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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
[심방의 추억 - 교인관리]심방 이후의 교인관리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31    등록일시 : 2006-01-27    인쇄


심방 이후의 교인관리


이강일 목사 샌프란시스코 한인장로교회, kangil@2kangil.com

들어가면서



옛날 영화를 보면, 의사와 간호사가 가방을 들고 환자 집에 방문하여 진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방도 왕진하는 의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자고로 명의(名醫)란 첫째, 진단을 잘 해서 그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병명을 파악한 뒤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이 의사의 자세일 것이다. 목사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성도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사람을 치료하는 적절한 말씀을 찾아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이 심방의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문제는 단 한 번의 치료로 완쾌되는 환자도 있지만 대다수의 환자는 계속적인 만남을 통해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방 역시 만남도 중요하지만 그 사후관리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심방 그 이후의 관리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문제제기


필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혹자는 이민교회에 무슨 심방이 되냐고 반문하다. 대개의 목회자들은 이민교회에 심방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생각에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이민교회라는 단어의 문제다. 교회면 교회이지 무슨 이민교회인가? 그렇다면 농촌교회, 도시교회, 어촌교회... 이런 식으로 이름들이 나열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핑계를 댈 것이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힘들어 사역이 힘들다고 말하면서 사역이 안 되는 이유만 나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환경에 지배를 당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환경을 덮을 수 있는 은혜만 있다면 이민교회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환경이 아니라 환경을 덮을 수 있는 은혜가 있는가? 즉 어느 교회든지 문제는 있다. 문제에 끌려 다니지 않고 문제를 덮을 수 있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사모하는 것이 ‘Keyword’일 것이다.

사역배경


미국 LA의 남가주사랑의교회 청년부 담당목사로 5년 간 섬기다가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교회에 부임한 것은 지난 2004년 8월 15일이다. 부임당시 주일학교 포함해서 40명도 안 되는 이민(?) 교회 중 하나였다. LA에서 700여명의 청년들과 힘있게 사역을 하다가 40여명이라는 교회에 부임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하지만 지금은 성령님의 기적의 손길을 맛보고 있다. 지난 2005년 12월 26일부터 일주일 간 있었던 특별 새벽부흥회에는 이곳 한인사회에 작은 기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평균 출석 157명에 개근이 141명이라는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을 현장에 있었던 성도들은(특별새벽부흥회) 다같이 목격하였다. 특새 기간이 우기철이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가 내렸다. 하지만 환경이 우리를 막지 못했다. 즉 위에서 언급했듯이 환경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었다.


1년 4개월만에 40명의 성도가 출석인원 200여명 이상, 즉 5배 이상 증가한 이유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성령님의 사역을 한번 되새기고 싶어 “심방의 사후관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기쁘게 이 글을 쓰고 있다.

역시 이민 교회


부임당시 심방 할 성도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학생, 노인들을 제외하면 20여명 되는 성도 중 마땅히 심방을 갈 집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교인들 역시 심방받기를 부담스러워 했다. 심방은 ‘집을 깨끗이 치워야 하고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 목사님의 용돈(?)도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성도들의 인식을 고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다수가 한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줄 아는데, 이민교회의 현실은 한국교회보다 더 열악하다. 하지만 계속 강조하듯이, 환경에 구애받지 않기로 했다. 심방을 내가 먼저 받기로 했다.

역(逆)심방


가정을 오픈하지 않는 성도들에게 심방을 구걸하지 않았다. 반대로 목사 집으로 식사를 초대하였다. 한마디로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 번에 한 가정씩만 초대하였다. 그래야 그 가정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때로는 세족식을 거행하면서 목사가 성도 앞에 무릎 꿇고 그들의 발을 닦아주었다. 많은 분들이 ‘목사님 집에 방문한 것이 처음이다’, ‘목사님이 이렇게 사는 줄 처음 알았다’... 한마디로 성도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초대하기 전에는 심방을 가지 않았다. 그들이 스스로 초대하기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만의 “심방론”


