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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
201006 '예배로서의 심방'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를 디자인하라 - 박종환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예배학 교수)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479    등록일시 : 2010-06-01    인쇄

목회에 힘을 싣는 심방목회 클로즈업



예배로서의 심방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를 디자인하라



박종환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예배학 교수)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심방의 형태는 다양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심방에서 목회자가 주인이 아니라 성도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서 속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소외된 자들을 찾아오셨다. 따라서 목회자는 성도 스스로 하나님 앞에 삶을 내어놓고 드러낼 수 있도록 그들을 찾아가 도와주어야 한다. 목회자는 심방예배를 통해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신비 속으로 초대하는 심방 예배를 통해 다시 한 번 회복의 시간들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편집부>



심방의 유래와 성경적 심방


심방의 기원은 성경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이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신다.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해서 들어오시는 것, 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해서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민족 안으로 들어오셨다고 하는 개념을 “쉐키나”라고 한다. 이 쉐키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당신의 위대하고 거룩하시며 온전하신 하나님이 고난 받는 역사의 현장과 공동체 가운데 들어오셔서 그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심방의 성경적 기원이 아닐까?


구약성서 뿐 아니라 신약성서에서도 우리가 심방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신약에 들어오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해 들어오셨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 중 가장 정점이 성육신(incarnation)사건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사실은 인간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취약성, 약점(vulnerability)를 하나님께서 가지신 것이다. 즉 일종의 고난을 함께 경험하는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처 받기 쉬운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몸이라는 것은 얼굴을 맞대어 보는 인격적인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그 인격적인 관계라는 것은 결국 대화 가운데 서로의 삶에 대해서 개입하고 충고(advice)하여 방향을 제시하고 잘못을 가르쳐주며 때로는 치유하는 그러한 성육신 사건(interaction)이 그리스도의 사역에 가장 중심적이었다. 그 예를 성서 가운데서 찾아보면, 니고데모와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사건, 여리고로 들어가시면서 삭개오를 만나 “내가 너의 집에 들어가겠다”라고 말씀하며 함께 식사하셨던 사건 등 이런 예수님의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많은 병자들과의 관계와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던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성경적인 심방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주목해야 할 것은 장소에 관하여서 자유로우셨다는 점이다. 굳이 어떤 집을 방문해야하는 것이 아닌 행로의 우물가에서, 길가에서 사람을 만나시기도 하시고 삭개오의 예처럼 볼 수 있듯이 집에도 방문하셨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볼 때 성도들의 삶으로, 회중들의 삶의 자리로 찾아가 방문하는 하나님의 임재이면서 동시에 목회자가 그 역할을 대신 감당한다는 것이 심방의 신학적인 의미라 할 수 있다. 즉,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그들의 영적인 삶을 지도하는 것이 심방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전통과 심방


초대교회는 가정 교회의 형태였다. 사도들의 사역이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여기서 드려지는 예배 자체가 심방예배와 같았을 것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날마다 모여서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떡을 떼고 교제하고 세상 가운데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했다.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고 또 가는 곳마다 평안을 비는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친교(intimacy)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정의 소유주나 가정의 구성원들, 친척들과 함께 같은 자연적, 혈연적인 친밀감들이 초대교회 사역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교회의 개념은 4세기 콘스탄티노플이 공교회를 지정한 이후였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이러한 가정에서 드리는 심방 차원의 예배가 드려졌고 복음이 전해졌기에 중요하다.


중세 가톨릭교회 천년 역사 가운데 심방 기능을 담당했다고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성례전이다. 미사를 드리기 전에 성도들이 개인의 죄를 사도들에게 고백하는 고해이다. 이 고해에는 현대 개신교가 행하고 있는 심방의 역할도 있었다. 죄를 고백하고 죄책감을 덜어주고, 교제하고 상담하는 개인의 삶을 돌보고 위로하는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적인 만남과 교제가 자연스럽게 예배로 연결되었다.


