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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 <心심 房방 : 마음의 방을 열다>_ 장례심방_임학순 목사(대원교회)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78    등록일시 : 2013-11-28    인쇄

특집 <心심 房방 : 마음의 방을 열다>_ MAIN SUBJECT. [장례 심방]



삶의 위기 가운데 하나인 장례,
유가족 심방



글_임학순 목사(대원교회, 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상담 겸임교수)



심방은 목회의 본질이다
대원교회는 상담목회를 지향한다. 상담목회란 치유와 돌봄의 목회를 뜻한다. 인위적인 교회성장에 얽매이지 않고 한 사람 한사람의 성도를 잘 돌보고 치유하는 것을 목회의 본질로 여기고 사역하고 있다. 상담이라는 것은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 사이의 교제를 통해서 발전적 변화를 이루어 내는 과정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심방은 찾아가는 상담이고 한 사람의 영적 혹은 인격적 변화를 이루기에 목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목회자들은 심방사역이 현대의 목회환경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심방사역을 협력 목회자나 혹은 평신도들에게 맡기고 설교와 제자훈련 같은 다른 사역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분주한 현대 목회에서 시간소모가 많은 심방사역에 집중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대형화되는 도시 교회 환경 속에서 한 개인에게 관심을 갖는 심방사역은 과연 버려야 할 지난 시대의 유물인가? 현 시대에서 심방목회는 진부하게 여겨지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목회가 무엇인가? 목회란, 한 사람의 영혼을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이런 가정을 한다면 한 사람의 영혼을 찾아 돌아보며 상담하는 심방목회야 말로 가장 목회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치유와 돌봄에 있어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목회의 대상인 양을 바로 아는 것이다. 성도들의 삶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그들을 인도할 수 있겠는가? 심방사역이 중요한 것은 바로 목사가 성도를 알 수 있는 최선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목양이란, 양을 돌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성도를 찾아 돌보는 심방이야 말로 목회의 본질이다. 목사는 심방을 통해 진정한 목양의 목회자가 되는 것이다. 한 마리의 양을 돌보기 위해 산을 넘고 내를 건너는 목자처럼 상처 입은 한 성도를 찾아 심방하며 위로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가장 중요한 목회의 본질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장례 심방이란?
심방은 평상시에 영적 성장을 위해 하는 일반 심방과 위기에 직면한 사람을 돌보는 위기 심방이 있다. 한 사람이 겪는 위기 가운데서도 가장 힘겨운 것은 가장 가깝고 중요한 사람과의 사별로 인해 생기는 위기일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을 돌보는 목사는 죽음의 위기를 당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죽음이라고 다 같은 슬픔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는 좋은 죽음이 있고 나쁜 죽음이 있다. 준비된 죽음과 전혀 예기치 못한 죽음이 있다. 사별에 대한 목회자의 반응은 각 사람의 죽음의 성격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사별의 위기를 당했을 때 보이는 반응은 경우에 따라 크게 다르다. 예를 들면 유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물질적 자원들, 죽은 자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질과 시간, 사망의 적시성, 죽음의 성격 등에 의해 반응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사별에 대한 유가족의 반응을 다방면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죽은 자의 유가족은 죽은 자의 임종단계와 유사한 사별의 임종단계를 거치게 된다. 즉 유가족들은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 Ross)의 연구처럼 죽음의 현실 앞에 부정, 분노, 타협과 우울의 단계를 거쳐 사별을 수용하고 그것에 적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의 급격한 비탄 반응
준비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극심한 슬픔과 육체적인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린데만(A. Lindemann)의 연구에 따르면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경험한 유가족들은 흔히 다음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된다.
①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징후로 목이 조이고 호흡이 거칠고 잦아지며 한숨이 나오고 공복감이 느껴진다.
② 죽은 사람의 이미지에 전적으로 몰입된다.
③ 강력한 죄책감에 빠져든다.
④ 미워하고 적대시 한다.
⑤ 방향성을 잃어버린 행동의 변화가 있다.
⑥ 이러한 증상은 위기를 당하자마자 나타날 수도 있고 지연되거나 과장되거나 또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
⑦ 특수한 증세 대신에 슬픔 징후의 특수한 측면이 고인에 대한 왜곡된 상(像)으로 나타날 수 있다.
⑧ 적절한 처방을 통해서 왜곡된 상들은 정상적인 슬픔의 반응으로 변화될 수 있다.


