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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 '심방에서의 설교' 삶에 소망을 주는 말씀의 불화살을 던지라 - 김운용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 교수)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508    등록일시 : 2010-06-01    인쇄

목회에 힘을 싣는 심방목회 클로즈업



심방에서의 설교


삶에 소망을 주는 말씀의 불화살을 던지라



김운용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 교수)



심방사역의 가장 큰 요소는 ‘찾아오심’과 ‘말씀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아오시어 말씀을 주시고 그들을 일으켜 세우셨다. 이렇듯 심방사역은 목회자가 주님의 양 무리를 기억하고, 성도를 찾아가 그들을 말씀 앞에 바로 세우려는 돌봄과 양육이다. 따라서 심방 안에서의 설교가 쉽게 행해져서는 안될 것이다. 말씀으로 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목회자는 심방 속에서 성도가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 그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성도 개개인의 상황을 온전히 알고, 그 마음을 말씀으로 만져주는 목회적 돌봄으로서의 심방과 설교란 무엇인지 김운용 교수를 통해 들어보자. <편집부>



목회적 돌봄으로서의 심방 : “한 말씀만 하소서”


1988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그 해, 25살의 젊은 아들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떠나 보내야했던 슬픔을 겪었던 작가 박완서 씨는 그의 책 「한 말씀만 하소서」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겪는 가정의 슬픔을 구구절절하게 담았다. 그 아들을 땅에 묻어야 하는 어머니의 슬픔과 눈물을 세상 어떤 아픔과 비교할 수 있을까?


“원태야, 원태야, 내 사랑하는 아들 원태야,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나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병 한 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나님, 하나님도 실수를 하시는군요.”1)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에 가득 찬 푸념도 나오고 간곡한 항변도 나오고, 반항하듯 의지하며 자신의 고통을 이겨보려는 한 신앙인의 고민도 나온다. 눈물로, 수면제로 하루하루를 견디어 가며 따라죽지 못함을 한스러워하면서 몸부림치는 한 신앙인의 아픔의 기록들이 가득 담겨 있다. 작가는 왜 그렇게 아들을 빨리 데려가셨는지 그 이유를 한 말씀만 해주시면 다 받아들이겠다면서 절규하면서 외친다.


“한 말씀만 하소서!”


이런 극한 슬픔으로부터 시작하여 인생길에는 수많은 난관도 있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방황하는 일도 있으며, 모종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몰라 답답해 할 때도 있다. 단지 이런 문제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도 권면이 필요하고 목회적 돌봄과 영적 지도(spiritual direction)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이러한 인생길의 특성을 잘 이해하여 목회적 돌봄을 제공해 온 것이 바로 ‘심방’이었다.


심방에는 여러 기능들이 있지만 말씀을 통한 권면과 중보 사역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심방에서 행해지는 설교는 공적 예배에서 행해지는 설교와는 다르게 상당히 개인적이고 상황적인 특성을 가진 것으로, 노 작가가 아픔과 고통 가운데서 간절하게 던지는 그 음성,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절규에 대해 말씀으로 응답하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그래서 목양 사역에서 심방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으며, 그 가운데서도 말씀으로 권면하는 일은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의 하나로 자리잡아왔다.



심방, 성경에서 찾다


이러한 사역의 모습과 기능을 우리는 성경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부활의 새벽, 무덤을 찾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 때문에 큰 슬픔을 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유난히 주님의 크신 사랑을 입었던 그녀는 주님을 특히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주님으로 인해 고침 받았고, 주님으로 인해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고 힘찬 섬김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깊은 슬픔에 직면해 있었다. 봄이 오면서 거리에는 화사한 꽃들이 피어 핑크 빛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그녀의 눈에 세상은 잿빛이었다. 이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고, 새들의 노래 소리도 그녀에게 더 이상 노래로 들리지 않았다. 아픔으로 인해 그녀는 통곡하고 싶었다. 부활의 아침 무덤에 올라갔으나 그곳에서 그녀는 위로 받기는커녕 더 큰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한 자리에 부활하신 주님은 찾아오셨고, 슬픔으로 얼룩져 있는 여인을 말씀으로 덮으셨다. 말씀을 들음으로 그녀는 일어섰고 힘껏 달려가는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아간다(요 20장).