그런데 츠빙글리의 영향으로 개혁교회의 전통이 나오면서 성례전이 약화되었다. 설교 중심의 예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설교 중심의 예배가 가진 약점 가운데 하나는 중보, 중재의 기능이 약하다는 것이다. 예배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신비를 체험하는 것이 목표인데, 중세교회는 몸이라는 것의 감각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비에 참여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개혁교회로 넘어오면서 그것들을 설교로 대신하게 되었다. 이것은 상징적이고 비언어적인 부분들을 언어가 대체하는 상황이 되었고 많은 부분에 있어서 개인이 신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경험들, 신비, 침묵, 상징, 제스처 등 여러 순서들 속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순서들이 너무나 많이 잘려나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 이후에 나타난 신예전운동이라는 것이 개혁교회 안에서도 교회사에서 잃어버린 전통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혁교회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개혁교회 예배 자체가 언어 중심적이기에 교육적인 측면이 강화되었고 그렇게 되면서 개인적 돌봄이나 개인적인 치유나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다. 현대에 와서 이러한 기능을 심방이 대체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심방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심방과 그 기능


한국 교회의 급속한 성장의 요인 중 하나가 심방 문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 한국 교회는 목사님과 여전도사님들이 낮에 다니시면서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때로는 신유적인 은사의 경험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방언, 치유, 축귀 등의 신유의 체험들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미국의 1·2차 대각성 운동 때 있었던 몸의 체험들이 한국 초창기 1960-70년대에 심방예배로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또 하나는 가정교회의 예배의 역동성이 그대로 주일예배로 연결되면서 성도들 개인의 삶에서 나타난 치유, 회개, 변화들이 주일예배 가운데 공적으로 확인되는 과정을 통해서 한국 교회의 교회성장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듯 초창기 한국 교회의 성장 뒤에는 심방이 목회사역의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1970-1980년대 경제성장과 산업사회의 진입으로 많은 부분이 세속화, 자본주의화, 물질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초창기에 있었던 순수한 열정,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사라지고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면서 심방의 목적이 희미해진 것이다. 많은 경우 현세적인 축복을 빌어주는 경우로 전락하였고, 교회 안팎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


‘심방의 목적이 개인적인 부와 안녕을 위한 도구로 될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기도 하였다. 목회자가 그것을 빌어주는 샤먼, 무당이냐는 비판과 교회 내적 성찰과 비판이 있기도 했다. 또한 심방 이후에 촌지를 받게 되는 목회자들의 사례들이 이슈가 되면서 심방무용론이 나타나기까지 했다. 그러한 면에서 ‘심방은 구시대적인 유물이다’라는 심방폐지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사역 가운데 심방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은 목회자가 끊임없이 성도들의 삶 가운데 그들의 생업에 가장 가까이 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많은 사람이 가정을 방문해서 20-30분씩 예배를 드리고 하루에 5-6가정을 방문하는식의 구시대적 심방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심방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본질적 사역은 계승하되 또 다시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21세기, 심방이 나아가야 할 방향


심방이 중요한 이유는 현대인들이 매우 개인적이고 먹고 살만 하면서 문제들이 내면화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외적인 면, 먹을 것에 대한 필요가 강하였지만, 점점 그러한 필요가 채워지면서 현대인들의 내면적인 아픔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보이는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깊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연예인, 가정주부, 전문인, 교수 등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를 불문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말 삶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었다면 그들이 과연 자살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만약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목회자와 깊은 대화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치유와 평화를 경험했다면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나 슬픔 가운데 있는 자, 장애인들을 방문하는 것은 심방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고 목회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우고 종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고통 받는 자들과 하나가 되셨던 그리스도의 사역을 목회자가 심방으로써 대신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심방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대심방, 병원심방, 환자, 개업, 가정의 애경사(돌잔치, 성년)등 생애주기와 관련된 여러 자리들을 축하하고 하나님과 공동체 안에서 적응할 수 있는 예배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군 입대를 앞두고 두려워하는 청년에게 심방을 통하여 기도해주고 위로하고 힘을 주는 것이다. 중세 가톨릭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굉장히 세분화 되어 있었다. 심지어 여행자를 위한 미사가 따로 있었다. 그만큼 예배가 세분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개신교는 이러한 부분이 많이 사라져 버렸고 주일공동예배, 또는 주일예배가 축소된 심방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훨씬 더 집중된 심방 대상자의 삶의 정황과 관련된 정확한 이슈를 가지고 접근하는 예배가 필요하다. 현대인들에서 자꾸 자살이나 사회부적응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 변화 가운데 그것을 수용, 변화, 대처할 만한 사회적인 준비뿐 아니라 교회적인 준비, 그것을 하나님 안에서 의미를 주어줄 수 있는 목회적인 관점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분에서 심방이 대체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심방에서의 예배


