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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빌리빙(청년부)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08    등록일시 : 2022-05-24    인쇄

* 청년부 설교

* 설교자 :  최정훈 목사 부천동광교회(둥근교회 담당)

* 페이지 : 324-331

*본문 :

히브리서 11장 1-3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 히브리서


오랜 시간 동안 더 빌리빙의 주제로 시리즈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믿으며 달려온 여러분들에게 심심(甚深)한, ‘매우 깊고 간절한’ 위로가 있었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 힘내라고 ‘조금만 더 빌리빙’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우리는 믿음 하면 히브리서 11장을 떠올립니다. 여기에는 믿음으로 놀라운 일을 감당한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좋아하는 성경의 모든 인물이 열거되어 있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11장뿐만 아니라, 전체가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그 내용도 논리적입니다. 다른 서신서와 동일하게 교리와 실천으로 크게 나뉩니다. 그 교리에 해당되는 부분이 10장까지의 내용인데,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들이 존경하는 모세보다도 더 우월하시다’ 그리고 나머지 뒤 내용은 ‘그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11장을 믿음 장이라고 하는데, 그 시작하는 첫 문장을 살펴보면 우리가 그동안 살펴보았던 더 빌리빙의 방법이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2. 믿음은 보는 것


그 첫 번째가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크게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으며 내 안에 최면을 겁니다. 이것을 마인드 컨트롤이라 하죠. ‘할 수 있다, 볼수 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이런 식으로 주문을 외우듯이 믿음을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조엘 오스틴(Joel Osteen) 목사님의 『긍정의 힘』이란 책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믿음을 전체 숲으로 보지 않고, 나무만 보며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휴일에 백화점같이 주차할 곳이 없습니다. 같은 장소를 반복하며 찾아봐도 빈자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주차할 곳이 생길 것이다.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 이런 식으로 여러 번 기도했더니 저 반대편에서 한 차가 빠지고, 다행히 그곳에 주차했다는 간증(?)입니다. 이렇게 주문을 외우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이란 말씀으로 보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말씀으로 증거하며 보는 것이 믿음이라 합니다. 이 말씀을 잘 설명해 주는 인물이 여호수아 2장에 나옵니다. 바로 여리고 사람 기생 라합입니다. 그녀는 여리고 사람들 중에 자신과 그의 가족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말씀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시작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문제는 여리고 사람들 중에 라합만 듣지 않았습니다. 여리고 성 안에 있던 모든 사람 전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도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그 말씀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본 것처럼 믿었습니다.

가끔 교회를 처음 등록하신 분 중에 이런 분이 있습니다. “보여주세요, 그러면 믿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믿으면, 그때부터 볼 수 있습니다” 한번 라합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멸의 대상이었던 여리고 사람입니다. 그 당시 인원도 세지 않던 여자였으며, 무엇보다 몸을 팔아야 살 수 있었던 기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보이지 않지만, 말씀에 근거하여 믿었으며, 그 믿음이 지금의 라합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겁니다.

저는 이 지점을 주목했으면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 중에 한 사람이 라합입니다. 야고보서 2장 2절에서도 행함의 믿음을 강조하면서 유일하게 라합의 이름을 강조합니다.


3. 하나님의 인정


이러한 믿음이 시작되면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습니다. 2절입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2)

더 빌리빙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증거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 증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수많은 별을 보여주셨고, 모세에게는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하였으며, 라합에게는 붉은 줄, 요셉에게는 꿈, 기드온에게는 300용사를, 다윗에게는 성전 짓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삼손, 바락, 입다, 사무엘 등 이러한 증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증거를 나의 스토리로 만드셔야 합니다. 그 방법의 핵심은 ‘증거’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1절과 2절에 이 단어가 반복되는데, 원어로 보면 그 의미가 다릅니다. 1절에서의 증거는 헬라어로 ‘엘렉코스’라고 합니다. 그 뜻이 ‘심증’입니다. 마음의 어떤 확신을 가질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의 증거는 ‘말투레오’라고 하 는데, 흔히 우리가 ‘물증’이라고 말합니다.


