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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스페셜
한국 교회 이단과 그 대책주요 이단 대처 방법정리 편집부1)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대표 이만희)신천지예수교장막성전은 기성 교회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이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단체는 많은 성도들을 거짓으로 미혹하고, 이혼과 가출을 선택하는 사회적인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교회 밖 성경공부를 주의하라신천지는 기성 교회에 들어와 성도들을 포교하는 것이 특징이다. 열심 있는 성도들을 찾아 좋은 관계를 맺어 신뢰를 쌓은 후 성경공부를 권면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성경공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는 선교사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접근해 정기적인 성경공부, 기도모임에 참석하도록 유도하고 더 깊은 말씀을 배울 수 있다며 특정 장소(보통 월, 화, 목, 금요일에 모여 5-6개월 간 초ㆍ중ㆍ고급 과정을 배운다)로 인도해 여러 사람과 함께 강의를 듣도록 한다면 100% 신천지다. 아무리 믿을만한 사람이 성경공부를 소개하더라도 교회 밖에서 배우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소개한다면 반드시 교역자의 허락을 받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교회 밖에서는 성경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면 교역자를 통해 검증받아야 함을 반드시 기억하자.이러한 가르침을 피하라신천지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나 주로 하는 말을 알고 있으면 분별하기 쉽다.씨, 열매, 양식, 지팡이 = 말씀나무, 눈 = 사람열매, 고기 = 성도성경에 나오는 많은 단어를 위와 같은 방식으로 가르친다면 신천지다. 신천지 신도들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주로 하는 멘트가 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우리는 성경만 가지고 한다.”“이 말씀을 배우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이단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 이단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하고, 심지어 신천지가 이단이라고 가르치기도 하니 이러한 말을 한다고 해서 신천지가 아니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대학 내 동아리를 조심하라신천지는 대학 내에서 동아리를 통해 교묘하게 포교한다. 자신이 신천지임을 속이고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선후배, 동기들과의 친분을 잘 쌓으며 좋은 이미지를 심어 놓는다. 포교할만한 학생을 선정한 후 성경공부를 하자고 권면한다. 기독교 동아리의 특성상 성경공부가 자연스럽고, 같은 동아리 선후배, 동기의 소개는 거부감이 덜해 미혹되기 쉽다.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그 안에 신천지 신도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 된다. 기독교와 관련 없는 동아리에 들어갈 때도 조심해야 한다. 신천지에서 만든 동아리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는 그 학교의 기연(기독인연합회)에 문의하는 방법이 가장 현명하다. 기연에서는 건전한 기독동아리와 이단동아리를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연을 찾기가 어려울 경우 학원복음화협의회(02-838-9743)에 연락해 각 대학의 기연회장을 소개받을 수 있고, 대학 내 이단단체의 활동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교회 내의 지속적인 예방교육이 필요하다교회는 담임목사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담임목사가 이단대처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 예배 후 광고시간에 “이단을 조심하라”고 전달하거나 정기적으로 이단세미나를 개최한다면 신천지가 발붙이기 쉽지 않다. “한 신천지 탈퇴자는 교회에서 이단을 주의하라는 광고나 이단세미나를 하면 포교활동이 더뎌지거나 중단된다고 고백한다. 신천지로 탄로 날 경우 더 이상의 포교가 어렵기 때문이다.”2) 구원파구원파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성경적인 구원관으로 이단으로 결의된 단체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으로 세 곳이 있다. 대한예수교침례회 교단명을 사용하는 박옥수 구원파, 같은 교단명을 사용하는 이요한 구원파, 그리고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교단명을 사용하는 유병언 구원파, 이렇게 세 단체로 나뉜다. 기성 교회 성도들의 구원관을 흔들고 있는 이 단체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아보자.올바른 구원관이 필요하다구원관을 바로 아는 것은 크리스천들에게 필수적인 요소이다. 구원관이 필요한 이유는 구원파에 대처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이단을 상담하는 이들에게 이단대처를 위한 방안을 물으면 교회 차원에서는 이단 강의 등을 통해 이단에 대해 바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더불어 개개인에게 올바른 구원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구원에 대해 정확히 알고만 있어도 이단에 빠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구원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필수적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성도들이 구원에 대한 지식이나 확신이 부족해 구원파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원파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바른 구원관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구원파의 구원관이 기성 교회와 어떻게 다른지, 왜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으니 이제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자신의 육적생일을 아는 것처럼 구원받은 영적생일도 알아야 한다.”이러한 구원파의 주장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는 이를 수 있도록 바른 구원관을 세워야 할 것이다.교단명만 알면 구원파 교회를 알 수 있다이 세 단체는 이들만의 교단명을 사용한다. 기성 교회와 교단명이 달라 구별하기 쉽지만, 반대로 헷갈릴 수 있으니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 기성 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한국침례회박옥수, 이요한 : ‘대한예수교침례회’ (기성 교단 명을 섞어놓은 느낌)유병언 : 기독교복음침례회전국에 수많은 구원파 교회를 모두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교단명만 안다면 쉽게 대처할 수 있다.