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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운동21세기]교회 내 은사사역의 왜곡과 그 해결방안 21가지 (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92    등록일시 : 2005-12-01    인쇄
건강한 성령사역 모델을 찾아서
교회 내 은사사역의 왜곡과 그 해결방안 21가지 (5)


편집자주 ‘성령운동 21세기’ 코너에서는 지난 8월호를 시작으로 한국교회 내에서 부정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은사사역의 문제점들을 21가지 유형으로 나열해보고 그 해결방안들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마련하였다. 이번 12월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서 12. 성경적 원칙이 약화됨에 따른 방향성 상실, 13.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과 받은 자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단성 이 두 가지의 컨텐츠를 소개한다.


CONTENTS
경계1. 신비적 은사의 경험자와 비경험자 사이의 거리감
경계2. 미성숙한 가운데 은사를 소유한 사람들
경계3. 신비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
경계4. 목회자의 권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평신도 은사자
경계5. 신비적 은사만을 은혜의 수단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
경계6. 말씀의 권위에 대한 부적절한 태도
경계7. 은사체험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주관주의
경계8. 다양한 체험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
경계9. 영감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와 위험
경계10. 교회 공동체가 손상될 수 있는 위험
경계11.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은사를 비성경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경계12. 성경적 원칙이 약화됨에 따른 방향성 상실
경계13.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과 받은자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단성
경계14. 감정적 측면의 과도한 강화로 인한, 이성과 의지의 약화
경계15. 하나님의 능력을 샤머니즘화 하는 오류
경계16. 능력을 과장하는, 잘못된 우월의식
경계17.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함
경계18.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경계19. ‘도덕적 문제 정도는 초월해도 된다’는 왜곡된 특권의식
경계20. 사역 시 발생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 부재
경계21. 모든 영감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경향


12. 성경적 원칙이 약화됨에 따른 방향성 상실

신앙생활의 전반에 있어서 성경적인 기본의 약화는 보편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특별히 신비적 은사의 영역은 성경적인 기본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상 성경말씀과의 관계가 가장 긴밀해야 하는 것이 신비적 은사이다.
왜곡되는 은사의 오류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을 하나만 선택한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적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만큼 성경적 기준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은사 사역자의 기본적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적인 기준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 은사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잘못 사용하다가는 은사의 방향성이 쉽게 왜곡되고 또한 수정하기도 어려워지게 된다.
말씀으로 받는 은혜는 일단 성경이라고 하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매개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설교라는 통로를 통할 경우에는 설교자라고 하는 해석과 주장의 매개체를 가지고 있어서 개인의 감정적이거나 주관적인 요소의 상당부분이 해소된다. 그러나 은사는 은사의 수여가 성령님의 주도권에 의해서 한 사람의 개인 스스로가 직접 체험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매우 개인적이고 또한 직접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은사의 지속적인 은혜 또한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됨으로 신비적 은사의 개인적인 경향성은 계속 유지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은사의 특이성은 자신의 영감을 성경말씀에 비추어보는 과정을 생략하게 만든다. 즉 자신이 갖게 된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고, 그것에 의해서 받은 영감이나 기타의 능력은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적으로 받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검증이 필요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인간을 매개로 한 이러한 은사들은 불완전한 인간의 요소들로 말미암아 정확한 검증을 필요로 한다.
성경적인 원칙의 적용이라고 하는 것은 은사 사역의 과정에서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만드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은사 사역의 결과가 성경적인 원칙과 비교하여 볼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유추해 보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구원의 확신이 결여되어 있는 환자에게 단순한 치유사역은 별의미가 없다. 그렇게 육체의 질병을 고치길 원한다면 차라리 병원에 보내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물론 병원에서 포기하고 남은 희망을 가지고 온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은사사역은 세상에서 제공할 수 있는 물리적인 도움을 위해 주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은사사역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 하며, 또한 사역자는 그 과정을 통해서 최대한의 영적인 소산물을 거두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는데 그러한 원칙들이 바로 성경적 원칙들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원칙들이 내재되어 있다. 예를 들면 구원을 위하여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사역을 하셨다는 것, 건강한 지체를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병신이라 할지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는 것, 가난한 자를 선대하라는 것,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물질로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 등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진리만으로도 얼마든지 은사 사역의 원칙들이 성경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원칙들을 몰라서라기보다는 그 사역의 과정 중에 말씀을 통한 검증이나 결과를 예상해보지 않고 즉흥적인 사역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평신도의 경우에는 갖추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은사 사역자는 반드시 신학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는 것이 좋다. 이러한 부분은 목회자가 자신의 교회에서 은사 사역을 하면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좋다. 이것은 목회자의 목회철학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전체적인 방향성의 문제에서도 매우 중요할 수 있다. 따라서 은사 사역은 그 신학적인 분명한 기틀 속에서 성도들을 얼마나 건강하게 양육할 것인가를 결단하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치유나 은사에 대한 신학의 부재는 나타나는 현상에만 집착하게 만들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인 신비적 현상에 치우치는 성향을 바로잡지 못해서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지 못한다. 이러한 방향성은 평신도의 책임이기보다는 교회를 지도해가는 목회자의 책임이라고 하겠다.

