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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 청년 전담사역자를 양성하자 - 고직한 선교사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27    등록일시 : 2012-02-29    인쇄

Intro_청년목회 어떻게 해야 하나?
청년목회 전략2
고직한 선교사 (Young2080 청년목회자 연합 상임대표)



들어가며


목회의 시작을 청년으로 시작하고 35년간 청년사역에 매진한 목회자가 있다. 고직한 선교사는 청년에 죽고 청년에 사는 우리 시대의 청년목회 대표 목사이다. 그는 청년목회 부흥의 비결을 전문화된 청년 전담사역자 양성이라고 강조한다. 한 청년의 영적 변화는 한 순간의 회심으로 시작되지만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회심 후 그와 가까이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건강한 청년목회를 위해서 우리 교회의 젊은 사역자들에게 눈을 돌려볼 때가 된 것 같다. <편집부>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여의도에서 열렸던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인생에서 제일 바쁜 시점에 집회에 간다는 것은 전혀 나다운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가면서 교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사실 교회 보다는 주로 파라처치(Para-Church) 계열의 대학생 선교단체 IVF 협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겨울비전수련회에서 청년사역의 비전을 받았고, 옥한흠 목사님이 사랑의교회를 개척하셨던 1978년도부터 함께 사역하기 시작했고 2001년에 Young2080단체의 사역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사실 청년사역의 시작은 단지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양육하고 제자훈련을 하는 트레이너의 역할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금의 목회자가 되게끔 하셨다.
Young 2080 단체는 단순한 파라처치라는 정체성에 묶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로컬 처치도 아닌 신교회적인 교회를 위한 파라처치인 ‘플로어 처치’(영문기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 목표 속에서 단순히 청년사역자들을 보내 무언가를 이룩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함께 교회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오로지 교회 중심적인 파라처치, 그것이 우리의 사역철학이다.



청년이 떠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청년들의 교회에 대한 인식은 호감과 비호감이 혼재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안티기독교가 공공연한 인식이 되었다. 이것은 따로 예시할 필요도 없이 다수의 교회 지도층의 자살골과 자책골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삶이 어찌되었건 세상에 대한 이상주의가 가득한 청년의 눈에는 교회가 좋아 보일 리 없다.
두 번째로, 청년 전담사역자의 부족이다. 올해로 필자는 청년목회 35년째를 맞이하는데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하는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단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1990년대 청년목회가 한창 부흥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단의 관심사는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였다. 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 지도자였고 이를 화두로 삼으면서 교단이 가장 먼저 한일은 ‘청년 전담사역자를 세우자’ 이었다. 그때부터 당시 인턴에 불과하던 전도사들이 청년사역을 맡았고 현재의 전임전도사나 전임목회자를 세우게 된 초석이 되었다. 물론 이들은 청년목회에 대한 전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우려도 많았다. 그러나 너도나도 청년 전담사역자를 세우는 자는 분위기 속에서 1-2의 임기를 4-5년으로 바꿨고, 상대적으로 통합측의 청년목회가 약진할 수 있었다.
전담사역자들은 30대- 45세 사이로 정해졌다. 2030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세대는 일명 3045세대 까지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감할 수 있는 청년사역자들이 세워진 교회, 청년사역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격려해준 교회들은 살아나게 되었다.
세 번째로, 청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문제 때문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청년의 특징은 ‘불확실성’으로 요약된다. 일단 청소년기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대학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청년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대학교 졸업을 하면 어느 직장에 들어가야 하나, 무사히 들어갔다고 해도 삶의 많은 부분이 불확실하다.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누구랑 결혼할 것인가, 심지어는 대기업에 들어왔긴 했는데 진정 이게 내 삶이 맞는지, 이 선택이 옳은지, 전부 불확실하다.
예나 지금이나 청년의 문제는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청년목회는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이 어려운 환경은 청년이 모이는 교회에 대한 지표를 더 반짝거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늘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증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한 교회에는 부흥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도 청년이 모이는 교회는 반드시 있다는 소리이다.


