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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넥스트 스텝> 그 많던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_김도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98    등록일시 : 2016-08-05    인쇄

더 넥스트 스텝



그 많던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글 김도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왜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극단적인 논리이다. 다종교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청년들이 교회로 들어온 적도 없고 또 교회 안의 ‘모든’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 적도 없다. 다만 오늘날 교회당 안에서 훈련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던 청년들은 서서히 교회를 등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가?’와 같은 질문은 청년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기독교의 모습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청년 세대가 교회에서 활발하게 배우고, 활동하고, 헌신하는 것이 그 교회의 건강을 측정하는 중요한 바로미터(Barometer)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청년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의 종교배경에 대한 그림을 보면 요즘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개신교 기독교인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으며, 교회에 대한 이미지도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의 설문을 실시한 학원복음화협의회(글로벌리서치와 목회사회학연구소에 의뢰)의 “한국 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기득권층 옹호, 교회세습, 비리 연루 등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가 기독교 신자 감소의 최대 원인(61.6%)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독교의 교리만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적인 포교활동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고 38.8%의 조사에 응한 대학생들이 답하였다.” 마음이 아프더라도 이러한 통계를 보며 변화를 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비단 한국에서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데이비드 키네먼(David Kinnaman)이 ‘그 많던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런 말을 하였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이 자신의 신앙 여정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성경의 언어와 비슷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교회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며 “때로는 기독교 자체를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참으로 충격적인 보고이다. 이제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것이 더 슬픈 현실이다. 기독교 리서치 그룹의 대표인 키네먼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첫째, 오늘의 청년세대(일명 모자이크세대)는 매우 창조적이고 문화 참여 욕구가 강한 이들인데, 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교회가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지나치게 과잉보호하여 청년들의 전투력과 야성을 죽이고 있다.
둘째, 청년들이 느끼기에 오늘의 교회는 깊이 있는 믿음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얼마나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제대로 생각하게 돕지 못한다.
셋째, 교회는 신앙과 과학이 대립된다는 이야기를 종종한다. 교회는 다음세대인 청년들이 믿음의 문제와 과학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예언자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넷째, 오늘의 교회는 청년들이 갖고 있는 성에 대한 관심과 질문에 대하여 답을 주기 보다는 억압한다는 느낌을 더 준다.
다섯째, 오늘의 교회는 문화에 대하여 배타적이어서 열린 태도, 관용, 수용을 강조하는 문화를 접하는 젊은이들에게 비타협적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교회의 독특함을 강조하면서도 이방인들을 받아들인 그분의 수용성과 혁신적인 태도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여섯째, 오늘날의 교회는 청년들이 가진 마음의 질문과 의심이 일어나는 것을 억누르고 그러한 것을 표현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어찌하면 청년들이 자신들의 의구심과 질문을 정직하게 표현하고 더 확고한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교회가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키네먼의 해석은 청년이 교회를 등지는 이유에 대하여 합리적인 답을 찾게 도와준다. 키드먼은 위의 여섯 가지 문제의 핵심 중의 하나를 과잉보호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다. 교회가 청년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과잉보호인데, 이는 그들로 하여금 전투력을 상실케 하여 세상을 무서워하고 결국 세상과 분리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은 과잉보호에 지쳐 교회 바깥(전통적인 테두리 바깥)에서 다른 스릴을 찾게 되고,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기도 한다. 더욱이 과잉보호는 “재능이 많고 창조적인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를 떠나게” 만든다. 그들은 대개 자신들의 놀라운 재능을 오직 교회안의 일만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요청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창의적인 기독 청년들로 하여금 보이는 교회 안과 보이지 않는 교회 밖의 세상에서도 활발하게 일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장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키드먼의 제안을 해석해 보면 과잉보호라는 보호막을 치는 것에서부터 벗어나 통찰력과 야성을 회복하게 하는 시도를 해야 함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깊이 없는 믿음 추구에서 벗어나 신앙과 삶을 연결시키고, 통합하는 믿음을 추구하게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뿌리가 깊지 않은 얕은 신앙추구에서 탈피하여 뿌리 깊은 영성을 추구하는 길을 모색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큐티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만약에 성경을 단순히 읽고 가볍게 묵상하는 수준에 머무는 큐티에 만족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기독교는 더욱 기독교다워져야 한다. 