 ‘캠프’로 나누어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있다. 다른 교회에서는 ‘회장단’, ‘임원단’으로 불리는 그룹과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오직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우리 청년들의 모든 사역은 이 참모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⑤ 대학사역부의 분리 독립
양육을 생각할 때 무시할 수 없는 한 가지 요인은 세대 간의 장벽이다. 세대 차이는 어른과 젊은이 사이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같은 청년이어도 대학생과 직장인 간의 세대 차이, 다른 말로 하면 시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대학생은 대학생 나름대로의 언어와 고민이 있고, 직장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언어와 고민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2012년 하반기부터 대학사역부의 분리 독립을 준비해 왔다. 처음에는 청년사역부 안에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인 식으로 나누어 편성했었다. 그렇게 지난해까지 운영해 오다가 올해부터는 행정부서를 분리 독립시키고 대학사역부와 청년사역부를 나누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예배는 ‘4부 예배’로 함께 모여 드리지만, 양육, 새가족, 행정 등 다른 여러 가지 부분들은 각 부서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
대학사역부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된 행사들은 ‘재미진 체육대회’, ‘성경통독 MT’, ‘연탄 봉사’ 등의 활동과 더불어 캠퍼스에서만 운영할 수 있는 ‘심화 큐티 나눔 in 서울대’와 같은 모임을 진행했다. 이러한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청년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준비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언어와 모습으로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참여한 지체들의 좋은 호응을 끌어냈다. 더불어 해외선교도 대학사역부만의 팀을 꾸리는 등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일들을 준비하면서 20대 초반의 지체들이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기존의 통합된 청년사역부보다 더 활발한 움직임들을 보여주고 있다.


⑥ 중보기도 사역
우리 교회에는 매주 금요일 9시면 본당이 뜨거워진다. 금요 중보기도 모임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교회의 중보기도 학교는 다른 교회에 비하면 비교적 늦게 시작됐다. 2012년 후반기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번에 7주 과정으로 진행되는 중보기도학교는 30명에서 40명의 지원자만 받아 매주 금요일 기도 훈련을 진행했다. 그런데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지원자가 몰려 지난 3월 벌써 6기까지 수료자를 배출해냈다. 성도들이 기도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년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중보기도 모임에 찬양팀으로 섬길 뿐만 아니라 매 훈련마다 꾸준하게 청년 지원자가 참석해 기도 훈련을 받았다. 이러한 훈련의 여파일까, 청년들 사이에는 자발적인 기도모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자발적인 모임이기에 언제든지 생겨나고 사라질 수도 있으나 분명한 것은 문제에 직면한 청년들이 먼저 기도하는 자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드리는 ‘4부 예배’ 전에는 벌써 오래 전부터 ‘예배 중보 기도모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단 10분이라는 짧은 기도이지만, 이 기도가 그 날 예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이 모임에 참석해본 사람들은 경험하고 있다. 더불어 선교가 있는 시즌에도 청년들은 깨어 기도한다. 선교 날짜가 주보에 공지되면 바로 그 주부터 수요 저녁예배와 토요 새벽예배 후에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청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선교뿐만이 아니다. 어떤 사역을 진행하든, 어떤 모임을 갖든 청년들은 반드시 먼저 모여 무릎을 꿇는다. 우리 교회 청년들은 잘 알고 있다. 기도가 없이는 아무런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기도로 양육된 청년들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선배들의 삶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더 기도의 자리를 찾는다.



젊은이 양육사역을 위한 교회의 역할과 노력

① 사역의 장을 마련하라 : 사역이 곧 양육이다
이제 더 이상 교회는 청년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교회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물론 청년들을 양육하고 성장하게 하는 일도 필요하다. 어느 것이 우선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우리 교회의 경우 사역의 장이 먼저 필요했을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양육은 포용이라 여겨 청년들의 응석을 받아주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회는 청년들이 사역하고 헌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칭찬이 청년을 춤추게 하지 않는다. 사역이 청년을 춤추게 한다. 청년의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그들은 생명력 없는 신앙인일 뿐이다. 사역하고 헌신할 때, 청년들은 가슴 벅참을 경험한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사역과 헌신이 없는 교회는 청년의 믿음을 쇠퇴시킬 뿐이다.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뛸 수 있는 사역을 만들기 위해 교회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야 한다. 교회 스스로의 몸집을 키우기 위한 사역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한 사역, 국가를 위해 봉사하기 위한 사역, 약한 자를 돌아보기 위한 사역을 발굴해내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해야 한다.