변치 않는 행사명을 기억하라세 구원파는 정기적, 비정기적인 행사나 집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 그 행사명이 변하지 않고 있어 분별하기가 더욱 쉽다. 단, 그 행사명을 머릿속에 기억하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 세 구원파가 어떤 행사를 열고 있는지 알아보자. 박옥수 구원파 : 여름수양회, 겨울수양회, 세계화에 발맞춘 굿 뉴스코 해외봉사단, 글로벌캠프, 세계문화체험박람회, 세계대회, 매년 2회 올림픽경기장 성경세미나, 전국 각 지역의 성경세미나, 무료영어회화교실, 어린이영어캠프, 영어 말하기 대회, 기브온 인형극단, 리오몬따냐(통기타 음악공연), 그라시아스 합창단, 대안학교 링컨스쿨. (주최 측은 대부분 IYF, 국제청소년연합이다)이요한, 유병언 구원파 : 박옥수 구원파와 달리 복잡한 행사가 많지 않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성경강연회’만 주의하면 된다. 유병언 구원파는 매년 여름수양회가 열리고 전국적으로 새신자 포교를 위해 전도 집회를 한다.언론, 기관, 사업체로 구별하라구원파에서 그들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책, 신문, 잡지를 비롯해 인터넷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하며 긍정적으로 보도한다. 박옥수 구원파 : ‘기쁜소식사’(출판), 「주간 기쁜소식」, 「월간 기쁜소식」, 계간지 「Tomorrow」, ‘GNN 방송’(ignntv.com)유병언 구원파 : 한국 녹색회, (주)온나라유통, (주)세모, 다정한 친구들, 청해진, 아해, 한국제약, 노른자, 한평신협3)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주변에서 많이 만나는 이단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어머니 하나님, 토요일 안식일, 십자가 우상, 종말론 등의 주장으로 잘 알려진 하나님의교회 신도들은 포교에 열의를 보인다. 하나님의교회의 포교방법을 통해 분별과 대처방법을 알아보자.설문지로 포교하는 하나님의교회하나님의교회는 설문조사를 한다며 포교한다. 대부분의 설문지는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 분별하기 쉽다. 설문조사를 주관하는 곳은 ‘세계복음선교협회, 멜기세덱성서연구원, 엘로힘아카데미’이다. 주요 설문내용은 다음과 같다“안식일은 무슨 요일인가?”“십자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성탄절은 12월 25일인가?”“유월절을 지키고 있는가?”“하늘 어머니는 누구인가?”이처럼 하나님의교회 주요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설문조사를 주관하는 곳의 명칭을 기억한다면 쉽게 분별할 수 있다. 또 설문조사자의 말이나 설문지에 ‘안식일, 십자가, 성탄절, 유월절, 하늘 어머니’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면 하나님의교회임을 인식하고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은 대처방법이다.침례를 강조하는 하나님의교회하나님의교회 신도들은 포교할 때 침례를 주려고 노력하는 특징이 있다. 포교를 위해 기성 교회의 잘못된 점을 꼬집고 하나님의교회를 홍보하면서 마지막에는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을 알고 나서 침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순서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어 바로 침례를 준다. 포교를 하면서 침례를 주는 이단은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하다. 하나님의교회가 진리라고 설명한 후 침례를 꼭 받자며 하나님의교회 목회자를 불러 침례를 준다. 언론을 이용하는 하나님의교회하나님의교회는 언론에 보도되는 횟수가 적지 않다. 신문, 잡지, 방송 등 여러 언론에서 하나님의교회의 홍보를 접할 수 있다. 또 이러한 기사들은 그들의 포교에 재사용되면서 포교도구로 활용된다. 하나님의교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2010년 11월 24일 기준, 하나님의교회 관련 기사가 신문에 776회, 잡지에 21회, TV에 36회, 인터넷에 78회 보도됐다며 그 내용을 올려놓았다. 이러한 보도는 하나님의교회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단들의 활동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언론에도 이단들의 활동이 다양하게 홍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교회가 아무리 많은 언론에 등장해 긍정적인 보도가 나더라도 이단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봉사활동을 내세우는 하나님의교회하나님의교회는 수상내역을 홍보하며 포교한다. 대통령, 장관, 시장 등 각계각층 인사와 기관으로부터 훈장, 표창, 감사패를 받았다. 대부분 봉사활동으로 받은 것들이다. 물론 봉사활동을 잘하는 것을 두고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봉사활동을 잘한다고 해서 이단의 굴레를 벗을 수는 없다. 이단들 중에는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이 이단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지 않고 왜곡하고 있다는 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단을 결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사회, 윤리적인 부분이 아닌 성경을 올바로 믿고 가르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봉사활동을 잘하는 것이 이단을 결의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음을 기억하자. 4) 통일교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단 중에 하나는 바로 통일교다. 통일교는 후계구도가 세워진 가운데 국내외에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아가고 있다.통일교의 사업체를 기억하자통일교 사업체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집 앞의 슈퍼만 가도 통일교 제품들이 즐비해 있고, 주위에 초ㆍ중ㆍ고등학교, 대학교, 스키장 등 통일교 유관단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사업체의 종류는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주요 사업체는 다음과 같다. 통일교 사업체, 기관, 단체 : 일화(맥콜 생산), 금강산국제그룹, 일성종합건설, 한국티타늄공업, 유니버셜발레단, 리틀엔젤스예술단, 선문대학교, 선화예술중고등학교, 선정중고등학교, 경복초등학교, 브리지포트대학, 성화신학교,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세계일보사, 워싱턴 타임스, UPI통신, 피스컵, 피스퀸컵, 성남일화축구단, 용평리조트, 일성레저, 세일여행사, 금강산국제그룹, 평화자동차총회사, 보통강호텔. 2010년 현재 전남 여수시 화양면 일대 약 302만 평 부지에 국제 해양관광단지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신 음료수 하나가 통일교 제품이라면 그 수익금은 고스란히 통일교를 위해서, 문선명 교주가 메시아로 선포되는 데 쓰일 것이다. 통일교 사업체를 기억하는 것은 생활 속에서 작은 노력으로 쉽게 통일교를 대처하는 방법의 하나다. 통일교의 경제활동은 그들의 종교적 목적의 달성을 위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기억하자.대학가 동아리 포교를 주의하자통일교는 캠퍼스에서 다양한 이름을 내세워 활동한다. 