대안

성경적 기준의 약화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문제들에는 주로 방향성을 상실하고 개인적인 차원의 은사 사역이나 교회 공동체 전체의 은사 사역에서 비정상적인 은사의 강조로 흐르는 문제점들이 있다. 이러한 왜곡의 가능성들을 제거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사역의 과정에서 성경적인 검증의 과정을 밟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은사 사역의 과정에 있어서 성령님의 주관적인 영감이라고 하는 부분을 시행하기 이전에 그 사역의 결과 가져오는 열매들이 성경적인 원칙과 부합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사역의 과정 중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상 사역을 하는 은사자에게 아주 중요한 기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역을 행하는 은사자를 어렵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더 좋은 중심 잣대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 익숙하게 훈련만 된다면 더 많은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좋은 점들도 있다. 은사자에게 성경적인 원칙들을 염두에 두고 사역을 하도록 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사역의 영역을 자신의 영감이 100%를 차지 하도록하는 것이 아니라 50대 50의 비중이든지 혹은 60대 40이든지 자신의 결정에 대한 중요성의 비중을 갖도록 훈련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의지하는 방향성의 중립성을 지켜주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은사자의 경우에는 은사가 가지는 신비적인 매력 때문에 말씀보다 경험을 우선시 하며 말씀을 등한히 여길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러므로 은사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욱 건전한 말씀공부를 권면하거나, 교회 내의 일반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말씀을 강조하고 원칙을 세우려 하여도 말씀을 제대로 알고 깨닫지 못하면 원칙을 세울 수 없는 것처럼 개별적인 말씀 생활에 비중을 두고 시간을 할애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효과적인 훈련을 위해서는 따로 은사자를 위한 그룹을 만들어 교육을 하면서 함께 말씀에 대한 중요성과 과제를 부과하여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은사 사역에 대하여서는 목회자의 목회철학이 은사 사역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이 치유목회에 대한 신학적인 기초가 든든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작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교회 내의 은사 사역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 매번 흔들리게 되어 성도들 간에도 이러한 사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힘들어져 교회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결국 교회 내에 성령의 은사 사역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토대가 있어야하고, 은사 사역에 대해서 담임 목회자가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이를 보호하고, 유지하고 올바로 다스릴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또한 이러한 자신의 목회 철학이 은사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들뿐만이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설교나 교육, 기타의 방법을 통해 목회철학을 공유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13.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과 받은 자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단성