그러한 모습은 엠마오의 힘든 길을 걸어가는 두 제자에게도 찾을 수 있다. 부활의 아침, 부활의 소식을 들었으나 도무지 믿을 수 없어 받아들이지 못한 채 깊은 절망감에 젖어 위험을 피해 고향으로 피신해 가던 그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셨다. 답답함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길을 걸어가고 있던 그들을 찾아오신 주님은 그들을 말씀으로 덮으셨다.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그들의 가슴은 뜨거워졌으며 일상의 식사를 바꾸어 거룩한 성찬으로 허락하시는 은혜 앞에서 영의 눈이 활짝 열려져 그곳에 계시는 살아계신 주님을 보게 된다. 그들도 벌떡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달려가는 기운찬 신앙인으로 바뀐다(눅 24장).



말씀으로 바로 세우는 심방 사역


간단히 살펴본 두 말씀에서 우리는 심방 사역의 근간을 이루는 축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찾아오심’과 ‘말씀하심’이라는 두 축이다. 이것은 성육신 신학과 계시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주제인데, 기독교의 생명 사역은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심방의 기초와 필요성을 우리는 하나님의 성육신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아오시어 말씀을 주셨으며,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셨다(창 3:9, 4:9, 16:8-9, 21:1, 출 3:16, 마 25:36, 눅 10:38). 종국에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을 찾아오심으로 구원의 역사가 완성된다.


심방은 찾아오시어 싸매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시작되는 사역이다. 이렇게 기독교의 심방은 하나님의 ‘찾아오심’의 원리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언제나 곤경에 처한 인간을 ‘기억하심’에서 시작되었고, 그들을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심’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은혜를 맛보면서 시편 기자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는 고백을 올려드리고 있다(시 8:4). 여기에서는 “생각하다, 돌보다”라는 두 관점이 히브리어 문법의 평행법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을 찾아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내려오신 하나님의 성육신 정신이며, 오늘도 인간을 그 사랑의 품에 안으시려는 구속 역사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심방사역은 다른 목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세워진 영혼과 가정을 말씀 앞에 바로 세우려는 돌봄과 양육의 목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따라서 심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말씀과 하늘 아버지를 향해 드리는 중보기도의 사역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심방 설교자는 이런 마음으로 심방을 준비해야 하며, 말씀이 들어가면 방황하던 사람들의 방황이 끝나고, 상처받은 영혼들에 치유가 일어나며,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사람들이 강한 용사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을 능력으로 확신하며 감당해야 한다. “한 말씀만 하소서!” 지금 내가 찾아갈 사람은 말씀에 목말라 있으며, 생명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들은 소생케 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심방 사역의 재고


그동안 한국 교회 목회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의 하나로 자리 잡아 왔던 심방사역이 오늘날에는 그 중요성이 점점 밀려나면서 이것은 오늘의 시대에 적합지 않은 사역으로 외면될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와 문화사회적 변화로 인해 이러한 현상들이 야기되고 있기에 이것에 대한 목회신학적 이해와 재고(再考)를 필요로 한다. 지난 선교 1세기 동안 한국 교회가 급성장을 이루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지만 그 중에 하나로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열심과 성도들에게 대한 적절한 목양적 돌봄(pastoral care)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가정의 대소사와 기도제목, 신앙생활 등을 살피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하여 기도했던 심방 사역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한국 교회에서 발생한 사역이라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성삼위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핵심 가운데서 나온 것이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펼치신 사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러한 특성 때문에 심방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가정을 영적으로 바로 세우는데 중요한 목회의 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목회의 소중한 사역의 도구가 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도시화의 영향, 공동체의 해체와 개인주의 문화의 파급으로 인해 가정을 방문하는 심방이 점점 그 중요성이 퇴색되고 있는 분위기여서 새로운 대안적 발전이 요구되는 때이기도 하다.


다양화된 현대인의 삶의 구조에서 가정이나 일터를 찾아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분위기이지만 심방이 가지는 성경적, 신학적 의미를 적절하게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고, 구태의연한 방식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통해 심방의 기능을 살리는 것도 필요하다.


