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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다시 일어나는 젊은이> 혼전 순결 의미 상실의 시대_송인규 소장(한국교회탐구센터)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9    등록일시 : 2014-08-22    인쇄

COVER STORY
2030 다시 일어나는 젊은이_ [혼전 순결]



혼전 순결, 의미 상실의 시대



글_송인규 소장(한국교회탐구센터)



최근 젊은이들의 성 풍조와 풍속도는 한국의 역사상 유례없는 무질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경우라고 하여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30대 미혼 남녀 가운데 남성 59.4%와 여성 44.4%가 이성과 성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1) 성 관계를 가진 대상자의 수효만도 평균 4.8명 - 남성 6.0명, 여성 3.2명 - 인 것으로 밝혀졌다.2)
이렇게 난감한 사태를 앞에 놓고 그리스도인 지도자들과 부모들, 청년부 사역자들은 크게 당황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가늠이 힘들 뿐 아니라 또 혹시 힌트를 얻었다 해도 이런 현실 속에서 혼전 순결을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의문이 마음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또 반대로 정죄와 비난, 질책과 엄포만을 능사로 삼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필자는 이런 딱한 실정에 직면하여 그저 현실에 대한 이해를 돕고 해결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설명과 제안을 선보이고자 한다.



‘혼전 순결’의 뜻
먼저 ‘혼전 순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이 가운데 ‘혼전’은 ‘결혼하기 전’, ‘미혼의’라는 뜻이므로 크게 부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순결’(Purity)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한글 사전에 보면 ‘순결’은 ‘① 이성과의 육체관계가 없음. ② 마음에 사욕(私慾)이나 사념(邪念) 같은 더러움이 없이 깨끗함. ③ 잡된 것이 섞이지 않고 깨끗함’3)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 가운데 첫 번째 해설이 논의 중인 사안과 합치한다.
영어에는 ‘순결’과 연관된 단어로서 ‘Purity’와 ‘Virginity’가 있다. Purity에 대한 설명은 한글 사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① 도덕적이거나 영적으로 순전한 상태; 도덕적·의식적(儀式的) 오염의 부재; 정절; 이런 것들의 예. ② 물질적으로 순수한 상태; 혼합이나 섞임이 없음; 청결; 이런 것들의 예. ③ [비유적] 외래적이거나 외부적 요소의 부재 …’4)로 되어 있다. 그런데 Virginity는 ‘① 처녀인 상태; 성적 순결. ② [비유적] a 신선하거나 순수하거나 손대지 않은 상태, b 순진무구, 미경험, 또한 덕, 순전성’5)으로 해설이 되어, 좀 더 성적 함의가 짙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순결은 일차적으로 ‘이성과 성적 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협의)로, 부차적으로는 ‘성적인 깨끗함과 정결함’(광의)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혼전 순결 : 세 가지 용례
그러나 일단 이렇게 정의를 마련했다고 해도 ‘혼전 순결’이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전달되는 의미는 다소 다를 수 있다. 사람들이 ‘혼전 순결’과 관련하여 서로 달리 품는 관념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용례로 정리가 된다.


(A) 결혼하기 전 이성과의 관계에서 성적으로 건전한 [문란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일.
(B) 결혼하기 전 이성과의 관계에서 최후의 선을 지키는 - 즉 성교를 하지 않는 - 일.
(C) 결혼하기 전 이성과 여러 형태의 스킨십을 갖되 성교만큼은 피하는 일.


