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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목회메뉴얼> 다음 세대를 위한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 본 제 5계명(순종) 연구_현용수 교수(쉐마교육학회 회장)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99    등록일시 : 2017-05-12    인쇄
2017 목회 매뉴얼

* 유대인 교육을 통해 배우는 다음세대 양육법 Ⅱ
다음 세대를 위한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 본
제 5계명(순종) 연구

글 현용수 교수(쉐마교육학회 회장) | 정리 김진흥 기자

I. 제 5계명(순종)은 구약의 지상명령 실천을 위한 도구다
필자는 지난 회에서 왜 신약 교회는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세계 선교는 성공했는데 자기 자녀와 자기 민족에게 자손 대대로 말씀을 전수하는 데는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음 세대 교육을 위한 구약의 지상명령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구약의 지상명령은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이 자손대대로 말씀을 전수하여 오실 메시아 예수님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구약의 지상명령을 어떻게 실천해 왔는가?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인 주제들을 알아야 한다. 제 5계명(효신학), 제 4계명(안식일 신학), 가정신학, 경제신학, 성신학, 자녀신학, 고난의 역사신학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제 5계명(효(孝)신학)이다.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보자. 효(孝)신학은 크게 윤리적 측면과 구원론적 측면이 있다. 여기에서는 구원론적인 측면에서 설명해 보자.
구원론적 입장에서 구약시대에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구약시대에 택함을 받은 백성의 가장 큰 특징, 즉 이방인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바울에 의하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다(롬 3:1-2). 따라서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손 대대로 조상들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후대, 즉 다음세대에 전수해야 할 사명이 있었다.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수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전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녀도 부모의 뜻에 협조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낳으면 해야 할 두 가지 사역이 있다. 첫째, 자녀를 주 안에서 잘 관리하는 일이고, 둘째, 자녀를 옳은 길로 교육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를 하기 위해 자녀가 협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무는 무엇인가? 순종이다. 따라서 성경은 누누이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신다(창 18:19; 신 21:18, 신 21:20; 엡 6:1; 골 3:20; 벧전 1:14).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 3:20)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 제 5계명(순종)을 주셨다.
오늘날 왜 가정교육이 힘들고 학교교육이 혼돈에 빠지는가? 대부분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려들지 않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순종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전수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강한 책임의식과 자녀의 순종이 있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 제 5계명(효)을 ‘순종’에 주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II. 구원론적 입장에서 본 순종 신학

하나님이 부모를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께서 부모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소원(Wish of God)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다(Hirsch, 1989b, pp. 274~275).
하나님의 소원은 가정에서 부모가 대를 이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이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천국의 확장 방법이다(마 6:10). 하나님은 세세토록 하나님의 말씀이 자손 대대로 전수되고 더 많은 인간에게 전파되기를 소원하신다.
제 5계명과 순종의 관계: 부모의 권위(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 하나님의 권위(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순종이 필수다. 그 순종은 어느 계명에서 나오는가? 제 5계명, 부모공경에서 나온다. 먼저 부모공경에 관한 성경 말씀들을 살펴보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바울은 제 5계명을 말씀할 때 자녀들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고(엡 6:1), 그 다음에 공경할 것을 명령(엡 6:2)했다. 저자는 제 5계명을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데 가장 필요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에 주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먼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고, 부모의 권위를 인정할 때 부모에게 순종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부모의 권위는 누가 준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권위의 원천이시다(시 93:1~2, 104:1).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기 위하여 권위를 스스로 가지셨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시 93:1~2)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도 세세토록 권위를 가지시고 우주 만물을 통치하신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신다”(계 19:6). 이 세상의 모든 권위들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주셨다(롬 13:1; 골 3:22).
부모의 권위도 하나님이 주셨다. 레위기 19장 3절에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란 말씀이 있다. 누가 “네 부모를 경외하라”고 명령하셨는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자녀가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바로 이 명령을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7; 마 15:4). 자녀가 죽지 않으려면 부모를 저주하지 말고 경외(Fear)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어떻게 부모를 경외(Fear)할 수 있는가? 부모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경외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부모를 무서워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잠 1:7). 여기에서 ‘무서움’(Fear)은 폭력배의 물리적인 위협 같은 것에 두려워 벌벌 떠는 것이 아니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최상의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마음을 뜻한다.
따라서 자녀는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에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처럼 여겨야 한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도들이 하나님을 육신의 아버지처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 63:16; 렘 3:19; 롬 8:15; 갈 4:6).
실제로 유대인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신지를 토라(Torah)를 가르치며 교육시킨다. 때문에 유대인 자녀들은 부모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며 부모가 가르치는 교훈들을 받아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자녀교육의 문제들 중 하나는 자녀들에게 무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오히려 부모나 교사들을 업신여기는데 어떻게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부모에게 권위를 주신 목적: 부모는 천국확장의 동역자
왜 하나님이 부모에게 권위를 주셨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과 부모가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즉 천국을 확장하는 일에 동역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수직적인 구속의 역사는 가정의 부모를 통하여 구약의 지상명령이 대를 이어 이루어 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동역자다.
정통파 유대인 랍비 하멕 데이버(Haarmek Daver)는 신명기 5장 6절 말씀을 해석하면서 부모에 대한 존경(Respect)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이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부모는 자녀들로부터 마땅히 공경(Honor)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부모에 대한 감상주의적인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존경(Respect)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감성은 깨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Scherman & Zlotowitz, 2005, p. 411)
자녀가 부모를 존경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의무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녀가 부모에 대한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 인정하는 것이고, 그 권위에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대항하면 “너 지금 나한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거야. 그래도 되는 거니?”라고 반문한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자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큼 부모를 경외하며 부모에게 할 것이다.