목회는 관계 사역이다. 그러므로 교인들의 형편을 살피고, 적절하게 권면하여 세우는 일은 신앙성장이라는 차원뿐만 아니라 지탱(sustaining)이라는 차원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심방의 목적을 여러 가지로 규정할 수 있지만 양육과 지탱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심방은 교인들의 형편을 살피고, 말씀을 통해 양육하기 위한 목적이 있으며(요 21:15), 환난과 낙담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 격려, 권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약 5:14). 이렇게 함으로 자연스럽게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기도 하고 교인들 사이에는 공동체성을 함양할 수 있다는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심방은 돌봄의 기능, 교육의 기능, 전도의 기능 등을 수행할 수 있는 좋은 목회 사역이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에게는 교인들의 형편을 살피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기도제목을 발견하기도 하고, 설교 준비에 있어서 삶의 현장과 연관성있는 메시지를 준비함으로 설교 사역과 목회 사역에도 생기를 부어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중요한 사역이다.



심방 사역자의 모델 예수님


이 땅에서 영혼 돌봄과 말씀 사역을 펼치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기간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철저하게 사람을 세우는데 전력하셨음을 알 수 있다. 각기 다른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따라 말씀을 전하여 그들을 세우고,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셔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시는 일에 집중하셨다. 예수님은 단지 찾아오는 사람들만 만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셔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셨고,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을 덮으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언제나 “한 영혼”이었으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찾아가시는 열정을 보이셨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도 찾아가셨지만 개인적인 아픔과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셨고, 말씀으로 그들을 일으켜 세우셨으며, 회복된 사람들을 제자의 삶으로 초대하셨다. 그러한 사역의 중심에는 만남을 통한 삶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또한 예수님의 심방 사역의 핵심에는 삶의 변형(transformation)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그러한 변화는 언제나 말씀을 중심으로 한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찾아가 말씀으로 덮으셨던 가정과 개인에게는 언제나 역동적 삶의 변화가 일어났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설교는 삶의 변형에 초점을 맞추어 행해져야 한다.2)



한 영혼에 집중하는 예수님의 심방사역


예수님의 심방은 언제나 성과 위주의 심방이 아니라 한 영혼에 집중하시는 심방이었다. 이러한 방식에 대해 힐난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눅 15:4-6)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한 영혼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하셨으며 전인격으로 그를 만나심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셨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대하셨던 것이 아니었고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영혼을 구하시려는 정열을 가지고 나아가셨고, 그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말씀으로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셨다.


소외된 영혼들을 위한 심방


또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 나서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소외된 영혼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을 찾을 수 있다. 시각장애, 오랜 질병의 고통에 묶여 있는 사람들, 사회적 소외 계층, 한센병 환자와 같이 버려진 사람들,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받던 세리와 사마리아 사람 등을 찾아가셔서 만나셨다. 예수님은 스스로 나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셨고 그들을 위한 치유와 용서의 말씀으로 그들의 삶의 변화를 만드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소외된 계층을 찾아가시는 심방자였다.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시기 위해 예수님은 성과 촌을 두루 찾아 다니셨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소외된 자는 반드시 특수계층이나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고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만나시기 위해 ‘두루’ 다니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화려한 도시도 찾아가셨고, 한적한 시골도 찾아가셨으며, 부자들도 만나셨고 가난한 사람들도 만나셨다. 병든 자들도 찾아가셨고, 건강한 사람들도 찾아가셨다. 실로 예수님이 만나시고 말씀으로 권면하신 계층은 당시의 모든 사회계층의 사람들이었고, 지역과 인종을 초월하는 계층이었다.