앞서 우리가 살핀 사전의 설명이나 개인적 정의에 의거한다면, 혼전 순결은 (B)의 용례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B)가 중요한가?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왜 (B)를 주장하는 것이며 왜 이것을 혼전 순결의 핵심 내용으로 제시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들이 (B)를 주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 근거에 의해서이다.
첫째, 성경이 성적 교섭을 결혼과 연관 짓기 때문이다. 성경에 “미혼 남녀는 성교를 하지 말라”라고 명료히 금령을 내린 곳은 없다. 그러나 남녀는 결혼과 더불어서만 성적 교섭을 갖도록 지시 받고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상기 구절은 남녀 관계에 있어서 의미심장한 교훈을 제공한다. 우선, 인생의 어떤 시기에 남자는 - 이것은 또 여성에게도 적용되는데 -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된 단위의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것이 소위 결혼이다. 또, 결혼의 특징적 핵심은 남자와 여자가 합일을 이루는 데 있고, 이런 합일의 중심에 성적 결합이 포함된다. 따라서 남녀는 결혼의 울타리 내에서만 성교를 행할 수 있고, 이것은 두 사람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결혼과 성교의 긴밀한 연관성을 전제할 때, 우리는 처녀에게 억지로 성 관계를 요구한 남성이 벌금 징수와 더불어 그를 아내로 맞아들이도록 조치한 율법의 규정(신 22:28-29)이나 창기와 더불은 성교 행위가 행위자를 창기와 한 몸으로 만든다고 경고한 내용(고전 6:16)을 이해할 수 있다.
둘째, 남녀의 성적 교섭은 둘 사이의 인격적·심리적 합일을 외형화하는 일인데, 이것은 오직 결혼의 맥락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녀의 하나 됨은 인간의 전 인격을 아우르는 신체적·심리적·영적 성격의 사건으로서 결혼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결혼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은 채 이런 양상들 가운데 신체적 측면 - 곧 성교 - 만을 경험하거나 경험하고자 하는 일은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난다고 하겠다.
사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혼전 성교 행위에 대해 경고를 발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6) 그리스도인들은 이상의 두 가지 근거에 기초하여 (B)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C)는 어떨까? 이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다. 남녀 간의 이성 교제에서 성교는 기독교적으로 용인될 수 없지만, 그보다 정도가 낮은 각종 스킨십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편의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사고방식의 발로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온각 종류의 행위 - 허기트 (Joyce Hugget)의 척도7)에 의거하자면 오랄 섹스, 상호 수음, 심한 페팅 등 성적 색채가 짙은 항목들 - 에 탐닉하면서도 성교만 피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이론적 의미에서의 순결을 지키는 것이 된다. 이것을 가리켜 ‘기술적 순결’(Technical virginity/Chastity)이라고 한다.
기술적 순결은 근본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성적 순결을 왜곡할 뿐 아니라 율법주의적 위선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8)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필자는 혼전 순결과 관련하여 (B)만을 주장하는 것조차 아주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어구에 대한 정의상으로는 (B)가 맞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최종 한계점을 명시한 것일 뿐 실제 이성 교제에 있어서의 ‘목표’로 채택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목표가 되는 경우 실제 상황에서 (B)는 곧장 (C)로 전환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혼전 순결’을 이성 교제에서 채택할 목표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는 (A)가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정의상으로는 (A)가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실제적으로는 매우 건실하고 또 실효성이 있는 방침이라고 여겨진다.



첫째 방안 : 데이트와 스킨십
자, 그러면 어떻게 함으로써 청년 그리스도인들은 바람직한 ‘혼전 순결’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따로 왕도가 없고, 또 ‘성공적 해결책’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단지 필자는 취해야 할 여러 방법 가운데 두 가지 사항을 선별하여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청년 그리스도인 각자와 연관된 것이요, 또 하나는 청년 그리스도인을 지도하는 사역자들과 상관이 깊은 것이다. 한 가지씩 다루어 보자.
우선, 청년 그리스도인들은 데이트 중 온당한 스킨십의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혼전 순결을 유지할 수 있다. 많은 젊은이들의 순결이 지켜지지 않는 강력한 요인 가운데 한 가지는 그들의 데이트가 결국 스킨십 위주의 활동으로 발전한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건전한 데이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스킨십의 역할은 데이트의 목적 가운데 매우 비중이 낮은 요소로 자리 잡게끔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그렌츠의 설명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데이트의 목표를 세 가지로 잡는다.9) 첫째, 데이트는 젊은이들이 자기 또래의 대상과 더불어 기분 전환도 하고 사교적 기술도 습득하는 오락적·교육적 기회가 된다. 둘째, 데이트는 이성의 대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배우고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셋째, 데이트는 결혼 관계에 있어서 자신에게 요구되는 특질이 무엇이고 장래의 배우자로부터 기대하는 특질이 무엇인지를 고려하게 만드는 이성 교제의 장을 제공한다. 이러한 세 가지 목표를 염두에 둘 때 데이트 시의 행동에 대한 근본적 고려 사항이 어떠해야 하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무엇이 데이트 시의 온당한 행동인지 판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개인의 행동이 둘 사이의 건강한 관계를 수립하는 데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트하는 두 사람은 데이트 이벤트를 활용하여 각자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 - 즉 상대방과 더불어 긍정적이고 유익이 되는 쪽으로 관계를 맺는 것 - 에 우선적인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렇다면 데이트는 연관된 사람 각자를 세워 주는 것이어야 한다.10)
이처럼 데이트는 건전한 관계의 수립을 통하여 각자의 성숙을 장려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데이트는 사귐을 갖는 두 사람 각각의 인격적·영적 성숙을 염두에 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허기트는 이런 취지에서 데이트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당신이 계발하는 모든 우정 가운데, 사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샬롬(온전함)이 임하도록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 비록 그것이 당신 자신을 계속해서 희생적으로 내주어야 한다 하더라도 - 결심하라.
2. 그 대상에게 해가 되는 것 -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 은 어떤 일도 하지 말라.
3. 당신 친구의 신체적·정서적 안녕에 관심을 기울이라.
4. 그(혹은 그녀)가 계속해서 영적으로 성장하는지 관심을 가지라.
5. 그(혹은 그녀)가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섬기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
6. 그 사람의 잠재력을 총체적으로 이끌어 내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라.11)


그런데 우리는 어떤 수단에 의해서 이상과 같은 데이트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다음의 도표를 보라.