필자는 아픈 사람이 있으면 즉시 심방을 간다. 하지만 일반 심방은 요청하지 않는 이상 가지 않는다. 목회의 고집이라 할까? 나는 심방은 목사가 하나님의 심정으로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축복받으려고 하지 않는 집에 왜 가는가? 물론 유고(有故)심방은 언제든지 간다. 하지만 일반 심방은 그들이 간절히 요청해야 간다. 할 말은 아니지만 배짱 목회를 하고 싶었다. 의사가 길거리에 나가 환자를 찾는 것 보았는가? 언제부터 일부 교인들이 그렇게 오만해졌는지 모르겠다. 목사를 거지처럼 아는 것을 고치려하기보다 먼저 우리 집에 초대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놓는 사역을 먼저 했다.

배짱 심방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들이 조금 늘다보니, 이제는 심방 받으려면 여간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힘들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배짱 심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1월 청년부만 대심방한 적이 있다 그때의 슬로건이 과히 충격적이었다. “심방을 받든지! 교회를 떠나든지!” 참고로 청년들 대심방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삯군 목사인지 몰라 가슴을 치면서 심방을 했다. 그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청년부 사역자에게 맡기고 무관심하게 버려둔 고아와 같이 방황하는 청년들을 발견한 것이다. 청년심방 이후 이제 청년들이 교회의 기둥으로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목사의 심방을 사모하게 되었고 좋은(?) 시간은 미리 정하지 않으면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하는 배짱목회가 되었다.

지겨운 서론을 지나 이제 본론을 다루고자 한다. 심방의 약속과정이나 심방의 내용은 생략하겠다. 다른 필자들이 앞에서 논하였을 줄 알기에 “심방 그 이후”에 관해서만 논하겠다.

심방 그 이후

① 사진 사역
심방 때는 가급적 다른 사람은 동행하지는 않는다. 깊이 있는 대화가 불가능하기에 사모와 단둘이만 심방을 간다. 사모가 심방 예배시간에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홈페이지에 심방사진을 올린다. 교회 홈페이지(www.sflove.org)에는 심방일기라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 심방 다녀온 사진들을 올리면서 그 가정을 다시 한 번 축복하는 글을 남긴다.


재미있는 점은 그 심방일기의 사이트 조회 수가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이곳은 미국이다. 많은 분들이 한국에 연고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장기간 서로 보지 못했던 얼굴을 사진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 중에 심방일기에 올려놓는 사진과 글을 보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잘 정리하여 모든 성도들이 개인앨범을 만들고 있다. 멀리 이사를 간다든지 한국으로 귀국할 때 사진첩을 만들어 주면 그들이 얼마나 감동해 하는 줄 아는가?

② 편지 사역
단순하지만 잘 하기 힘든 사역이다. 심방을 가면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난다. 심방을 다녀온 뒤 그 가정에 감사의 편지를 드리는 것이다. 공문서 같은 편지가 결코 아니다. 정이 넘치는 글을 드린다. 성도는 별것 아닌 것에 목숨거는 것을 아는가? 이런 편지 한 장은 그들의 마음을 여는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타지에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그 부모님들이나 자녀들에 편지를 보내면 감동의 수준에서 졸도(?) 수준으로 변한다. 예전에는 ‘고객(성도) 만족’ 정도의 서비스지만 요즘은 ‘고객(성도) 졸도’ 수준의 사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감동이 없는 사역은 노동에 불가하다고 늘 외치고 다닌다. 감동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편지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행정기관에서 보내는 공문형식의 문장과 틀에 박힌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일전에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와 함께 선물까지 받았다. 심방 이후 부모님들에게 자녀들의 근황과 함께 심방 사진을 같이 보냈었는데 이런 내용의 답장이었다. “... 저는 27년 동안 장로로 섬기면서 저희 목사님에게 이런 편지 한 장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섭섭한 감정도 없습니다. 늘 그래 왔기에 당연히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목사님의 편지와 자식의 사진을 보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이 글을 읽는 목회자 중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목회가 얼마나 바쁜데 편지 쓰고 사진을 찍고 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나는 부교역자들에게 과감하게 지적한다. “목사처럼 편한 사람이 어디 있어! 심방 가서 그들의 환경을 봐라. 그들은 1불 한 장 벌려고 아둥바둥하는데 목사들이 복에 겨워 피곤하다 시간 없다 하는데 그런 목사치고 목회 잘하는 목사 있으면 이름을 말해 봐!” 호통을 치곤 한다.