급격한 슬픔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전인적 인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한 위기를 당한 사람이 그 슬픔의 반응을 즉시 표현한다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비신앙적인 것도 믿음이 연약한 것도 아니다. 정상적인 슬픔의 표현일 뿐이다.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나 외부적인 조건 때문에 제때 슬픔을 표시하지 못하면 병적인 후유증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장례 심방의 과정은 죽은 고인에게 몰입된 심리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고립된 관계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가령 장례식을 치루는 동안 체면이나 의례 때문에 마음껏 울지 못했거나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게 되면 장례식을 치르고 난 몇 주 후에 슬픔이 복받쳐와 내부적으로 소화가 안된 억제된 감정을 뒤늦게 처리 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죽은 이에 대한 죄책감도 겸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죽은 이가 쓰던 물건에 집착하게 되거나 그가 하던 행동을 되풀이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이미 정상적인 상태를 상실했기에 죽은이의 왜곡된 상(像)을 실상과 혼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장례 심방시 목회자는 유가족의 급격한 슬픔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병적인 반응을 예방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 시키도록 해야 한다.


정상적인 사별 반응
죽음은 사건이 아닌 과정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과정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듯 혹은 노후를 준비하듯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급격한 슬픔을 가져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삶을 새롭게 인식하며 영적인 성장을 경험한다.
바울비(Bowlby)는 정상적인 사별 반응으로 ‘항의와 부정’, ‘절망과 붕괴’, ‘재조직의 과정’을 갖는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는 가족들은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부정하고 하나님과 의료진들 혹은 목회자에게 항의하기도 한다.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현실 앞에 절망하고 심한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고 재조직의 과정을 경험한다.
클라인벨(H.J. Clinebell)은 다음의 다섯 단계로 죽음에 대한 유가족의 반응을 이해하고 있다. 이때 심방하는 목회자가 취해야 할 태도를 가르쳐 준다.
① 상실의 현상에 충격, 무감각, 거부감을 느끼다가 서서히 용납된다. 목회자는 이들을 찾아 심방하고 돌보며 함께 있어준다. 이들에게는 실제적인 도움, 영적인 위안이 필요하다.
②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경험하고 표현하다가 처리한다. 목회자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보다 그들의 고통스런 마음을 주의깊게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③ 상실의 용납과 자신의 생을 상실의 상황에 적응시키며 결단을 내리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한다.
④ 더 광범위한 신앙과 의미 관계에서 자신의 상실의 의미가 사라지고 거기서 배운다. 목회자는 이 과정에서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며, 삶과 신앙에 대한 영적인 성장의 제공이 필요하다.
⑤ 비슷한 상실을 당한 이웃을 찾아 서로 돕는다. 목회자는 애통의 경험을 넘어서 다른 사람을 돕도록 북돋아 주는 목회가 필요하다.
결국 클라인벨에 의하면 ‘충격’ → ‘애통’ → ‘회복’ → ‘성장’이란 도식이 성립 된다.


병리적인 사별 반응
가끔씩 준비되지 않은 죽음으로 인해 병리적인 사별 반응을 보이는 유가족들이 있다. 사고로 참혹하게 죽었다든지 자살을 했다든지 일반적이지 않은 죽음은 그만큼 유가족들에게 크나큰 상실과 아픔을 경험하게 한다. 비탄 그 자체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다. 다만 비탄의 강도가 너무 크거나 사람과 사회 혹은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 죄책감, 불안, 우울의 정도가 심각하고 지속적일 때 비탄 반응은 병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병리적인 반응의 근원이 되는 미해결된 사별 반응을 이해할 때 올바르게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① 과장된 비탄 반응
가장 공통적인 병리반응 중의 하나는 비탄 반응이 만성화하여 우울증의 형태로 긴장되는 데에 있다. 린데만은 병리적인 과장형태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 상실감이 허용될 수 없을 정도의 지나친 행동(Over Activiting)
- 정신적, 신체적 질병
- 친구나 타인에 대한 관계의 부정
- 특정한 사람에 대한 강력한 적개심(Hostility)
- 사회적 상호 작용의 상실
- 사회적, 경제적으로 상호 부합되지 않는 유해한 활동에 종사
이러한 미해결의 사별반응은 악몽, 공포, 분노, 죽음에 의하여 죄책감을 해결 하려는 자살의지의 감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


② 자아의 붕괴
불안이나 죄책감에 의한 사별 반응은 외부 세계에 투사되어 망상증이나 피해망상증으로 대체된다. 고인과 유가족 간에는 자아(Ego)가 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유가족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결국 유가족은 죄책감으로 인해서 심리적으로 공포감에 휩싸이고 결국 현실의 자아를 붕괴하게 된다.