물론 무엇이 기독교다운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는 상대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지나치게 환한 조명과 현대식 혹은 극장식 건물로 예배당을 짓고 전통적인 예배 형식도 거의 다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교회에 대하여서는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교회는 엄숙한 분위기와 적당히 밝은 조명 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이들이 각자 마이크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복음성가를 부르는 것보다는 음량과 곡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경건한 분위기의 찬송과 예전을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키네먼은 “의례가 실종”된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키드먼은 “과학에 대한 태도와 성에 대한 태도도 진지하게 제고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면서도 과학적 증거에 대한 합리적인 자세를 동시에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과학과 하나님을 동시에 믿을 수 없다고 교회에서 배웠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전,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다. 청년들이 가진 과학에 대한 질문을 그저 무시하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것을 신앙 대 이성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마치 기독교신앙이 반과학적/반지성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아마도 수많은 설교자들이 과학적 사고를 하는 데에 매우 익숙하지 않으며 대개 인문학적인 소양을 가진 이들이 목회자가 되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즉, 과학에 대한 청년들의 호기심과 열망에 대하여 청년 사역자들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교회는 과학적 사고를 하는 청년 사역자를 양성하고, 과학적 연구를 하는 기독 청년들을 격려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팎에서 일에 대하여 칭찬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줄 필요가 있다. 과학과 신앙은 결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에 대한 태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키드먼은 강조한다. 혼전 섹스나 포르노 중독과 같은 성적 문란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번성케 하시려는 의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지도해야 할 것이다. 성을 억압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개념을 따르기 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결혼한 부부에게 주시는 축복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 리디머교회의 팀 켈러(Tim Keller) 목사가 동성애는 당연히 환영하지 않고 동성이 섹스를 하는 것은 죄로 규정하지만, 하나님은 동성애자들도 사랑하신다는 해석을 한 영상에서 주는 교훈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님은 그들도 변화되어 돌아오기를 원하실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키드먼은 낙태를 한 청년들이 교회 안팎에 적지 않은 현실 속에서 그들로 하여금 사랑의 하나님께 나오도록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은 교회가 이 시대에 고려해 보아야 할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모이는 교회에서는 청년들을 사랑으로 잘 돌보고, 영적 능력을 경험하며, 험한 세상 가운데에서 빛의 청년, 소금의 청년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세상 가운데로 파송되어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결코 세상을 망하고 썩어질 곳으로 단정하여 속히 ‘교회라는 방주’로 옮겨 와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도록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보이는 교회, 모이는 교회는 너무도 중요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말씀을 배우고 체험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또한 그곳에서 성도들은 진정한 섬김과 교제를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는 건물도 제도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교회는 모이는 교회이면서 동시에 흩어지는 교회이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이 된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한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교회는 그(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모이는 교회 밖에 존재하는 지역의 사람들을 대상화/타자화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 밖 사람들을 오직 전도할 대상으로만 본다든지,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섬길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교회는 전도나 섬김을 타자를 위하여(for) 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 하는(with) 사고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전도가 중요하나 함께 하는 삶 또한 중요하다. 지역에 있는 교회는 지역을 전도의 대상으로만 삼지 말고 전도와 더불어 잘 어우러져서 사는 삶도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디아코니아 중심의 사역에서 코이노니아를 바탕으로 한 디아코니아적 사역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는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세상(Cosmos)에서 이웃과 함께 공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살아감으로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이렇게 신앙과 삶이 통합될 때 교회를 떠나는 수많은 청년들이 다시 교회가 되어 교회당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다시금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 확장하고 세워나가는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을 믿고 소망하며 이 글을 시편의 말씀과 함께 마친다.


“주의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3)


김도일 교수
미국 바이올라대학교와 프린스턴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김도일 교수는 PSCE(Presbyterian School of Christian Education)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회장과 호남신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대외협력처장과 기독교교육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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