② 투자를 아끼지 말라 : 날개 달아주기
더불어 교회는 청년들을 위해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투자는 그들의 존재(Being)에 대한 투자가 아닌 그들의 역할(Doing)에 대한 투자를 말한다. 청년이 무엇을 하든 그 일에 전적으로 신뢰하고 후원해줘야 한다.
우리 교회 청년들에게는 특별히 ‘총출무결’이라는 축제를 통해 청년들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총출무결은 청년들이 특정 주일을 정하고 그 주일에는 총 출석하고, 결석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초창기 총출무결에서 우리는 출석하는 것에만 집중했지만, 그러나 총출무결 시즌4에서는 출석하는 사람 1인당 1만 원의 헌금을 책정해 출석하는 인원만큼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우물을 파는 사역에 도전했다. 교회는 이 날 출석한 청년들의 이름으로 1,200만 원 가량의 헌금을 통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2개 학교에 우물을 기증했다. 그리고 또 다른 총출무결에서는 2부 순서로 ‘동상동몽’ 파티를 기획하여, 총 예산 1,000만 원에 이르는 케이터링 서비스를 부르기도 했다. 올해 총출무결은 ‘Walk for Water’로 발전해 참가자 중 6㎞를 완주한 1,200여 명의 이름으로 1인당 1만 2천 원의 헌금을 책정해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우물 3개를 기증하는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교회의 아낌없는 투자에 청년들의 사역과 헌신도 날로 배가가 된다.



젊은이 사역은 어디로 가는가
젊은이 사역은 ‘몸집 키우기’가 아닌 사역과 선교로 우리 신앙의 기초 근육을 키워야 한다. 이제 마무리를 지으면서 각 교회에 도전해보기는 교회는 자신들만을 위한 모임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복음 전파를 위한 모임이다. 교회의 눈은 언제나 바깥을 향해야 하며, 교회의 사역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향해야 한다.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의 눈이 교회가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모임밖에 볼 수 없다면 그들은 점점 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와 약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면 청년들도 그 일에 함께 동참하기 시작할 것이다. 머지않아 청년들이 그 일에 주축이 될 것이다.
요즘 사회인들에게는 ‘간헐적 운동’이라는 것이 관심 받고 있다. 하루에 10-15분 정도의 운동만으로도 큰 효과를 내는 운동이라고 한다. 한 동작을 50초 동안 유지하고, 10초간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동작도 동일한 규칙을 가지고 15분 정도 하고 나면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한다. 이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이야기다. 사람은 마음속 생각만으로 내면의 움직임만으로는 건강해질 수 없다. 단순히 ‘건강해져야지’라는 생각만으로 근육을 키울 수 없다는 말이다. 외면의 움직임, 간헐적 운동이라도 시작해야 기초 근육이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게 되며, 가슴이 뛰게 된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어떤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청년들의 반응도 다르다. 교회 내의 일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 교회 밖의 일, 즉, 사역과 헌신이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청년들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젊음의 영혼에 복음의 불을 지르라.



이규호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B.A./M.div)와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Th.M/D.Min candidate)에서 공부하였으며,명성교회에서 청년사역과 교구사역으로 섬겼다.
2007년 큰은혜교회에 부임하여 새로운 영적도전과 은혜의 각성을 통하여 건강한 교회 성장을 이끌며,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이 주인되시는 큰은혜교회’를 섬기고 있다.
큰은혜교회는 2014년 7월 현재 매주 5천명 이상 예배드리는 행복한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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