원리연구회, 월드카프등의 동아리 활동으로 포교한다. 주로 민통선자원봉사활동, 화이트캠퍼스운동, 순결운동 등의 슬로건으로 내세워 학생들을 모집한다. 자원봉사활동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이단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일본어를 가르쳐 준다며 홍보하기도 하니 이것도 주의하자. 합동결혼식을 주의하자결혼을 원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이 통일교 합동 결혼식을 찾는다. 특히 농촌 노총각들이 결혼을 목적으로 참여하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통일교는 ‘참가정운동실천본부’라는 이름으로 미혼남녀들을 미혹해 합동결혼식을 시키려 한다. 하지만 합동결혼식 후에는 통일교 교리를 세뇌시키고 문씨가 참부모, 재림주라고 믿게 만들어 버린다. 5천만 원에서 1억 원의 헌금을 내야함은 물론 수차례 통일 원리를 교육받고 전도해야 하며 또 다시 수차례의 헌금을 요구한다. 통일교는 전 세계의 종교를 통일하고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평화와 참 사랑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선전한다. 거미줄처럼 뻗은 사업망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통일교를 알리겠다는 거대한 포부로 보인다. 전 세계를 아우르며 좋은 슬로건을 내건 통일교는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을 실패한 메시아로 간주하는 매우 위험한 이단이다. 통일교 대처방법을 잘 숙지해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다.5)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이단이다. 2004년에는 한국선교100주년 행사도 마쳤다. 역사가 깊은 만큼 우리 주위에 익숙한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폭넓은 활동과 함께 사업체 경영으로 경제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안식교에 대처하는 방법을 살펴보자.교단명을 기억하자안식교 교회를 분별할 수 있다면 혹 주위의 권유로 교회를 가거나 주위 사람들이 안식교에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안식교 교회이름은 특이하지 않다. 일반 교회와 똑같은 교회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교회 이름만으로는 알기가 어렵다. 게다가 국내에만 안식교 교회가 900여 개가 있어 모두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식교 교회는 공통적으로 교회이름 앞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라는 공식명칭을 반드시 기재한다. 교회이름만으로는 절대 안식교 여부를 알 수 없지만, 안식교의 경우 공식명칭이 쓰여 있는지를 유심히 관찰한다면 구별할 수 있다.교리를 기억하자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식교는 단순히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정도로 알고 있다. “토요일에 예배드리면 이단인가요?”라는 문의도 가끔 들어온다. 안식교가 주장하는 교리를 아는 것은 좋은 대처방법 중에 하나다. 안식교는 토요일 안식일 주장은 물론 “영혼은 소멸한다”, “영원한 지옥은 없다”며 기본적인 정통 교회의 교리와 상반되는 주장을 한다. 재림파의 창시자 월리엄 밀러(William Miller)는 1843년 8월 21일 종말을 주장했으나 불발, 다시 1844년 10월 22일 종말을 예언했으나 불발했다. 이후 추장자 중 하나인 엘렌 지 화이트(Ellen G. White)가 1844년은 지금까지 성도들의 죄를 하나하나 조사하는 조사심판을 시작한 해라고 재해석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 엘렌 지 화이트의 계시를 “예언의 신의 선물”이라며 성경과 비슷한 권위에 두고 믿는다. 또한 그들은 돼지고기는 부정한 짐승이라며 먹지 않는다.사업체를 기억하자안식교는 경제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업의 종류도 다양하다. 선교, 출판, 교육, 외국어학원, 구호, 복지, 의료, 식품, 상조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의 결과물이 있다. 대표적으로 삼육두유, SDA삼육외국어학원, 삼육 초ㆍ중ㆍ고등학교, 삼육대학교, 위생병원, 시조사 등이다. 대부분 ‘삼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구별하기 쉽다.
초대교회, 믿음의 발자국초대교회에 닥친 세 번째 도전: 이단의 발생글 전인수 교수(KC대학교 교회사)초대교회가 당면했던 세 번째 도전은 기독교 내부에서 생겨난 서로 다른 신학사상이었다. 이를 교회사는 이단으로 정리한다. 우리는 흔히 정통이라는 것이 있고 나서 이단이 등장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초대교회에서 정통은 이단에 반대하는 과정 중에 형성되어 갔다. 초대교회는 복음의 핵심적인 부분을 공유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방대하고 체계적인 신학을 갖고 있지 못했다.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이단에 맞서는 과정에서 정통신학을 형성해 갔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박해가 외부에서 가해진 도전이었다면 이단의 출현은 교회 내부의 문제였다. 당시 이단은 로마제국과 같은 강력한 물리적인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의 일치에 위협을 가하는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이에 초대교회는 이단과의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갔고, 주류교회의 정체성을 다듬어 갔다.초대교회에는 기독교 사상이 발전하고 체계화되는 시기였다. 그래서 교회 내 다양한 신학적 사상이 출현하고 서로 경쟁하고 사라져갔다. 교회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과 세련된 지적 도전에 직면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그에 걸맞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단은 이렇게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는 과정 중에 출현했다. 때문에 당시의 이단을 교회를 파괴하는 불순한 동기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면 이는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 초대교회 이단은 기독교 신앙을 나름 잘 설명하려다가 오히려 기독교를 더 위태롭게 하게 된 이론이다.1) 기본적으로 선한 동기에서 출발했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단의 도전이단은 처음에 교회가 유대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한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 중에 발생하였다. 유대교의 일신론에 근거했던 에비온파(Ebionites)는 하나님 이외의 어떤 존재에도 신(神)의 지위를 부여하기를 꺼려하였다. 그래서 예수를 ‘하나님이 택하신 자’나 ‘참 선지자’로 보았다. 