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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가 모르는 청년 이야기 ] Part.1 교회를 떠난 후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0    등록일시 : 2019-09-13    인쇄

Part.1 교회를 떠난 후

 


취재 오한별 기자



 

사무치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찾아온다. 봄의 따뜻한 온기는 죽음이 드리워져 있던 얼어붙은 초원을 감싸 안는다. 그리고 따뜻한 햇살의 품 에서 새로운 생명은 싹을 틔운다. 이것은 당연 한 사실인 동시에, 그래야만 하는 일이다. 이는 비단 자연에만 해당되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 의 오랜 신앙 여정도 마찬가지다. 삶에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는 은혜의 봄을 기다린다. 오래 전 한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염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며 고개를 든다.


신앙의 겨울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따뜻 한 기도와 사랑의 횃불로, 제법 어렵지 않은 겨 울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한파 속 에서 홀몸으로 눈비를 버텨내기도 한다. 외롭 고 힘든 차가운 겨울을 보내기도 한다.

 

아직 겨울이 머무르고 있던 2월, 교회를 떠나 발붙일 곳 없는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예배 를 드렸다. 과연 교회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일까 하는 생각이 무색하게 작은 예배당은 가득 찼다. 저마다 신앙의 겨울 속에서 온 몸은 동상에 걸린 상처로 가득하다. 사람들의 온기 가, 찬양의 불이 너무 오랜만이라 따뜻함을 넘 어 따끔거리기도 한다.


익숙한 찬양의 멜로디가 익숙지 않다. 두 손을 살포시 모아 기도하는, 수십 년간 쌓여왔던 일 상이 낯설어 마음이 먹먹해진다. 인도자의 요 청에 함께 찬양을 부른다. 한동안 하나님께 죄 송스러워 감히 입에 담지 못했던 가사를 이제 서야 고백해본다.

 

청년 A는 누구보다 교회 활동에 헌신적이 었다. 친구들이 저마다 학교, 학원, 친구 문제 로 교회를 등한시할 때도 A는 그 모든 사정을 뒤로 하고 교회를 지켰다. 내가 좋아서 시작 한 봉사고 헌신이었다. 누구에게 고맙다는 말 을 들을 의도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목사 님과 성도님들의 칭찬이 부담스럽고 부끄럽 기까지 했다. 그러나 1년, 2년이 가고 몇 년이 지나자 A의 헌신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마음의 짐을 느낀 A는 목사님을 만나 잠시 동안의 휴식을 말씀드렸다. 인자하신 목사님의 표정 이 한순간 바뀌며 말했다.


“A야, 기도는 해봤니?

너 없으면 누가 그 자리를 채우니? 대신 할 사람을 구해놓지도 않고 무슨 소리니? 안 돼!”


‘아, 목사님은 나를 마치 도구처럼 생각하시 는구나.’ A는 그 날 교회를 떠났다.


지난 7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합해 2 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가진 ‘교회를 떠났다’ 페이지 운영자를 만났다. 이 페이지의 운영자인 이성민 씨는 담담하게 자신과 제보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특별히 청년들의 구독수와 제보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그의 이야기를 통 해 과연 오늘날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무 엇인지, 무엇 때문에 교회로부터 발걸음을 돌 렸고 또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1. 교회를 떠났다

‘교회를 떠났다’ 페이지는 말 그대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사연을 공유하는 페이지입니다. 그리고 계기라면, 말 그 대로 제가 교회를 떠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 에요. 어린 나이에 상경하고, 한 교회에 10여 년간 뿌리내리고 헌신했어요. 그러나 일련의 문제들 때문에 교회를 떠나게 되었는데, 물론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가는 과정 에 있지만, 그때 겪었던 심리적 어려움은 저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껏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그들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겠구나…….’

 

이렇게 큰 아픔인데, 그때 나는 왜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을까? 누군가 들어주었 으면 하는 마음에 왜 응답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 말이에요. 그래서 페이지를 만들었 습니다. 내 이야기를 온라인에 올리며, 혹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제보를 할 수 있게 해보자. 이것이 계기였어요.


교회를 떠날 때, 어떤 아픔이었나?

‘떠났다’라는 부정적 어감의 술어에 ‘교회’ 라는 목적어가 붙으니 성도나 목회자들은 그 이유를 묻기 전에 먼저 저희를 판단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교회를 떠났으니 편하겠지?’ 혹은 ‘마음 편하게 다른 교회로 이동하겠지?’ 라고 단정 짓지, 그 사정을 듣고자 하지 않으세요.


그러나 적어도 저와 사연을 보내주신 수많 은 성도 분들은 한 사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교회를 떠나기까지가 고난이었고. 교회를 떠남과 동시에 더 큰 고난이 시작됐어 요. 지금도 교회를 떠난 수많은 분들이 고난 중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담임목사님과의 갈등 때문에 교회를 떠났어요. 자세한 사정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교회를 떠나지 않기 위해 저 도 몸부림 쳤다는 거예요. 어떤 마음을 가지 고 떠났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 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슬프고, 참담한 심정이 었다고요. 교회를 떠날 때, 내 마음의 짐이 해 결될 거라는 일말의 기대 없이 그렇게 떠났 어요. 그리고 그보다 더한 어려움들이 교회를 떠난 이후에 찾아왔습니다.


