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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마음치유> 기술백치(Craft Idiocy)와 기독교신앙교육_ 임경수 교수(계명대학교 기독교과 목회상담학)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3    등록일시 : 2017-03-01    인쇄


<현대인의 마음치유>


기술백치(Craft Idiocy)와 기독교신앙교육


임경수 교수(계명대학교 기독교과 목회상담학)



기술백치라는 용어는 교육받은 기술과 방법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의미다. 교육을 통한 기술과 방법을 획득하는 것이 최고 목표였지만, 정상에 서서는 스스로 망가지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모순을 지적하는 용어다. 기술 또는 방법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며, 사람은 전수받은 기술과 방법을 새로이 갱신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에 늘 교육을 요구한다.

유치원 과정을 마친 후에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공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시기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수학이나 영어 등과 같은 과목을 가르치면서 기술과 방법을 익히게 한다. 기술과 방법은 사람으로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 사항이다.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것들을 모르고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적응의 어려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교사와 학교, 그리고 사회가 도구와 기술을 잘 사용하는 학생들에게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사회적응력과 잠재력 발달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행하고 있는 교육은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 첫째는 기술과 도구를 잘 사용하는, 학습을 효과적으로 하는 학생들이다. 학교와 사회는 이런 학생들이 마치 진리를 찾아 바르게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 앞서 지적했지만, 교회는 그동안 사회분위기에 합세하여 이런 일들을 은연중에 강조했다. 머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꼬리가 되지 말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입학생을 위한 특별 기도를 만들었고, 수능 당일 날이면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가득 메워 기도한다. 그리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교회의 출석률이 높아지고, 반대의 경우 교회를 나오지 않거나 간헐적으로 출석한다. 이토록 잘못된 신앙은 교회가 성도들에게 기독교의 가치관을 전하지 못하고 세상의 관점에 편승해 정형화시켰기 때문이다.

또 한 부류의 학생들은 학교와 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다. 즉, 기술과 도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여 한계를 가지는 이들이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고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를 비하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학교와 교회의 교사, 그리고 성직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부모에게서 교사에게로 권위가 옮겨지는  과도기에 교사가 학생들을 향해 어떤 마음자세를 가지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들을 다면적 평가를 해야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아이들의 잠재성을 발견하는 통찰력과 재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는 ‘돌봄’을 뛰어 넘어 수용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다. 특별히 개인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의 경우 이러한 자기실현이 어떠한 가치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의 초등학교시절에 미술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기억이 있다. 미술시간은 그야말로 장난꾸러기들에게는 간섭받지 않고 자기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물감을 색종이에 짜서 색종이를 이등분하여 접으면 그림이 나오는 ‘데칼코마니’라는 미술기법으로 실습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장난스럽게 물감을 짜서 접어보니 우연의 일치로 제비나비의 형상이 나왔다. 미술작품을 도와주던 선생님이 내 곁에 와서 제비나비의 형상을 보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그림을 게시판에 전시해 주었다. 나는 거의 매시간이 수업이 끝난 후에 게시판 주변으로 가서 나의 그림을 확인하곤 했다. 내 그림이 게시판에 붙여졌다는 뿌듯함 때문에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가는척하며 내 그림을 보곤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하늘색 바탕의 색종이와, 검은 형상과 하얀색과 주홍색이 어우러진 나비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해 겨울방학 미술 숙제는 겨울풍경화를 그려오는 것이었다. 미술 시간의 칭찬이 ‘겨울 풍경화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달력에 있는 겨울 풍경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그림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눈이 살짝 덮인 산골짝에 살얼음이 녹아있고 그 사이로 시냇물이 흘러내리며 낙엽들이 누워있는 그림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그려 갔는지 친구들이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그렸다는 것을 믿지 않는 친구들 때문에 속이 상했지만, 교사의 칭찬으로 미술의 열정을 가진 한 어린학생의 그림이 눈에 띄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미술 선생님이 나의 작은 잠재력을 발견해준 것이다. 미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지는 않았기에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분명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십대들의 쪽지> 발행인이었던 김형모 씨가 학교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에 신학공부를 하였는데, 당시 잠이 많아 모친이 그를 식충(食蟲)이라고 했다고 한다. 잠을 많이 자고, 할 일을 하지 않고 밥만 축내는 사람을 빗대어 당시 부르던 말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원고를 써서 어느 잡지사 출판사에 제출했는데 그의 원고를 받은 사람이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해주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그는 편집자의 말에 고무가 되어 3일을 잠을 자지 않고 책을 보고 글을 썼다. 모친은 잠보였던 그가 변한 것을 보고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것으로 착각을 했다. 그가 십대들의 쪽지를 발행하던 어느 날 그 편집자를 찾아가 당시 자신의 글에서 어떤 잠재성을 보고 그렇게 칭찬을 해주었냐고 물어보니, 그 편집자가 말하기를 글을 가지고 오는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말해준다고 했다.