유대적 전통에서 예수를 구약의 선지자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양자론(Adoptionism)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예수가 세례 시에 하나님의 아들, 즉 양자로 인정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리스 전통에 압도된 이단으로는 영지주의(Gnosticism)와 마르키온주의(Marcionism)가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 세계를 영과 육이라는 대립적인 관점(이원론)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은 우주라는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는데, 인간의 몸도 이 감옥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특별한 영적인 지식(Gnosis)을 통해 우주라는 감옥을 벗어나 본래의 자리인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여겼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이 영적 지식을 전달해 주는 이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물질을 악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는 진정으로 연합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눈으로 보기에 육체를 입었지만 이는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는 ‘가현설’(假現設)을 주장했다. 이처럼 영지주의는 창조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며, 예수의 성육신과 역사성을 부인한다. 육체에 대해 불신했던 영지주의자들은 순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몸은 희생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주류교회의 생각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마르키온(Marcion)은 영지주의적 이원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구약성서와 구약적 영향이 농후한 신약성서는 거부하였다. 그는 구약을 아주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과 신약에서 말하는 구속주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다른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는 구약의 하나님인 여호와와 대립하기 위해 다른 신인 ‘아바’의 보냄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는 예수의 탄생기록을 삭제한 누가복음과 바울의 10개 서신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는 최초의 성경비평학자였다. 그는 144년 로마교회에서 방출되었지만 자신의 교회를 설립하여 독립하였다. 그는 자신이 정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르키온은 유대교와의 철저한 단절을 시도했다. 그는 기독교와 유대교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기독교는 유대교 신앙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하는가라는 당시의 고민을 보여준다. 교회는 구약을 기독교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신약을 점차 정경화하였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기독교의 구약적 전통을 인정하였고,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의 공의(구약의 하나님)와 사랑(신약의 하나님)의 조화라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당시 교회의 제도화 및 조직화에 반대한 운동으로는 몬타누스주의(Montanism)가 있었다. 몬타누스주의자들은 당시를 성령시대라고 하면서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을 인정하였고, 페푸자(Pepouza)에 새로운 예루살렘이 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참 선지자는 엑스터시(Ecstasy) 상태에서 예언을 말할 수 있으며, 또 그 엑스터시 상태에서의 예언은 예언자의 이성적인 지성의 협력 없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제자도의 엄격함을 강조했다. 반면 주류교회는 ‘예언자는 자신의 감각이 유지된 상태에서 비열광적으로 말한다’고 보았다. 208년 직후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가 몬타누스 운동에 가담했다. 당시 북아프리카의 몬타누스주의는 긴 기간의 금식을 강조하고, 재혼이나 순교를 피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또한 하늘의 예루살렘을 지향하는 종말론적인 비전을 주장했다.2) 이런 도덕적 엄격함이 테르툴리아누스에게 호감을 주었던 것 같다.몬타누스 운동은 오늘날 오순절 운동과 흡사하다. 때문에 이를 초대교회판 오순절 운동이라고 부를만하다. 그러나 교회는 이 운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교회는 성령의 계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에 제동을 걸었으며, 교회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였다. 교회는 성령을 빙자한 무질서보다 교회의 조직화, 서열화로 방향을 잡아갔다. 몬타누스주의는 지연되는 재림과 나태해진 교회의 신앙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교회의 응전초대교회는 이단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단에 대한 대처로 교회 안에는 신조(Creed)가 중시되었다. 신조는 초대교회의 공유된 신앙을 가장 잘 이해시키는 이론적 틀과 방법론을 찾다가 나온 공적이고 권위 있는 진술이다.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의 신비를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신조의 교리에 대한 진술은 부분적이나마 하나님의 계시와 신비를 보존한다. 이 신조는 정통교회가 쳐 놓은 일종의 울타리 역할을 하였다. 이 울타리 안에 있으면 ‘우리’가 된다. 그러나 이 울타리 밖에 있으면 이는 정통신앙을 위협하는 ‘이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조는 이단과의 싸움에서 ‘우리’를 확인하는 신앙고백문이었다. 이처럼 신조의 등장은 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사도신경은 주류교회가 이단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오늘날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의 최종적인 형태는 8세기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신앙고백의 단편적인 형태는 이미 4세기에 보이며, 역사적 기원은 그 이전이라고 해야 옳다. 사도신경은 처음 세례 때에 사용되었다가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발전하였다. 초대교회는 사도신경을 통해 당시 이단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이단은 본래 교회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이단적 사상에 공감하였다. 