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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교회성장 - 교회성장세미나]평신도목회자 훈련을 위한 목회자의 리더십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67    등록일시 : 2004-08-27    인쇄
평신도목회자 훈련을 위한 목회자의 리더십

이번 MTS 코너는 할렐루야 김상복 목사의 강의를 싣는다. 김상복 목사는 지난 7월에 루터대학교에서 열린 ‘루터교 MTS 세미나’에서 평신도목회자 리더십 개발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평소에 평신도가 단순한 평신도가 아니라 목회자(lay pastor)로서 기능할 수 있고, 기능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평신도목회자 양성에 대한 목회철학을 들어보았다.

1. 리더의 중요성

행복의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다. 성취욕이 강한 스토익형의 사람에게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많은 성취가 있어야 행복하다. 그러나 성취욕이 필요 없는 에피큐리안형의 자족하는 사람에게는 평화스러운 봄볕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즐길 수 있으면 행복하다. 소위 성공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대개의 경우 성공이란 단어는 성취욕이 강한 사람을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공적 목회라는 표현도 그렇다. 대개의 경우 목회에 성공했다는 말은 교회에 많은 성도와 많은 헌금과 큰 건물과 목회자의 명성을 의미한다. 이 때 성공이란 단어는 성경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사회학적 내지 경영학적 용어이다. 그래서 목회에 경영학적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목회자의 리더십이란 표현에는 경영학적 의미보다는 성경적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성공은 세속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영적 축복 또는 행복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을 묘사한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예에 의하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달란트의 양은 성공에 별 의미가 없다. 받은 달란트를 다루는 그 사람의 자질과 행동과 결과가 그 사람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성공하는 사람은 열정이 있다(바로 가서), 일을 잘 한다(잘 하였도다), 사람이 착하다(착하고), 신실하다(신실한 종아), 책임감이 있다(회계할쌔, 맡기리니), 일을 힘껏 한다(가서 장사하여), 생산적이다(다섯 달란트를 남겼다), 칭찬을 받는다(주인에게 인정받는다), 보상받는다(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성장적이다(많은 것으로 맡긴다) 등 결과가 좋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마 25:14-21). 이런 모습의 사람을 성공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목회자의 리더십이란 목회자가 개발하고 있는 품성으로 인해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고 그 결과로 생산적 결과가 나타날 때 성경적 의미에서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가시적 결과는 내면적 품성이 바탕이 되어있을 때 나타내고 품성과 행위와 결과를 통합한 것을 리더십이라 한다. 어떤 이들은 목회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동안 길러왔던 내면적 자질이 잘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동안 반복한 실패적 자질이 나타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고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리더십에 따라 무에서 유가 창조되고 죽었던 자가 살아나고 작은 것이 커지고 후퇴하던 것이 전진하기 시작한다. 리더십이 부족하면 있던 사람도 떠나고 잘 되던 일이 무너지고 행복하던 사람이 불행해지고 왔던 기회가 사라진다. 똑같은 일을 해도 리더십이 있는 사람과 리더십이 없는 사람 사이는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의 차이와도 같다.

2. 분명한 비전

평신도 사역자 훈련을 위한 목회자의 리더십이란 주제는 평신도 사역자 훈련의 당위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임 목회자가 평신도 사역자를 양성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목회자의 주관적 관심이나 목회적 필요 때문에 논의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경의 목회철학에 따라 목회자의 사역이 결정되어야 한다. 평신도 목회자 양성은 성경적 목회철학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1-12절에서 목회자의 역할은 평신도를 훈련해서 평신도를 목회자화 하는 교사로 보았다. 평신도를 훈련하는 목적은 평신도들이 목사 선생님으로부터 영적인 훈련을 받아 목회의 사역(the work of ministry)을 할 수 있도록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임목회자와 평신도목회자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평신도를 목회자화 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의 목회는 전임목회자의 독점물이 아니고 성숙해진 평신도목회자와 함께 동역하는 공유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목회에는 크게 나누어 세 영역이 있는데 즉 구원, 성화, 섬김<3S 신앙, 구원의 신앙(salva-tion), 성화의 신앙(sanctification), 섬김의 신앙(service)>이 균형 있게 개발되어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화와 섬김을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한다. 목회는 광의와 협의로 분류된다. 교회의 모든 일은 광의의 목회(the work of ministry)이다. 협의의 목회는 은사별 사역이다. 목양(pastoral care), 전도, 교육, 중보기도, 찬양, 선교, 치유(통합적 치유), 호스피스, 부부사역, 직장사역 등 은사의 수만큼 많은 사역을 할 수 있다.
리더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다. 기도, 비전, 계획, 조직, 추진, 시련극복, 성취이다. 이 일곱 가지 자질은 느헤미야서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느헤미야 1장은 기도와 비전 생성이다. 느헤미야는 불행한 상황을 만난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고난 속에서 신음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을 다 무너져 있었다. 그 불행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주저앉아 마음이 아파 울며 금식하여 기도에 들어갔다. 기도의 결과는 비전이었다. 지금보다 나은 예루살렘과 주민에 대한 비전이 생긴 것이다. 사람에 따라 비전, 꿈, 간구, 희망, 소원, 목표 등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마음 속에 바람직한 새로운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비전이다. 비전이 있는 사람만이 갈 곳이 있다.
비전의 소스는 다양하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같은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비전을 받았다. 때로는 책, 목회자, 선교사, 부모, 선생, 친구, 상황, 마음에서 일어나는 소원, 간구, 때로는 불만스러운 현실에 대한 고민에서 보다 나은 세계를 원하는 비전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마음의 눈으로 분명히 본다. 그리고 확신이 생긴다. 자기 속에 없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확실한 비전이 구체적 계획의 기본이 된다.