예수님의 심방 설교


예수님은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셨고, 거기에서 만나신 사람들을 말씀으로 덮으셨다. 예수님의 심방사역은 먼저 들으시고, 그들을 말씀으로 권면하여 세우시고 치유하시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생생하게 그들로 기억하게 하셨던 사역이었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해 하늘 아버지를 보여주셨고, 만날 수 있도록 인도했다. 단순히 교회 출석이나 종교 생활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목적보다도 더 큰 목적으로 행해졌는데,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돌보시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한 대화와 권면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때론 권면으로 비유로 진솔한 가르침으로 가슴을 찌르는 예리한 말씀 등으로 그들의 영혼을 덮으셨다. 물론 강압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대화와 질문을 통해 그들의 문제를 보게 하셨고,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의뢰하게 하였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자세로 행하지 않고, 지시적이고 권위적인 형태로 권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시고 진정으로 이해하시는 친밀함을 토대로 한 인간관계를 통해 이루어진 심방이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언어는 피상적인 머리의 언어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좌절을 온 마음으로 느끼시고 어루만지셨던 가슴의 언어로서의 말씀이셨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심방에서 행하셨던 설교의 초점은 언제나 치유와 회복이었으며, 영혼 구원에 맞추어져 있었다.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심방은 언제나 문제 상황으로부터의 자유함과 희망이 선포되었고, 그 가정에 구원이 선포되기도 하고, 회복이 일어나는 심방이었다. 심방은 말씀을 통해 문제 해결과 고통으로부터의 풀려남,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신뢰하고 확신하게 되는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된다. 예수님의 최종적인 관심은 언제나 영혼 구원에 있었다. 이렇듯 예수님의 심방은 단순히 현세적인 복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라 전인적 회복을 통한 영혼 구원에 늘 초점을 맞추어 행해졌던 것이다.



심방설교를 위한 지침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심방을 통해 사역자는 어떻게 말씀으로 권면하고 말씀사역을 펼쳐갈 수 있을까? 심방 설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주일 공예배(common worship)에서 행해지는 ‘설교’와 동일한 차원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말씀을 통한 권면’의 특성을 가지는 작은 설교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심방은 아주 다양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정해진 틀을 설정하기가 쉽진 않지만 예수님의 심방사역을 바탕으로 심방하는 사역자가 교인들을 말씀으로 권면할 때 유념해야 할 지침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사역자는 심방 설교를 통해 예수님의 돌보심과 치유하심, 인도하심이 생각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심방자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양무리를 목양하기 위해 방문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말씀으로 권면할 때도 이러한 특성 때문에 헨리 나우웬은 사역자를 가리켜 “생생하게 기억나게 하는 사람”(Living reminder)이라고 규정한다.3)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붙드심과 돌보심이 생각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질병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치유하심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심방설교의 목적이 되기도 하고 방향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흔히 한국 교회에서는 기복주의적인 경향 때문에 사역자의 가정 방문이나 예배를 통해서 복을 받을 것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가정을 방문할 때 사역자는 그 가정을 위해 진정으로 복을 빌어줄 필요도 있지만 사역자가 “축복을 제조하여 나누어주는 사람”이거나 목회자가 가정에 오면 축복을 받는다는 오해로 심방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사역자도, 교인들도 함께 유념해야 할 사항으로 가정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목회적 권면과 돌봄을 제공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고, 단지 기복적인 관점에서 심방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모든 설교가 그렇지만 심방설교는 특수한 상황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 심방할 가정의 형편과 상황을 고려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미리 준비되어야 하며, 그 말씀을 설명해 주고, 그 말씀 가운데서 주시는 약속과 명령을 설명해 주면서 적용하는 형식을 취하여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인간적인 경험담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명해 주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좋겠다. 방문하는 가정의 필요와 갈증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들에게 어떤 말씀으로 먹일 것인가를 깊이 기도하고 숙고하면서 말씀이 준비되어야 한다. 특별히 연례적으로 행해지는 대심방 기간에는 심방하는 성도들의 가정을 미리 살펴 깊이 있는 말씀으로 준비하여 말씀의 축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심방이나 정기심방을 앞두고는 기도와 말씀의 준비의 특별시간을 내는 것도 준비를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평소에 상황과 주제별로 심방설교를 미리 준비해 두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고 가정이나 심방 요청을 받아 갈 경우에는 기도로 말씀을 준비하고 가야 하겠으나 그 가정의 형편과 고민사항을 잘 듣고 거기에 맞는 말씀으로 심방의 자리에서 즉석에서 준비해야 할 경우도 있다. 가정의 형편을 살피고 심방예배 전에 갖는 대화 가운데 그 가정에 필요한 말씀을 준비하여 전할 수도 있겠다.