필자는 2012년 현재를 청년목회의 ‘중층적인 과도기’ 라고 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세대의 간극이 넓다. 이러한 결과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적인 사고이다.
단순 철학적인 관점으로 절대적인 모든 것에 상대화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청년들의 삶의 방식이자 시대의 정신이 되었다. 예를 들어 <나는 꼼수다> 에 대해 살펴보자. <나는 꼼수다>에서는 ‘이제는 너희들이 원하는 사람을 뽑아라! 기득권을 다 부정할 수 있다! 과거에는 쫄았지만 몰라도 이제는 쫄지 마라! 너희들에겐 SNS란 엄청난 무기가 있잖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꼼수다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내용을 따져보면 왜곡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단지 ‘아니면 말고’의 풍토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 심지어 40대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더 이상은 절대적 가치, 설득력 있는 논리, 확고한 이론적인 것보다는 진실과는 상관없지만 거기에 어필하는 감성, ‘감성’이 먹히는 시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다.
왜 그것을 좋아하느냐? 혹 왜 그것을 좋아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청년들에게 던진다면 그들의 대답은 ‘걍’(그냥의 줄임말)이다. 정작 그것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모르지만 다만 시대적인 분위기가 그러하니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전의 시대인 모더니즘시대에 그 제도가 확립되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로 교회가 변화하는 젊은이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교회를 빠져나간 청년들은 어마어마하다. 그 때문에 우리 Young 2080의 사역자들도 굉장히 좌절을 겪고 필자 또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래도 내 교회는 괜찮아’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전망하건데 지금으로부터 약 5년-10년 정도가 지나고 나면 땅을 치고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 교회의 우선적인 할 일은 청년목회에 위기의식을 갖는 것이다.



성장하는 청년 목회의 공통점



필자는 성장하는 청년목회에는 교회의 세 가지 목회 철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담임목회자와 당회의 청년을 배려하는 목회정책이다. 이것이 청년목회를 위한 토양 작업이다. 대부분 교회 안의 육체적 노동에서부터 온갖 잡무는 청년부가 담당하지만 교회 정책에 있어서는 소외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또 필자가 청년 봉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변화의 매개체’이다. 단순 인력 충원을 위한 봉사이냐 아니면 청년들의 변화의 매개체로서의 봉사이냐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필자는 사람을 세우기 위해 봉사를 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결코 봉사일변도가 되어선 안 된다.
둘째, 사역자들의 전문성이다. 청년목회의 전문성은 어떠한 자격의 유무가 아닌 현장에서 청년들과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냈냐는 것이다. 소위 전문성이란 꾸준히 오래 하면 자연히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문제는 청년사역에 대한 전문성이 슬슬 생기려고 하면 개인적이든 교회적이든 꼭 사정이 생겨 청년 전담사역자가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듯이 교회 차원에서부터 청년목회에 대한 의지가 있는 교회는 청년목회에 엔진을 달아준 효과를 얻고 있다.
셋째, 청년 리더 및 임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는 교회이다. 아무리 담임목회자 혹은 전담사역자가 전문성이 있고 열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청년리더들에게 그 책임과 권한을 위임해야한다. 그러한 책임과 권한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주님의 일을 하려는 용기를 갖게 된다.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추궁하지 않아야 한다.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낫지 왜 능동적으로 일해서 욕먹을 짓을 만들려고 하겠는가.
청년들은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교회의 사역에 ‘감’ 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열매는 목회자에게는 굉장한 동역의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표-1>
*청년목회 성공 tip
-교회 내 청년정책을 세워라
-준`장기의 청년 전담사역자를 양성하라
-청년 리더들에게 일정 부분을 위임하라