전통적, 예전적인 교단에서는 심방을 예배라고 하지 않는다. 예배의 영문은 Worship과 Liturgy라고 한다. Liturgy는 예전적인 교단인 루터, 성공회, 가톨릭에서 사용하고 있고, Worship은 개혁교단에서 많이 사용한다. 주일공동예배의 경우는 회중 전체가 드리는 예배이다. 어떤 한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예배라고 하는 것이 개개인이 참여해서 그들의 내면이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고 치유되어 죄 사함을 얻어 세상으로 다시 파송하는 그러한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만남은 늘 공동체적이었듯이 예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기억하는 하나님과의 상호관계였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공동예배라고 하는 것은 그 교회 전체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는 행위이고 하나의 지체된 교인들이 자기의 삶 가운데 교회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심방은 철저하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상황들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다고 하는 부분이 장점이다. 질병, 수술, 개업, 군 입대, 자녀 교육의 문제, 가정 불화, 새신자 등 특수한 상황에 초점을 맞춰서 맥락에 대한 이해와 그것에 대한 대안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예배나 본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공통점은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신비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서 그분을 만나고 경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는 행위라고 한다면, 주일공동예배와 심방예배가 이를 동일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일예배는 그 행위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고, 심방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그 의미를 부여해주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심방이 가진 장점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이 과정 속에서 주일공동예배보다, 때로는 더 신체적이고 영적인 치유까지도 가능한 시간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심방은 주일공동예배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신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깊은 사역의 부분이므로, 21세기 한국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존재해야 함이 당연할 것이다.



심방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요소들


심방을 가기 전에 먼저 행해져야 할 것은 성도와 관련된 정보에 익숙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끔씩 심방 중에 목사님이 부교역자에게 성도 이름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성도가 이 모습을 보고 상처를 받는 상황이 종종 펼쳐지기도 한다. 성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커녕 이름조차도 기억 못한다는 것은 목회자가 심방에 대한 사전적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의무적이고 형식적인 심방을 탈피해야 할 때가 왔다. 또한 사전에 심방의 목적과 소요 시간이나 동행인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장소나 시간적인 부분에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심방이 이루어지면 방해되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심방 대상자가 당면한 문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에 그 가정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면 그 자료를 가지고 방문해야 한다. 마치 과거의 병력을 의사들이 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삶의 변화를 기록해 둔 심방일지와 데이터베이스 작업이 필요하다.



예배의 필요성


주의할 점은 심방에서 목회자가 주인이 아니라 성도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가 자기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 하나님의 거룩함과 신비 앞에서 스스로 그 방향과 의미를 깨닫고 치유를 경험하는 조력자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님들이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거나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앞으로의 심방목회에 있어서 결과와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성도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문제를 깨닫고 수정하여 회개할 수 있도록 영적 지도를 하는 것이 심방하는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예배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상담의 경우는 대화나 의식적인 차원에서 해결을 보고 문제에 대한 답을 바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현대인들은 답을 몰라서 못하는 경우보다는 알면서도 할 능력이 없기에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경우에 목회자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심방의 주요한 목적이다. 하나님의 신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들이 되어야 한다. 이렇듯 심방예배를 통해서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심방 시 성도와 목회자가 조율해야할 것


심방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목회자가 성도들의 사생활을 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사생활 문제를 깊게 파고 들어가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무리 한다면,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노출하기 싫은 부분까지 들키게 된다는 생각에 부담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또한,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가 심방예배 가운데 노출되었을 때는 절대 그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는 신뢰 관계가 필요하다. 또한 현대적 상황에서 같은 동네를 심방 다니다 보면, 경제적인 편차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또는 특정 지역, 특정 상황, 특정 사람일 때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별히 교회 안에서 힘 있고 중심적인 교인들을 중심으로 방문 한다고 했을때 상대적인 불평이나 불만이 제시될 수 있다. 심방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적인 교회의 다이내믹을 고려해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하고 가능하면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약자의 입장에서 심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수상황 속 심방예배의 형식과 절차


특수상황 속 심방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도의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 ‘정말 성도가 심방을 원하는가?’, ‘왜 원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인들이 개인화되면서 심방을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따라서 성도들에게 자기만의 시간을 줘야한다. 또한 성도들이 심방할때 목회자들을 대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에 심방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목회자가 성도의 요구에 따라서 그에 맞는 심방을 기획해야 한다.
심방은 성도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한다는 의미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문제가 없지만 목회자 개인을 알고 싶은 성도들을 위한 방문도 필요하다. 심방의 장소는 반드시 성도의 집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생업의 현장, 자주 가는 카페, 봉사하는 곳, 병원 등 회중 중심적으로 변해가야 한다.