셋째, 심방설교를 준비할 때는 심방을 받는 가정도 함께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필요로 한다. 심방은 사역자들이 주님을 대신하여 성도들을 방문하는 것인 만큼 간절하게 주님을 기다렸던 마르다, 마리아 가정처럼 그렇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로 준비하도록 하여 옥토와 같은 말씀의 마음 밭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인들에게도 심방을 받을 준비를 하도록 교육할 필요성도 있다.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었던 고넬료 가정이 기다림과 사모함으로 준비하였던 자세, 그리고 주신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를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
고넬료 가정은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기다림으로 베드로의 심방을 통해 큰 말씀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넷째, 각 가정을 위해 심방 시 전하였던 말씀은 교인카드에 기록하여 남길 뿐만 아니라 주신 말씀을 붙잡고 살았을 때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셨는지를 간증하게 하는 것도 좋겠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운동력이 있어 살아 역사하는 말씀임을 기억하면서 주신 말씀들로 순종할 자세와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려는 결단의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 심방설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의례적으로, 혹은 일회적으로 행하는 것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 여기에서(here and now)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가정, 혹은 교인에게 이렇게 살도록 주시는 삶의 지침이 되는 말씀으로 준비하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의례적으로 행하는 설교가 아니라 그 가정을 위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면 말씀대로 순종하고 결단하여, 그렇게 했을 때 주시는 결과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자세를 갖게 될 것이다.


다섯째, 심방설교는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해야 하며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병원심방이나 환자심방의 경우에는 분위기와 상황을 살펴서 반드시 예배 형식을 취하지 않고 간단히 기도만 해주고 올 수도 있고, 간단히 성경말씀을 읽고 짧은 권면과 함께 기도를 해주고 올 수 있다. 또 불신자와 함께 하는 경우에는 그들에 대한 배려와 너무 강요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하여 오히려 반감을 갖지 않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심방의 경우는 워낙 다양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심방 설교에서는 무엇보다도 상황과 형편을 적절하게 고려하고 연관성을 만드는 능력이 요구된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장례, 질병이나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문제 앞에서는 그것에 대한 무리한 해석을 하려 하지 말고 함께 아파하며 공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좋겠다. 예컨대 가족이 자살하여 장례를 치루는 곳에 심방을 가서 자살은 죄악이라든지,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을 잘하여 남은 가족들은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식으로 말씀을 전한다면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슬픔 가운데 있는 교우들에게는 위로는커녕 반감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는 판단을 유보하고 슬픔 당한 교우의 마음에 공감하는 자세를 가지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심방설교는 다양한 형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는 달리 도시화와 개인주의 문화의 발달로 가정을 방문하여 심방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심방을 강요하기 보다는 구역이 함께 모여 갖는 그룹심방, 전화나 이메일, 편지 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심방의 목적은 반드시 설교를 하기 위한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 갖는 것이 아니라 목회적 돌봄을 통해 성도들을 강건하게 세우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음을 감안할 때 심방설교는 다양한 형식의 변화를 꾀할 필요도 있다.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 부부인 어느 교회 목회자는 매주 목자의 간절한 심정을 담은 목회서신을 우편과 이메일로 발송하여 교인들을 향한 목회자의 마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통한 양육을 꽤하는 사례도 들은 바 있다. 교인들이 매주 목회자가 보내는 서신을 통한 말씀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어 그것이 목회의 중요한 장이 되고 있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가정의 특별한 기념일을 기억하였다가 간단한 카드나 편지 형식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마음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는 심방의 형태가 주로 찾아가는 형식으로 취해졌다면 시간을 정하고 찾아오게 하는 심방형태로도 바꾸어서 시간과 장을 마련해 놓을 필요도 있겠다.