“주일 오전 11시가 되면 막막함이 밀려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나는 어쩌면 좋지?”


내가 떠난 건 건물로서의 교회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떠나 고 보니, 믿는 자들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내 신앙을 얼마나 크게 지탱해주고 있었는지 깨 달았어요. 혼자 골방에서 예배를 드려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도 소용없더라고요, 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배가 드려지지 않는 거 예요. 어떤 날은 집 앞 작은 교회를 찾았어요.

예배당 문에 손을 대는 순간. 몸이 굳어버리 더라고요. 내가 너무 죄인 같아서, 내가 예배 를 드릴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아서……. 그 다 음부터는 예배의 어느 부분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성가대석을 보니 ‘나도 찬양팀, 성 가대를 할 때가 있었는데.’ 허무하고 공허한 마음만 들었어요. 회복이 되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감사하게 회복하는 과정에 있지만, 상 처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아 요. 특히 실제 교회에서 열정을 가지고 섬기 던 모습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아직 먼 것 같 아요. 내 교회라고 생각했던 곳을 떠났으니까 요. 다시 내 교회를 찾기까지는 수많은 어려 움이 있습니다.


맞아요. 어떻게 보면 나약한 말이에요. 그 런데 사람 마음이 어디 쉬운가요? 이런 일들 이 계속 되다 보니 신앙뿐만 아니라 제 몸과 마음이 망가지더라고요, 극도의 우울증에 걸 렸고, 결국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했어요. 비 단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온라인으로 접하는 수많은 사연을 보면 모두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들은 교회를 떠난 후, 더 큰 고난을 겪고 있어요.”



사연을 보낸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떠난 분들의 대부분 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떠나 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헌신의 강요. 그리고 두 번째는 소위 ‘끼리끼리 문화’예요. 헌신의 강요는 말 그대로 교회의 많은 목회자분들이 나 임직자분들이 청년들의 헌신을 당연시하 고 강요하신다는 말이에요. 여기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물론 기성세대가 오늘날의 교회를 이루기 까지 수많은 헌신을 하셨음을 분명히 알고 있 어요. 믿음의 선배님들이 피땀 흘려 교회의 부흥기를 이끄셨고, 믿음의 기반을 만드셨다 는 사실을 다음 세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리 고 교회를 떠난 친구들의 대부분은, 소위 ‘믿 음 좋고 헌신하는 청년들’이었어요.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이 말이 꼭 전제되어야 할 것 같아요.

복음의 씨앗이 있고, 예배를 통해 은혜 받 은 사람은 당연히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기 마 련이에요. 그런데 그 헌신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할 때 의미가 있 습니다. 그리고 헌신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응원과 격려라고 생각해요. 그 합당한 반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호의는 권리가 되고, 헌신은 강요가 되고, 누군가는 상처받 게 됩니다.

사연을 살펴보면 헌신의 강요는 반주자나 특수 전공자들부터 시작해 교사, 일반 성도까 지 다양하게 일어나요. 직전에 말씀드린 것처 럼 기성세대가 교회에 헌신해온 모습들은 정 말 존경해요. 그런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 렇게 자라온 세대가 아니에요. 이 세대가 맞 닥뜨리고 있는 문제들은 기성세대와는 달라 요.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그 세대에서 겪었 던 문제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들을 이겨내며 교회로 나오고 있어요.



2. 교회를 그리워하다

교회를 떠났다 페이지 개설 1주년 기념으로 지난 2월, ‘불편한 예배’를 드렸어요. 노방전 도 팀인 ‘불편한 사람들’과 ‘기독교 다모여’ 페이지가 함께 도와주셔서 한 달간의 준비 끝에 교회를 떠난 분들을 초청해 예배를 드렸어요. 소그룹으로 모여 사연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 는데, 그 가운데 이곳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 는 한 사연이 있었어요. 그 분의 메시지에는 단 한 마디가 쓰여 있었어요.


“살고 싶어요.”


교회를 떠나면 그때부터 고난의 시작이에 요. 더 무서운 것은 아무도 그 고난을 알아주 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린 사람으로 비난을 당하고, 때로는 표 적 설교를 당하기도 해요. 말 그대로 배신자 취급을 당하게 되는 거예요. 상처가 회복되기 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상처가 회복된 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봉합되고 교회를 다시 나가기까지는 큰 계기가 있지 않으면 오랜 시 간이 걸려요. 물론 저마다 본질적인 복음의 씨 앗을 품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고 있어요.