용서하고 읽기를 바란다. 나는 내 자신에게 늘 이렇게 외친다. “목사처럼 편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교인들의 오늘도 죽을 고생하고 사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이만하련다. 주제와 관계없지만 목사가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한다.

③ 심방일지
심방 즉시 교인관리 프로그램에 심방본문과 찬송을 기록한다. 다음 심방 때는 질문한다. 지난번의 심방 때 무슨 말씀을 전했는지 질문하기에 성도들이 더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심방 일정을 다 공개한다.


그래야 목사가 보호받을 수 있다. 부잣집만 심방 간다느니, 중직자 집에만 간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소문 때문에 힘들지 않아도 된다. 소수의 사역자들이 아직도 컴맹이라는 사실을 알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있다. 컴퓨터는 사역에 아주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본 교회 성도들을 분석한 결과 교회를 정하는데 인터넷을 보고 결정한 경우가 무려 30%가 넘는다. 물론 성도 중 컴맹들을 위해 교회 게시판에 언제든지 심방을 신청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전쟁에서 승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는 전쟁의 작전일 것이다. 작전을 잘하면 전쟁에 쉽게 이길 수 있다. 심방에 있어서 컴퓨터를 최대한 활용을 한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www.sflove.org)에 설명되어 있다.

마지막, 잘못된 시작


심방 후에 그 사후처리는 심방을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우편 배달부식으로 어쩔 수 없이 가는 심방에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사교적 심방은 심방 가서 잡담수준의 이야기를 하고 밥만 먹는 심방으로 무슨 사후 처리가 필요한가? 정치적 심방은 교회 안에서 세력을 구성하고 내 편을 만들려고 찾아가는 심방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는가? 아비의 심정, 목자의 마음으로 가는 심방이야말로 그들의 영혼을 살리고 계속적인 사후처리가 되는 것이다.

글을 맺으면서


필자는 담임목사로서는 초년생이다. 목회의 연륜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이제는 목회자가 바뀔 때다.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르는 동역자들을 가끔 만난다. 심방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성도들의 수준이 사역자들의 수준보다 훨씬 높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행정적인 조직과 사역으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 심방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심방은 그들의 마음 문에 빗장을 지를 수도 있다. 심방이후에 성도들에게 정성어린 감사의 편지와 함께 예배 사진을 액자에 넣어 보낸다든지, 홈페이지를 통해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면 그들은 물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역의 동역자가 된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심방이 계기가 되어 헌신적으로 섬기며,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하는 성도들로 바뀌고 있다. 심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심방 이후 어떻게 했는가? 한번 자문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심방하고 오면서 내가 할 임무는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일개 직장인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역자들이다. 심방 후 더 감동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그들은 감동을 기다리고 있다.


끝으로 한국에 있을 때 모 전자회사에 제품 서비스를 받는 적이 있다. 2-3일 후에 회사에서 직접 전화가 왔다. 서비스 받은 제품에 문제가 또 없는가? 직원이 친절하게 했는가? 등 애프터 서비스를 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 나도 일류회사 서비스 직원처럼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하였기에 목회는 성직이 아니라 서비스직이라 생각하고 오늘도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행복해 할까 하는 고민으로 이 글을 마친다.


Key Point Box


심방의 사후관리, 이렇게 해보자


1. 심방을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홈페이지에 올리고 지속적인 교제를 하라.
2. 심방 이후 심방 다녀온 가정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 보라.
3. 심방일지를 철저하게 기록하여 관리하라.
4. 심방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하라.


이강일 목사
총신대학교 졸업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호주장로회신학교 수학
미국 Fuller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박사
내수동교회, 수영로교회 사역
미국 남가주사랑의교회 청년부담당목사
현 샌프란시스코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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