일곱째, 심방 설교는 간략하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로 준비하되, 주신 말씀을 강해하고, 적용해 주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 깊은 신학적 해설과 교리적 가르침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읽은 말씀에서 주시는 교훈을 따라 구체적으로 삶 가운데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와 오늘이라는 상황에서 붙잡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보여주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심방예배가 30분을 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찬송과 대표기도 등의 순서를 갖고 성경봉독과 함께 설교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에 대략 10분 전후가 되면 좋을 것이다. 또한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고난 가운데 있는 가정을 위해서는 권면과 격려, 믿음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좋다. 고난과 아픔을 하나님의 저주나 징벌로 해석함으로 낙심케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또한 기도나 신앙생활을 잘하면 만사형통하고 축복받게 된다는 식의 메시지보다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선포하여 믿음으로 고난의 시간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믿음으로 승리해 가는 삶을 권면하는 메시지가 좋다.


일반적인 경우에나 낙심 중에 있는 성도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원하심과 기뻐하심에 초점을 맞추는 메시지가 좋다. 이것은 양무리를 사랑하는 목자의 간절한 심정으로 격려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메시지가 되어야 하며, 가급적 정죄하거나 저주의 메시지로 위협하는 형식은 어떤 경우에도 지양해야 한다. 물론 죄악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나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가정에 가서도 축복의 메시지나 비위를 맞추는 설교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 가정을 향한 하나님이 원하심과 뜻을 명확히 알려주되 지혜가 필요하며, 가능한한 긍정적이고 격려를 주는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덟째, 심방 설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교자의 마음이 중요한다. 심방설교자에게 필요한 마음은 공감의 마음이다. 진정으로 함께 울어주고 웃어줄 수 있는 마음 없이 전하는 말씀은 능력으로 다가올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마음을 헨리 나우웬은 사역자가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치유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는 그에게도 그러한 상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때 온전히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사역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영적 우월감을 가지고 말씀으로 권면하려는 자세이며, 그의 아픔은 진정으로 이해하지도 않고 넘어져 있는 사람을 높은 곳에 세우려는 목적지향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다. 심방설교는 우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과 함께 웃는 자세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나우웬이 지적한 것처럼 “매우 힘든 부르심”이다.4)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사역자는 성도들이 삶 가운데서 당하는 문제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주된 임무는 아니며,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사역자는 할 수 있는 데까지 그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며, 공감하는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심방설교자는 성도들이 잘못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고통 당하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며, 잘못된 삶의 자세와 신앙자세로 인해서 고통 받는 것과 야기된 문제를 치유하려는 사역자이다. 그래서 나우웬은 ”광야의 고난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광야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할 수 있다고 착각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하며, 진정한 말씀의 영향력과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야 하며 그 이해된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5)



심방설교는 이렇게 하라
첫째, 예수님의 돌보심, 치유하심, 인도하심이 설교를 통해 전해져야 한다.
둘째, 특수한 상황 속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셋째, 심방 받는 가정도 미리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필요로 한다.
넷째, 심방시 전하였던 말씀은 교인카드에 기록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았을 때, 인도하신 은혜를 간증하게 한다.
다섯째, 심방설교는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해야 하며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심방설교는 다양한 형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 간략하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로 준비하여야 한다.
여덟째, 심방설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교자의 마음이다.
아홉째, 심방설교는 성도들의 고통을 막아주고, 고통 받는 문제를 말씀으로 치유해 주어야 한다.



“깊고 진하게”: 모티베이터의 가슴


어떤 점에서 심방설교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의 역사와 능력을 그들의 삶 가운데서 맛보게 하는 모티베이터(motivator)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그분이 행하셨던 사역을 감당하면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신현림 시인의 시, “깊고 진하게”를 읽다 보면 심방 설교자의 가슴이 어떠해야 할지를 깊이 느끼게 한다.



깊고 진하게 살고 싶다
무엇이 되려고
바위처럼 되려고
무엇에든 쉽게 흔들리지 않고 깨지지 않는 바위
해와 달, 별을 감싸 안는 하늘을 사모하고
젖은 제 몸만 말리는 일상이 되지 않게
지친 자를 만나면 섬이 되어주고
마음의 눈은 혜안이 되고
괴로울 때에라도 희망을 엿듣고
지진으로 구겨진 도시를 볼 때처럼
무섭게 가슴이 타고
언젠가 차가운 빗물이 되더라도
바위처럼 단단히 살아내려고
- 신현림의 시 “깊고 진하게”



지친 자를 만나면 섬이 되어주고 혜안이 되어주는, 괴로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한 희망을 엿들으면서(overhearing) 그것을 전해주려는 가슴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서있는 그 자리는 생명이 일어나고 가정이 일어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이다.