청년목회의 전략 ①


:: 전문 사역자를 양성하자



싱가포르의 시티하베스트교회의 콩히 목사님을 예로 들면, 이분은 20대 후반부터 근 20년 동안 교회를 개척해온 분으로 교인의 비율 90%가 청년으로 채워진 젊은 교회이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은 훌륭한 목사님 어느 누구라도 45세를 넘기는 시점에서는 청년들과 이전과 같은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고 옥한흠 목사님의 예를 들면 이분도 본래 청년 전담사역자셨다. 사랑의교회 개척 초기에는 이전과 같이 직접 청년들을 훈련시키고 양육했지만 어느 날 청년리더를 소집하시고는 ‘이제 너희하고는 빠이빠이 이다. 그 대신 청년 전담사역자를 한 사람 세워주겠다.’라고 하시고는 전적으로 위임하셨다.
위임의 당위성은 2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다음 사람이 길러진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아무리 열린 마음을 가진 목회자라해도 나이 차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담임목회자가 뒤로 밀려났다고 섭섭히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야구로 이야기하자면 하나의 야구단에는 선수, 코치, 감독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 이전에 구단주가 없다면 그 야구단은 존재할 수 없다. 즉 담임목회자는 구단주인 것이다. 교회의 청년대학부는 교회의 한 부서이지 자기 완결성을 가진 단체가 아니다. 때문에 누군가 구단주의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금방 무너진다. 그리고 좋은 구단주의 역할은 ‘감독 하나 잘 세워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담임목회자가 청년사역을 주도하는 것도 좋지만, 더 멀리 바라본다면 스마트한 구단주 역할을 하는 게 좋다 말씀드리고 싶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 위임하느냐’ 보다 ‘위임받는 사람이 어느 정도 역량 있느냐’를 봐야 한다. 역량이 부족한데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량에 설교가 주가 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역량은 그 사역자가 ‘얼마나 시간을 낼 수 있는가’ 즉 가용성을 역량의 요소로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유명한 청소년청년사역자의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어느 날 그는 뉴욕거리의 수많은 아이들이 마약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리를 떠돌던 젊은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마약상인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 원인에 의문이 든 사역자는 가장 회원(?) 유치에 탁월한 마약거래 상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도 쉽게 청년들을 유혹할 수 있었느냐?” 그 상인이 말했다. “그 아이들이 뉴욕거리를 배회할 때 우리는 거기에 있었고 당신들은 거기에 없었다.”



즉 ‘거기에 있는가’((Be there)의 문제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청년 전담사역자의 필요성입니다. 전담사역자들의 설교나 강당사역의 역량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런 부분은 담임목회자가 하면 된다. 비록 담임목사의 설교가 너무 은혜로워서 청년들이 펑펑 울며 변화를 작심하였다고 해도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청년들을 변화시키는 결과요인은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사람’에 의해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늘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이 시간에 어디가면 우리 목사님을 만날 수 있어. 내가 전화하면 우리 목사님은 전화를 받을 거야’라는 생각이 박혀 있어야 하고, 또 가보면 그 자리에 있어줘야 한다. 때문에 사역의 질(quality)과 관련이 있는 유용성보다는 양(quantity)의 가용성이 청년목회자에게 필요한 덕목인 것이다. 함께해야 소통은 가능하다.



청년목회 전략2


- 청년 전담사역자에게 시간을 주자



필자가 진행하는 청년목회자 세미나에서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일주일 간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섯 시간밖에 없다면?’이라는 질문이다.
많은 담임목회자들이 빼놓고 계시는 것이 청년 전담사역자의 자기계발 시간이다. 위의 질문에 전담사역자가 대답한다면 주당 다섯 시간은 고작 청년들과 보내는 시간밖에 계산할 수 없다. 그 이면의 설교 준비나 자기계발 등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일체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설교는 담임목회자의 몫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러나 전담사역자들의 미니설교를 위한 준비시간 또한 중요하다. 실제로 청년부의 설교를 진행하다 보면 다른 부서에 비해 다양한 고민과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설교 준비는 물론 상담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담임목회자는 전담사역자들의 이러한 준비 시간을 헤아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담사역자는 청년들과의 만남, 미니설교를 제외하고도 큐티마스터가 되어야 한다. 청년 두세 사람이 모이면 그 안에서는 반드시 큐티가 진행되고 기도회가 만들어진다. 이와 같은 진행을 위해서 준비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 맞다. 아무리 작은 모임일지라도 그 안의 영성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청년 전담사역자들의 준비시간을 담임목회자들이 먼저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래 맞다, 네가 잘해야 청년들을 키울 수 있다!” 그렇게 믿어줘야 한다. 물론 반드시 평가는 필요하다



