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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청년 LIFE> 그래서 어떻게 하지?_변성우 목사 고창현 목사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22
등록일시 : 201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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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하지?(What can I do?) 1) 여의도순복음교회 2015년 3월 한 매체는, ‘젊은 백수 100만 명 돌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대학원 진학자, 졸업 유예 학생 등을 빼면 실제 취업률은 5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이에 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경제 성장 둔화로 인한 일자리 부족’이다. 2014년 발표에 따르면, 구직자가 약 293만 3,800명인데 반해, 일자리 수는 169만 5,000개이다. 일자리 수가 약 177만 8,500개였던 2012년보다 더 줄어든 양상이다. 둘째,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인한 정년 확대’이다. 거기에, ‘노력한 만큼 평등한 임금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시대’, ‘내 삶이 바뀐다는 보장이 없는 시대’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삶 자체를 포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결혼 적령기도 계속해서 늦어지는 추세다. 결혼도 하고 싶고 가정도 이루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들로 인해 기약 없이 결혼을 미루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2012년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자녀 1인당 대학 졸업까지의 양육비가 308,964,000원으로 발표되었는데, 결혼보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자녀 양육까지 감안한다면, 가정을 이루는 것을 사치로 여기는 분위기는 오히려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주변에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사회 현상들이 당연시 되는 것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느끼는 아픔과 고통은 신앙생활을 하는 소위 ‘교회 안 청년’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늘 교회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는 임원들도, 강대상에서 마이크를 들고 열정적으로 찬양을 드리는 찬양팀도, 함께 소그룹에서 기도를 하고 나눔과 교제를 하는 우리의 친구들도 동일하게 청년의 아픔과 고통을 경험한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절실히 갈망하는 것은 영혼과 육신의 균형 있는 치유와 회복 그리고 자유함이다. 답답한 현실을 버거워하는 청년들에게 교회는 이러한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모든 시대를 통틀어 청년들이 고민과 아픔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때가 과연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시대는 다르지만 모든 청년들은 나름의 이유로 아파했고 고통스러워했다. 나라 잃은 일제 강점기 시대, 전쟁을 거쳐 당장의 배고픔을 이겨야 했던 시대, 고도의 성장 속에서 정치적인 성숙함이 요청되던 시대 등 시련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그들과 동행하며 깨어있는 교회들이 있었기에 청년들은 나름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고 시대를 견인하는 새 힘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과거와는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특별히 여의도순복음교회 대학청년국은 ACTING이라는 별칭을 사용하는데, 이는 사도행전을 계속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행동으로 옮기는 청년들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ACTING 대학청년국은 성령의 인도함과 역사를 강조한다. 세상에서 경쟁력 있는 크리스천 양성과 파송을 위해 성령의 충만함과 역동적인 예배와 말씀, 기도를 통한 영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성을 세상으로 흘려보내고자 월드미션(해외 단기선교), 리바이벌 코리아(국내 단기 선교) 등의 사역을 통하여 청년지체들로 하여금 세상 현장을 경험케 하고 있다.