기독교의 효는 영혼 구원을 위한 필수 계명
만약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자녀들에게 전수될 수 없다. 즉 가정에서 자녀들의 ‘부모공경’이 없다면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말씀 전수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 제 5계명인 효의 중요성이 있다.
자녀는 부모의 권위를 더 높게 그리고 더 무겁게 여길수록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무게가 있게 들리고 권세 있게 들린다. 그리고 그 말씀을 마음판에 잘 박힌 못처럼 새기게 된다(전 12:11).
반면 부모의 권위를 하찮고 가볍게 여기면 여길수록 부모가 가르치는 교훈이 자녀들의 마음 판에 잘 새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6)라고 강하게 명령하셨다. ‘부모를 경홀히(Degrade) 여기는 자’란 뜻은 ‘부모를 모욕하거나’ 혹은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를 뜻한다. 따라서 자녀가 부모에게 불순종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 받기를 거부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한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 맡은 자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도 없다.
그런 자녀는 들사람이나 짐승 같은 사람이 된다(창 25:27). 설사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시 49:20). 그러면 살려둘 가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죽이라’(레 20:9; 출 21:17)고 명령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구약의 지상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제 5계명을 주신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하나님은 부모를 통하여 말씀이 자손대대로 전수되기를 소원하신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성경의 효도교육이 유교의 효도교육과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를 알 수 있다. 유교는 단순히 윤리적인 효에 그치지만, 기독교의 효는 유교의 윤리적인 효의 차원을 넘어 부모가 자녀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수하는 데, 즉 영혼 구원을 위한 필수 계명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기독교인의 효를 구원론적인 입장에서 설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순종은 기독교인이 지켜야 할 실천 덕목 중 제 1순위다. 왜 가정교육이 힘든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왜 학교 교육이 힘든가? 학생들이 선생에게 순종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순종은 옷의 첫 단추와 같다. 첫 단추가 잘못 꿰이면 나머지 단추들이 모두 잘못 꿰이는 것처럼 기독교인에게 순종이란 덕목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나머지 신앙생활이 제대로 됐다고 할 수가 없다.