① ‘기도’는 서로를 위한 기도와 더불어 함께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② ‘대화’는 각종 주제에 대한 이야기와 의견 교환을 말하는데, 때로 의문·반론의 제기나 응수·해명·논박 등도 포함한다.
③ ‘참여’의 예로서는 예배 참석, 단기 선교 사역의 수행 등 신앙적 활동뿐 아니라 문화·예술 행사 관람, 물건 구입, 여행 등 일반적 영역의 것도 들어간다.
④ ‘접촉’은 다정함·따스함을 전달하는 모든 종류의 신체적·성적 제스처를 지칭하며 스킨십은 이 분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통한 인격적·신앙적 성숙을 꾀할 때, 우리는 스킨십과 관련하여 두 가지 극단을 피해야 한다.12) 하나는 혼전 순결이라는 목표의 달성을 앞에 놓고 조급해진 나머지, 모든 형태의 스킨십을 금지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잘못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가 데이트를 통해 이성 교제의 특징을 유지하고 또 이를 위해 서로 간에 친밀해지는 과정을 상정한다면, 그 가운데 스킨십의 요소는 배제될 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일단 스킨십의 활동을 허용하면 거의 대부분 데이트가 스킨십 일변도로 질주한다는 점 역시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필자는 누구에게나 적용이 가능한 스킨십의 범위로서 ‘손잡기 → 포옹 → 껴안기 → 가벼운 입맞춤’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젊은이 전체를 대상으로 해서 구체적이면서도 합리적이고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한계를 정해본 것이다. 필자가 스킨십의 범위로 이상의 내용이 합리적이고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고려 사항 때문이다.13)


(i) 이상의 행위는 공적 장소에서도 허용이 되는 바이다.
(ii) 이성 간의 친밀성을 유지하는 데는 이러한 범위의 행동으로 충분하다.
(iii) 스킨십의 범위가 이 정도이면 혹시 헤어진다고 해도 그 상대방과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서 친구로 지낼 수 있다.
(iv) 이 정도의 스킨십은 나중에라도 후회할 바를 남기지 않는다.
(v) 혹시 다른 그리스도인과 결혼을 한다고 해도 이 정도의 스킨십이라면 그 배우자에게 부끄럽거나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다.