구조 속에 짜인 교육을 받으며 기술과 방법을 익혀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가진 관심, 주변 사람들의 인정 어린 보살핌, 그리고 사회의 수용적 분위기들이 자신 안에 담겨져 있는 천부적인 소질을 개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 공교육을 통해서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현대사회에 중요한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여 공동체를 이롭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교육목표가 제시되지 않는 한 이기주의에 빠질 것이다. 이러한 것은 이제껏 우리사회가 고민한 문제였다. 학교와 사회가 인정하는 엘리트가 되었지만 정작 국민으로 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배운 기술과 방법으로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국부론의 저자인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사람에게 돈이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돈이 삶의 중심에 들어오면 모든 기초가 흔들린다”라는 말을 했다. 기술과 방법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면 인간성이 흔들려 버린다. 그래서 기술과 도구가 지배하는 교육과 사회에서는 사람의 영혼이 파괴된다. 사람을 바르게 성장시키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수단을 획득하고 목적을 획일화시킨다. 그리고 이 목적을 획득하면 수단은 가차 없이 버려진다. 이 과정은 방법과 기술이 최고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 기술백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는 궁극적 목적이 재정립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기술과 도구 획득에 앞서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을 보고, 살아가고, 체험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재정립이 가능하다. 심리학자 에릭슨(Erik Erikson)은 이러한 기술백치에 대한 해결은 인간이 살아가는 장(human contexts)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이 배움과 함께 진실에 대하여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행동하는 것을 배우고 훈련을 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진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학문을 기술과 방법, 그리고 도구로 생각하여 획득하려는 시도들이 한국에서 교육의 붐을 조성한 것처럼, 교회 또한 이러한 영향을 다분히 받고 있다. 교회발전과 부흥을 위해 세미나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런 행사가 있을 때 행사장은 미어터진다. 마치 입시철 부모들이 대학 소개 행사장에 몰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필자는 이렇게 몰리는 현상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는 ‘진리’를 기술과 방법을 통해서 획득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는 한국교회가 방법과 기술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통한 교회부흥에 의지하려는 구조가 심화되지 않았나 생각한다.1) 교회의 현란한 음향설비와 무대장치, 그리고 노련한 음악연주자들의 도움이 현대인들에게 예배에 임할 수 있는 형식적인 틀을 제공해 줄 수는 있지만, 이런 외적인 요소에 치우쳐 핵심을 상실한 채 신앙생활 하지는 않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신앙은 상식을 위반하지 않는다. 신앙은 특별한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무너진 보편성과 기초를 다시 쌓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신앙은 사람에 대한 일으킴과 회복이 과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내리는 것은, 그 은혜를 통해 사람과 세상구조에서 무너진 보편적 질서를 회복하는 데 사용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 구조에 따라 기술과 도구에 몰두하다 보면 상식을 위반하고, 비상식적인 것을 신앙의 차원에서 수용하고, 특별성에 기초하여 보편성을 간과해 버리고, 하나님을 위한다 말하면서 사익을 추구하고, 회복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교회의 외적인 규모 확장과 형식적인 것에 더 신경을 쓸 것이 불을 보듯이 확실하다.

교회를 개척하여 성장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성직자와 가정의 상당한 희생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한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고 오랜 기간 동안 교회의 성장을 위해 헌신을 했고, 마침내 성전을 완공하여 헌당예배를 다 드렸다. 그런데 이 일후에 그동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리한 탓에 중풍에 걸리고 말았다. 당회와 성도들은 슬픔에 잠겼다. 회복되길 기대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회복이 되지 않았다. 목사님은 중풍이 심하게 오지는 않았지만 강단에 서서 원활하게 예배를 집전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당회는 교회를 커다랗게 지어놓았으니 많은 사람이 와서 성전을 가득 채워야 여러 가지 교회의 현실적 문제들이 해결이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이 아쉬웠다. 참다못해 당회는 이러한 상태로 마냥 지속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목사님과 별다른 상의 없이 담임목사 초빙 광고를 내었다고 한다. 목사님과 가족들은 맘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교회를 위해 노심초사한 목사가 단지 중풍이 걸렸다는 이유로, 한 마디 상의 없이 단순하게 교회의 빈 공간 빨리 채우기 위해 초빙광고를 그렇게 급하게 낸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너무 서운함과 배신감을 맛보았다. 무엇이 하나님 편에 서는 결정이었을까. 필자는 당회의 결정이 기술과 방법만을 추구하는 매우 세속적인 성공관을 가지고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식, 보편성, 그리고 사람을 살리고 돕는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교회의 빈공간이 걱정이 되겠지만, 당회장 초빙은 담임목사님을 배려해서라도 기간을 조금 더 드릴 수 있는 것이고, 이런 문제를 담임목사와 진지하게 의논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 상식이다.