또한 심방 안에서도 성찬이 회복되어야 한다. 예전적 전통에 있는 목회자들은 성찬 키트가 있다. 이것은 초대교회 디다케(Didache)문서에도 나오는데 아픈 자들을 방문해서 그들을 위해 성찬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아픈 환자를 위해 떡을 떼고 잔을 마시며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교회 안에서도 심방에 대한 성찬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병원심방


병원생각의 경우 질병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의미들, 그리고 질병 가운데 그것을 잘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본문 선택과 위로의 말씀들이 필요하다. 질병을 지나치게 죄로 연결시키는 경우를 보았다. 물론 신학적으로 보았을 때 연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질병이 죄의 결과는 아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것을 지나치게 연결시켜 버리면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생기고 아픈 자를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말씀만큼 위엄이 있는 동시에 위험한 것이 없다. 그것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게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암은 어떤 경우에는 치유가 되지만 다른 경우는 암을 안고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암과 더불어서 살아가지만 그것을 하루하루 이겨내고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게끔 신학적, 예배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 때로는 카리스마적인 치유의 은혜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모든 경우에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저주가 아님을 알려줘야 한다. 질병을 내 삶의 동반자로 인식 하고 긍정 하면서 살아가게끔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례심방


장례식의 경우는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이다. 이 공간은 굉장히 종말론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모든 성도들과 함께 만날 준비를 하는 것이고 그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는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인간적으로는 헤어졌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슬픈 감정들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장례심방은 무신론자들이 같이 있다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세상적인 이별의 아픔, 슬픔을 인정해주고 그들과 함께 그 슬픔을 체휼한다고 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그 자리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한 아픔 없이 부활과 미래에 대한 소망을 선포하는 것은 전혀 성서적이지 않다. 부활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고난 이후에 오는 것이었고 그리스도는 부활 이후에도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의 아픔을 긍정해야겠지만 그 아픔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슬픔은 우리가 받아들여야하고 그것을 목회적 차원에서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개업심방


유학 시절에 개업심방을 목사님과 몇 번 다녔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왜 개업까지도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소위 말해서 세상적인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 있어서 개업은 중요한 위기 상황이다. 많은 자본이 들어갔고, 가족의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는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인생의 중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그 사업이 성공을 하던 어려움을 겪던지 간에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믿음을 심어주고 세속적인 직업역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소명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개업심방이다.



결혼심방


결혼심방은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고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성서적으로 짚어주고 그들의 불만을 들어 주고 서로 위로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채널링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심방이라는 것은 어떤 축복을 넘어서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만까지도 다 드러내 놓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문제가 상대방의 잘못만 보는데 예배의 경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과 단점을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시선들이 심방예배 가운데 생길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심방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심방이라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케이스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지만 케이스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의 신비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서 그 의미가 주어져야한다. 그 의미를 스스로 깨닫고 고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이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효과적인 심방을 위해서는 성도가 사전에 심방요청을 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픔이 있는지, 어떤 기도를 받기를 원하는지, 현재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 객관적인 요소들을 미리 전화상담을 통하여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인 심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목회자도 그에 해당하는 말씀을 기도 가운데 준비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간의 협조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는 것은 굉장히 폭넓은 차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이지만 사전에 준비만 잘 된다면 이런 직접적인 결과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방예배와 담임목사의 역할


대형 교회의 경우 목사님이 심방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담임목사님이 해야 할 경우도 있다. 바로 약자에 대한 관심이다. 저렇게 큰 목사님이 이렇게 소외된 나를 위해서 오셔서 기도해 주신다고 하는 것은 한국적인 정서에서 굉장한 영광이고 이것은 목회적인 효과도 크게 나타난다. 앞으로의 시대는 소외된 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별히 아프고 힘없는 자, 새신자들에게 담임목회자가 신경을 써야 한다. 힘 있는 자, 중직자들의 심방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문제가 있을 때 그들은 자생할 능력이 있다.


문제는 작은 교회다. 작은 교회의 많은 목사님들은 굉장히 탈진해있다. 교회의 사이즈가 작을수록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와 설교이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시간을 모아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심방은 아픈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돌보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시간을 잘 배열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목회자 자신의 삶과 건강, 영적 상태를 돌보아야 한다. 그렇게 했을때 장기적으로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다.



* 본 원고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정리한 글입니다.



박종환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그 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조직신학)와 에모리대학교(예배학)에서 석사(Th.M)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박사(Ph.D, Cand.)학위를 취득하였다.
철학과 예배학 등 많은 학문을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하고 배운 것을 현재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예배학 교수로 강의하며 한국교회의 예배를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거룩한 상징 - 예전 가구의 신학적인 이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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