때문에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바로 세례를 통해 그 사람의 신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사도신경은 주류교회가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정통신앙을 확인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반면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류교회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 사실 훗날 교회사에는 신조의 부정적 기능도 등장한다. 때로 너무 다양하고 번잡한 신조나 신앙고백이 오히려 성경의 단순한 신앙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특정교파의 신앙을 강조하기 때문에 교회 분열을 촉진하는 부작용이 생겼던 것이다. 때문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던 미국의 환원운동가들은 ‘그리스도’나 ‘성서’ 이외에 다른 신조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이는 교회사의 역사적 정황에 따라 신조에 대해 그 신학적 이해를 달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하지만 초대교회 시대 때의 사도신경은 그 역사적 가치가 충분했다. 초대교회는 사도신경에서 하나님의 창조사역, 예수의 성육신과 육체적 부활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는 영지주의가 물질은 악하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창조신을 매우 저급한 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물질을 악으로 보는 이원론은 예수의 성육신과 육체적 부활도 부인했다. 마지막 심판을 언급한 것은 세상의 종말에 심판 받을 자가 없다는 마르키온의 주장을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교회는 내부적 싸움에 대한 응전으로 공통의 신앙고백을 이끌어내었다. 훗날 기독론 논쟁 때에는 공의회에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이끌어 낸다. 이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신조는 주류교회의 신학적 일치성을 확인하고, 주류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에 대한 확인 작업이었다. 공통의 신조를 고백한다는 것은 주류교회의 신앙에 동조한다는 신호였다. 신학적인 교리는 그 자체가 완전하거나 진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교리는 최소한 당시 다수의 교회 공동체가 이성적?성경적으로 기독교 진리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답변이라고 인정했을 때 교회 안에서 승인될 수 있었다. 우리는 신조에서 이단과의 치열한 전장에서 피아를 구분해야 했던 초대교회의 치열한 고민을 발견할 수 있다. 신조 외에도 초대교회 당시 이단에 대처하면서 사도적 전승이라는 것이 강조되었다. 이는 사도들이 죽고 난 이후 이를 계승한 사람들의 계보를 강조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 계보를 통해 영지주의자들처럼 사도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들을 비판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교회 안에서는 점차 감독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조직화되어 가던 교회의 구조적 특성과 더불어 이단과의 싸움에서 강한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에 감독제도는 교회 안에 더욱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런 과정에서 교회는 감독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교황을 비롯한 주교제도가 생겼났고, 이를 정당화한다. 반면 개신교회는 이런 가부장적이고 군주적인 감독제가 초대교회의 에클레시아의 이상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 사도적 전승을 주교의 계승이 아닌 사도들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성경 또한 점차 정경화 되어 갔다. 사도 바울의 저작과 사복음서는 교회에서 일찍부터 읽혔다. 히브리서는 저자문제, 요한계시록은 비판적 국가관으로 인하여 정경으로 수용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경(Canon)을 확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도성(Apostolicity)이었기 때문이다. 정경화는 397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회의에서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단과 신조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단들의 등장은 교회가 수용해야 할 사상과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단의 등장으로 교회는 신학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더 굳건하게 했으며, 때로는 폐쇄적으로 정리해 갔다. 또한 이단을 배제하고 주류교회의 신앙을 확인해 가는 과정 중에 신앙고백이 등장하였다. 때문에 신앙고백은 그 고백이 등장하기까지의 특수한 역사적 정황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교회에서 고백하는 신조나 신앙고백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학적 이해가 선행되었을 때, 이를 더 깊게, 또한 감동적으로 고백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신조를 올바르게 이해할 때 이를 평가하는 균형 있는 시각도 생긴다. 곧 신조는 당시 교회 공동체가 직면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절대화해서도 안 된다. 한때 한국 교회 안에는 예배 시간에 이를 암기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이단을 평가하는 풍토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세계적으로 많은 교회가 신조를 예배 시간에 고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에도 이를 세례 때에 고백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를 우리의 신앙으로 수용하느냐의 문제다. 사도신경을 생명처럼 여기는 한국 교회 신자들 중에도 사도신경의 원문에는 “지옥에 내려가셨다가”라는 부분이 쓰여 있었지만 현재는 그 내용이 삭제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신자는 드물다. 우리 안에 이미 사도신경에 대한 선택적 접근이 있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정통교리가 반드시 진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또한 교리도 역사적으로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정통교리는 최소한 교회가 믿는 신앙에 대해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신학적 진술이다. 그래서 정통교리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교회사는 대부분의 경우 많은 이들이 정통교리보다 더 나은 신앙적 진술을 표현하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신학적 탐색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진술은 기독교 신앙을 더 위기로 몰아간다. 이것이 바로 이단이다. 그리스도대학교에서 신학을, 서강대에서 사학을 전공한 전인수 교수는 KC대학교(前 그리스도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를,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남경대학교에서 중국근현대사로 박사과정을 공부하였다. 신학이 공론화, 사변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초대교회로의 회복을 주장하는 환원운동, 한국 교회의 주체적 신앙운동 및 선교역사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김교신 평전』, 『기독교 한국에 살다』(공저)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이 있다.