3. 구체적 계획

비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꿈과 소원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형성되어야 한다. 부족한 계획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돌아가 그 성을 재건할 계획을 세우고 기도했다. 예루살렘까지 가서 성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확보했다. 예루살렘에까지 가는 데 필요한 아닥사스다 왕의 통과 비자, 예루살렘 재건에 필요한 건축자재,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가는 데 필요한 넉넉한 병력, 귀국해서 함께 동역할 자원자들까지 다 확보하고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그는 기도로 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그에게 임하여 이 모든 것을 확보했다.
교회의 리더들과 평신도목회자 양성을 위한 비전 나눔을 통해 비전을 공유함으로서 교회사역에 대한 교회의 정책적 결정이 필요하고 은사 테스트를 통해 훈련 자원자 및 대상자를 확보해야 할 것이요 평신도목회자 양성에 필요한 훈련 목표, 프로그램, 스케줄, 사역자 확보 계획, 운영 체제 및 예산 확보 결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계획을 교회에 제시할 책임은 리더에게 있고 교회를 공감하게 하고 설득하여야 할 것이다. 설득은 리더의 확신이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비전과 계획이 설득력을 얻을 때 평신도목회자 양성을 시작할 수 있다.
목회자 자신 속에 평신도목회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회의 방향이라는 분명한 소신이 있어야 한다. 행정의 은사가 있는 사람을 통해 구체적 계획을 세운다. 목회실과 당회원들을 설득한다. 은사 점검을 통해 참여자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 소명을 받게 하고 사역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게 하고 교회는 훈련받은 분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여 적절한 사역에 파송한다. 지도자들은 그들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고 대화하며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보고, 나눔, 평가, 후속 훈련과 격려 프로그램으로 뒷받침해 주며 관리한다.

4. 필요한 조직

노동자는 혼자서 일하지만 리더는 절대로 혼자서 일하지 않는다. 분명한 비전이 있으면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 느헤미야 3장에 가서 성을 재건하기 위해 전 유대인들을 조직했다. 제일 먼저 제사장들이 앞장섰다. 그들은 지도자답게 두 몫을 담당했다. 전체 39개의 그룹을 조직하여 그들의 집 근처의 성벽을 보수하게 했다. 물론 사역을 하는 열정은 달랐다. 몇 그룹이 눈에 뜨일 만큼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제사장과 드고아 사람들은 두 몫을 했다. 남자가 없는 집안에서는 딸들이 나섰다. 사독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그러나 드고아 귀족들은 협력하지 않았다. 영원히 그들의 거부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 철저히 인력을 조직해 투입했다.
리더십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다. 리더가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라 일컫는다. 리더는 노동자가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사람과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함께 움직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즐겁게 참여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또 적재적소에 사람을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혼자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다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행진하도록 발을 맞추게 하는 것이다. 성취는 리더의 몫이 아니고 모두의 몫으로 위대한 성취를 공유한다.
리더는 조직을 통해 효율성을 기한다. 모세는 사역을 소그룹으로 조직하여 한 사람이 2명 내지 10명을 담당하게 했다. 장로 한 명은 천부장 10명, 천부장은 백부장 10명, 백부장은 50부장 2명, 50부장은 10부장 10명, 십부장은 각 가정의 가정 10명씩을 맡았다. 어느 누구도 10명 이상을 책임 맡지 않았다. 한 사람이 돌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한 교회의 최적 수는 얼마인가? 200-300명? 500명? 교회의 최적 수는 없다. 어떻게 조직하는가에 달려 있다. 노동자처럼 혼자 일을 하려면 100명도 너무 많다. 그러나 효율적 조직을 이용하면 교인의 수가 얼마나 많은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회에는 대그룹, 중그룹, 소그룹이 다 잘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대그룹은 소위 대예배와 전 교회가 포함된 것을 말한다. 중그룹은 성가대, 주일학교, 선교회, 각종 사역 그룹들을 포함한다. 소그룹은 구역(속회, 다락방, 순, 위원회) 등이다. 지역별, 은사별, 연령별로 효과적으로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