효(孝)신학적 입장에서 본 이삭의 위대한 순종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철저하게 훈련시킨 것은 대를 이은 순종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지상명령을 주실 때 그의 자손들이 여호와께 순종하게 할 것을 명했기 때문이다(창 18:19,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다(창 22:1~19). 번제
(A burnt-offering)는 짐승을 제물로 잡아 죽인 후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다.
이 사건은 유대인이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라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교훈을 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범죄케 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의 믿음을 확증케 하기 위함이었다(창 22:1). 이것은 아브라함을 시련하기 위한 마지막 불 시험(벧전 4:12)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교육학적 그리고 효신학적 입장에서 아브라함의 교육을 받은 이삭의 순종을 주목해 보자.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믿음만 좋아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아들 이삭의 협조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 성장한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뜻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거나 도망가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유대인에 의하면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고 사라의 나이는 127세(죽을 때의 나이)였으며 이삭의 나이는 37세였다(Scherman & Zlotowitz, The Chumash, 2005, p. 100).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사건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만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삭의 순종도 함께 시험하는 큰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시험의 난이도가 아브라함의 믿음보다 이삭의 순종이 더 힘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삭은 순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믿고 따랐던 아버지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삭에게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따질 수 있거나 도망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칼을 겨눌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했다고 말했다(히 11:17,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따라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롬 4:11~12, 16)이 되고 이삭은 순종의 조상이 되었다. 이삭이 제물로 바쳐지기 위하여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죽기까지 순종한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어린 양처럼 십자가를 지며 죽기까지 순종하셨다(사 53:7; 요 1:29; 행 8:32; 빌 2:8). 따라서 이삭은 예수님의 표상이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이삭은 너무나 효자라서 아브라함이 그를 묶은 후 죽이려 할 때에도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아버지, 내가 죽었다고 엄마한테 얘기하려면 엄마가 웅덩이나 지붕에 있을 때에는 얘기 하지 마세요. 엄마가 놀라서 떨어져 죽을까 두렵습니다.”(Wax, The Ten Commandments, 2005, p. 266). 그래서 유대인은 이삭의 행위를 효의 모델로 삼는다.
누가 이삭을 이렇게 잘 순종하게 교육시키었는가? 물론 아브라함 부부였다. 교회 목사님이나 학교 선생님이 아니었다. 가정의 부모였다. 따라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교육은 먼저 부모 몫이라는 점이다.
순종은 기독교인이 지켜야 할 실천 덕목 중 제 1순위다. 왜 가정교육이 힘든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왜 학교 교육이 힘든가? 학생들이 선생에게 순종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순종은 옷의 첫 단추와 같다. 첫 단추가 잘못 꿰이면 나머지 단추들이 모두 잘못 꿰이는 것처럼 기독교인에게 순종이란 덕목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나머지 신앙생활이 제대로 됐다고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뜻에 반해도 순종해야 하는가
우리가 여기에서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자녀들이 부모가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이해할 수 있을 때 따라 가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순종이 아니다. 설사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의 말씀이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순종이다. 또 중요한 것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나? 자녀들이 하나님에게는 순종을 잘 한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자녀들에게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령 부모가 주일날 교회 대신에 세상 공부를 시키기 위하여 학원이나 학교에 가라고 한다면 순종해야 하겠는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순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울의 이런 가르침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물론 유대인의 가르침에 근거한다. 유대인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엇을 시킨다고 해도 토라의 말씀과 반대될 때는 순종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부모공경이란 계명과 토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은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모 자신이 언제나 아브라함처럼 자녀들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이삭이 그처럼 아브라함에게 순종했던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만큼 평소부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자녀가 잘못되었을 경우 무조건 그들만 탓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부모되기는 쉬워도 부모다운 부모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Ⅲ. 순종 신학의 요약 및 결론 : 구약의 지상명령을 위한 제 5계명의 발달 단계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에게 제 5계명을 주셨을 때 다양한 용어로 명령하셨다. “네 부모를 경외하라”(레 19:3),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 그리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엡 6:2) 등이다. 이 말씀들은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정리하면 제 5계명의 시작은 자녀들이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 인정하는 데 “네 부모를 경외하라”(레 19:3)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야 자녀들이 부모의 권위에 순종할 수 있다(엡 6:1). 그래야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창 18:19; 신 6:4-9) 말씀을 맡을 수 있다(롬 3:2). 유대인 자손이 말씀을 맡게 되면 효자가 된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할 수 있다(엡 6:2). 즉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
제 5계명을 지킬 경우 복을 약속하셨는데, 그 복은 “네게 준 땅(가나안)에서 생명이 길고, 잘 되고, 복을 누리게 될 것”(출 20:12; 신 5:16; 엡 6:2)이다. 바울은 효자가 받는 이런 복을 근거로 제 5계명을 ‘약속 있는 첫 계명’(엡 6:2)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내용을 발달 단계 형식으로 정리해 보자. 즉 구약의 지상명령적 측면에서 제 5계명의 전체 기능들을 시작에서 마침까지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해 보자.
※ 구약의 지상명령을 위한 제 5계명의 발달 단계
제 1단계 : 자녀가 부모의 권위 = 하나님의 권위 인정
(레 19:3)
제 2단계 : 자녀가 부모의 권위에 순종(엡 6:1)
제 3단계 : 부모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씀 맡은 자가 됨(창 18:19; 롬 3:2)
제 4단계 : 효자가 되어 부모를 공경함(엡 6:2)
제 5단계 : 하나님이 주신 땅(가나안)에서 장수함(엡 6:3)

제 1-2단계는 제 5계명(순종)이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다. 제 1단계는 제 2단계의 원인이 된다. 제 3단계는 유대인이 순종을 실천한 결과다. 제 4-5단계는 순종을 실천한 결과로 얻은 열매다. 제 4단계는 제 5계명(부모공경)의 윤리적 열매이고, 제 5단계는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제 5계명을 지켰을 경우 약속하신,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보상, 땅의 기름진 열매와 신령한 영적 열매를 포함한다.
결론적으로 신약교회가 2000년 동안 어느 가문이나 민족도 다음 세대, 즉 자손 대대로 신앙을 전수하지 못한 것은 구약의 지상명령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 5계명을 구원론적인 입장에서 설명할 수 없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제 5계명은 유대인이 구약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필수 도구라는 것을 발견했다. 유대인 개개인과 유대민족 전체의 생존의 문제와 직접 관련된 계명이다.
한국 교회가 쇠퇴기에 접어든지 오래다. 다음 세대에 희망이 없다.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잃었던 구약의 지상명령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제 5계명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살아남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다.


미주총신대학원과 미국 Biola University, Talbot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기독교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은 현용수 교수는 미국 Bethesda Christian University와 Theological Seminary 교수 및 석좌교수, 미주총신대학원과 장신대, 감신대, ITS 강사,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학술담당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쉐마교육연구원 원장, 한국쉐마인성교육운동본부 본부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저서로는 『유대인의 고난과 역사교육』, 『신앙명가 이렇게 세워라』, 『잃어버린 구약의 지상명령』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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