요즘 주목받는 CEO 중에 조서환 씨라는 분이 있는데, 샴푸와 린스, 트리트먼트가 하나로 된 ‘하나로 샴푸’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고, 최근에는 모 회사의 3세대 이동통신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해 크게 성공을 거둔 마케팅의 귀재로 알려진 분이다. 그가 쓴 「모티베이터」라는 책은6) 고난 가운데 있었던 그가 인생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을 알려준다. 그는 23살에 육군 소위로 임관해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어버리는 사고를 당하였다. 어느날 병원에 찾아온 여자친구는 오른손이 잘려나간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그녀는 눈시울이 빨개지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는 당신한테 내가 필요 없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부터는 당신 곁에 내가 있어야 해요.”


그녀는 그날부터 병원 근처로 이사를 와서 아침저녁으로 그에게 식사를 챙겨주고 정성껏 간호해 주었다. 비록 그는 한 손을 잃었지만 참으로 행복했고 그녀 때문에 살아갈 용기를 얻고 있었다. 반대하는 아버지를 향해 그녀는 “아버지!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만약 아버지가 사고로 한쪽 팔을 잃는다면 어머니가 어떤 태도를 보이기를 원하세요? 한쪽 팔 없는 남자와는 살 수 없다고 하면서 집을 나가 다른 사람과 재혼하기를 원하세요? 아니면 ‘나는 당신의 팔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 자체를 사랑했어요’ 라고 하며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하세요?” 이 말에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조서환 씨의 마음속에 큰 기쁨과 감동이 밀려왔고, 그날 그는 굳게 결심하였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 ‘내 평생 이 여자 하나만은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 그렇게 해서 그는 재기에 성공하여 오늘날 각광받는 마케팅의 귀재로 굳게 설 수 있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였는가? 사랑의 마음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녀가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신실하게 고난 가운데 있는 한 남자를 껴안았을 때 그는 일어설 수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에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달려오셔서 상한 심령들, 상처받은 가정들, 소외되고 잊혀진 영혼들을 품에 안으시고 하늘의 말씀으로 권면하셨다. 그곳에서 생명이 살아났고, 가정이 회복되었으며, 인생의 치유와 일어섬의 역사가 일어났다. 오늘 심방설교자들은 이 사역을 계속해 가는 사람들이다. 하늘을 향해 “한 말씀만 해주소서!”라며 말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과 가정, 상한 심령과 환경을 덮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설교자들은 모티베이터(motivator)들이다. 그들이 일어서는 곳에서, 그들이 말씀으로 감싸는 그곳에서 사람이 세워지고, 가정이 세워지는 역사가 힘차게 일어날 것이다. 설교자들이여, 힘차게 일어나 말씀의 씨앗을 뿌려라!





1)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서울: 솔, 2001), 78.
2) 이러한 특성을 보다 상세하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김운용, 「새롭게 설교하기: 변화하는 시대에서의 설교사역」(서울: WPA, 2005), 18장을 참고하라.
3) Henri J. M. Nouwen, The Living Reminder, 피현희 역,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서울: 두란노, 1999).
4) Henri J. M. Nouwen, Wounded Healer, 「상처입은 치유자」(서울: 두란노, 2001), 117.
5) 위의 책, 110, 124.
6) 조서환, 「모티베이터」(서울: 책든사자, 2008).



김운용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와 신학석사(Th.M.)를 취득하였다. 그 후 미국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Th.M.)를 취득하고 Union Theological Seminary &Presbyte rian School of Christian Education에서 신학박사(Ph.D.)를 취득하였다.
헌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 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대학교학처장을 맡고 있다. 현재 충신교회 협동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새롭게 설교학기」, 「다음세대를 세우는 설교」등 역서 「권위없는 자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설교」, 「거룩한 예배」,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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