5. 시련의 극복

리더에게는 추진력이 있다. 일을 꿈꾸고 시작하고 동역자를 격려해 목적지까지 도달한다. 중간에 어려움은 상관하지 않는다. 목표까지 가는 것이 우선이다. 큰 일에는 반드시 큰 도전이 따른다. 따뜻한 봄날 누구나 춘몽을 꿀 수는 있다. 비전은 머리와 시간이 있으면 가능하다. 꿈은 있으나 꿈을 실현할 계획도 가능하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부족한 계획이라도 무계획보다 낫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모든 물적, 경제적, 인적 자원을 동원하고 조직해야 한다. 조직되지 않은 무리는 폭도에 불과하다. 조직된 무리는 시너지 효과가 있어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비전이 있고 계획이 있고 조직을 완성해도 일을 시작해야 한다.
위대한 성취에는 반드시 위대한 대가가 따른다. 좋은 물건은 값이 비싸다. 리더는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도 좌우의 자리를 요구하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에게 물으셨다. “네가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마 20:22). 그 잔은 죽음의 잔이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두 형제는 결의를 드러냈다. 결국 둘이 다 그 잔을 마셨다. 먼저 야고보가 순교했고 후에 요한이 밧모섬에 귀향을 갔다. 리더는 최소한도 보통 사람의 두 배의 일을 한다. 리더는 수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운 일을 쉽게 한다.
가치 있는 일에는 언제나 힘든 도전들이 있다. 사탄이 가만 둘 리가 없다. 도전을 극복해야만 성공이 온다. 느헤미야는 대외, 대내적인 반대에 직면했다. 외적으로는 사마리아인 산발랏, 암몬인 도비야, 아라비아인, 아스돗인들의 반대와 무시와 위협과 모함에 부닥쳤다. 심지어 대내적으로는 그들의 리더격인 유다족 지도자들의 도전을 받았다. 일이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다고 낙심하고 있었다. 실패자는 왜 할 수 없는지를 연구하고 리더는 역경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매듭은 풀려진다.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때마다 헌신과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변화를 수용하는 사람은 15%밖에 안 된다. 15%는 적극 변화를 반대한다. 나머지는 설득해야 한다. “내 사랑하는 자야, 함께 가자!” 쉬운 일이 아니다. 느헤미아의 시련은 4장에서 6장까지 석 장에 달한다. 비전 한 장, 계획 한 장, 조직 한 장, 그러나 시련은 석 장이다. 비전과 계획과 조직은 일의 절반에 불과하다. 여기까지는 대개의 경우 할 수 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반대에 부딪쳤을 때 누가 극복해 내는가가 성공의 갈림길이다. 새로운 벤처 기업들의 90%는 2년 내에 무너진다.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10%만이 살아남는다.
리더십을 훈련하고 있는 지도자는 인내하며 시련을 하나씩 극복하며 일어선다. 리더십에는 시련 극복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 들어 있다. 리더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중요하다. 그 곳에 도달할 때까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도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와 어른이 갈라진다. 리더는 기도와 인내로 많은 고난을 하나님의 지혜와 헌신으로 통과하며 고난의 신학을 정립하고 있다. 평신도 목회 사역도 그저 되는 것이 아니다.
느헤미야는 주요한 순간마다 기도로 극복했다. 느헤미야 여섯 장에서 열 두 번의 기도하는 느헤미아의 모습이 보인다. 목표를 향해 가면서 목표에 도착할 때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리더는 솔선력이 있다. 백성들이 자는 동안 지도자는 성을 돌며 상황을 파악했다. 리더는 언제나 백성들보다 한 발자국 앞서 간다. 너무 앞으로 달리면 백성이 따라오지 못한다. 너무 뒤지면 리더는 아니다. 솔선해서 자신의 사례비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것을 바치며 섬겼다. 리더십에는 희생이 들어있다. 그래서 리더십에는 감동이 있고 교회를 감동과 사랑과 설득으로 이끌어 간다.

6. 반복하는 성공

한 손에 쟁기를, 또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모든 적들의 유혹이나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성벽을 52일만에 완성했다. 리더는 일에 성취가 있다. 성취에는 기쁨과 감사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찬양팀 둘을 조직해 예루살렘 성 주위를 돌 때 하나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 하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행진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쁨의 찬양을 높이 올려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그러나 고난은 길고 성공은 짧았다. 리더는 성공이 왔을 때 겸손하고 모든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과 동역자들에게 돌린다.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라”(느 6:16).
6장의 수고 끝에 성공의 기쁨은 겨우 두 구절에 불과하다. 비전 한 장, 계획 한 장, 조직 한 장, 시련 석 장, 성취의 기쁨 두 절! 리더는 성공의 열매를 잠시 누리지만 성공에 도취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다음 비전을 향해 다시 출발한다. 리더는 성취 후의 기쁨보다는 성취의 과정을 더 즐긴다. 성공하는 리더는 작은 성공을 반복하며 성공하는 습관을 길러 놓은 사람이다.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 그 때부터 무엇에 손을 대도 성공한다(Whatever he does shall prosper)(시 1:3). 성공적 인격을 개발해 놓은 사람이 나서면 사역도 성공한다. 평신도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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