한국 교회 믿음의 발자국한국 교회의 이단 글_ 전인수 교수 (그리스도대학교 역사신학)한국 교회 이단의 뿌리 한국교회사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이단의 등장은 일제강점기부터라고 봐야 한다. 1920-30년대 독자적인 성서해석과 개인의 신앙체험이 접목되면서 이단적인 교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하였다. 이는 그들이 체계적인 신학훈련을 받지 않았고, 또 개인적 신앙체험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종교에 침잠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던 이들의 일탈도 있었을 것이다.한국교회사에서 이단은 대부분 장로교회를 통해 결정되었다. 장로교회는 한국 개신교회 중에서 70%가 넘는 성도 수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는 선교 초기부터 있었던 현상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서북지방의 장로교는 교권이 강했고, 신학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당시 장로교회가 주목한 것은 신비적 신앙이었다. 한국교회사에서는 이런 경향을 ‘신령파’(神靈派)라고 부른다. 굳이 신비주의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의 신앙적 경향이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입신(入神)이나 예언, 계시 등 개인적 신앙체험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무당들이 하는 신탁행위가 기독교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들에게는 무교(巫敎)의 성격이 두드러졌다. 신령파의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새주교회의 김성도(金聖道, 1882-1944), 원산파인 유명화, 예수의 목이 자신의 목에 붙었다고 주장한 황국주 등이 있다. 김성도는 ‘새 주’를 자처했으며, 유명화는 예수의 영이 자신에게 친히 임했다(親臨)고 주장했다. 황국주도 한때 자신을 예수라고 여겼다. 재미있는 것은 김성도가 죄의 뿌리가 음란이며 예수는 한반도에 재림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음란과 재림 모티브는 김성도 밑에서 신앙생활을 한 적이 있는 김백문(예수교이스라엘 수도원)을 통해 문선명(文鮮明, 1920-2012), 박태선(朴泰善, 1917-1990)에게 이어졌다.문선명의 통일교통일교와 전도관은 김성도-김백문으로 이어지는 영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해방 후 우리나라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부흥하기 시작한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기독교계에는 많은 신흥종교가 등장하였다. 많은 이들이 신비적인 체험, 그리고 현세적 축복을 찾게 되면서 기복주의(祈福主義)적 신앙이 빠르게 확산되었다.1) 또한 이런 틈을 이용하여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구원과 안위를 약속하는 신종교 집단이 파고 들어왔다.2) 문선명은 1920년 음력 1월 6일(양력 2월 25일), 평안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에서 아버지 문경유, 어머니 김경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문선명의 어릴 적 이름은 용명(龍明)이었다. 그는 16세 되던 1936년 4월 17일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고통 받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슬퍼하고 계시니라.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사명을 맡아라”고 부활절 새벽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3)문선명은 1945년 해방 직후 이스라엘수도원의 김백문에게서 6개월간 성경을 배웠다. 그리고 1954년 문선명은 통일교를 세운다. 1957년 8월에는 『원리해설』을 발행했다가 1966년 5월 이를 『원리강론』으로 보완하여 간행하였다. 문선명은 1960년 성정여고에 재학 중이던 18세의 한학자와 결혼하였다. 통일교는 1958년 초부터 김영운을 선교사로 파송하여 미국선교를 시작하였다.4) 문선명은 성적타락을 죄의 본질로 여기는 사상을 『원리강론』에서 체계화시켰다. 그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성적인 범죄라고 해석했다. 그 근거를 범죄 후 아담과 하와가 하체를 가린 것에서 찾았다. 이 때문에 성적타락의 회복은 피가름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문선명은 예수님을 영적 구원만을 성취한 자로 규정하고 자신을 육적 구원을 성취할 재림주, 메시아로 암시했다(제3의 아담). 그리고 한국에 지상천국을 건설한다고 주장했다. 통일교에서는 지상천국이 참부모가 주도하는 축복결혼(합동결혼식)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참가정(통일교 가정)을 기반으로 건설된다고 본다. 통일교는 1960-70년대 반공논리로 미국과 한국의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았고, 한국의 군수사업(통일산업)에 진출하여 이득을 얻었다. 통일교에서 주장한 승공(勝共)운동은 박정희 정권과 통일교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통일교는 1960년대 중반부터 헌금이나 기업 활동, 신자들에게 꽃, 양초, 인삼 등을 판매시켜 막대한 부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통일교는 전두환 정권과는 밀월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5) 또한 북방외교로 노태우 정권과도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6) 통일교는 1980년대 말부터 승공운동에서 통일운동으로 반향을 전환하였다. 1990년대 초 문선명은 북한을 방문하여 이전과는 다른 유화적인 태도로 북한을 대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시에는 세계일보 회장 박보희를 조문사절로 보낼 정도로 북한진출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북한에 있는 통일교 시설로는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정주평화공원(문선명 고향), 평양가정교회 등이 있다. 앞으로 한국 교회의 북한선교 시 이미 북한에 상당한 지분을 확보한 통일교와의 갈등이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7)통일교는 근래 정계진출도 시도하고 있는데 제18대 총선(2008)에서는 평화통일가정당(가정당)으로 참여하여 1.05%를 획득했다. 당시 기독당은 45만 표로 2.6%를 획득했다. 