보통 법정에서 “저 사람에게는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습니다” 말하는 것처럼 믿음은 이와 비슷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그 심증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물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게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근원적으로 ‘생활 욕망’과 ‘존재 욕망’이 있습니다. 먼저 ‘생활 욕망’이란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이런저런 것들이 놓여 있고, 새로운 차가 나오면 견적이 얼마인가 검색도 합니다. 그 외에도 회사에 가면 늦게 출근하고 싶고, 반대로 빨리 퇴근하고 싶어 하며, 더 자고 싶고, 늘 놀고 싶고, 계속 게임만 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생활 욕망이 있다는 겁니다.

동시에 우리는 ‘존재 욕망’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또 어떠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실제로 그 존재의 욕망대로 살아가면 주변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문제는 이 두 개의 욕망이 충돌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쉬는 날 혼자 카페에 가서 달콤한 라떼를 마시며 가장 나일 수 있는 책을 한 권 읽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생활 욕망입니다. 한편 아이들에게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결국 존재의 욕망이 더 크게 작용하여, 쉬는 날 아이들과 여행을 다닙니다.

믿음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 뜻대로 살고 싶은 생활의 욕망과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은 존재의 욕망이 공존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열된 아브라함과 모세와 라합 그리고 모든 믿음의 선진들도 이 두 가지 욕망이 늘 충돌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존재의 욕망이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증거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겁니다.


4.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3절을 살펴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3)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증거를 얻은 사람들에게는 이 놀라운 일이 그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동안 내 힘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어느 순간 내 삶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라합을 보십시오. 그녀는 더 빌리빙으로 그 믿음에 반응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호수아 6장 25절을 보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다 구원받습니다. 이 한 사람의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더 풍성합니다.

그녀는 두 정탐꾼의 한 명이었던 살몬과 결혼했습니다. 그 당시 정탐꾼은 각 지파를 대표하는 유능한 인재입니다. 그 한 사람과 결혼하여 아들 보아스를 낳습니다. 보아스는 룻기에 등장하는 마치 백마를 탄 왕자처럼 등장하여 룻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두 사람이 결혼하여 아들 오벳을 낳습니다. 그 친할머니가 라합이 되는 겁니다.

계속해서 오벳은 이새를 낳고 그 이새는 우리 모두가 전부 알고 있는 다윗을 낳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이며, 하나님 마음에 유일하게 합한 자였습니다. 그 다윗의 고조할머니가 라합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가 나열되는데, 그 시작이 바로 라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더 빌리빙입니다. 여리고에있던 모든 사람은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5. 조금만 더 빌리빙

오늘 말씀의 제목이 ‘조금만 더 빌리빙’입니다. 여러분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힘내십시오. 믿으면 보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도 예수님과 죽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부탁이 있었음에도 며칠이 지나서야 그곳을 찾습니다.

이때 마르다가 말합니다. 주님이 일찍 오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거라며 예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주님은 11장 39절에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하지만 그녀는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대답하고, 그런 그녀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죽은 자를 살리는 것과 돌을 옮기는 일 중에 무엇이 더 어렵겠습니까? 돌은 굴리면 옮겨집니다. 아무리 무거운 돌이어도 사람들과 함께 밀면 옮겨집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일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주님이 하시고 우리는 말씀하신 대로 돌을 옮기면 됩니다. 즉 믿는 행동이 먼저라는 말입니다.

“돌을 옮겨라 그리하면 죽은 자를 살리는 영광을 너희가 볼 것임이라”

우리는 믿는 겁니다. 다른 걸 믿는 게 아니라, 오직 주의 말씀을 믿는 겁니다. 그 믿음이 죽는 자를 생명으로 살려주시고, 그 믿음이 부족한 자를 세상의 중심으로 세워주시며, 그 믿음이 두려운 자를 날마다 승리하는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십니까? 그러면 빌리빙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죽은 자를 살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믿으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최정훈 목사 

상명대학교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교역학석사) 졸업
숭실대학교 성서신학과 (Th. M. 신학석사) 졸업
(現) 부천동광교회 부목사(둥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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