작년 말, 한 공중파 방송에 초청된 소설가 김영하 씨의 강연이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과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이 시대 청년들의 어려운 취업현실을 이야기하며 지금의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청년이었던 80-90년대 고속성장기와는 달리 ‘성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지금의 청년들이 분명 이전보다 더 다양해진 진로의 선택들 속에 놓여 있지만 실상은 그 결정에 따른 위험요소와 책임이 이전 세대에 비해 막중하기에 오히려 ‘결단이 어려워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런 어려움은 취업뿐만 아니라 결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소위 3포 세대라고 불리 오늘 날의 청년들은 쉽지 않은 ‘취업’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가까스로 결혼을 해도 만만치 않은 육아 비용으로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악순환의 세대이다. 취업의 문제로 결혼 적령기를 자꾸 놓치다 보니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 사귀는 것도 쉽지 않고, 혹 우여곡절 끝에 결혼할 상대를 만나도 결혼 준비(지참금)에 대한 현실적 부담이 청년들의 마음을 더욱 멍들게 하고 있다. 올드한(?) 교회의 시선과 기대감 기성세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올드한 시선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올드한 기대감도 갖고 있다. 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가? 그것은 기성 세대가 청년들을 다음 세대 믿음의 주축으로 생각하며, 건강한 믿음의 계승을 위해 이들을 이해하고 지원하려 하기보다 이들을 교회 봉사나 섬김의 동력으로만 기대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계승이 기성 세대 때처럼 그냥 교회 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는 올드한 생각으로 청년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에 무관심하며, 함께 고민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문화가 세상문화보다 앞서 있었고 새로웠던 80-90년도까지는 다음세대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지원 없이도 청년들을 교회에 붙잡아 둘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함께 공감해 주고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는 청년부가 필요하다. 곧 청년들은 자신들의 벅차고 힘든 삶의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성경적인 가르침과 믿음의 능력에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다루지만 본질을 이야기하는 공동체 좀 늦은 면이 있지만 필자는 청년 선교단체나 일부 교회를 중심으로 청년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에 관심을 갖고 기독교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노력과 시도들이 청년들의 현실 문제를 다루지만 결국에는 기독교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왜냐하면 단순히 세상의 훌륭한 강연이나 워크숍처럼 취업을 잘 하게 하고 일터에서 성공하게 하는 강연이 아닌, 또 좋은 배우자를 소개 받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게 하는 매칭학교가 우리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와 세상을 구별 짓는 것은 복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청년들의 현실에 관심을 갖고 그 현실의 문제를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의 본질인 복음을 통해 현실의 해답을 제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처럼 취업과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도움과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한다고 해도 청년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으로 세워지는 것은 바로 복음에 달려 있다. 분명 청년들의 하소연과 목마름은 취업과 결혼 문제에 몰려 있지만 교회의 가르침과 전략은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가장 순전하고 본질적인 진리를 통해 해갈되어야 한다. 그럼으로 선교단체와 교회들이 청년들의 취업(진로)과 결혼(연애) 문제에 관심을 갖고 훈련학교나 컨퍼런스를 제공하더라도 그 문제 해결의 본질적인 해답은 결국 복음이 되어야 한다. 마치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우물가의 여인에게는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다는 도덕적이고 인생관적인 목마름과 아픔이 있었지만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고백으로 해갈되었듯이 이 시대 청년들의 고민인 취업과 결혼의 문제 또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곧 교회가 양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 해결은 본질적으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복음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결국 십자가 복음으로 나를 규정하고, 십자가 복음으로 내 인생을 펼쳐감으로서 취업이 잘 안 되는 청년의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복음을 붙잡고 살아감으로써 내가 어떤 회사에 취업해서 어떤 직종의 일을 하는 것으로 우리를 규정하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어떤 회사에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하게 되더라도 구원 받은 존귀한 사람, 하늘의 소명을 받은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 결혼의 녹록치 않은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십자가 복음으로 나를 규정하고 삶을 살아감으로서 결혼의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세상은 내가 어떤 수준의 배우자를 만나 얼마나 안락하고 즐거운 결혼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나와 나의 가정을 규정하지만 복음을 붙잡고 살아가는 청년들은 결혼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빚어가고 계심을, 이웃 사랑을 훈련시키신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복음이 나를 규정하기에 심지어 교회는 독신의 은사를 사모하며 싱글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기 원하는 청년들을 위해 싱글 그리스도인의 삶이 복음 안에서 얼마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가르치고 격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문제들이 복음 안에서 충분히 해갈되기 때문이다. 취업과 결혼의 문제가 분명 이 시대 청년들에게 심각한 현실이요 문제지만 이것 또한 복음의 능력과 영광에 사로잡히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목마름(요 4장)이요 질그릇(고후 4:7)이다. 청년사역을 하면서 성찰하게 되는 점은 우리가 때로는 양들의 상황과 현실에 너무 신경을 쓰는 나머지 현실적인 필요와 대안에는 민감하지만 사실 청년들이 우리에게 정말 듣기 원하고 또 들어야 하는 것은 여전히 복음이라는 점이다. HOW를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복음이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임을 알고 있다. 그럼으로 우리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복음이 우리 청년들을 새롭게 하는 유일한 해답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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