이제까지 기도원의 전유물이 되어왔었던 신비적 은사 사역은 신비적 은사를 경험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반 성도들에게는 생소하고, 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원을 찾았던 절박한 처지의 성도들 또한 자신의 어려운 처지로 말미암아 은사자들과 접촉하였으나 현실적으로 그 이질감을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태도나 행동이 많은 거부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왜곡된 형태의 은사자들의 모습때문에 은사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발전되었고, 그 결과 은사라고 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고, 경직되고, 무섭고, 아프고, 정말 절박한 사정만 아니면 피하고 싶은 경험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사의 독특한 이미지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은사 사역 왜곡의 한 단면일 뿐이지 그것이 은사의 올바른 모습이거나 보편적인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왜곡된 은사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동기가 바로 은사자가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경향 때문에 빚어지게 된다. 이러한 경향성은 비인격적인 언어와 행동, 필요 이상의 과격한 사역형태, 상하관계를 연상하게 하는 단어들, 마치 은사자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책망하는 듯한 직접적인 언어와 태도들로 인해서 유발한다. 또한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였을 때 그 원인이 죄로 말이암은 것이든, 부주의로 인한 것이든 문제를 가지고 온 성도는 죄인처럼 비굴한 모습이 되고 은사 사역을 하는 은사자는 마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인양 군림하게 된다. 또한 사역을 받는 사람의 죄로 인해 스스로 분노하는 것과 같은 모습은 상당히 왜곡된 사역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제까지 우리가 기도원이나 은사집회에서 쉽게 경험해 왔던 것이다. 퍼부어지는 욕설이나, 반말들, 필요 이상의 과격한 안찰, 자신의 영감에 대해 옳다고 시인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 하는 강요들, 스스로 분노하여 심판을 내리는 듯한 경고들 등의 형태가 바로 이런 문제점들이다. 이러한 오류들은 은사를 무지한 자들의 전유물로 만드는 전형적인 형태가 된다. 그러나 올바른 은사의 모습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대안

하나님과 은사자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과 지시를 받아 사역을 감당한다고 믿는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와 하나님 앞에 쓰임받고 있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착각에서 비롯된다.
은사자는 그 자신의 위치를 잘 알아야 한다. 즉 은사자는 은사의 혜택을 받는 성도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사이에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통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은사 사역의 현실을 살펴보면 이러한 실수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은사 사역의 오류들이다. 왜냐하면 은사 사역의 과정은 전인격적으로 모든 영역이 동원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감정의 이입은 자연스러운 현상의 한 단면일 수 있다. 이러한 과정 때문에 은사 사역자들은 문제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사랑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일처럼 괴로워하면서 그들을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도 있다. 이처럼 감정의 이입이 모두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이입과 동일시의 과정 사이에서 은사 사역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돕는 자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간절히 아파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은사의 혜택을 받는 사람과 자신이 동일시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은사 사역을 받는 사람에 대한 동일시의 경우이지만, 반대로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경우에 은사 사역을 받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연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달이 간절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에 대한 의지 등이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입장인 것처럼 은사 사역을 받은 사람보다 상위의 위치에서 사역하는 모습이 발견될 경우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같은 인간을 정죄하여서는 안 되는 모두가 부족한 죄인의 모습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은사 사역자는 이러한 부분을 쉽게 혼동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일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죄에 대한 미움이 그 사람에 대한 경멸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 사람에 대한 은사 사역자의 책망으로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은사 사역자는 비록 스스로가 중간 매개체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거나 은혜의 도구가 되는 역할을 감당하지만 그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요, 주님오시는 그 날까지 지속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동일한 연약한 인간인 것이다. 즉 은사자는 그의 위치가 은사 사역을 받는 자와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통로적인 역할을 감당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는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의 위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게 되면, 자신의 위치가 하나님과 비등한 것처럼 스스로 느끼게 되어 교만하여지고 무례해지며, 결국 은사자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은사를 사역하고자 하는 은사자는 이러한 은사의 왜곡되는 가능성에 대하여 충분히 먼저 인식하여야 한다. 이러한 선재의식 없이 사역에 임하게 되면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과 의지의 함정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주게 되고 그것이 더 발전하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여 스스로 동일시의 경향성으로 오는 문제점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결국 목회자인 지도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먼저 지적해주어야 한다. 바로 내가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심어주어서 스스로가 조심하도록 해야하며, 긍정적인 긍휼의 감정이 아닌 분노나 심판의 부분에 대해서 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김민정 박사
한세대학교 실천신학 M.Div., Th.M.
한세대학교 선교신학 Ph.D.
한세대학교 강사
분당우리교회 행정담당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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