③ 병리적인 동일시
생존자는 고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분화되지 못한 자아로 인해 그의 환상의 세계에서 고인을 마치 생존해 있는 존재처럼 여기게 된다.


④ 심리학적 발달의 저해
개인의 성숙을 저해하는 신경증적인 사별반응 중의 하나는 생존자가 아직 미성숙한 단계에서 사별로 인하여 더 이상 발달하지 못하고 고착(Fixation)하게 되는 경우이다. 사별은 어린 자녀들에게는 위기, 충격, 위협이기 때문에 그 수준에 머무른 채 더 이상의 발달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⑤ 사별 반응의 부제나 연체
정상적인 사별 반응의 왜곡 또는 변형이며, 반응되지 않는 감정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양상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과소 반응은 병리적인 현상이 된다. 그러므로 사별에 대한 충분한 슬픔의 표현과 처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장례 심방의 실제
목회자의 중요 임무 중의 하나는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을 돕고 슬픔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참된 친구가 되어주며 그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대개 이웃의 아픔을 깊이 느끼며 고통당하는 인간에게 치유와 화해를 불러일으키기 원한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당하는 가장 큰 위기라고 퀴블러 로스(Kubler-Ross)는 말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모든 인간은 싫든지 좋든지 종국에 가서는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죽음과 그에 수반되는 사별이라는 위기상황은 사람들이 당면하는 위기 가운데서도 가장 큰 위기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병상이나 임종자리 혹은 사고에 의한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서 있을 경우에 올바르게 위로해 주기 위하여 죽음이란 수수께끼에 관해 알아야만 한다.
구나라트나(Gunaratna)는 “우리는 죽음을 이해함으로써 삶을 이해한다. 죽음은 넓은 의미에서 생명의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로 삶과 죽음은 동일과정의 양단이며 죽음의 목적을 이해함으로 우리는 삶의 목적을 이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삶의 방법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지며, 반대로 죽음에 대해서 갖고 있는 신념에 따라 삶의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죽음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예컨대 한 사회의 가치구조, 개인의 종교, 지위, 신분, 역할, 인생관, 성별, 사회계급, 연령, 심신의 건강, 교육수준, 성패(成敗)경험, 인간관계 등에 의해 죽음의 의미는 결정된다. 그러므로 죽음의 의미와 현상들을 잘 이해할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에 대해 올바르게 숙고한다면 죽음 앞에서 하게 되는 상투적인 빈말과 그릇된 위로 대신 죽기 전 삶을 더욱 영예스럽고 의롭게 영위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옥과 심판 등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도 가능케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의 삶을 더욱 보람 되도록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인간이면 누구나 생에 있어서 마지막에 직면해야 할 가장 괴롭고 고독한 경험이다. 오늘날 목회현장은 죽는 자와 슬퍼하는 유족들을 위한 목회자의 돌봄이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대원교회의 장례심방
상담목회를 지향하는 대원교회는 외형적 성장보다 한 사람을 돌보는 치유와 돌봄의 목회를 추구한다. 따라서 심방을 찾아가는 상담으로 규정하고 상처입은 성도를 치유하며 돌보는 심방목회를 목회의 본질로 삼고 있다.
대원교회는 성도 가운데 장례가 발생하면 최소한 7차례의 심방을 한다. 장례예배는 고인의 신앙과 삶을 추억하고, 충분히 가족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게 노력한다.
첫번째, 임종 전 가족들과 함께 고인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위탁하는 임종예배를 드린다.
두번째, 임종하면 찾아가 가족들과 함께 임종예배를 드린다. 임종예배시 슬퍼하는 가족들에게는 마음껏 슬퍼하고 눈물을 흘릴수 있는 시간을 주며, 고인이 그들의 삶에 미친 영향과 관계의 친밀함을 충분히 표현할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세번째, 다음날 아침 시신을 준비하여 관에 모시고 장례를 준비하는 입관예배를 드린다. 입관예배 시에는 염을 하고 수의를 입힌 후 얼굴 부분만 남겨둔 채로 입관예배를 드린다. 보통 염은 병원이나 장례장에서 집행 하기에 담당 직원들에게 부탁하여 시신의 얼굴부분만 남겨두고 염과 수의를 모두 입힌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고인의 영혼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 후 가족들이 한 사람씩 고인과 지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다. 슬퍼하는 가족들에게는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가족들에게 고인이 어떤 분이었는지 나눔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
네번째, 입관예배를 드린 그날 저녁에는 성도들과 함께 위로예배를 드린다. 위로예배시 고인이 평소 즐겨 부르던 찬송을 많이 부른다. 그리고 이 시간에는 성경적인 죽음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유가족들이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슬픔을 이길 수 있도록 격려한다.
다섯번째, 사흘째 아침에는 발인예배가 진행되는데 이 예배는 서양에서 말하는 장례예배이다. 대원교회에서는 권사직분을 받은 사람들의 장례는 교회에 들려 예배를 드리고, 장로들의 장례는 교회 교육관에서 장례예배를 진행한다.
여섯번째, 장지에 가서는 하관예배를 드린다.
일곱번째, 하관예배를 드리고 사흘이 지난 후 가정을 방문하여 위로 심방을 한다.
사별은 인간 누구에게나 순식간에 타격을 주는 심각한 위기이며, 사별을 예방하는 길은 이 세상에 없다. 사별한 가족들이 슬픔과 상실을 해결하지 못하고 지연될수록 그 사람의 전인건강은 더욱 심각하게 악화된다. 사별로 말미암은 절망 가운데 처해 있는 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바른 의미 이해를 통해 위기의 과정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대응적 태도,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의미는 자기 자신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사별의 고통을 건전하게 처리하도록 도와줌으로 건강한 성장의 길로 이끌어야할 사명이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사별을 한 유가족들에게 적합한 위기상담적 역할을 통해 사별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 차원 높은 전인적 성장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나아가 모든 인간은 어떠한 고통에도 창조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모든 고통 가운데서 외면하시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친히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장례 설교(예문)