필자는 목회학 석사(M.Div)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미국교회에 1년간 담임전도사로 파송을 받은 적이 있다. 시카고에서 한 시간정도 떨어진 남서부에 위치한 그 곳은 농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미국 도착한지 만 2년이 된 후 이 일을 담당하였는데 공부와 병행한 사역이라 늘 고된 일이었다. 설교를 틈틈이 준비하였지만 잘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매번 설교할 때 마다 교인들은 관심을 가지고 경청해 주었고, 때론 잘 들었다는 화답을 해주기도 했다. 외국생활 2년에 영어를 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그것도 학교 수업만 주로 했으니 구어체 영어에는 늘 약했다. 그런데 교인들은 불편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1년 후 사직을 한 후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나 우연히 당시에 기록한 설교원고를 보게 되었다.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내용도 빈약하고 주제가 늘 빗겨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1년간 나를 잘 참아준 교우들에게 감사함을 다시 느꼈고, 그들의 포용성이 더 빛나보였다. 우리처럼 예배를 뜨겁거나, 좋은 악기와 연주에 맞추어 부르는 예배는 없었지만 그들의 잠잠한 신앙의 수준은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고린도전서 1장 26-29절에서 바울사도는 당시 고린도교인들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악한 것들을 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의 사람들과 인생의 길을 어떻게 인도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있는 사람들의 교만을 부끄럽게 하려고 약한 사람들을 택하여 어느 누구도 어떤 것을 자랑을 할 수 없는 인생인 것을 교훈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술과 방법을 추구하고 이미 지혜를 가지려 하고, 권력을 수중에 넣으려 하고, 지혜를 이미 가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상식과 보편성, 사람을 위하는 인류애에 대한 기초적인 것도 없이 기술과 도구만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자위적으로 해석한다면 사회로부터 더 외면 받을 것이다.

공교육이 죽어가고 있다. 방법과 기술을 더 잘 가르쳐 주는 사교육 시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공교육을 통한 인성함양이나 자신들과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다 빼앗아 버리고 오로지 입시와 스펙위주의 교육이 되었기 때문이다. 혹 교회의 교육과 성장정책도 우리사회의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교육이 인간이 살아가는 장에 대한 고민을 하도록 하지 않고, 쉼 없이 몰아붙이면서 병리적 인간을 만들고, 이 병리적 인간이 병리적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을 오랜 시간동안 지켜보았다. 교육을 통한 기술과 방법이 필요하지만, 인간에 대한 고민, 자신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교육을 통한 모든 혜택을 자신을 위한 수단과 목적만으로 사용이 된다.

혹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나 교육도 사회에서 허물어져 가는 공교육구조를 닮아 있고, 사교육의 구조를 선호하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배우는 것, 신앙이라는 명목 하에 쉼 없이 신앙생활 하는 것은 건강한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불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멈춤이 없고 쉼이 없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앙의 여백시간을 가져야 하고, 지금 달리고 있는 우리의 방향에 쉼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시간이다. 



서울신학대학 신학과(B.A.), 미국 Garrett 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석사(M.Div.), 목회상담학(M.T.S.), 시카고 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박사(Ph.D.) 학위를 받은 임경수 교수는 한국기독교상담심리치료 학회 감독(Supervisor), 한국목회상담협회감독, 한국임상목회협회 감독, 한국가족문화협회 감독, 계명대학교 교목실장, 연합신학대학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기독교학과 목회상담학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주요 저역서로는 『Male Mid-life Crisis: Psychological Interpretations, Theological Issues and Pastoral Intervention』(Oxford New York: University Press of America, 2000), 『애착이론과 역기능발달상담』, 『인간발달이해와 기독교상담』, 『심리학이 모르는 기독교』, 『오후수업:중년리모델링』, 『인생의 봄과 가을: 중년심리이해와 분석』, 『심리학과 신학에서 본 인간이해』, 『실존주의심리치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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