비록 이상의 제안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는 모르지만, 혼전 순결을 염두에 둔 데이트와 이성 교제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고려 사항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둘째 방안 : 혼전 순결 서약
혼전 순결 서약은 첫째 항목인 ‘데이트와 스킨십’의 경우와 달리 청년 그리스도인 개인이 주도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순결 추진 방안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지도하는 선배 및 사역자들의 주선과 기획에 힘입어 청년들이 도움을 얻는 프로그램이다. 또 순결 서약은 보통 공적 집회에서 의식(儀式)의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소위 ‘순결 서약 운동’의 핵심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 순결 서약 운동의 효시는 미국 테네시 주 내쉬빌에 있는 남침례교 소속 튤립 그로브 침례교회(Tulip Grove Baptist Church)의 청년 사역자 리처드 로스(Richard Ross)가 1993년 2월 53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순결 서약을 시도한 것에서 찾는다.14) 한국에서는 서울 목동에 있는 목산침례교회의 김현철 목사가 1994년 7-8월 중에 전 교인을 대상으로 홍보한 결과 47명의 자발적 서약자를 얻은 것이 순결 서약 운동의 출발이라고 본다.15) 현재 순결 서약 운동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신·불신을 막론하고 큰 범위로 퍼져 나갔고, 한국에서도 개 교회를 넘어서 그 이상의 단체들 - 한국십대선교회,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16) - 을 주축으로 운동이 확장되었다.
그러면 혼전 순결 서약은 젊은이들이 순결을 지켜 나가는 데 얼마나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오늘날 어떤 청년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의 성적 순결을 보전·향상시키기 위하여 모종의 서약식을 추진하고 있다고 할 때, 당신은 그 계획에 흔쾌히 찬성표를 던지겠는가? 아니면 그런 서약의 무용성이나 폐해를 염려하여 극구 반대를 표명하겠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 한 쪽으로 명쾌히 응수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최소 두 가지이다. 첫째, 과거 순결 서약의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순결 서약의 실효성에 대한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되어 왔다. 그런데 연구 결과조차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섞여 있어 일반인으로서는 건실한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 긍정적인 연구 결과로는
<성은 기다릴 수 있다>(Sex Can Wait) 프로그램을 사용한 경우17)와 Heritage Foundation의 보고 자료가 있다.18) 동시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 반대 연구 결과 또한 만만치 않다.19)
게다가 한국의 경우에는 순결 서약 이후의 사태 발전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더 실효성을 언급하기가 힘들다.20)
둘째, 순결 서약을 어떻게 시행하느냐에 따라 그 질이 천차만별일 수 있으므로 찬반 간에 한 마디로 확답을 주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순결 서약식을 대상자에 대한 사전 교육 없이 집단 행사 치르듯 반 강제로 - 흡사 예전에 군대에서 집단 세례식을 거행하는 식으로 - 수행한다면, 이런 요식 행위는 분명히 커다란 후유증과 심각한 폐단을 빚을 것이므로 필자로서는 적극적으로 말리는 바이다. 그러나 반대로 서약식 전후의 준비와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진다면, 무조건적 거부만이 현명한 반응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순결 서약을 주관하는 이들의 내면적 자세, 경험과 관록, 행사 진행에 따르는 업무 수행 능력 등에 따라 실효성이 크게 좌우된다는 말이다.
상기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순결 서약식에 열성적으로 반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모든 형태의 서약식이 불필요하거나 해롭다고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순결 서약식에 대해 제한적 유익이라는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왜 순결 서약은 제한적으로나마 유익할 수 있는가?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서약의 수립이나 갱신에 관한 성경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의 의식은 오늘날과 같은 성격의 성적 순결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특정한 계기에 모여 언약을 수립하거나 갱신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출 24:3-8; 수 8:30-35; 왕하 11:17; 대하 15:10-15; 스 7:3). 이러한 공동체적 회집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다시금 공고히 다짐한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순결히 지키겠노라고 하나님 앞에 서약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또, 여러 사람들 앞에서의 서약을 통하여 순결에 대한 자신의 결심을 확실히 하고, 향후 결혼에 이를 때까지 수시로 서약한 바를 되새김으로써 순결에의 결심을 공고히 한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물론 이런 공적 서약이 제한적 유익을 산출하려면, 최소 세 가지 사항이 준비되어야 한다. 첫째, 서약에 참여하는 이들의 자발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서약이 그렇듯이 순결 서약도 그 성과가 극대화되려면 대상자들이 자발적으로 결심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서약에 대한 홍보는 폭넓게 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최종적으로 서약에 참여하는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의식하는 사람들로 한정되어야 한다.
둘째, 서약 대상자에 대한 사전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21) 교육 내용은 세부 사항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 핵심에는 (i) 성경에서 말하는 순결이 무엇인가? (ii) 순결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하고 유익한가? (iii) 서약 이후 결혼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성 행위를 삼갈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자세한 안내가 있어야 한다. 교육의 방식도 ‘강의’에만 의존하지 말고 가능하면 대상자들이 함께 워크숍과 토론을 겸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또 참여 대상은 서약 당사자이지만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서약 당사자의 부모까지 대동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무척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셋째, 서약 이후의 후속 조치(Follow-up) 또한 빈틈없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마도 이 조치야말로 순결 서약식의 주최자들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항목일 것이다. 그러나 순결 서약이 ‘서약식’을 개최한 것에서 의의를 찾고 막을 내린다면, 이보다 비극적인 처사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후속 조치는 그 가운데 두 가지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 우선, 서약자들의 결심과 다짐이 용두사미 격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속적 격려와 자극을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약자에게 후견인들 - 멘토든 증인이든 - 을 붙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서약자들이 유혹을 받아 배약(背約)하거나 배약의 위기에 이르렀을 때, 상담 및 재출발의 기회를 갖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만일 서약자들이 이러한 고뇌의 상황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죄의식·수치심·허무감 등에 휩싸여 오히려 서약을 하지 않느니만 못한 심리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실효성 있는 순결 서약식이 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만일 이와 같은 세 가지 사항이 제대로 준비된다면, 필자는 순결 서약 역시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순결을 지켜가는 데 비록 제한적으로나마 기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하면 이토록 문란하고 파괴적인 성 문화의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혼전 순결을 지킬 수 있을지,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 방안 - (i) 데이트에서의 절제된 스킨십, (ii) 순결 서약 - 을 제시했다. 바라기는 오늘날 청년 사역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런 면에서 이해심과 통찰력을 가지고 젊은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송인규 소장
한국기독학생회(IVF) 총무 및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1996-2014)를 역임한 송인규 소장은 현재 한국교회탐구센터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세 마리 여우 길들이기』, 『평신도 신학』, 『성경,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자아가 자아를 엿보다』, 『일반 은총과 문화적 산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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