통일교는 2012년 9월 교주인 문선명이 사망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통일교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에 대한 기독교계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통일교는 문선명의 사망 전후로 한동안 후계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문선명의 사망 즈음에 7남 문형진과 4남 문국진에게 통일교의 주도권이 승계된 바 있지만 지금은 부인 한학자가 통일교의 중심에 서 있다.8) 그럼에도 통일교는 종교적인 조직인 동시에 경제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 세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곧 통일교는 조직과 교리의 체계화 작업으로 문선명 사망 후에도 계속 존속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의 통일교 신도는 20만 명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박태선의 전도관(천부교)박태선은 한국전쟁 시기에 성장한 또 다른 기독교 신흥종파의 교주로서 1990년대까지 맹위를 떨쳤다. 그는 자신을 영모(靈母), 감람나무, 동방의 의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평안남도 덕천군 덕천읍 읍남리에서 태어난 후 1990년 2월 7일 사망하였다. 그는 성결교회 이성봉 목사의 부흥회에서 큰 감동을 받고 기도하다가 뜨거운 불을 받았다고 한다.9) 그는 이후 1956년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를 조직하고, 1957년부터 신앙촌을 건설하여 자신만의 종교적 아성(牙城)을 구축하였다. 첫 번째 신앙촌은 부천 소사에, 두 번째 신앙촌은 양주 덕소에(1962), 세 번째는 경남 양산에 건설하였다(1970). 박태선은 1960-70년대 신앙촌에 시온산업을 설립하여 100여 개 이상의 제품을 생산하였는데, 이는 신흥종교가 기업과 연결되는 것을 잘 보여준다.전도관은 1980년 전환점을 맞는다. 박태선이 예수와 성경을 비난하면서 기독교와 단절을 시도하고 교명도 천부교회로 바꾼 것이다. 이때 많은 신도가 전도관에서 이탈하였다. 1970년대 10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으나 실제적으로 천부교에 속한 신도는 수만 명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사망한 후에는 몇 천 명 수준으로 교세가 위축되었다.박태선의 영향을 받아 생긴 분파는 20여 개를 헤아린다. 대표적인 것으로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의 조희성, ‘장막성전’의 유재열, 그리고 장막성전에서 분립한 ‘신천지’의 이만희, 동방교의 노광공 등이 있다.10) 조희성은 박태선 전도관 전도사 출신으로 1980년 초에 영생교를 설립하였다. 그는 박태선의 감람나무 둥치의 사명이 끝나고 이제 감람나무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 사명을 자신이 맡았다고 주장했다.11) 노광공(1914-1967)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박태선을 따라 다니며 예배 때마다 북을 쳤다. 그는 대구에 동방교회를 세우고 경상남북도를 돌아다니면서 부흥회를 인도하여 유명세를 탔다. 당시는 박태선과 나운몽의 부흥회가 전국을 휩쓸 때였다. 한국 교회는 1955년부터 통일교와 전도관을 사이비 혹은 이단으로 비판하여 교회들이 경계하도록 하였다.이만희의 신천지현재 한국 교회에 가장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이단은 신천지(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다. 이는 거의 모든 교회 앞 현관에 ‘신천지 신자를 사절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1984년 세워진 신천지는 박태선계, 특히 유재열의 장막성전의 영향을 받았다. 신천지를 세운 이만희(1931년 경북 청도 출신)는 자신을 보혜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천지에서는 신자의 숫자가 14만 4천 명이 될 때 자신들이 왕과 제사장이 된다며 포교에 열중한다. 그런데 그들의 전도방식 때문에 한국 교회가 오랫동안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고 사회적으로 물의가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교회신자들을 집중적으로 회유하여 신천지로 데려오거나 교회 자체를 신천지로 접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신천지의 훈련된 신자들은 ‘추수꾼’이라고 불린다. 추수꾼은 관계전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자신들의 성경공부 모임인 ‘복음방’으로 데려온다. 복음방에 온 이들은 신천지식 성경공부를 하게 된다. 문제는 추수꾼이 전도를 하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비상식적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선교방식을 ‘모략’이라고 부르며, 그들이 포섭의 대상으로 삼은 교회를 ‘추수밭’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전도를 위해 거짓말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또한 교회에 침투하여 헌신적으로 신앙생활하면서 교회의 리더가 되어 세력을 확보하려 한다. 곧 이들은 교회에 침투하여 이를 접수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한국 교회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 또한 신천지는 가정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들은 14만 4천 명이 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신자가 된 이들은 가정과 학업을 포기하는 것이 다반사다. 또 직장을 나가는 이들도 그 목적이 포교인 경우가 많다.신천지는 모든 성경을 ‘비유’로 풀어간다. 엉터리 해석이지만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단순하고 명쾌한 뜻풀이, 비유풀이로 여겨설득을 당한다. 처음부터 이만희를 보혜사라 소개하면 믿지 않겠지만 단계식 성경공부에 세뇌되다보면 어느새 그들의 주장에 넘어가는 것이다. 신천지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회자가 모르는 교회 밖 성경공부를 조심하는 것이다. 교회 밖 성경공부는 십중팔구가 신천지이다. 안상홍의 하나님의교회하나님의교회는 앞에서 언급한 이단들과는 그 뿌리가 다르다. 통일교나 전도관, 신천지 등은 김성도나 김백문 혹은 그들에게서 파생된 통일교나 전도관의 영적·역사적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교회는 미국에서 출발한 안식교를 그 뿌리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는 한국 교회 이단 중 가장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분파이다. 안상홍(1918-1985)은 1962년 안식교에서 탈퇴하고, 1964년 ‘하나님의교회 예수증인회’를 부산에 창설하였다. 