청년목회전략3


-청년 담당사역자의 장기 임기를 이끌자



청년목회 전략의 마지막은 제자훈련 즉 차기리더 양성이다. 현재의 청년리더들은 지금 학기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스마트한 목회자라면 다음 학기에도 이들이 리더를 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겁니다. 군대 혹은 결혼을 하는 리더도 생기고 직장이나 학업을 이유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특별히 청년부는 1년에 200% 성장을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2년 안에 는 400%의 성장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단 장기적 승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어렵다. 하지만 필자가 거는 전제 조건은 ‘청년목회자가 감이 있느냐’ 라는 것이다. 현재의 전담사역자가 감을 얻게 하려면 그 사역을 계속 해보게 해야 한다. 지금 교회성장연구소와 끊임없이 교류하는 담임목회자들은 교회성장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란 것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청년목회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관련된 프로그램들을 알아보고 자기가 알아서 찾아 훈련도 받아보고 또 맡고 있는 청년들을 데려가서 함께 교육도 받아보면 알게 된다. 감이 생길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을 확신한다. 실제로 우리 Young 2080단체가 늘 개교회에 섬기고 있는 일이다.



청년과의 소통 전략



필자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전담사역자들은 청년들의 ‘고민’(Felt need)을 알고 함께 있을 때 ‘질문’(ask)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청년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창피해서 말하진 못하지만, 속으로 느끼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것을 파악하고 끄집어내야 한다. 대부분 그것은 J.M.S(Job, Me, Sexuality)로 요약된다.



-Job: 자기 진로, 은사 파악의 문제
*적용: ‘내 비전은 무엇인가?’
-Me: 정체성에 관한 문제
*적용: ‘나는 구원받았는가?’, ‘나는 무엇을 더 계발해야 하는가?’
-Sexuality: 성에 관한 문제, 가정`부모와의 소통
*적용: ‘남성(여성)다움은 무엇인가?’, ‘나는 여성(남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떠한 가정을 꾸리길 원하는가?’

둘째, 청년들의 ‘관심사’(Felt Need)를 알아야 한다. 청년의 관심사는 대해선 ‘F.a.s’ 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Fun: 재미가 있어야 한다.
*적용: ‘개그 프로그램은 왜 청년들에게 인기가 있는가?’, ‘왜 그들은 웃는가?’
-Art: 청년 문화 속에는 트렌드가 있다.
*적용: ‘청년들은 비록 짝퉁명품이라도 갖고 싶다.’


-Sports: 특정 운동만이 아닌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놀이
*적용: ‘청년은 힙합댄스에 열광한다.’


그러나 J.M.S와 F.A.S는 접촉점일 뿐이다. 결국은 복음은 접촉점을 통해 소통하여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 청년 정신을 채우자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당시 성령이 임해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 노인들이 꿈꾸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사건을 ‘청년 스피릿’의 충만 사건이라고 칭한다. 청년을 비전을 얻고 노인은 꿈을 꾸는 일은 오로지 성령 충만 만이 전제된다. 청년 스피릿이 충만할 수 있다면 머리가 흰 분들이 많은 교회라 할지라도 그곳에 청년들은 온다. 그곳에서 성령 충만한 어른들의 경륜을 배우며 “우리 권사님 정말 멋있어!” “우리 장로님 정말 멋있어!” 라고 이야기하고, 장년들은 자신들을 믿고 따라는 이들에게 힘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의 목회자 분들이 이 부분을 좀 더 명심하길 바라는 바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현실적인 목회자라면 교회의 청년 성을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인테리어적인 면까지 신경을 쓸 것이고 알아서 청년을 위한 편의도 만들어주고, 동시에 청년목회자의 기도 살려줄 것이다. 사실 한국 교회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청년 전담사역자들이다. 일례로 주일학교 사역자들에게는 집사님들이나 권사님들이 교사를 하는 경우가 있기에 주일학교 사역자들을 지지해주는 서포터 그룹이 있다. 그러나 청년 전담사역자는 서포터 그룹이 없다. 게다가 설정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자리가 위태롭기도 하다. 때문에 인권의 사각지대 속에 있는 청년 전담사역자들의 편이 되어 주는 행동은 담임목회자의 청년 성이자 교회의 청년성이 된다. 한국 교회가 ‘진정한 성령 충만함’ 속에서 담임목회자부터 교인들까지 청년 스피릿이 넘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청년목회 나아가야할 방향