*다음의 장례 설교 예문은 우울증으로 자살한 성도의 장례식 예문이다.

제목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본문 : 요한복음 14장 18-20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저는 목사로서 장례를 많이 집행했는데 가장 마음 아픈 장례식입니다. 고인은 수년간 대원교회와 생사고락을 같이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목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고 마음이 괴롭습니다. 고인은 평소에 마음의 병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잘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평소에 조금 더 위로해 드리고 사랑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너무 큽니다.
고인은 마음의 병으로 많은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육신의 병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왜 암병에 걸렸냐고 말할 수 없듯, 마음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에게 왜 그랬냐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목사님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셨을까요?” 가족 중 어느 분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지금 같이 아파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8)


상을 당하신 유가족 여러분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성령께서 이 시간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떠나셨지만 집사님은 믿음으로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교회에서 집사의 직분을 받으시고 열심히 믿음으로 사시다가 하나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가도 집사인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가도 그것은 없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고아란 부모, 가정, 그리고 부모로부터의 모든 도움과 사랑과 관심을 소유했다가 잃어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부모가 없는 어린 아이는 얼마나 서글픈 인생입니까? 고아와 같은 제자들을 그냥 버려두고 어떻게 주님이 대책 없이 떠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근심 어린 표정과 떨어지는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신속히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곧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로 오리라.”
혹시 유가족 중에 마치 고아와 같이 버려진 느낌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을 위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노라. 내가 너희에게로 오리라.” 지금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여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 평안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대원교회


소속교단 기독교대한감리회
창립일 1971. 9. 26
담임목사 임학순
담임목사 부임일 2001. 10. 28
전화 031) 731-2311
홈페이지 www.daewonkmc.com
주소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2동 3397번지
출석성도 중대형교회(2,000-5,000, 주일학교 포함)
사역자 현황 22명
교회의 목표와 비전
표어 - 믿으며 바라며 사랑하는 교회
1. 다음 세대, 젊은이 목회 그리고 자녀 세대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교회
2. 낙후된 지역사회의 상처가 많은 지역민들의 가정과 삶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교회(복지회관과 굿패밀리복지재단 설립)




임학순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Garrett 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석사(M.Div.) 학위를 취득하고, Graduate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상담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상대원 2동 제2복지회관 이사장, 굿패밀리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있으며, 대원교회 담임목사이자 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상담학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자기관리』, 『Self 셀프(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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