“회복해야 하는 것도, 돌아가야 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예배의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곳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이 모여서 찬양을 부르고, 기도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신다 는 사실을 전해주었어요. 그러자, 누군가는 정말 오랜만에 하나님을 만났다는 기쁨에 감 격하고, 누군가는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두렵고 떨리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교회로 향 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들을 회복시키기 위한 특별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아니요, 제 역할은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예배를 드리면서 확실히 느꼈어요. ‘욕심 부리 지 말자.’ 제 역할은 이 분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통로가 되 는 것이지, 그 이상은 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예배도 정기화가 되면 하나의 교회가 되는 거잖아요. 제 목표는 이 역할도, 이 예배도 기존 교회가 감당해주시는 거예요.


3. 돌아오는 길에 서다

 

교회를 떠났다 페이지의 최종목적은?

제 목적은 페이지가 사라지는 거예요. 떠난 분들의 사연을 나누고, 그들에게 공감해주고, 위로의 손길을 뻗어주고, 품어주는 것은 결국 교회의 역할이잖아요. 떠났다는 말이 주는 어 감에 대해서 차갑고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시 는 분들도 많아요. 교회 질서를 깨뜨리기 위 해 운영하는 것이 아니냐고 손가락질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교회를 떠난 모든 사람들은, 돌아오는 길에 서 있다는 거예요.”


제가 운영하는 이 페이지는 그 사람들이 돌 아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데 목적이 있어요. 그리고 이 목적을, 기존 교회 분들과 연계해서 나누고 싶은 게 제 바람이에요.


사연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서 회복된 사례가 있는가?

제가 예전에 통계를 내었을 때는, 약 6%가 회복되었고, 여전히 어렵지만 교회에 나가보겠다는 피드백이 왔어요. 그러나 이 숫자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교회를 떠난 모든 분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교회로 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제가 운영 하는 개인적인 페이지에서, 그리고 인터넷에 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위로로 그 과 정이 이루어졌어요. 이제는 이 글을 보시는 많은 교회 목사님들께서 힘을 보태 주셨으면 좋겠어요.


상처 받은 분들을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상처받고 교회로 돌아오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들을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손을 꼭 잡아주세요. 물론 힘들고 어려운 마음, 상처 받은 마음을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며 치유받 기도 하지만, 많은 문제들이 결국 사람을 통 해서 받은 상처잖아요. 그 상처가 회복되기까 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예요. 여러분 주변 에, 교회 주변에 그런 분들이 있다면 그들이 스스로 용기를 낼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 시고, 또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해결책을 바 라는 게 아녜요. 그저 들어 주세요. 그 진심은 결국 힘이 되고, 위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시고, 또 계기를 만들 어 주셔서 교회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내 아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따랐으 면 좋겠어요. 저도 교회를 떠나고 힘든 시기 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만져 주셔서, 다시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어요. 아마 교회 로 돌아가면 저처럼 이러한 감정을 겪으실 것 같아요.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의 역사를 거 절하지 마세요. 이 말은 여전히 회복되는 과 정에 있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웃음).

 

청년들의 삶에 대해 한 가수는 이렇게 노래했다.


“만약 지금이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 이라면, 그것 참 유감이네. 그동안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거든.”

- 브로콜리 너마저 <서른> 중 -


청년. 희망과 꿈, 용기가 담겨 있던 청년이란 단어는 이제 억눌리고 한 많은 세대를 나타내 는 말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는 이 서러운 세대 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흔히 은혜를 설명할 때 ‘차고 넘쳐흐르는’ 잔에 비유한다. 사역과 헌신도 마찬가지다. 헌 신은 넘쳐흐르는 은혜의 결과여야만 한다. 하 나님 앞에 선 한 사람이 은혜를 경험할 때 그 사랑은 아름다운 헌신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도 여전히 하나 님의 사랑을 뜨겁게 경험한 청년들은 시대적 어려움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헌신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넘치는 잔이 아니라 비어가는 잔에 고여 있는 한 방울의 물을 짜내기 위해 유 리잔을 세차게 흔들 때 일어난다. 잔을 사정없 이 흔들면 고여 있는 물방울은 목적 없이 허공 으로 튀어 사라지고, 잔도 손에 미끄러져 깨질 수밖에 없다.

 

“기도는 해 보았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니? 네가 그만두면 누가 하니?"


많은 목회자들이 ‘요즘 청년들은 너무 나약하 다’는 생각으로 했던 많은 꾸지람들이, 사실 망치를 들고 청년이라는 잔을 깨뜨리고 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청년들이 말하고 싶은 바는 ‘나는 채 워질 잔이에요’라는 것이다. 내 잔을 채워 주 세요가 아니라, 나는 채워질 잔이라고 알아주 는 것을 바란다는 말이다. 결국 잔을 채우실 분 은 하나님이다. 잠잠히 하나님께서 잔을 채우 시며 회복시킬 동안에, 온전히 내가 회복될 수 있도록 알아달라는 것이 청년들의 작은 바람이 었다. <교회를 떠났다> 운영진을 통해 전해들 은 수많은 청년들의 이야기가 그랬다.


교회 문을 열면 그곳에는 때로 목회자보다 더 먼저 교회에 나와 교회를 지키고 있는 청년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교회를 향해 아름다 운 헌신을 보여주는 청년에게, 오늘은 한마디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 보았으면 한다.


“오늘도고맙구나,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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