청년목회는 지성과 영성이 균형 있게 통합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요소가 ‘훈련’이다.
청년들이 어느 집회에서 어느 설교에서 은혜를 받았다 해도 안타깝게도 그 은혜는 오래가지 않는다. 은혜를 받기는 하지만 그 즉시 그대로 행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은혜는 하나의 시발점이 되지만 내 안에 체질화 되어 있는 악한 습성은 너무나도 깊게 박혀있다. 그 습성을 바꾸는 일이 훈련이다. 즉 큐티나 기도 혹은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든 지속적으로 자신의 체질화 되어있는 악한 습성을 바꾸게 도와준다.
물론 이러한 내적훈련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외적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외적훈련은 머릿속과 가슴속의 학습화된 체질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청년을 강인한 사역의 현장으로 내보내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숙자들을 돕는 ‘거리의 천사들’이라는 단체가 있다. 그곳은 대학`청년들 3000여 명 정도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단체인데 하루에 20명씩 팀을 짜서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노숙자를 위한 봉사를 한다. 이 직접적인 현장에 가서 봉사를 하는 것이 외적훈련이고 젊은이들의 변화를 도울 수 있다. 그냥 보내는 것만으로도 체험이 되지만 물론 교역자가 함께 해야 한다. 청년들은 그 노숙자들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 또한 ‘영적인 노숙자’라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 ‘하나님이 지금의 나를 보며 저런 마음을 갖으시겠구나. 내가 바로 노숙자구나.’ 이것은 엄청난 자기 발견이다.
이외에도 새터민봉사나 해외선교의 현장에서 이러한 자기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년은 그 누구도 자신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함으로 하나님 역시 우리 자신에게 느끼는 거절감과 상처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또 느끼는 훈련이 필요하다.


청년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그러나 필자는 요즈음의 청년들을 A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콩글리시로 ‘아픈’ 세대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신 김연아와 박지성과 같은 세계적인 슈퍼 청년스타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것을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고 무엇인가 신장이 된 것만 같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돌아볼 때 88만원세대라는 낙인이 찍혀있다. 예전에는 대학만 나오면 직장을 골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스펙을 높이 쌓아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며 진로도 확실치 않다. 또 과보호 탓에 쉽게 상처받고 겁도 많다. 그래서 요즘 청년을 위로한다는 책들이 연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와 있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프니까 청춘이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 아픈 것이라고 말하지만 말고 이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다가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픈 A세대를 들여다보며 저들을 은혜의 길로 치유자로 바꾸는 교회가 생겨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의 청년들을 살아날 것이다.



<본 원고는 인터뷰를 재구성한 글입니다.>





고직한 선교사 프로필
고직한 선교사는 연세대학교와 호주 SMBC를 졸업하였고 IVF와 학원복음화협의회, 사랑의교회 청년대학부를 지도하면서 지난 30여 년간 수많은 청년사역자들을 길러냈다. ‘원큐 세미나’, ‘젊은이를 깨운다’등의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으며 현재 청년목회자연합 Young2080의 상임대표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맨땅에 헤딩하지 말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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