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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 <설교자료서비스 - 기타자료> '때문에 찬양'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 - 김종윤 교수 (순복음대학원대학교)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49    등록일시 : 2011-09-30    인쇄

성경적 설교




‘때문에 찬양’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




김종윤 교수(순복음대학원대학교)




구약성경의 하박국, 시편 42편의 시인, 그리고 히스기야의 찬양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은 ‘때문에 찬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이라는 점이다. 즉, 어떠한 상황에서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에 근거한 찬양이었다. 그래서 아직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자신의 문제가 해결받았다고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구약성경이 전하고 있는 찬양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자.<편집자주>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중요한 주제로 나타난다. 특히 시편 중에서 가장 많은 탄식시의 주제 역시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시편의 주제가 찬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여러 정황들은 우리에게 찬양의 제목보다는 탄식과 간구의 제목을 더욱 많이 제공해 주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찬양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찬양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었을 때 자연히 나오는 찬양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성경이 말하는 찬양의 조건은 물질의 유무나 계획의 성공여부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가하는 데 있었다.
찬양의 조건을 다루는데 있어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이 전하는 역사를 보는 관점은 역사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활동무대라는 점이다. 즉 하나님은 비록 보이시지는 않지만 마치 연극의 연출자처럼 무대에서 연기하는 연극배우처럼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통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Revela tion through History).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역사적 낙관주의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 역사의 주관자이시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고를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찬양의 이유 역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것이 구약성서의 가르침이다.



구약이 말하는 찬양의 좋은 예로 하박국서를 살펴볼 수 있다.
하박국서는 유다가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위해 기도했던 선지자 하박국의 근심이 결국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결론으로 끝나는 내용이 나와 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나타내는 것을 오라토리오라고 하는데 하박국서의 내용은 오라토리오를 만들어도 참 괜찮을 정도로 흥미 진진한 내용으로 성경으로 찬양의 조건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먼저 하박국은 나라의 불의를 보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당시 유다의 상황은 요시야왕 말기부터 시작해서 여호야김왕의 시대로 이어지는 유다의 불의가 만연했던 때였다. 이와같이 법과 정의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유다의 상황 속에서 고민하던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께 그 해답을 구하고 있다.
세상에 만연한 불의에 대한 하박국의 질문에 하나님은 갈대아인을 사용해서 유다의 불의를 징벌하실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이런 하나님의 응답에 하박국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질문한다. 아무리 유다가 타락했다고 해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낚시로 고기들을 잡듯이 사람들을 살육하는 갈대아 사람들에게 고통받게 하시는지를 질문하고 있다.
하박국은 2장 1절을 보면 하박국은 이렇게 질문하고 나서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 위해 제일 높은 망대에 올라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하박국에게 2장 2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대답하신다. 이 대답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확실한 것이기에 하박국에게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크게 기록하라고 명령하신다.
그 대답은 하나님도 갈대아 사람들도 마음이 교만하고 그 속에 정직함이 없는 줄을 주님이 알고 계시므로 그들 역시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비록 더딜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라 것이었다.
그렇다. 성도들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우리는 그저 교회에 나오는 추상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박국 3장에 나오는 하박국의 찬양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찬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하박국 3장 3절 이하에 보면 하박국은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을 인도하셨던 점을 열거하면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역사하셨듯이 이제 유다나라에도 역사하셔서 언젠가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실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17절 이하에 나오는 하박국의 찬양이 상황이 전혀 변화가 없는 가운데에서도 나왔다는 점이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박국은 믿음을 가졌으며 비록 견딜 수 없는 환란의 시대라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비록 일의 종국을 알지 못할지라도 그는 기뻐하고 찬양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찬양은 ‘때문에 찬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이 되어야 한다.
하박국의 선포를 통해서 우리의 찬양의 조건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실보다는 그 역사 이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고난 가운데도 찬양하라고 전하는 성경의 메시지를 올바로 실천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전하고 있는 찬양에 대한 두 번째 예가 대표적인 탄식시인 시편 42편에서 나타난다.
시편 42편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한 영혼의 갈급함을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모습에 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민(遊牧民)으로 양을 치며 살았기에 사슴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사슴은 다혈질의 동물로 야수에 쫓기는 사슴은 더욱 목말라하게 된다. 따라서 시인은 야수에게 쫓기는 사슴이 물을 찾기에 갈급하듯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음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의 탄식의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시인은 울면서 고백한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데 갈 수가 없다. 하나님의 집에 가서 마음을 터놓고 기도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못 먹고 돈 쓸 것을 못 쓰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편 42편에서의 시인에게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불행이 가장 큰 불행이었다.
더 나아가 시편 42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시인이 낙심의 원인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에 나오는 탄식부분에서 ‘나’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 ‘나’를 14번, ‘나를’을 16번, ‘나의’를 21번 사용하고 있다. 탄식의 부분에서 시인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데 너무 바빴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지금 혹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낙심하는 분이 있는가? 직장에서 물러난 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나, 과거의 꿈이 다 깨어져버리고 산산조각이 난 나, 사라져버린 과거를 회상하면서 실망하는 분이 있는가? 오늘 시편 42편의 시인이 주는 교훈이 있다.



“나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라”



우리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실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는 사람들이 왜 두려움과 불안함, 초조, 실의, 실망, 절망, 낙망, 좌절, 죽을 고비에 빠져 있는가? 그 이유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다.
자신만을 바라보던 눈을 하나님께 돌린 시인은 5절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42:5)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은 그에게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hope in God’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이 세상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한 참새 한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 했다.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그 누가 우리를 해치겠는가?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두려움을 물리치는 자가 되자!
시편 42편의 시인은 절망스런 순간에 다른 것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했다. 지금 어떤 두려움이 있는가? 어떤 공포가 있는가? 주를 기억하자. 하나님을 생각하자. 지난 날, 수많은 전쟁과 질병과 위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지켜주셨다.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우리가 오늘날 살아남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우리는 한때 좌절할 수 있다. 낙심할 수 있다. 절망할 수 있다. 찬양하고 싶어도 찬양할 수 없는 때가 있다. 그때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용기를 얻고 승리하게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편 42편의 시인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원망하지 않았다. 불평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찬양한다고 했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은 또 한가지 예가 히스기야왕을 통해 나타난다.
이사야 38장 10-20절은 시한부 인생의 선고를 받은 히스기야가 생명연장의 응답을 받은 후에 쓴 글이 나온다. 초반부에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호소한 히스기야는 17절 이후부터는 고통에 대한 호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다짐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17절에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육체의 어려움을 주신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평안을 주려 하심임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더 나아가 아직 몸이 치유를 받기 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21절 참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이미 건져 내셨고 모든 죄를 자신의 주의 등 뒤에 이미 던지셨다고 선포하고 있다.



비록 아직 현실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영혼의 문제는 이미 해결받았다고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20절에서 히스기야는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몸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임을 확신하고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몸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찬양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찬양이다. 앞에서 살펴본 하박국, 시편 42편의 시인, 그리고 히스기야의 찬양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은 ‘때문에 찬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이라는 점이다.
아직 우리 자신의 어려움이, 또한 자신의 병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에 자신에게 보여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고백 속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두려움 속에서 찬양할 수 없다.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찬양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사람에게 두려움은 물러가고, 평강이 찾아올 것이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구약성경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 교회에게 ‘때문에 찬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회복하라고 전하고 있다.




김종윤 교수



연세대학교 신학과 (B.Th.)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Harvard Divinity School (Th.M.)
University of Sheffield (Ph. D.)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현 순복음대학원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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