이후 1985년 안상홍이 죽자 ‘하나님의교회 안산홍 증인회’로 교단명칭을 바꾸었다. 1980년대 하나님의교회는 1988년 늦은 비 성령이 오시면 14만 4천 명이 휴거 받고 지구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12)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을 ‘재림 그리스도’와 ‘(성령)하나님’으로 믿고, 장길자를 새예루살렘의 어머니, 어머니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 장길자는 1981년 안상홍으로부터 하나님의 신부로 택함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가장 큰 교리적 특징은 하나님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창세기 1장 26-27절, 갈라디아서 4장 26절,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을 그 성서적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하나님의교회는 안식교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구약의 절기를 매우 중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을 지키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월절이다. 그들은 이를 구원과 연결시켜 이해한다. 성만찬도 유월절에만 거행한다. 자신들이 이러한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이것이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교회는 부활절을 지키지만 일반 교회와 날짜가 다르다. 그들은 기성교회의 부활절 관습이 이교적이라고 비판한다. 하나님의교회는 ‘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에 부활절을 지키며, 달걀이 아닌 떡을 먹는다. 그들은 이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를 누가복음 24장 13-32절, 사도행전 20장 7절에서 찾는다.하나님의교회는 해외선교에 적극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때문에 해외의 신도들이 성지순례로 한국을 자주 방문한다. 하나님의교회측 주장에 의하면 20-40대 젊은층이 많고, 하나님 어머니가 있다는 주장에 동감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하나님의교회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활발한 사회봉사활동으로 선교하고 있다. 그들은 150여 국가에 1,900개(국내 400개, 해외 1,500개)의 교회가 있으며 등록신도는 145만 명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2010년 한해 등록신도만도 22만 명이라고 말하고 있다.13) 이처럼 하나님의교회는 사회적 공신력을 통해 교세를 확장하는 전도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봉사활동은 이들의 중요한 전도방법이다. “하나님의교회 봉사의 모토가 ‘어머니의 마음’으로”라고 말한다.14) 한 이단연구자는 이 전도방법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정확하게 알게 하는 전략”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15) 최근 하나님의교회는 신천지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반사이익을 챙기며 성장하고 있다.16) 하나님의교회는 교리적 이단의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한국 교회는 기독교 신학을 변증하는 논리적, 신학적 작업을 충실히 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거울이자 반면교사저명한 역사신학자이자 조직신학자인 맥그라스(Alister Mcgarath)는 이단을 계획적이기 보다는 우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뒤집고 동요시키고 심지어 파괴하게 된 기독교 신앙의 한 유형으로 본다. 그에 의하면 이단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 주제를 특정 방식으로 정립하려고 시도했지만 파르테논 신전을 보수한 니콜라오스의 꺽쇠처럼 결국 교회에 더 큰 화를 불러온 실패작이다.17) 곧 이단은 본래 교회를 파괴할 생각으로 시작한 사상이나 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신학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교회를 더욱 파괴시킨다는 뜻이다. 이는 이단의 주장이 처음에는 매우 그럴듯하고 교회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마침내는 교회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의미다. 이런 모습은 한국교회사의 여러 이단들을 통해 충분히 인지한 바 있다.우리가 이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교회 안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치명적이다.18) 교회사에서 이단의 출현은 기존 교회의 부패와 영성의 고갈, 세속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기존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면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이단의 특징이다. 이단의 틈새를 교회 자체가 제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성도들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의 자기정화와 개혁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곧 이단에 대한 비판적 대응도 중요하겠지만 이단적 종파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단들이 기성 교회에 던지는 하나의 긍정적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자기성찰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을 우리의 거울이자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다. 우리가 이단을 신학적으로 알아야 하는 이유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단을 앎으로써 정통신앙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단은 정통신앙이 왜 괜찮은지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에 대한 신비나 기독교 진리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그럼에도 정통신앙은 당시 시대 속에서 기독교 신학에 대한 최선의 고백이자 진술이다.19) 때문에 이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자리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 준다. 우리는 많은 이단의 도전 속에서 더욱 성장한다.전인수 교수그리스도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있다. 그리스도대학교에서 신학을, 서강대에서 사학을 전공하였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를,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남경대학교에서 중국근현대사로 박사과정을 공부하였다. 신학이 공론화, 사변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초대교회로의 회복을 주장하는 환원운동, 한국 교회의 주체적 신앙운동 및 선교역사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김교신 평전』, 『기독교 한국에 살다』(공저)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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